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살던 동네를 떠났다.
그래도 30대엔 떠나는 것에 익숙했다.
이사짐을 싸고 그걸 풀기 몇 번인지 모른다.
주민등록 초본이 두장이다.
논산에 1998년 28살에 가방하나 달랑메고 내려와 이사짐 싸고 풀기를 수십번이다.
이번 이사는 참 힘들었다. 발이 안떨어지고 마음도 안떨어졌다.
그래도 가야하니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치기는 했다.
여기서 막내를 낳았다.
오빠 둘을 재치고 살아남으려니 먹는게 다 두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을 걸 찾아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닌다.
그러다 배부르면 아무데나 누워 잔다.
실로 몇 년만에 큰아이 신발을 샀다.
읍네 시장통에 가서 큰 맘 먹고 새신발 사 신겼다.
수확한 콩을 차에 싣고 농협 콩선별기 빌려서 콩 선별하는날...
큰 아이가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신발에 흙이 묻는다는 이유다.
주머니엔 항상 휴지를 넣고 다닌다.
차에서 내렸다 도로 타면 으레 그 휴지로 신발 바닥을 꼼꼼하게 닦는다.
그리 좋아하는걸...
아빠한테 신발 사 달라는 말 한번도 한적 없었는데 진작에 사 줄걸 그랬나 부다.
벼를 다 베어서 널었다.
잘 마르라고 벼를 저을 때, 그 때가 묘하다.
마치 어릴적 사이다를 한 박스 사놓고 조금씩 마시는 기분?
올 농사는 한달이나 늦게 심는 바람에 수확이 별로다.
수확이 별로인 이유를 알고 있고 논에 밀짚이며, 볏짚이 예년보다 많이 들어갔으니 내년 농사는 좋아질게다.
콩을 수확하고 난 밭에 보리를 뿌렸다.
밀보리와 콩은 돌려짓기에는 좋은 궁합이다.
보리수확이 6월 20일 경이고 콩은 하지때 심으면 되니 딱이다.
인근에서 트랙터를 빌려 거의 하루 온 종일 보리 뿌리고 밭을 갈았다.
힘은 안들어서 좋았지만 기계소리로 몹시 피곤한 하루였다.
기계, 편리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큰 아이와 옆동네 형님이다.
큰아이는 어릴적 상가집 경험이 많다.
돌이 되기도 전에 상가집을 여러군데 다녔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민감하다.
과자 먹고 있으면
“ 너 그거 먹으면 오래 못살아.”하면 안 먹는다.
지금은 양파 모를 찌면서 영원한 삶에 대해 토론중이다.
큰 아이는 어른이 되고, 아빠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걸 싫어한다.
그 담엔 죽기 때문이다.
마늘이랑 양파를 심었다.
부리나케 후다닥 해 치웠다.
농사일을 정리하고 동계알바를 해야 할 탓에 마음의 여유도 없이 일을 마쳤다.
콩 털고, 보리 뿌리고, 마늘이랑 양파심고...
그렇게 정신없이 늦가을을 보냈다.
게다가 한달에 한번 하는 프로젝트 밥집 “氣찬밥집”까지
무사히 마치고....
동계 알바를 하기위해 밀양에 내려오기 전 둘째 정현이 사진을 찍어 두었다.
형님과 막내 사이에서 잘 견디고 있다.
왠지 안되보여서 전화기에 사진을 담았다.
내려오면서 큰아이 신발만 사준 것이 내내 걸렸다.
이번에 올라가면 둘째 신발도 사 줘야겠다.
나는 네오처럼 날아 오는 총알을 막을 수 없다.
건강과 평화!
첫댓글 아식스로군요. 내가 처음으로 사 신은 메이커 운동화는 친구네집에 놀러갔다가 강아지가 물어뜯어서 엉엉 울뻔 했어요.
오빠둘에 여동생하나...막내도 예쁘게 잘 키우시길, 제 여동생도 오빠들 틈에서 고생하며 잘았지요.
칠보산 공동체가 잘 되어가는 듯 합니다.
가까우면 행사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여유가 없다보니....
건강하시고 공동체의 번영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