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말복이 지나가 삼복도 끝났지만, 여름철 보양식으로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은 역시 ‘삼계탕’이다. 실제 복날에는 삼계탕집 앞이 몰려온 손님들로 인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원래 ‘복’은 ‘복음(伏陰)’의 준말이다. 외부날씨가 더우면 더울수록 사람의 몸속은 반대로 차가워지는데, 삼복은 가장 더운 날이기 때문에 사람 몸속에 잠복하는 음기(陰氣)도 가장 강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배 속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따뜻한 성질을 지닌 닭고기와 인삼 대추 황기 등을 달여 먹는 것이다.
대만이나 중국에서 유행하는 ‘삼복첩’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1년 중에 가장 더운 날인 삼복에 따뜻한 성질을 지닌 약물을 등에 부착시킴으로써 겨울철 질병을 예방하는 것인데, 국내에서도 차츰 시술하는 한의원과 한방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삼계탕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한약처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맥산(生脈散)이다. 실제 많은 곳에서 생맥산을 응용하는데, 최근에는 더운 날씨에 도보행진과 단식 등으로 고생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생맥산 보내기 운동’까지 일어날 정도다.
이러한 생맥산이 여름철 한약의 대표적인 예라는 기록은 ‘왕조실록’에도 나온다.
선조 29년 5월 16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선조가 갑자기 본국으로 철수한 ‘가토 기요마사’의 움직임을 정탐하라고 파견하는 신하에게 특별히 내의원의 여름철 한약을 하사하는데, “향수산(香需散)과 육화탕(六和湯), 그리고 생맥산을 각각 20복(服) 분량씩 지급하라”고 하명한다. 즉 내의원에서 왕실의 여름을 위해 비치해둔 여름 한약 항목 중에 생맥산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생맥산은 여름에만 처방되는 한약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선조 8년 2월 25일의 기록을 보면, 약방(藥房)의 의관이 입진하고서 아뢰기를, “성후(聖候)의 맥도(脈度)에 폐맥(肺脈)의 허삭(虛數)과 비위맥(脾胃脈)의 허약이 전보다 심하고, 신맥(腎脈)마저 미약하여 천안(天顔)이 수척하고 누르며 혈기가 점점 줄어들어 수라마저 조금 드시니, 이는 비위가 허약하여 위는 덥고 아래는 냉하며 자양(滋養)은 부족한데 노동은 지나치시어 허열(虛熱)이 위로 올라서 그런 것입니다. 반드시 맛있는 음식을 계속 드시어 서둘러 원기를 도와 원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노동을 하지 말고 안정을 취하여 번열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번열이 오르거나 피곤하실 때는 생맥산’을 드시라고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서 3월 5일의 기록에는, 선조가 생맥산을 먹고 혀에 끼었던 백태도 다 없어졌으며 맥도 이전에 비하여 조금 화평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늦겨울과 초봄에 여름한약인 생맥산을 처방한 이유는 뭘까? 그 대답은 3월 5일의 기록에 나온다. 의관들이 입진한 뒤에 아뢰기를, “대개 허열이 오르는 것은 모두 노상(勞傷)이 심하고 사려가 번다(煩多)하고 음식을 드시는 것이 적어 기분이 초조하고 진액이 생기지 않는 소치이니, (중략) 생맥산은 번열과 갈증을 치료하는 약이니 자주 드시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생맥산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번열과 갈증이 날 때 처방되는 한약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더위로 인해 기운을 손상받기 쉬운 여름철에 가장 적합한 처방이지만, 말 그대로 ‘맥(脈)’을 살아나게 하는 처방이니, 다른 계절에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