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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들꽃*묘연 원문보기 글쓴이: 들꽃
서울 홍은동 ‘보도각 백불’ |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8번지에 위치한 옥천암. 조계종 직할교구 사찰인 이 사찰에 ‘보도각 백불’이라는 관세음보살님이 새겨져 있다. 정확한 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마애보살좌상(弘恩洞 普渡閣 磨崖菩薩坐像)’이다. 흰색의 호분(胡粉)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기 때문에 백불(白佛) 또는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도 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마애불상 앞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조선 후기에는 고종의 어머니가 하늘의 복을 빌었다고 하는 왕실과 관련된 관음도량으로 유명하다. 이 보도각 백불에는 조선시대의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관세음보살 가피로 장가들고 부자되다
<사진> 관세음보살님 가피로 아내를 얻어 백년해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보도각 백불’ 모습. 때는 조선 순조 7년(1807) 무렵이다. 경기도 고양군 신도리 어느 동네에 윤덕삼(尹德三)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이 청년은 나무장사를 하며 일흔 노모를 봉양하고 있었다. 가난했지만 효성이 지극해 마을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 “오늘도 먼 길을 나뭇짐을 지고 가야 하는구나. 언제 규수를 얻어 어머님에게 며느리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 건실한 덕삼은 매일 새벽 첫 닭이 울면 나뭇짐을 지고 구파발을 지나 박석고개를 넘고, 한양 도성으로 와 나뭇짐을 팔았다. 서대문 쪽 무악재 고개를 넘어 오려면 너무 복잡해 발붙일 곳이 없어 덕삼은 홍제동에서 왼쪽으로 길을 들어서 홍제천을 끼고 자하문을 넘었다. 이 길은 좀 가파르긴 해도 도성안으로 들어오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송곳 박을 땅도 없는 내 신세인데 어떻게 한담. 더구나 나는 3대 독자가 아닌가. 하루빨리 장가들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어머님께 안겨 드려야 편하게 눈을 감을 것이 아닌가?” 나무를 짊어지고 고개를 넘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덕삼은 갖은 상념에 빠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 날도 나무를 한짐 지고 자하문 고개를 향하고 있는데 어디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그 쪽에 ‘옥천암’이라는 절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날 따라 덕삼은 왠지 모를 이상한 마음이 생겼다. 개울 건너에는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님이 있었고, 많은 아낙들이 진지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모으는 손이 너무도 경견해 보였고, 특별하게 절을 찾지 않았던 청년의 마음도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에게 끌리고 있었다.
덕삼은 지고 가던 짐을 세워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때 마침 옥천암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저 건너편에 있는 돌부처에 왜 저리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어요. 한낱 돌에다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게 해 준답니까?”
할머니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아니, 이 사람이 천벌을 받을 말을 하는구만. 저기 앉아 계시는 분은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가진 관세음보살이라는 분이시네. 정확하게 말하면 저 분은 해수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데 동해, 서해, 남해 할 것 없이 육지와 바다를 관장하시면서 중생들의 소원들을 들어주고 이루게 해 주시는 분이라네.” 순조 때 고양군 사는 노총각 윤덕삼 옥천암에 100일 기도로 심낭자 만나 덕삼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나도 내일부터는 저기 관세음부처님께 장가들 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겠다.” 이렇게해서 매일 한양으로 넘나드는 길에 옥천암에 들려 지극한 정성으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기도 100일째 되던 날 밤 덕삼은 흰 수염이 가득한 노인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옥천암에 해수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온 보살이다. 지금까지 너의 기도모습을 보니 너무도 정성이 갸륵해 한가지 소원을 들어 주고자 한다. 내 말을 명심하고 듣거라. 네가 만일 내일 새벽 첫 닭이 울기 전에 나뭇짐을 지고 집을 출발해 밝기 전에 자하문 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거라. 문이 열리거든 첫 번째 나오는 여인이 있을 것이다. 그 여인을 집으로 데려와 너의 소원을 이루거라.” 그 노파가 일러 준 대로 덕삼은 일찍 나뭇짐을 지고 자하문으로 향했다. 얼마나 정신없이 서둘렀던지 자하문에 도착해서도 날이 새지 않았다. “그래 내가 제일 먼저 문에 도착했으니 문이 열리면 나오는 여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야.”
이윽고 문이 열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노파가 일러 준대로 멀리 새벽안개를 뚫고 오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도 누구를 찾고 있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덕삼은 여인에게 다가가 “남녀가 유별하나 제가 낭자의 갈 길을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말을 건냈다. 그 여인은 “저는 지금 고양군에 사는 윤도령님을 찾아 나서고 있는 길이온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뭐라고요? 윤도령이라고요. 제가 윤덕삼이오.”
깜짝 놀란 덕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여인은 말을 이었다. “어젯밤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 저에게 말하기를 내일 새벽 자하문에 나가면 윤도령이라는 총각이 나타날 것이니 그 사람을 따라가면 앞으로 삶이 순탄할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른새벽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덕삼은 감읍한 나머지 그 여인의 손을 잡고 세검정을 지나 옥천암에 다다랐다. 분명 관세음보살님이 점지해 준 여인이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드리려 하는데 여인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젯밤에 본 노인의 모습이 저 부처님 모습과 같아요!” 덕삼은 생각했다. “그래 관세음보살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주신 것이야.” 고향으로 돌아온 덕삼은 심낭자와 혼례를 치렀다. 그리고 부인이 가져온 패물로 집도 짓고 농토를 사서 신도리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어 세세손손 번성하며 살면서 옥천암의 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보도각 백불에 대해서는 임진왜란때 왜군을 물리친 권율장군의 이야기도 전한다. 당시 권율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왜군과 대항하며 힘든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위세에 밀려 삼각산으로 밀려왔다. 기세 당당한 왜군들은 한강을 타고 들어와 서대문을 넘어 자하문을 지나 한양도성으로 쳐 들어올 요량으로 진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태가 어렵게 된 권율장군 부대는 ‘옥천암’을 요새로 삼아 배수진을 쳤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 白佛 도움으로 야간전투서 왜군 전멸 큰 승리 얻기도 “여기서 더 이상 밀리면 안된다. 반드시 이곳에서 왜군을 격퇴시켜야 한다.” 군령이 떨어진 조선군은 홍제천을 사이에 두고 야간매복에 들어갔다. 아주 작은 병력이지만 옥천암을 사이에 두고 거리를 둔 조선군과 왜군은 상대방의 군사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처음 이 지역으로 들어온 왜군들은 순간 동요하기 시작했다. 옥천암 마애부처님을 조선의 장군으로 오인하면서 갑자기 탄약을 발포하기 시작했다. “왜군들이 탄환을 쏘기 시작한다. 모두들 매복하라.” 쉼 없이 날아드는 왜군의 탄환은 이내 바닥이 났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탄환이 바닥난 왜군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기 강 건너편에 커다랗게 흰옷을 입은 조선장수가 있는 듯하여 일제히 발포명령을 내렸는데 다시 보니 돌부처였구나. 이거 큰일났다. 빨리 퇴각해야겠구나.” 허겁지겁 퇴각하던 왜군들은 권율장군의 반격에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현재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보도각 백불’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대체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관음보살상으로 추정된다. 옥천암의 역사는 자세하게는 알 수는 없고 다만 이곳에 신라시대 때부터 내려오던 ‘장의사’라는 사찰에 맥을 짚어볼 수 있다. 조선 영조시대에 조성된 해동지도(1750년경)에는 관세음보살님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불암(佛岩)이라고 적힌 기록이 있는데 이 곳이 옥천암으로 추정된다. 조선 정조시대에 만들어진 도성도(1776~1800)에 ‘옥천암’이라는 암자가 나오며,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도 사찰명이 보인다. 또 기록에는 피부병에 효험이 뛰어나다는 샘물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증축과정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현재의 옥천암은 미국에서 수년간 포교를 해 왔던 주지 정범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 부임해 매주 일요법회와 함께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영어법회를 열며 이 지역 신행의 중심공간이 되고 있다.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 찾아가는 길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KFC앞에서 8번 마을버스를 타고 유원 하나아파트 앞에서 내린다. 유진상가 앞에서는 110, 170, 7018, 7730번을 타고 들어오면 된다. 광화문이나 경복궁역 쪽에서는 7018번을 타고 자하문을 넘어오면 된다. 승용차로 올때는 자하문을 넘어 세검정으로 내려오거나 홍제동 쪽에서 상명대쪽으로 들어오면 된다.
참고문헌 및 도움주신 분 : <불교영험설화>, <한경지략>, 옥천암주지 정범스님, 옥천사 홈페이지(www.okcheonam.com), 정동일 고양시문화재 전문위원 [불교신문 2393호/ 1월16일자] 2008-01-12 오전 11:09:20 / 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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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들꽃*묘연 원문보기 글쓴이: 들꽃
첫댓글 혼기를 놓치신 분들이 주위에 있으시면 옥천암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라고 하세요 ^*^
요기도 고향방문하는 기분으로 찍고..ㅎ
걷기 여행코스로 저두 한번 걸어볼까 했어요..경복궁역-황학정-창의문 -백석동천-세검정-석파랑-홍지문-보도각백불-총 6km-2시간 50분 ..황학정 앞에서 부터 산길로 접어들면 예쁜오솔길이 나온다고 하니 가을날 산책코스로 손색이 없을것 같네요
제주도는 걷기 코스를 '올레걷기'라고 합니다~~~올레 걷기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