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2월 14일 재일교포 북송선 제1호인 소련 선박 토보르스크호가 975명을 태우고 북한 청진을 향해 일본 니가타항을 출발했다. /1959년 12월 14일, 재일동포 234세대 975명을 실은 소련 선박 클리리온호(號)와 토보르스크호(號)가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일본의 니가타(新潟)항을 출항, 청진항으로 향했다. 배에 탄 사람들의 얼굴에는 일본인들의 차별로부터 벗어난다는 기쁨과 ‘지상낙원’으로 떠난다는 설렘이 교차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1800여명의 경찰을 부두에 배치하고, 10여척의 함정을 동원해 근해를 감시했다./재일동포 북송사업은 재일동포를 추방하려는 일본의 은밀한 계획과,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대남공작원으로도 활용하기 위한 김일성의 계략이 맞아떨어져 성사됐다./1984년까지 계속된 북송으로 일본인 처 1830여명을 포함, 9만3000명이 북한으로 보내졌는데 이들은 애초 기대와는 달리 북한에서 동요계층 또는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결혼, 전직, 거주지 등 생활전반에 걸쳐 엄격한 감시하에 놓이게 됐다. 일본인 처들은 그 후로 일본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 [1799년]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사망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1799년 12월 14일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워싱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로 불린다./1732년 버지니아주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토지측량관이 됐다. 1774년 제1회 대륙회의에, 1775년 제2회 대륙회의에 버지니아의 대표로 참석하고, 이 회의에서 무력항쟁이 결의되자 그는 독립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총사령관으로 있으면서 피로에 지친 식민지군을 격려, 역경을 극복해나갔다. 1781년 10월 프랑스군의 원조를 받아 요크타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독립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1789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같은 해 4월 30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793년에 발발한 프랑스와 영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중립을 선언하고, 유럽의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수립했다. 1796년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민주주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끝내 사양했다.
1959. 12. 141959년 12월 14일 북한으로 귀국하려는 재일교포들을 태운 북송선이 최초로 일본을 출발했다. 남북한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6·25전쟁이 휴전이 되자, 북한은 전후 복구 3개년 계획(1954∼56), 사회주의 경제 기반 구축을 위한 5개년 계획(1957∼61), 사회주의 경제 발전을 위한 제1차 7개년 계획 등을 발빠르게 추진했다. 재일교포 북송문제가 처음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55년 2월로, 당시 북한 외무상 남일은 6·25전쟁에 따른 북한의 노동력 부족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재일교포의 귀환을 추진할 것과 귀환시 이들의 생활을 최대한 책임질 것을 대내외에 공식 천명했다. 1959년 8월 조선적십자회와 일본적십자사가 맺은 북송협정에 따라 그해 12월 14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쪽 재일교포 제1진 975명이 북송선에 올랐다. 1967년 협정 연장 회담이 결렬될 때까지 모두 8만 8,000여 명이 북송선을 탔다. 그 중 일본인도 6,600명에 이르렀다.
● 탐험가 아문센, 남극 도착1911. 12. 14
남극대륙 1911년 12월 14일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이 세계 최초로 남극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영토획득과 과학적 탐구뿐만 아니라 지구의 극점에 도달하려는 국가적 또는 개인적 위신과 야심이 20세기초의 극지 탐험의 강한 동기가 되었다. 아문센은 1911년 12월 14일 52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동료 4명과 함께 남극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고 로스 빙붕(氷棚)의 웨일스 만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반면 영국 남극탐험대의 스콧 일행은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아문센의 탐험대보다 1개월 후인 1912년 1월 18일 남극에 도달한데다 귀환길에 모두 사망했다. 이후 남극대륙 탐험의 양상이 남극대륙 횡단, 남극 도보탐험 등으로 바뀌었다. 1994년 한국의 산악인·탐험가 허영호가 이끄는 남극탐험대가 세계에서 4번째로 남극 도보탐험에 성공했다.
● 노스트라다무스 Nostradamus 1503년 12월 14일 태어남 / 1566년 7월 2일 죽음
"1900, 90의 9년, 7의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올 것이다,
마르스가 세계를 지배할 전후에
앙골모아의 대왕을 소생시키기 위하여." - 노스트라다무스, <세기들> 10 :72
노스트라다무스는 지구종말론으로 세기말을 가슴 졸이게 한 프랑스의 예언가이다. 원래 그는 16세기 중엽 남부 프랑스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손수 개발한 약초 치료제를 써서 많은 사람을 구해낸 의사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537년 부인과 아들을 역병으로 잃고 유럽 전역을 방황한 끝에 자신의 예언가적인 능력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1544년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 살롱에 정착해 다시 의료활동을 펼쳤으며 한편 1555년부터는 예언서 <세기들 Centuries>을 펴내기 시작했다. 이 책은 4행시 1,100여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여러 언어의 조합인데다 뒤섞인 암호들과 난해한 문장 일색인 탓에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정확하고 결정적인 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