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이 지나면서 남쪽을 꽉 막고 있는 매봉산 팔부능선까지 이미 백설이 뒤덮고 있었다. 저 눈이 다 녹아 내리려면 내년 봄 4월이 지나야 한다.
매봉산에 눈이 쌓이면 사창리는 마치 냉장고처럼 혹한이 시작되는데 며칠 째 벌써 마이너스 10도가 넘는 매서운 날씨가 계속 되었다.
그리고 마침 지난밤부터 하늘이 우중충해지더니 그날 아침은 눈발이 날렸다.
늘 북쪽에서 검은 휴전선 하늘 등에 업고 이쪽으로 노려보던 적근산은 회색하늘로부터 무수히 내려오는 흰 눈발에 가려서 아예 보이지를 아니하고 남쪽으로는 1천 고지가 넘는 높은 매봉산은 갸라멜 고개 쪽에서 넘어오는 북풍에 滿滿한 백설을 화천 방향으로 뿌리고 있었다.
성성한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눈발이 빗금을 그으면서 휘날리는데 가히 감탄이 절로 나는 백설무(白雪舞)이다.
제대 말년 오병장과 조병장은 폭설로 눈이 가득한 사단 사령부로 들어가는 도로에 수북이 쌓인 눈을 졸병들과 오전 내내 제설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배가 불룩이 나온 인사계님이 눈 치우는 작업장을 순시 나왔다가
“어이 오병장, 조병장, 제대 특명 내려왔다!”
“예-에엣?”
제대 특명 소리에 화들-짝 놀라 놀랐다.
얼마나 기다린 제대 특명인가?
정말로 이제 그 지겹고 길고 긴 제대를 하긴 하는가보다 보다!
눈 가래를 처 들고 와! 하는 졸병들 축하 소리에 여수출신 오병장은 붉은 볼이 웃는 듯 입도 함지박으로 벌어졌다.
오! 제대 특명!
사나이 태어나서 첫날밤 신부 옷 벗기는 순간 다음으로 기쁘다는 제대특명!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전방 생활을 끝내고 제대를 하는가 보다.
그날 저녁...... 점호 때는 퍽 하면
발로차고 ,
욕하고,
연병장 뺑뺑이를 돌리던 악명 높은 김 중사도
“야 조병장, 오병장이 제대특명도 받았고 하루 종일 제설작업으로 수고했으니 오늘은 취침 점호로 대신한다!”
“와!”
졸병들이 또 한번 환성을 질렀다.
석탄 베치카 바로 옆에 졸병들이 미리 자리를 펴 놓은 곳에 잠자리 들기 위하여 옷을 벗으면서 여수출신 오병장은 조병장에게 나즈막히 이렇게 말했다.
“조병장 우리 2주만 조심하입시다-잉 ...제수 없으면 제대 말년에 피보지라!”
김병장은 지난번 바로 위의 고참 노병장이 제대한달 남겨놓고 사고 당한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높은 산 00미사일 부대에 통신 파견소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온통 지뢰밭 이였는데 그 지뢰밭에는 유난히 더덕이 많았다.
제대 말년에 더덕 술을 담아서 집에 간다고 파견대 근처 지뢰밭 부근에서 더덕을 캐다가 발목이 날아간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 노병장이 들고 더덕을 캐던 삽자루는 펑! 소리와 함께 하늘로 치솟았고 한번 빙그르 돌고 다시 지뢰밭에 내리 꼽혀 있지만 아무도 겁이 나서 선뜻 들어가서 그 삽자루를 들고 나오지를 못해서 이직 그대로 있다.
피투성이 발목을 부여잡고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며 춘천으로 후송 당했던 노병장 모습이 아직도 뚜렷이 뇌리에 묻어 있었다.
조병장은 오병장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이고 누워서 모포를 덮어쓰고 잠을 청했지만 이생각 저생각으로 잠이 당체 오지를 않았다.
밖에는 여전히 함박눈 내리는 소리가 자박 자박 거렸다.
그때다.
막사 문을 워카 발로 무식하게 걷어차면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야 2소대 전부 기상!”
술이 많이 취한 권소대장님이다.
소대원 전체가 후다닥 일어섰다.
“야 오병장하고 조병장 하고 제대 특명 받았다며?”
“예..오늘 특명 받았습니닷!”
“오병장과 조병장은 5분 안으로 옷을 입어라!”
“저어...”
“뭐하나! 사창리 나가서 제대특명주 한잔해야지!”
권중위는 3년 전에 결혼하였으나 얼마 후 아내가 바로 앞 헌병대 위병소에 자주 김치 통을 들고 다닌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그 후 그는 늘 술에 의존하고 있었다.
아내는 물론 그 이상한 소문 이후 부산으로 도망을 친 이후였다.
오병장과 조병장은 술 냄새가 푹푹 나는 소대장 앞에서 주춤 거렸다.
사실 두 사람은 입대 이후 단 하루도 외출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넘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바람에 그 여파로 전방은 사뭇 살벌한 군기로 아예 외출은 꿈도 못 꾸며 병영 생활에만 몰두한 두 사람이다.
“야 조병장 뭐해?.... 소대장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군이란 소위 상관이 명령하면
“여군은 그 부끄러운 부분으로 침상의 못을 단숨에 뽑아야하고
남자 군인이라면 거시기로 맨땅에 구멍도 내어야 한다!“고 수없이 들었던 곳이 아닌가?
할 수 없이 오병장과 조병장은 옷을 다시입고 부산출신 최하사와 셋이서 권소대장 뒤를 따라서 사창리로 나갔다.
눈은 이미 발목을 넘어서 사창리 초등학교를 가로 질러 갈 때는 워카 발에 뿌드득 뿌드득 소리가 났다.
사창리 면소재지는 눈 속에 쥐죽은 듯 조용했고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를 않았는데
왠 젊은 아낙이 추위에 덜덜 떨면서 달랑 구공 탄 한 개를 새끼줄에 묶어서 골목으로 사라졌다.
아마 연탄불이 꺼진 모양이다.
“야 우리 꼼보 색시 집에 가서 한잔 할까?” 앞서가던 소대장이 말했다.
“............꼼보 색시 집요?”
그때 사창리에는 색시 집이 두서너 곳 있었는데..그 중 유독 .꼼보 집이 유명했다.
소문에 비록 꼼보지만 남자를 반 녹이는 기술이 있다는 소문이 사병들에게 자자했다.
언젠가 초여름에 산악 구보를 하느라고 사창리 큰 개울을 질러 중대병력이 가는데 마침 그 꼼보 색시가 개울 바위틈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군인들이 환성이 터지고.... 인솔자 중대장이 고함을 질러도 중대 병력은 대열이 자연히 흐트러졌다.
그 씩씩한 대열도 꼼보 색시 알몸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일 말고 또 있다.
컴컴한 야밤에 외곽지대 초병이 다가 오는 군인을 보고 깜작 놀라서
“정지!
“손들 엇!
“암호는?” 하고는 다급하게 물을 때 비록 그날 밤 암호를 잊어버릴 경우에는 그냥
“사창리 꼼보!” 하면 무사통과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색시집이다.
즉
“군발이가 사창리에서 꼼보 색시 집을 모르면 간첩이다”
뭐 이런 뜻이다. 진짜인지 몰라도
“꼼보 색시 배위로 지나간 군인이 일개 연대 병력을 넘는다!”라는 야한 우스개도 소문도 돌았다.
그러니 그런 곳을 소대장이 간다하니 우선 두 병장은 기분이 나빴다.
“저어.. 소대장님 추우니 그냥 여관방에 가서 소주나 몇 병사서 마시지요”
조병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넷이 꼼보 집에 가면 술값도 많이 나올 낌니더”
이번엔 최하사가 대뜸 술값 걱정을 했다.
“알았서...그럼 여관방으로!”
버스 터미널 옆 허름한 여관방에 자리를 잡고 오병장과 조병장은 터미널 연쇄점에 들러서 소주 4병 그리고 아줌마에게 부탁하여 냄비에 라면 세개 그리고 꽁치 간시매 두개를 까서 함께 끓여 달라하였다.
그땐 소주 안주로 꽁치 간시매를 라면에 썪어 끓인 것을 최고로 쳤다.
곧이어 누우런 냄비에 라면이 김을 올리면서 여관방에 도착하자 넷이서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을 마셨다.
입대이후 3년간 단 한번도 외박을 하지 않았던 두 병장은 이제 제대를 한달 남짓 남겨 놓고 그렇게 첫 외박이 달콤하게 깊어졌지만 비록 직속상관 명령으로 나온 외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불안한 감도 없지 않았다.
퍽 하면 간첩을 잡았다....북한이 곧 처 들어온다! 하여 삼일이 멀다하고 정신교육이 있었고 더욱이 새 사단장이 오고 난 후부터 사소한 일로 영창을 가는 일이 많아져서 부대 분위기가 말이 아니였다.
지난 여름엔 사병들이 우물을 파들어 가는데...미처 사단장 시찰차를 몰라보고 졸병 한명이 인사를 아니 하고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날 우물 안에서 죄 없이 흙구덩이 퍼 올리던 사병까지 단체로 영창을 갔다.
여관방에서 소주 네 병을 마신 후 다시 두병을 더 사와서 마시고나서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소대장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 질 아니하고 김병장과 조병장 그리고 최하사는 어제 밤 라면냄비를 들고 여관방을 나서 터미날 연쇄점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벌써 제설 작업 군인들이 단체 구보하는 소리가 건너편 의무 부대 쪽에서 나기 시작했다.
“빨리 부대로 돌아가자!
오 병장이 저으기 불안한지 서둘렀다.
그 때다 마-악 버스 터미널 앞을 가로 질러가는데 저 만치 찝차가 바뀌에 체인을 가득 감고 이쪽 방향으로 털털거리며 내려 오고 있었다.
빨간 별이 달린 사단장 차였다.
순간 세 사람은 얼어붙은 부동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사단장 차가 지나가자 우렁차게
“이기자!”
하고 사단 구호를 소리 질렀다.
인사할 때 소리가 적어도 영창을 보냈던 악명 높은 사단장이다.
짚 차가 저만치 지나가더니 갑자기 섰다.
순간 조병장과 오병장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해졌다.
차가서고 부관이 내리더니 저벅 저벅 세 사람에게 다가와
“야 너거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예 외박 나왔다가 이제 부대로 돌아 갑니닷!
최하사가 절도 있게 대답하자
“ 그 냄비는 뭐야?”
“어제 밤 라면 먹은 그릇인데 돌려주려고 들고 갑니닷!”
갑자기 사단장 부관이 다가서더니 최 하사 명찰을 확 찢어서 들고는
“이 자식들...군기가 빠졌어..사단장님이 화나셨다고! 군인이 아침부터 냄비 들고 다니다니!
부관은 부대에 돌아가서 대기하라고 하면서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이 눈빛이 엄청 불안감을 던진 순간 이었다.
세 사람은 너무 불안하여 부대로 뛰기 시작 했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달려서 부대로 돌아오니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벌써 전 부대원들이 완전 군장으로 운동장에 집합하고 있었고 중대장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사이 이미 화가 난 사단장은 전 사단에 비상을 내렸고 각 예하부대 전체가 완전 군장으로 운동장에 집합하여 기합을 받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빈 라면 냄비가 사단 전체를 비상사태로 몰고 간 셈이다.
정작 권 소대장님은 보이지도 아니했다.
차라리 어제 밤...술값이 비싸더라도 꼼보 색시 집에서 마실 것을!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 진 물이다.
그리고 곧바로 백 바가지...즉 헌병차가 중대로 들어오고
미처 내무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세 사람은 헌병대에서 나온 짚 차에 끌려갔는데 헌병대 인솔자가 전 중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워카 끈 풀엇! 하고 소리쳤다.
죄수가 되는 마당이다.
죄지은 사병이 도망을 못 가게 일단 워카 끈을 풀고 영창으로 끌고 가기위함인데..세 사람은 이미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심장이 멈춘상태다.
이게 무슨 꼴인가?
어제 제대특명 받고 좋아라 했는데...
3년 내내 외박한번 하지 않고 착실하게 근무했는데...
그 악명 높은 군대 영창을 말년에 가다니!
헌병 차에 올라서 사장리 시내에서 북쪽으로 자리 잡은 헌병대에 도착하자
“이 자식들 때문에 사단 씨피엑스가 걸렸지!
담당 헌병이 몽두리를 들고선 험악하게 소리쳤다.
“고개 숙여! 이개새끼들아!
오병장은 고개를 떨구면서 덜덜 떨었다. 조병장도 두 다리가 후들 거렸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항상 수구리고 다녀야 했다.
왜냐하면 죄인이기 때문이다.
취조실에서 기본으로 신고로? 맞아야 한다는 몽두리 밧다를 열대씩 얻어 맞았다.
이미 그 열대로 엉덩이는 얼얼했다.
입고 간 옷을 벗기고 허름하고 물 날린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었다.
소위 죄수옷이다.
드디어 철망이 삼 겹으로 높이 둘러 처진 막사 뒤쪽에 있는 군대 영창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찢어진 감방 병이 금방이라도 사지를 찢어버릴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잘들어 이 씨팔 새끼들아! 지금부터 내가 선창하면 복창 한다”
“옛!”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닷!”
“나는 지금 부터 인간이 아니다”
"나는 지금부터 인간이 아니닷!“
“나는 주는 되로 먹고 패는 되로 맞는다”
“나는 주는 되로 먹고 패는 되로 맞는닷”
어쭈 이 새끼들 소리 봐라!
지금부터 대가리를 땅에 박는다, 박아!
셋 사람은 동시에 머리를 차디찬 시맨트 바닥에 처박았다.
그리고는 감방 병은 잇빨을 물더니 몽두리를 사정없이 엉덩이를 후려쳤다.
“악!
최하사가 소리를 지르면서 쓸어졌다.
“어쭈 인간도 아닌 주제에 꼴값떠네..야 이 새끼들아 오늘 너거들 기절하기 전에 감방 문 안으로 못 들어 갈 줄 알어!
즉 기절을 해야만 감방 안으로 들어가지 성한 몸으로는 절대 감방 안으로 못 넘어 간다는 것이다.
좁은 감방 복도에서 무려 한 시간 이상 후들겨 맞았다.
엎어놓고 후려치고,
구두 발로 배를 차고,
곤봉으로 가슴을 지르고,
원산폭격.
진주폭격,
풍차 돌리기
쪼그리 뛰기
도강하기....그리고
주먹으로 볼 따귀를 수없이 맞았다.
입대 전 복싱을 했다는 죄로 조병장은 한번 때릴 때 마다 한 발자국을 가면서 큰 소리로 얻어맞는 숫자를 외치면서.. 그 감방 복도를 두 번이나 오가며 후들겨 맞았다.
입안에서 피가 나왔고 어금니를 물수 없을 정도로 얻어 터졌다.
그런 죄수 감방 신고식을 받는 세 사람을 보고는 창살 넘어로 먼저 온 죄수들이
“야 개시끼야 똑 바로 기어! 소리치면서
먼저 온 ? 텃세를 부리기 시작 하였다.
아아! 조병장은 고통에 일그러지면서 대한민국 땅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기 시작 하였다.
하나님이 어디 있으며 부처님이 어디에 존재 하는가?
오만가지 구타는 계속 되었다.
어찌 인간이 저리도 악독할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게 기합주고 몽두리로 후들겨 패도 세 사람 중 단 한사람도 기절을 하지 않는 다는 것에 감방 병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양이다.
입대 전 모 대학 운동권 학생으로 정치한다고 맨날 데모대열 앞장서서 민주화 외치면서 날뛰다가 붙잡혀서 곧바로 군에 강제 입대 했다는 그는 한마디로 냉혹한 짐승처럼 보였다.
“어쭈..이새끼들 한 시간이나 얻어 터저도 졸도 하는 넘이 없네!
씩씩 되더니 이번에 색션 파이프를 들고는 발바닥을 하늘로 처 들게 한 후에 그 발바닥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자기 스스로 민주 열사? 로 운운하는 그는 그동안 직접 당했던 일을 감방 병이 된 이후 그대로 답습하는 놈이라 했다.
“악!”
최하사 입에서 드디어 거의 짐승이 고통에 일그러질 때 나오는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발바닥 매질은 정말로 혹독한 채벌 이었다.
내려 칠 때 마다 악! 하고 비명이 소리가 터졌고 그 소리는 사람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를 소위 졸도 전에 나오는 일종의 짐승 소리였다.
사람이 너무 고통에 일그러지면 사람 목에서도 이상한 짐승 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연이어 김병장 조병장 입에서도 똑 같이 짐승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발바닥을 후려 칠 때는 마치 날카로운 톱날로 생살을 후려치듯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그때다 일그러진 최하사 바지춤이 젖어 들었다.
고통에 겨워 드디어 바지에 오줌을 싼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그 착하디착한 오 병장이 부르르 떨더니 드디어 졸도를 하였다.
눈자위가 허옇게 변해갔다.
“개새끼 진짝 뻗을 일이지! ”
씩씩되는 감방 병은 오병장만 감방 죄수들에게 들고 들어가라 하니 죄수들 서너 명이 나와서 오 병장을 그 비좁은 감방에 들고 가서는 너부러진 오병장 얼굴에 찬불을 부었다.
그런 소란으로 잠시 최하사와 조병장은 얻어맞는 것을 중단 했다..
잠시 휴식이지만 그 휴식은 태어나 영원이 잊을 수없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곧이어 다시 워카발이 날아왔다.
그리고 수없이 더 터졌다.
문제는 나머지 두 사람은 졸도가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자기 손에 걸려든 넘 졸도 안한 넘이 없다! 는 그 민주열사 데모꾼 출신도 스스로 지쳐갔다.
너무나 고통에 겨워 조 병장은 졸도야 오너라! 속으로 외쳤지만 졸도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때다. 감방을 들어서는 또 다른 감방 병이 또 있었다.
이미 후들겨 맞아 반 초죽음이 다된 조병장을 보더니
“이새끼 들이야 사단 비상 걸리게 한넘들이?”
“얫”
:“세놈이라 했는데 한 놈은?”
“한 놈은 뻗었습니다”
“이 두 놈은 아직 졸도를 안한다 말이지? 몽두리 이리줘봐!”
덩치가 큰 감방 병이 몽두리를 건네받더니
“일어서! 하고 외쳤다.
그런대 문제가 생겼다...당체 두 사람은 정신만 말짱하지 일어 설 수가 없었다.
무릎부위는 이미 피투성이가 다 되었다,
“어? 이세끼들 엄살이네...”
조병장이 겨우 고개를 들고 그 감방 병을 처다 보니 이게 왠일인가?
논산 훈련 동기생 이었다.
“어? 야 조정래”
순간 그렇게 얻어 터져도 눈물 한 방울 아니 나던 조 병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야 너 제대특명 이번에 못 받았어?”
“어제 받았다”
“씨팔 군대 좃 같구나! 아무리 그래도 제대 특명 받은 놈을 영창 보내다니!”미안해..내가 진작 알아야 하는데....“
그리하여 그 길고 긴 감방 신고식 구타는 끝이 났다.
그날 밤 2시까지 시작된 철망 꺼구로 매달리기 매일 밤 행사에는 훈련 동기 덕분에 열외? 되어 조병장과 오병장은 냄새나는 똥통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특혜를 받았다.
두 평도 체 안 되는 감방 안에서 무려 16명이나 잠을 자게 되었는데 새벽 3시가 넘어서 소위 칼잠을 잤다.
칼잠이란 감방이 협소하여 어께를 옆으로 포개어서 잠을 자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눈 많이 내리던 밤이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세 사람 다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특히 조 병장은 입안이 다 깨져서 일체 밥을 씹을 수가 없었다.
3일 지난 후에 소대장이 면회를 와서는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면서 조 병장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전부 26통의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 무려 1200명의 아가씨들이 근무하는 전자회사에 다녔는데...곧 제대 한다는 소식 듣고 그동안만이라도 몸조심하라는 안부 카드였다.
감방 안에서 카드를 받아들고 창살 밖을 바라보니 저만치 매봉산이 금방이라도 白雪舞를 날릴 듯 또 울먹이며 서 있었다.
글 끄트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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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랑지 글
미국 모 신문사설에
“한국군대는 별이 밤하늘 숫자만큼 많은 나라이지만....사단장이 바뀌면
인사하는 방식도 바뀌는 나라다..즉 군대에 FM(정규율)이 없는 나라다!
라고 꼬집었다는 이야기를 제대 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래도 미국인이 그런 이야기를 사설에 내었다는 것에 동의 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이다.
그날
그 라면 냄비 들고 가다가 곧 바로 영창 간 사건은 아마도 이 지구상에 처음 있었던 일일 것이다.
소대장 명령으로 불가분 라면 냄비 들게된 사병을 불문 곡직
영창을 보내다니!
그리고 나도 인간이다 보니 한때 우리를 짐승처럼 다루었던 그때 소위 민주열사 운운하면서 우쭐거리던 감방 병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인생을 되 돌려놓는 일이 있더라도 수족을 분질러 버리고 싶었다.
허나 제대 후....지금껏.... 한국 정치꾼들을 보노라면 내가 그런 돌상 넘에게 괜히 역한 감정으로 임한다는 그 자체가 부끄럽고,
이제는 그런 감정에서 벗어 난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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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착하디 착한 우리 아들이 군 복무 중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많은 분들의 자식들이 근 복무 중일 것이다.
그들에게 이 추운 겨울...억만분에 단 한명이라도 내가 겪은 일이 일어 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