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정무공 휘 기석(양간공파‧공안공파)
1828(순조29)-1890(고종28)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성극. 호는 우정. 시호 정무공.
아버지는 증 승록 상순,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여흥 민씨.
어필(임금이 쓴 글)로 우정이라는 사호(임금이 내린 호)하였다.
1845(헌종12) 정시 무과로 급제하여 처음 선전관에 제수 되었다가 정경에 이르렀다.
승정원 좌우승지, 병조참의, 형조판서, 의정부 어영대장, 총융사, 도통사,
해방사, 좌우포장, 내무독판기기 등으로
외직으로는 수안 군수, 안동 영장, 경상좌수사, 수원중군, 강화 유수를 거쳤다.
1856(철종8) 통정가선 가의로 승진됨은 임금의 특은이다.
1882(고종20)년에 정헌, 익년에 숭정숭록에 승진되었으며
내외 요직을 두루 역임한 공이며 기타 겸직 직함은 다 기록하지 못한다.
시호는 정무이다.
참고문헌 : 광산 김씨사
숭록대부 병조판서 기석 시장
공의 휘는 기석이요 자는 성극이며 호는 우정이니
금상이 손수 써서 특사한 것이다
. 공의 기국이 풍부하여 풍채가 수려하고 말이 적고 얼굴빛이 바르며
의연히 공경하고 그 효우의 독실함과 임금을 섬김에 충성을 다한 것은
천성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봉공에 부지런하고 일에 민첩하여 도량이 깊고 넓음이 움직이지 않은
우람한 산과 같고 강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함과 같다.
뜻이 하나여서 법가의 법도를 잃지 않은지라 이로써 현종. 철종 양 성조에 특히 포양하고
성상의 지우를 얻어 총애함이 당세에 짝할 이 드물었다.
공이 몸을 굽혀 힘을 다하여 꺼지지 않고 맹세하여 모사함이 깊고 멀어
용감하게 결의하여 굳세고 의젓함이 있었다.
나가서는 성을 치고 돌아옴에 외교상의 담판으로
국위를 빛내어 공에게 사업의 우두머리로 기대하였다.
역사에 기록하여 전해지기를 바랐건만 어찌하여 높은 수를 못하고
기연히 이 세상을 떠났는고.
그 온호한 뜻을 일생에 펴지 못하였으니 그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으랴.
가히 알 수 없는 것은 도일진되…….
족손 대제학 히정 영수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