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_연중28주일_혼인 잔치
믿음의 백성인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은 혼인 잔치에 비유됩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를 통해서 지상의 교회와 일치하는 모습을 혼인으로 비유하십니다. 당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신랑으로, 아들과 결합하는 교회를 지상의 신부로서 비유하시는 것입니다. 이 둘의 결합을 가리켜 혼인 잔치를 베푸신다 말하는 까닭입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다양하고, 많습니다. 모두가 새롭게 시작하는 부부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가족과 친지들도 있고, 오래 알고 지내왔던 이웃들도 있습니다. 같은 학교나 직장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람들도 초대받습니다. 요컨대, 이들 모두가 축하하는 것의 중심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주고 받는 하나의 사랑에 있습니다.
물론 결혼식을 치르는 동안에는 바쁘고 긴장한 탓에 서로를 챙기는 마음을 잠시 잊을 수도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나를 알고 또 챙겨왔던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그렇게 상대편의 손님들에게 서로 소개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생에 한 번으로 기록될 이 특별한 순간에 이 기쁜 날 환하게 밝은 미소를 장착하고, 수백번 터뜨리는 사진 촬영의 플래쉬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예식의 순간들에서도 잠시 잊고 있던 것이지만, 그 와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하나되는 사랑에 있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는 마음이 없는 이라면, 혼인 잔치에 함께 앉아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그 분위기에서 함께 나눌 기쁨은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고 축하하는 잔치를 온전히 즐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덕분인지 교회는 오랜시간 이 혼인잔치의 비유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강조해 왔습니다. 미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거룩한 영성체의 시간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몸을 나누어 모시는 이 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어 일치하는 체험을 합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교회의 공동체가 되는 시간입니다.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거나, 지은 죄와 잘못으로 얼룩져 주님을 모시기에 부끄러움을 씻어내는 고해성사를 청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받아모실 때, 유한하고 부족한 인간이나 우리에게 조건없이 다가와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간직하는 소중한 침묵의 기도를 합니다. 모든 감각을 내려놓고, 좀 더 세밀하게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더욱 잘 들으려는 거룩한 경청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도를 바쳐야만 훌륭한 기도가 아닙니다. 어떻게 잘 말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훌륭한 기도라 말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기도라 말할 수 있는 것도 결국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 이제 막 세례를 받고 아직 신앙생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은 새 신자라 할지라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느끼는 사랑 덕분에 깊이 이해하는 신앙의 신비를 결코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신학교를 입학하기까지 오랜 시간 군인 가족으로 자랐습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군인성당에서 첫영성체를 받았고, 복사를 서 왔습니다. 주말이면, 군 장병들에게 라면을 끓여주시고, 맛있게 만든 샌드위치를 나눠주시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덕분에 맛있는 라면도 얻어먹고, 샌드위치도 받아 먹었습니다. 성탄이나, 부활과 같이 큰 축일에는 배달음식도 먹을 수 있어서 설렜습니다. 사실 집에 가지 못하는 군인 아저씨들에게 뭐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서 준비한 음식들이고, 선물들이었는데, 덩달아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한번은 피자를 나눠주셨었는데, 남은게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참 서럽게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 그 생각을 하면서 내 돈주고 사먹는 피자는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그 맛이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성당에서의 미사가 혼인잔치라는 비유가 와닿습니다. 먹는게 좋아서 행복했던 당시의 제가 군장병들을 먹이고, 챙기려는 부모님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오죽하면 남은 음식이 없어서 서럽게 울었을까요? 다만, 사정도 모르고 열심히 신부님 곁에서 미사 복사를 섰던 기억은 분명하게 납니다. 마구 움직이고 싶고, 마구 뛰어 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고요하게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기도손을 했고, 신부님의 속도에 맞추어 경건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노력들을 기울였습니다. 짧은 머리를 하고, 오와 열을 맞추어 앉아 있는 수많은 군인 아저씨들이 바라보는 제대 한켠에서 떨리는 두 손으로 주수병을 옮기고, 종을 치는 순간이 얼마나 떨리는지요. 한번은 체를 하고 복사옷에 토를 한 적도 있습니다.
제 어릴적 혼인잔치에서 제가 간직하고, 주님과 주고 받은 사랑의 기억은 지금 이렇게 사제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매일 미사를 드리고, 신자들의 필요를 채우며, 함께 걸어가는 사제의 삶이 참으로 행복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분명, 사제로 살아가는 이 순간에도 자주 책임을 잊거나, 인간적인 욕심으로 방황하는 때가 많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안일함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놓치거나, 미루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 멀리 휴가를 다녀오거나, 늦은 밤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잊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또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묻을 일입니다. 그리고 듣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