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9월 17일 화요일
[(백) 한가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섭리하시고 수확의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이웃과 서로 나누며 살아온 조상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본받읍시다. 자신을 위해서만 재화를 모으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도 나눔을 실천하기로 다짐하며 주님의 잔치에 참여합시다.
말씀의 초대
요엘 예언자는, 우리가 한껏 배불리 먹고,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고 한다(제1독서). 요한 사도는,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본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22-24.26ㄱㄴㄷ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16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수확’입니다. 씨앗 하나가 싹이 트고 나무에 과일이 열리는 것은 인간의 계획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시설 재배를 통해서 겨울에도 과일이나 채소가 나오지만 그래도 농사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추수를 할 때는 하느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됩니다. 요엘서에서 말하듯 추수를 하여 배불리 먹으면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많은 소출을 거두고도 하느님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곡식과 재물에만 관심이 있어 그것을 쌓아 두려 하고, 그 재산을 즐기려고만 합니다. 그가 거두었다는 그 많은 소출을 위해서 하느님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았을까요? 그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요한 묵시록에서는 마지막 때의 심판을, 주님께서 낫을 들고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곡식이라면, 그들의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손길이 닿았을까요? 그러나 모든 이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요엘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어떤 이들은 복음의 부자처럼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즐길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한 묵시록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 일에 대하여 서로 다른 심판을 맞게 됩니다. 재산이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며(복음 참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은 행복합니다(독서 참조).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거두어들이실 때를 생각합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남은 날들을 보다 품위있고 고상하게 엮어갑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다보면 가끔 죽음 체험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임사 체험, 죽음 유사 체험, 죽음 근사 체험이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그쪽 세상을 살짝 맛을 보고 온 분들입니다. 요르단강을 건널까 말까 하다가 되돌아온 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임사 체험은 끔찍한 불행을 겪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보통 사람들은 평생 발버둥 쳐도 하기 힘든 은총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분들이 임사 체험이후 보이는 특별한 변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삶의 우선 순위가 변경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우선 가치들이 재구성된다는 것입니다. 죽음 체험을 통해 일종의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목숨 걸고 추구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아니었구나. 다 지나가는 것들이었구나. 그렇게까지 목숨 걸 대상이 아니었구나.”
그런 깨달음을 통해 여러 대상이나 가치들에 대한 재구성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재물과 사회적 위치, 학벌과 스펙, 사람과 만남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삶의 방향이 더 가치있고, 더 고귀하고, 더 영원하고, 더 불변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결국 영적인 삶, 사랑의 삶, 봉사와 헌신의 삶, 주님 안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도 언젠가 그런 대대적인 삶의 전환점이랄까 분기점을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먹고 즐기며, 그저 이 한 몸 겨우겨우 부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보다 이타적이고, 보다 영적이고, 보다 주님 마음에 드는 그런 방향에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한가위 명절을 맞아 공동체 형제들과 주변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부모님과 가족을 찾아 고향을 향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제 집도 절도 없는 영감님들만 공동체에 남아 있습니다. 추석 연휴를 맞아 몇백년 만에 사무실에 편안히 앉았습니다.
몇 년전부터 순차적으로 주님 품으로 가신 아버지, 어머니, 형의 영정 사진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그 눈빛들이 뭔가를 말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이제 자네 차례라네!” 어쩌다보니 저도 저희 가족 가계도 안에 최고 높은 꼭대기에 위치해 있습니다.
비록 재물은 아니지만, 그 무엇인가를 모으고 또 모으고, 끝도 없이 쌓아 올리며 살아온 지난 날을 가슴 치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주님께서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를 맞아 우리보다 먼저 떠난 조상님들,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의 영원한 안식과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우리들의 죽음도 생각하면서, 남은 날들을 보다 품위있고 고상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엮어가기를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탐욕에서 벗어나는 법: “그래도 숙제니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한가위는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그런데 왜 시스템적으로 매년 이렇게 하도록 모든 나라에서 명절을 지낼까요? 그 이유는 시스템적으로 감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탐욕에 시스템적으로 잠식되기 때문입니다.
1997년 수원 소재 전교 1등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갑자기 오른 성적 때문에 수군거리는 친구들의 태도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 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애들이 무서워요. 말투와 눈빛이, 행동들이….”
300명 중 100등 하던 아이가 한 학기 만에 전교 1등을 하니 그럴 수밖에요. 그렇다면 다음 시험으로 전교 1등을 할 실력임을 증명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시선보다는 다음 시험의 부담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이뤄낸 것들은 이렇게 잃을까 봐 불안합니다.
1997년 같은 해 성남시에서도 1등을 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1등일 때 죽고 싶다.”라는 말을 많이 했고, “나는 최고인 이 순간 자유를 얻었다.”란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습니다. 1등을 유지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내가 이뤄낸 것은 이렇듯 지푸라기처럼 잃어버릴까 봐 나를 두렵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탐욕이 많은 부자는 자기 재산을 잃을까 봐 곳간을 넓히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이 그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부질없습니까? 내가 이뤄놓은 것이나 가진 것들이 부질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죄는 탐욕에서 비롯되는데 탐욕은 가만 있으면 저절로 나를 잠식합니다. 건물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허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탐욕을 이기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1946년 최초의 마취제 ‘에테르’가 발견되었습니다. 의대 2년생 모턴입니다. 그가 특허 신청 때 지도교수인 ‘웰치’와 실험실을 내어준 화학과 교수 ‘잭슨’이 자신이 특허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셋은 법정 싸움까지 갔습니다. 잭슨은 정신병에 걸렸고, 웰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모턴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뇌출혈로 사망합니다.
나의 것이면 뭐 하겠습니까? 목숨을 잃게 된다면. 성경에는 ‘못된 소작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소작인은 추수철마다 소출 일부를 주인에게 봉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소출의 일부를 받으러 온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하였지만, 주인은 외아들을 보냈습니다. 이는 감사의 봉헌 시스템 안에 자신을 넣지 못하는 사람은 성체를 영해도 그 안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선악과와 뱀 앞에 서 있는 하와와 같습니다. 선악과를 바치지 못하면 뱀에게 자기를 바치는 것이 됩니다. 선악과는 매년 열매가 맺힐 때마다 바쳐야 합니다. 부모를 기억해야 하는 명절이 규칙적으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잡초가 나고 건물이 허물어지는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잡초를 뽑고 건물을 다시 재건하는 일도 규칙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시스템을 이기는 것은 시스템밖에 없습니다.
유대교에서는 부모 공경 의무(키부드 아브 바-엠 Kibbud Av Va-Em)를 규율로 정해 실천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앉는 자리나 사용하는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부모가 있는 자리에서는 자녀가 함부로 발언하지 않는다. 자녀는 부모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즉시 이를 제공하며, 필요시 부모를 돌볼 책임을 진다.”와 같은 규정들입니다. 법으로 정해져 있기에 유대인들의 부모 공경은 대단합니다. 그렇게 규율로 자신을 얽어매면서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빠는 아이에게 과자를 사 주면 규칙적으로 하나만 아빠 달라고 말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아이는 아빠에게 하나를 주기도 아까워할 것입니다.
EBS ‘엄마가 울었다’는 어느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부모님을 30번 칭찬하고 그 내용을 적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30번을 다 채우니 자신이 자랑스럽고 집이 좋아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래도 숙제니까….”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우리 민족의 명절 ‘한가위, 추석’입니다. 추석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눔입니다. 농경사회에서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절입니다. 가을에 거둔 곡식과 과일을 이웃과 특히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능력과 재물을 기꺼이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추석을 지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좋은 날씨를 주시고, 적당한 비를 내려 준 하늘에 감사드리는 겁니다. 좋은 땅을 물려준 조상에 대해 감사드리는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추석을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미국에도 있는데 ‘추수감사절’입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이주민들은 낯선 환경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겨울을 지낸 이주민들은 가을에 첫 곡식을 수확했습니다. 신앙인들이었던 이주민들은 하느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고, 음식을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명절입니다. 이는 많은 사람이 귀성, 귀향길에 오르는 우리의 추석과 비슷합니다.
유년시절 제게 추석은 ‘심부름’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우면 돼지고기를, 형편이 좋으면 소고기를 친척들과 나누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친척 집에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면 친척들도 형편에 맞게 추석 명절을 지낼 수 있도록 선물을 주었습니다. 추석날 가족들은 조상들을 위해서 ‘연도’를 바쳤고, 추석 합동 위령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제게 추석은 ‘가을 방학’이었습니다. 신학교는 매년 가을 추석이면 신학생들이 집에서 며칠 쉴 수 있도록 방학을 주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추석 연휴를 보내야 했기에 주어지는 방학이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는 신학생들이 사제관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신학생들에게 추석 선물을 주었습니다. 양복 기지를 받기도 했고, 옷을 받기도 했습니다. 추석 방학이면 동창 신학생들과 등산도 하였습니다. 지리산도 갔었고, 덕유산도 갔었습니다. 한번은 동창 신학생의 집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동창 신학생의 집이 서산이었고,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는 서툴지만 벼 베기를 도와주었습니다. 추석은 ‘영화’를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극장들은 추석을 맞이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는 추석에 맞추어서 개봉되었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추석을 지내는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1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주신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내게 주신 모든 은혜는 하느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재화를 쌓아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주의하십시오. 모든 탐욕을 경계하십시오. 아무리 부유하더라고 사람의 생명은 그 재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 제2 독서는 우리가 누려야 할 천상의 영원한 안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행복하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업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행한 선행, 나눔, 희생,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밝게 비치는 둥근 달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한가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성인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Robert Bellarmine)
신분 : 추기경, 교회학자
활동연도 : 1542-1621년
같은이름 : 로버트, 로베르또, 로베르뚜스,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 벨라르미누스
성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또는 로베르토)는 1542년 10월 4일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몬테풀차노에서 태어나 1560년 10월 예수회에 입회하여 1570년 3월 25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당시 교회는 종교 개혁자들에 대항하느라 교부학과 교회사에 대한 연구가 경시되던 상태였다. 토스카나 지역의 유망한 젊은 학자로서 그는 종교 개혁자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교리를 체계화하고 성서를 연구하는 두 가지 일에 그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는 루뱅(Louvain)에서 예수회 회원으로는 처음으로 교수가 된 사람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의 강의록을 바탕으로 세 권으로 된 “이단 반박론”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교황의 세속권과 평신도의 역할에 관한 부분들이다. 그는 ‘왕권신수설은 유지될 수 없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영국과 프랑스의 분노를 초래했으며, 또한 로마 교황의 세속권을 발전시켰다. 비록 그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인 버클레이와 대항하여 교황을 옹호했지만,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벨라르미노는 1599년 ‘학식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추기경이 되었다. 벨라르미노는 바티칸 궁전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이 실천해 오던 내핍생활을 전혀 완화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만을 먹으면서 거의 아주 필수적인 것 이외에는 가계비 지출을 제한했다.
그는 군에서 탈영한 한 군인의 몸값을 치렀고, ‘벽은 감기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기 방의 커튼을 가난한 사람의 옷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그의 많은 활동 가운데 그는 특히 교황 클레멘스 8세 시대의 신학자로서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두 개의 교리서를 준비했다.
벨라르미노의 일생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논쟁은 1616년에 일어난 일로 그가 찬양하던 자기 친구 갈릴레이에게 충고를 해야 했던 것이다. 벨라르미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성서에 위배된다고 결정한 신앙교리 성성을 대신하여 충고를 했다. 이 충고는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것을 가설 이상으로 지나치게 비약시키는 데 대한 하나의 본보기였다.
벨라르미노는 1621년 9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성 과정은 1627년에 시작했으나 그의 저서에서 연유된 정치적 이유로 인해 지연되다가, 1923년 5월 13일에 복자품에 올랐으며, 1930년 6월 29일 시성되었다. 1931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성 람베르토 (Lambert)
활동년도 : 635-705년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마스트리흐트(Maastricht)
같은 이름 : 람베르또, 람베르뚜스, 람베르투스, 램버트
플랑드르(Flandre) 지방 마스트리흐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람베르투스(Lambertus, 또는 람베르토)는 성 테오다르드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그의 스승이 668년에 살해되자 통그레스-마스트리흐트의 주교로서 그를 승계하였다. 그러나 서 프랑크의 실력자인 에브로인의 미움을 받아 스타블로(Stavelot)로 귀양을 갔다. 그 후 681년에 에브로인이 살해됨으로써 복권되었다. 그러나 그는 국왕 피핀이 아내의 동생인 플렉투르다와 간음한 사건을 묵인하지 않고 비판함으로써 리에주(Liege)에서 살해당하였다. 그는 위대한 순교자이자 복음 선포자로서 벨기에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힐데가르데 (Hildegard)
활동년도 : 1098-1179년
신분 : 수녀원장, 신비가, 저술가
지역 : 빙엔(Bingen)
같은 이름 : 힐데가르다, 힐데가르드, 힐데가르디스, 힐데가르타, 힐데가르트
독일 남서부 알자이(Alzey) 부근 작은 마을인 베르미스하임(Bermersheim)에서 귀족인 아버지 힐데베르트(Hildebert)의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성녀 힐데가르데(Hildegardis)는 어릴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8세 때 병약한 관계로 디지보덴베르크(Disibodenberg)에 있는 베네딕토 수녀회에 맡겨져, 스판하임의 메긴하르트(Meginhard von Spanheim) 백작의 동생인 유명한 은수자 유타(Juttta)의 보호하에 읽기와 쓰기, 찬미가 부르기, 수작업과 음악 등의 교육을 받았다. 성녀 힐데가르데는 12세 때부터 은수생활을 시작하였고, 14세 때에 수도 서약을 하였다.
1136년 유타가 세상을 떠나자 38세의 힐데가르데가 수녀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1141년 그녀의 마흔 세 번째 생일날,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면서 예언자적 소명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에 이 체험을 거부하여 내적인 갈등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스승이며 고해 신부에게 상담을 하였고, 마인츠(Mainz) 교구 대주교의 지시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그녀가 체험한 환시가 사실임을 확인한 후 그녀의 환시를 글로 기록하는 일을 돕도록 수도승인 폴마르(Volmar)를 임명하였다. 특히 성녀가 살던 시대는 서방 교회의 혼란기였기 때문에 그녀의 예언자적 소명이 더욱 큰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1148년 그녀는 빙엔의 루페르츠베르크(Rupertsberg)에 새로운 수녀원을 설립하고, 1150년 다른 수녀들을 데리고 디지보텐베르크 수도원을 떠나 그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에 첫 번째 저서인 "쉬비아스"(Scivias Domini)를 완성하자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연과 치료에 관한 책, "책임 있는 인간"(Liber Vitae Meritorum), "세계와 인간"(Liber divinorum operum) 등을 저술하였고, 1165년에는 라인 강 건너편 아이빙엔(Eibingen)에 두 번째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환시를 설명하기 위해 독일 전역을 네 차례나 도는 설교 여행을 하였다. 그녀는 1179년 9월 17일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에 묻혔다.
성녀 힐데가르데는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손꼽히며, 다양한 방면의 연구를 통한 그녀의 저서는 단테(Dante)나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 견줄만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공식적으로 시성된 사실은 없다. 그러나 1664년부터 독일 마인츠 교구의 시간 전례서와 미사 경본에 9월 17일을 그녀의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며, 1940년부터 이 축일을 교황청에서도 받아들였다. 그녀는 비록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로마 순교록"에도 성녀로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