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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을 기계에 비유하는 예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행동주의자들은 자극과 반응 간의 연결을 전화 회선을 전화 교환수가 수동으로 연결하는 과정에 비유했고, 초기의 인지심리학자들은 뇌를 컴퓨터의 하드웨어에, 생각은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이 같은 비유를 통해 얻은 지식은 실생활에서 성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감각 기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인공 각막이나 인공 와우(蝸牛), 혹은 사고 등으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인공 의수족기 등은 인간의 기능을 기계적으로 이해한 결과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기계론적 접근의 이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인간을 기계로 보는 이론은 그리 환영받지 않았다. 인간 기계론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사후에 발표하도록 했고, 라메트리가 인간의 동기를 태엽에 비유하는 글을 쓴 후 도피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기계의 발달 상황을 고려할 때, 이 프랑스 의사의 시도가 동시대의 유럽 사람들을 진노하게 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약 100년 후에 다윈이 진화론을 통해 인간과 (어쩌면 기계보다 훨씬 더 정교한) 동물의 연속성을 주장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던 것을 생각해 보라.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기계가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감히 인간을 그들에 비유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끌어내리는 그야말로 불쾌한 생각으로, 즉각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지적인 노력의 산물들이 축적되면서, 예를 들어 언어의 경우 인간과 다른 동물 간에 큰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영역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경우에 따라서는 기계와 공통점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사랑이나 이타적 행동은 물론 추상적 사고 과정에도 진화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그 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과 그의 동료들의 연구는 자유의지마저도 마치 증기 기관차에서 나오는 기적 소리처럼, 뇌 활동의 부산현상(epiphenomenon) 내지는 허구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엄청난 시사점 때문에 리벳 등의 연구가 발표된 이래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간에 다각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리벳의 실험에 대한 논의가 최근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신경과학에서의 발견, 특히 뇌 영상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얻은 자료들이 여러 분야에서 응용 및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러한 자료들이 법정 판결에서 증거 자료로 제시되는 사례가 빈번해졌고, 미국의 경우 일군의 신경과학자들과 철학자 그리고 판사를 비롯한 법조인들이 공동 연구를 수행해 그 결과를 출판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리벳 등의 연구를 포함한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물이 법적 판단과 같은 다른 분야에서 적용 및 응용되는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평가되는 리벳 등의 연구와 이에 대한 후속 연구의 결과를 절차상의 문제와 가정에서의 문제로 나누어 정리하고자 한다.
리벳 등(1983)은 의식적 의도와 뇌 활동 간의 관련성을 알아보는 일련의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 연구의 출발점은 한스 콘후버(Hans Kornhuber)와 뤼더 데케(Luder Deecke)(1965)가 두피에 여러 개의 전극을 붙여서 그 전기 활동을 기록하는 뇌전도(EEG) 기법으로 얻은 준비전위[readiness-potential(RP)]이다(리벳 등에서 재인용).
EEG는 대개 자발적인 뇌파의 변화를 기록하지만, 준비전위는 피험자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반응을 정해진 시간 내에 하되 하고 싶을 때 하도록 한 상황에서 관찰한다. 준비전위가 관찰되는 영역은 운동을 담당하는 피질이 있는 두정엽인데,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손가락 근육이 수축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부터 대략 1초 전에 나타난다. 리벳 등은 뇌의 사전 준비 활동이 근육 수축 반응에 선행한다는 발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뇌의 사전 준비 활동 시점과 반응을 하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한 시점(앞으로 이 시점을 영어의 Will에서 따온 W로 표시하기로 함) 간의 시간적 선후관계를 알아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자발적 반응을 원하는 때 하도록 하는 동시에, 반응을 의식적으로 의도한 시점을 측정하기 위해 특별한 시계판을 사용했다. 이 시계판에서는 시계의 초침처럼 눈금이 새겨진 원의 안쪽을 따라 밝은 광점이 2.56초 만에 한 바퀴씩 돈다. 피험자의 과제는 자신이 반응하고 싶을 때 반응을 하는 동시에, 언제 반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를 시계판 위를 움직이는 광점의 위치를 통해, 예를 들어 25초 혹은 50초 방향 등으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6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각각 40회 이상의 시행을 통해 얻은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콘후버와 데케의 실험에서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했을 때 그 반응에 앞서 관찰되는 뇌 활동인 준비전위는 실제 반응보다 약 1초 빠르게 나타난다([그림 1]의 RPI). 통상 이 준비전위는 다음에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준비전위 2와 구분하기 위해 준비전위 1로 부른다. 둘째로, 위에서 언급한 시계로 언제 의도를 했는지 반응하도록 했을 때 나타나는 뇌 활동인 준비전위 2는 실제 반응에 약 550밀리초 앞서 나타난다([그림 1]의 RPII). 셋째, 피험자들이 시계판을 이용하여 보고한 W는 실제 반응보다 200밀리초 앞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피험자들의 의도는 실제 반응에 약 200밀리초 앞서지만 준비전위 2보다 350밀리초 이후이다.
리벳 등은 이 결과를 우리의 행동은 물론 그 행동을 하고자 하는 의식적 의도도 그에 선행하는 무의식적 뇌 활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인간은 무의식적인 뇌 활동에 선행하여 의식적으로 행동을 시작하게 할 수는 없지만, 의도와 행동 사이의 시간인 행동 전 200밀리초에서 100밀리초 사이에는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도를 거부할(veto) 수 있다고 했다. 리벳은 거부에 대한 증거를 두 가지 제시했는데, 하나는 피험자들이 일부 시행에서 그렇게 했다는 보고였다. 또 다른 증거는 손가락 근육에서의 전기적 신호, 즉 M(앞으로 이 시점을 영어의 Movement에서 따온 M으로 표시하기로 함)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먼저 W가 일어나고 이를 취소하는 결정, 곧 거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제한된 시간 내에 반응을 하도록 한 다음 그 제한된 시간의 대략 100밀리초에서 200밀리초 전에 반응 의도를 거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리벳은 이 결과를 M이 일어났을 때와 비교했는데, 그 결과 거부가 일어났을 때는 거부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 비해 150밀리초에서 250밀리초 사이에 뇌파가 더 평평하거나 방향이 뒤바뀐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결과는 피험자가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에도 실험자가 시키는 대로 반응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또한 의심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실제로 리벳 등의 연구에 대한 후속 연구에서 이 부분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벳은 이상의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의식적 의지는 준비전위 2에서 관찰된 것처럼 뇌 활동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시작되지만, 준비전위 2가 활성화된 후 350밀리초에서 400밀리초 동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찰 가능한 행동에서 국한된 주제를 다루었던 행동주의와는 달리, 인지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내적인 과정을 상정하여 행동을 설명한다. 그렇지만 내적 과정의 상정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렴적 조작(converging operation)이라는 방법을 도입한다. 이 방법은 하나의 내적 과정 혹은 구인(construct)을 하나의 실험 혹은 조작으로 정의하는 대신에, 여러 다른 조작에 의해 수렴되도록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지심리학의 전형적인 실험 연구에서는 같은 내적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절차나 측정 도구를 사용하여 일련의 실험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종합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최소한 지시문을 바꾸거나 실험 참가 집단을 다르게 하거나 하는 등의 체계적 반복 검증을 수행한다.
리벳 등의 실험에 대한 후속 연구에서 이루어진 수렴적 조작 가운데 하나는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결정을 내린 시점을 보고하기 위해 사용되는 시계였다. 다른 절차는 그대로 유지하고, 리벳 등의 연구에서 사용된 원판 시계를 숫자가 나오는 디지털시계처럼 다른 시계로 바꿀 경우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계를 바꾸면 다른 결과가 나왔다.
윌리엄 뱅크스(William P. Banks)와 수잔 포켓(Susan Pockett)(2007)은 리벳과 같은 시계를 사용했을 때는 M이 버튼을 누른 시간보다 더 빨리 나타난 반면, 디지털시계를 이용한 실험 결과에서는 M이 버튼을 누른 시간보다 60밀리초 후에 나타남을 발견했다. 이는 서로 다른 시계가 다른 지각적 속성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리벳의 시계에 측정된 W에 기반하여 손가락 움직임의 시간을 추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시계 문제의 배후에는 의식적 자각의 기제에 대한 해묵은 심리학적 논쟁이 깔려 있다. 이 논쟁의 핵심은 통제된 조건에서 피험자에게 자신의 심적 과정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게 하여 얻은 자료인 내성 보고를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이다. 리벳 등은 원판 시계를 이용하여 W를 확인할 수 있다고 가정했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가정을 의심할 충분한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과 티모시 윌슨(Timothy D. Wilson)(1977)은 인간은 사고 과정에 대한 질문에 대답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대답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얻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함을 주목했다.
예를 들어, 대학생에게 “너는 어느 고등학교 다녔니?”라고 물으면 대개 금방 답을 할 수 있지만, “너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 냈니?”라고 물으면 대개는 “잘 모르겠다. 그냥 기억이 났다.”라는 모호한 대답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피험자들이 자신의 인지 과정을 보고할 때 실제 내성에 근거하기 보다는 이전의 경험이나 지식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니스벳과 윌슨의 발견은 리벳 등의 연구에 참여했던 피험자들이 자신의 의도 시점을 실제로 경험에 근거하여 보고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 대신 이들의 보고는 움직임이 발생한 후에 그 움직임에 이르도록 하는 일련의 사건들의 관계에 대한 그럴듯한 추론에 근거하여 만들어졌을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가능성은 지각적 경험에 대한 의식적 보고에서 다양하게 관찰되는데, 리벳 실험과 관련해서 이 결과가 재구성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검토는 뱅크스와 이브 이샴(Eve A. Isham)(2009)에 의해 이루어졌다. 뱅크스와 이샴은 리벳 등의 절차에 따라 피험자에게 누르고 싶을 때 단추를 누르도록 하면서 언제 누르고 싶었는지를 보고하도록 했다. 이들의 실험에서 새롭게 도입된 절차는 피험자들이 반응을 했을 때, 반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삑’하는 소리로 알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 피드백 소리가 근전도(EMG)로 측정된 실제 반응을 기준으로 했을 때 5, 20, 40, 60밀리초의 다양한 시간 간격을 두고 울리도록 했다. 피드백 소리는 W가 일어난 다음의 일이기 때문에 W 추정 시간에 영향을 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피드백 소리의 지연 시간에 비례하여 W가 일어났다고 보고된 시간이 더 빨라졌음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내성이 불확실하다는 또 하나의 증거로 W가 행동에 수반되는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추론된 것임을 보여 준다.
한편, 라우(H. C. Lau) 등(2007)은 두뇌의 뉴런을 자극하는 비침습적 방법인 경두개 자기 자극(TMS)을 사용하여 W 추정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를 했다. 라우 등은 리벳 등의 연구 절차에 따라 실험을 진행하되, 실제 움직임이 시작되자마자 전운동영역과 함께 의식적인 운동을 계획하는 곳으로 복합적 연속 운동을 계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조운동영역[presupplementary motor area(preSMA)]에 TMS로 자극을 가했다.
이 경우 W는 이미 발생한 과거이므로, TMS 자극에 의해 W가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M과 동시에 혹은 200밀리초 후에 TMS가 가해지면 W의 보고 시간은 각각 9밀리초, 그리고 16밀리초 앞당겨졌는데,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이었다. 뱅크스와 이샴의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결과는 의도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이 실제 반응 전에 결정된다는 통념과는 달리 반응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시사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마쓰하시 마사오(松橋眞生)와 마크 핼릿(Mark Hallett)(2008)은 움직임에 대한 생각(T)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피험자들은 불규칙한 간격으로 소리가 제시되는 가운데 자신이 원할 때 반응을 하도록 했다. 피험자들은 만약 반응을 하려고 생각한 다음 소리가 들리면 반응을 거부하도록 지시받았다. 이 실험의 독창적인 점은 의도를 기억하면서 반응을 해야 하는 리벳 등의 실험 절차와 비교했을 때, 소리를 이용해 T시점의 선후만을 파악하게 해 내성으로 인한 주의 분산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실제 실험에서 모든 소리는 움직임이 시작되는 시점에 맞춰 제시되었다. 어떤 소리는 T 전에 제시되었고, 다른 소리는 움직임 직전에 제시되었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에는 피험자가 사실상 반응 거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두 제시 조건의 차이로부터 움직임을 언제 거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움직임에 대한 생각 T는 움직임보다 1.42초 앞서 발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통념과 마찬가지로, 이 시간은 T가 관찰된 뇌 활동 이전에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이상의 실험적 발견을 요약하자면, 사용한 시계의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특히 원판 시계의 경우 두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 오는 주의 간섭이 일어나 W 추정이 영향을 받으며, 반응 종료를 알려 주는 신호에 따라 W의 추정 시간이 달라지고, W에 준하는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검증했을 때 그 시점이 리벳 등이 추정한 시간과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렴적으로 리벳 등이 얻은 결과에서 피험자들이 보고한 W는 사용한 시계의 특성 때문이거나, 반응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여러 단서들을 바탕으로 인지적으로 추론되었거나, 아니면 그럴 듯하게 재배열된 결과 때문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리벳 등의 연구 절차와 해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리벳 등의 가정에 위배되는 발견들도 있다는 것이다.
리벳 등은 손가락 움직임 이전에 이미 뇌파를 관찰했는데, 이 뇌파를 자발적 움직임과 관련이 있는 뇌 활동으로 간주했다. 리벳 등의 연구에 대한 반복 검증은 주디 트레비나(Judy A. Trevena)와 제프 밀러(Jeff G. Miller)(2010) 그리고 순(C. Soon)과 그의 동료들(2008)에 의해 이루어졌다. 트레비나와 밀러는 EEG를 이용하여 손가락 움직임 전의 결정과 관련된 신경생리학적 기록과 움직이지 않았을 때의 신경생리학적 기록을 비교했다. 연구 결과 위 두 조건에서 기록들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리벳 등의 연구 결과에서 설명했던 뇌 활동이 움직이기 위한 준비 과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고, 따라서 리벳 등의 연구가 자발적 움직임이 무의식적으로 시작된다는 결과를 설명하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리벳 등의 연구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는 fMRI를 이용하여 뇌 활동을 측정한 순과 동료들에 의해 얻어졌다. 이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알파벳 낱자를 보면서 자유롭게 선택한 시간에 왼쪽 손가락이나 오른쪽 손가락을 움직여 반응하도록 했다. 리벳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피험자들은 반응을 의도한 시간에 차례로 제시되는 낱자 중의 하나를 지목하여 말했다.
그 결과 순 등은 실제 움직임이 일어나기 10초 전에 피험자들이 어느 손가락을 움직일지를 60%정도까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연구가 실제 움직이기까지의 간격을 측정한 것인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포인트는 10초 전에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을 예상하는 정도가 우연 수준인 50%에 비해 불과 10% 정도밖에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순 등의 연구를 리벳 등의 연구에 대한 반복 검증으로 보기 어려우며, 그보다 오히려 순 등의 결과가 먼저 반복 검증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반복 검증 문제를 일단 유보해 두더라도, 리벳 등의 연구에서 가정하고 있는 움직임 이전에 나타나는 뇌파와 실제 움직임 간의 의존성은, 다른 연구 결과를 고려할 때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엘레나 므나트사카니안(Elena V. Mnatsakanian)과 이나 므 타르카(Ina M. Tarkka)(2002), 코르넬리스 브뤼니아(Cornelis H. M. Brunia)와 헤이르트 반 복스텔(Geert J. M. van Boxtel)(2004)은 예상된 움직임(expected movement)과 준비전위를 포함한 다른 뇌파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했다.
각각의 연구에 관련된 뇌파는 예상되는 주의나 동기와 관련된 완서파(slow-wave)인 [SPNs(stimulus preceding negativities)]와 무엇을 하고자 의도하거나 어떤 일을 예상하는 것과 관련하여 대뇌에 출현하는 음극파(negative-wave)인 [CNVs(contingent negative variations)]로 명명된 것들이었는데, 이러한 이름은 그 뇌파들이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을 경우에 관찰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움직임을 예상하거나 기대할 경우, 준비전위와 유사한 뇌파를 관찰할 수 있었다. 움직임 자체가 아니라 움직임을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상황에서 뇌파가 나타난다면, 리벳 등이 가정했던 것처럼 준비전위는 실제 움직임의 충분조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거꾸로 실제 움직임이 일어나면 준비전위가 관찰되는지를 물을 수 있다. 즉, 준비전위는 실제 움직임의 필요조건인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포켓과 수잔 퍼디(Suzanne C. Purdy)(2006)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이들은 EEG를 이용하여 자발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경우 준비전위가 반드시 나타나는지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피험자 가운데 단지 12%만이 움직임이 있었을 때 그에 앞서 준비전위가 나타났고, 나머지 피험자들에게서는 손가락이 움직여도 준비전위가 관찰되지 않았다. 이 결과는 준비전위 2가 손가락 움직임의 필요조건이 아님을 보여 주며, 따라서 리벳 등의 가정이 잘못되었음을 시사한다. 일부 피험자에게서만 준비전위 2가 관찰되었다는 것은 이 전위가 움직임 자체보다는 움직임에 대한 의식적 기대(expectation)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보여 준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준비전위는 움직임에 대한 필요조건도 아니고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리벳 등이 가정했던 것과는 달리, 준비전위와 움직임 간에는 어떠한 논리적인 의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벳 등이 가정했던 것처럼 준비전위 2가 손가락의 움직임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리벳 등의 연구를 바탕으로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시사점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감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문제가 철학, 심리학, 그리고 신경과학에서 이미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는 만큼 후속 연구의 방향 설정을 위해, 다음 절에서는 리벳 등의 연구에서의 자유의지, 즉 손가락을 언제 움직일지에 대한 제한된 의미의 의도를 넘어서서 통상 우리가 의도라고 부르는 의지와 관련된 논의가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의도(intention)와 관련된 가장 포괄적인 신경과학적 모형은 마이클 플랫(Michael L. Platt)과 폴 글림처(Paul W. Glimcher)(1999)가 제안했다. 이들은 먼저 의도를 의지에 의한 의도(willed intention)와 감각 운동 의도(sensory motor intention)의 두 유형으로 구분했다. 의지에 의한 의도는 예를 들면 휴가를 시원한 곳에서 보내겠다는 결정, 오늘 저녁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 등으로 비교적 일반적인 의미의 계획들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감각 운동 의도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거는 것과 같이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운동이 개입된다. 운동만이 아니라 감각이 포함된 이유는 많은 경우 운동의 실행 결과를 일종의 피드백처럼 지각해 다음 행동을 조정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 두 의도는 서로 복잡하게 협력하지만, 의지에 의한 의도가 더 근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 운동 의도는 의지에 의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지만, 의지에 의한 의도는 또 다른 심적 활동을 일으킬 수 있고, 만나려던 생각을 바꾸거나 할 때처럼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속 연구에서 이 두 의도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다르다는 결과가 발견되었다. 마잔 자한샤히(Marjan Jahanshahi) 등(2000)은 뇌 영상법과 두개골 안쪽에 있는 뇌경막 표면이나 뇌경막 안쪽으로 미세 전극을 집어넣어 뇌 활동을 기록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의지적 의도의 근원 중 하나는 배측외측 전전두 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DLPFC)]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라우와 그의 동료들(2004)은 fMRI 기법을 사용했는데 보조운동영역도 의지에 의한 의도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리처드 앤더슨(Richard A. Andersen)과 크리스토퍼 부네오(Christopher A. Buneo)(2002)는 감각 운동 의도는 두정엽 후방 피질(posterior parietal cortex)에서 담당하며, 세부적인 운동 감각 의도는 두정엽 후방 피질의 특정 영역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의지에 의한 의도와 감각 운동 의도에 대한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리벳 등이 다룬 의도는 감각 운동 의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피험자들은 손가락 움직임을 스스로 사전에 계획하지 않았고, 다만 정해진 움직임을 언제 실행할지만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지에 의한 의도는 어떻게 시작될까? 이를 직접적으로 연구한 경우는 없다. 다만 의지에 의한 의도가 얼마만큼 복잡한지에 대해서는 관련 논의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미래 행동에 대한 계획의 구조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지식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의미 기억과 관련이 있다. 게다가 계획과 관련된 세부 사항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과 상관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아르나우드 드 아르헴보(Arnaud D’Argembeau) 와 마르시알 반 데르 린든(Martial Van der Linden)(2006)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상하는 일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과거의 기억이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의지에 의한 의도에서 기억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은 동기이다. 동기의 중요성은 도리스 비쇼프 쾰러[Doris Bischof-Koehler(1985)]가 가설 형식으로 오래 전에 제안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이 아닌 동물은 미래의 필요와 욕구 상태를 기대할 수 없지만, 인간은 현재의 동기적 상황은 물론 미래의 동기적 상황을 고려하여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억과 동기가 의지에 의한 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통찰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물론 각 영역 내에서도 관련된 현상을 두루 설명할 수 있는 통합된 이론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변적 수준이기는 하지만, 데보라 탈미(Deborah Talmi)와 크리스 프리스(Chris D. Frith)는 의지에 의한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들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인간은 무엇을 하려고 결정할 때, 의식적으로 결정과 관련된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 증진을 위해 운동을 하려고 할 때, 등산을 하거나, 체육 시설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등의 다양한 대안들을 생각해 낼 수 있고 이들 가운데 비용, 실현 가능성, 과거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한다. 리벳 등의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들도 일단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여러 가능성을 고려한 후 실험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선택한 실험 상황에서 실험자의 지시에 따라 반응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들의 손가락 움직임을 자발적인 의도로 보기에는 상황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는 과제에 대한 실험자와 피험자의 의지들이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물론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판단은 대개 정확하지만, 예를 들어 흡연가들이 담배를 끊겠다고 결정하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끊으려고 시도했을 때는 못 끊는 경우처럼, 선택과 판단은 틀릴 때도 있다. 하지만 일단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선택권이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만큼은 자유의지의 한 근거로 충분해 보인다.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또 다른 근거는 인간의 뇌에는 기억해 낼 수 있고, 또 예견 가능한 정보들을 기반으로 한 자아감(sense of self)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의지에 기반한 행동의 경험적 결정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써 저절로 발생한 행동의 느낌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눈을 감은 상태에서 손을 움직여 대상을 만질 때와 가만히 있는 손에 물체가 닿을 때의 느낌은 다르다. 그런데 우리의 자아와 의식은 우리가 주체로서 움직일 때, 즉 의도를 갖고 있을 때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비록 같은 자유의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리벳 등의 연구에서 다룬 자유의지는 탈미와 프리스가 주장하는 자유의지와는 큰 괴리가 있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 탈미와 프리스의 주장이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상의 논의는 리벳 등의 연구가 자유의지라는 주제에 대해서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이 다루어 오던 내용에 비해 매우 단순한 의미의 자유의지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설사 후속 연구들을 통해 리벳 등의 연구가 가진 여러 한계점들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까지 리벳 등의 연구와 이에 대한 후속 연구 결과를 신경과학과 심리학에서의 발견을 중심으로 절차상의 문제와 가정의 문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무엇보다도 최근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연구가 매체를 통해 화려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적어도 자유의지나 책임과 같은 주제에 대해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간과했거나 혹은 새롭게 고려할 만한 자료를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부 철학자들의 주장처럼 어쩌면 자유의지는 우리의 인식 체계에서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규정하는 데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해결을 위한 모종의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도 이 핵심적인 질문과 관련해 그 언저리를 건드리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 사람들은 또다시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하려 할 것이다. 최근의 과학 발전의 속도를 고려하면 이와 같은 문제 제기는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과학은 “왜?”라는 질문을 체계적으로 던지고 그에 대한 그럴듯한 대답을 찾는 합리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말은 그 내용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비판이 가능한 가운데 일관된 지식 체계를 쌓아 갈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과학적 절차를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법칙은 주로 물리나 화학 분야의 몇몇 현상들에 국한되어 있다. 그보다 훨씬 많은 현상들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일반화 혹은 추측을 포함하고 있는 이론이나 형식적으로 표현된 모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탐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실험이다.
실험은 통제된 상황에서 특정한 변인을 체계적으로 변화시켰을 때 나타나는 결과의 차이를 통해 조작된 변인과 결과 간의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절차이다. 심리학의 경우, 실제 실험에서 대부분의 변인은 통제하고, 조작되는 변인은 세 개 혹은 네 개 이상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변인들 간에 복잡한 상호작용이 관찰되면 결과를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자 하는 중요한 현상들은 그것과 관련한 변인이 너무 많다. 그래서 어떤 심리학자는 “흥미롭고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찾아보기 무척 힘들다”고 한탄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과학이 가정하는 세계나 실제 탐구는 현상을 극도로 단순화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과학에서 다루는 변인들의 수는 현실에서 고려해야 할 것보다 훨씬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상황에서 얻은 결과를 복잡한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 많다. 통제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는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좋을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단 결과가 좋으면 연구자는 그 결과를 일반화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 일반화의 정도를 과장하는 오류를 범한다. 지금은 할 수 없지만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목표를 마치 지금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그 예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현혹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연구 결과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그 결과가 어떠한 조건에서 얻어졌는지를 명확히 확인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유의지에 대한 리벳의 연구와 후속 연구들 (뇌과학 경계를 넘다, 2012. 11. 5.,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