-연재를 시작하며- 21세기 부여신문은 부여 출신 향우(명사)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하기로 했다. 인물선정이나 시간제약·취재일정으로 무순으로 기재하오니 많은 이해를 부탁드린다. |
≫연재순서 | ① 권오형 한국공인회계사회장 ② 이우철 생명보험협회장 ③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회장 ④ 김진환 법무법인충정대표변호사(재경부여군민회장) ⑤ 김무환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장(민선 3·4기 부여군수) ⑥ 이정치 일동제약회장 ⑦ 김영기 (사)한국서도협회장 ⑧ 김종필 전 국무총리 ⑨ 신광섭 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추진단장 ⑩ 경희대학교 김성수 한의과대학교수(전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장) ⑪우남(牛南) 이용휘 전 국립군산대학교 예술대학장 |
대한민국 수출 역사의 산증인, 40여년간 가발 외길 인생, 전세계 가발시장 석권
대한민국 수출품 1호 ‘가발’ 1960~70년대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가발을 수출해 전세계를 석권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우고 있는 전병직 (주)코리아나 회장. 그의 진가는 지난 2011년 12월 12일 서울코엑스(COEX)에서 개최한 제48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더욱 빛이 났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강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토대를 마련한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공헌한 31명의 특별유공자 포상식에서 단연 돋보였다.
故 윌리엄 존 던컨(영국)은 현대중공업에서 조선소 기술을, 또 故 아리가 도시히코(일본) 신일본제철 감사역은 포항제철 건설, 여기에 대한민국 자동차 1호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이탈리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높은 공로를 인정받은(주)코리아나 전병직 회장은 ‘대한민국 무역 1조 시대의 영웅’으로 감동을 주었다. -편집자 주- |
대한민국 공산품 수출품 1호가 ‘가발’이란 사실을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가 후진국을 벗어나 개발도상국으로 부상하면서 당시 ‘가발회사’에 근무하면 한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좋은 직장이었다고 한다.
(주)코리아나 전병직 회장은 45년간 가발산업에 삶을 바쳐온 대한민국 가발업계의 산증인이다. 기계기술자로 가발공장에 들어간 후 가발생산 교육담당자를 거쳐 디자이너로 변신하면서 전 회장은 가발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발개발에 혼신을 다해 투자했다. 전 회장이 일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였나 알 수 있는 대목은 결혼식 날 일을 하다 늦어 식장에 도착하니 하객들과 함께 가는 상황이 돼 “신랑도 이제 가네……” 라며 한바탕 웃음으로 예식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가 되고 있다고 한다.
미성상사에서 1992년 5월까지 상무이사로 근무하다 퇴직하면서 그는 잠시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때 전 회장의 나이는 45세. 미국 여행 중 그동안 친분을 쌓았던 바이어들을 만나던 중 판매보다 생산을 적극적으로 권유받아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주)코리아나는 중국 천진에 공장을 건립해 OEM 방식과 직접 생산을 지금은 병행하고 있지만 한창 가발수출이 활기를 띨 때는 3천여명이 근무할만큼 세계 가발시장을 주도했다.
| | △ 온란인 패션가발 ‘wi 9’의 제품들. ⓒ 21c부여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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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회장이 미성상사에 근무할 당시 개발한 ‘크림프 컬’과 ‘웨트룩 컬’은 현재까지도 생산되고 있으며, 백인들이 주 고객이었던 시장에 흑인들이 가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가발시장을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소비층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건 패션을 선도한다고 볼 수 없다. 정말 새로운 상품, 새로운 걸 만들어 소비층이 그걸 찾을 수 있도록 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패션을 선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 | △ 온란인 패션가발 ‘wi 9’의 제품들. ⓒ 21c부여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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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국제경영원 한영섭 부원장은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도 가치를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리더이다”라면서 전병직 회장을 표현한다.
전세계 가발시장을 석권한 (주)코리아나는 지금까지도 NO.1으로 통하는 이유가 바로 ‘신뢰’이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기업. 가발하면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가 회사명도 ‘코리아나’이기에 더욱 뜻깊고 자긍심을 갖게 한다.
| | △ 중국 천진 공장. ⓒ 21c부여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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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병직 회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고 한다. 중국 현지공장에서 ‘노사분규’로 6년여간을 고생했지만 ‘원칙과 소신’을 갖고 이를 극복했다고 한다. 특히 ‘사람’을 중요시하는 경영철학으로 살고 있는 전 회장은 “사람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업이 정말 좋은 기업이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복지’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유독 코리아나에 장기근속자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 | △ 수출계약을 체결하던 전병직 회장 ⓒ 21c부여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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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제48회 무역의 날 행사 입장식에서 가장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입장하고 전병직 회장이 그 뒤를 따라 두 번째로 입장을 할 때 당시 사회자가 “무역의 1세대 영웅께서 입장하십니다”라고 소개할 때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책임감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 △ 전병직 회장의 가족들. ⓒ 21c부여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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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직 회장의 뒤를 이어 큰 딸 주영 씨는 ‘글로벌 코리아나’를 설립해 온라인 패션가발사업에 뛰어 들었다. 주영 씨는 일본에서 패션공부를 한 감각과 경험을 최대한 살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또다른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아들 상기 씨는 코리아나에서 경영기획실장으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올해로 68세를 맞이한 전병직 코리아나 회장. 전 회장은 재경남면민회장을 맡아 고향에 큰 봉사를 하고 있으며, 광명시와 서울을 오가며 겉으로 노출되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는 ‘CEO’로 광명시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다.
“항상 겸손하고 명예조차 사양할 줄 아는 훌륭한 인격자”라고 이효선 전 경기도의원은 전 회장을 말한다. 하지만 ‘따뜻한 남자’라고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병직 회장은 우리 부여가 낳은 대한민국 무역의 ‘영웅’이자 ‘자랑스런 부여인’이다.
출처:부여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