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는 직업
김 국 자
엽서가 날아왔다. 발신인은 존경하는 K선생님이었다. 봉사 단체에서 함께 활동한 교우이며,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한 분이다. 무슨 소식일까? 자제분 모두 결혼했으니 결혼청첩장은 아닐 테고, 칠순 잔치하시려나? 예상과 달리 개업식 안내장이었다.
열정도 대단하셔라. 전망 있는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신선한 감동이었다. 백세시대라지만, 칠순연세에 새로운 사업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K선생님은 사업을 하실 분이 아니다. 정년퇴임한 선생님들 대부분 문화센터나 복지관에서 재능기부를 하신다. 주로 서예나 한문을 지도하며 노후를 즐긴다.
요즘 사업을 시작했다가 퇴직금을 날린 사람들이 많다. 지난번 고향 친구가 귀티가 줄줄 흐르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를 보자마자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신상품 설명을 들으며 귀가 솔깃했다. 노다지가 금방 쏟아질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자본이 필요했다. 자금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투자해도 된다는 설득을 용감하게 거절했다. 투자할 재력도 없을뿐더러 이팔청춘도 아니고, 황혼에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돈 벌 생각 말고, 건강에 신경 써야할 처지가 되었다.
K선생님 역시 만만치 않은 연세에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안내장에는 사업에 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요즘 사설학원이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영어를 전공하셨으니 영어학원을 운영하시려나?
개업식 날, 장소를 확인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이었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버스로 환승했다. 약도를 보며 찾아갔는데, 넓은 대지에 커다란 건물이 달랑 하나밖에 없었다. 그 건물 앞에 대형화환이 줄지어 있고, 선생님 내외분이 계셨다. 건물 꼭대기에 간판이 보였다. <00 추모공원> 잘 못 본 건 아니겠지? 분명히 추모공원이었다. 왜 하필 추모공원일까? 그냥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무어라고 인사하지? 어느 개업식이든 ‘축하드립니다.’ 하는데,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적당한 인사말이 떠오르지 않아망설이는데“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K선생님 음성이 들렸다. 불편한 마음 내색 못하고 목례로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도착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거의 다 선생님의 제자들이고, 몇몇 분은 K선생님과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이었다.
개업식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사장님을 소개할 때, K선생님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내 바람과 달리 K선생님이 단상에 오르셨다. 단상에 오르시더니 ‘이 세상 모든 사람 누구나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 어느 시에 어떻게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영원히 안식을 누릴 곳을 준비해야 합니다.’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근엄하신 선생님께서 장황한 사업설명을 할 줄 상상도 못했다.
더 실망한 것은 고사를 지낼 때였다. 친척들은 물론이고 제자들 모두 돼지 콧구멍과 귓구멍에 시퍼런 지폐를 돌돌 말아 꽂았다. 돼지주둥이에도 오만 원 권이 꽂혔다. 이 사업이 번창하려면 날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야한다. 사업 번창하라는 뜻으로 옷가게를 개업하면 옷을 팔아 주고, 그릇가게 개업하면 그릇을 팔아 주었는데, 추모공원 예약은 할 수 없었다.
개업식 이후 안부전화를 못했다. 부담 없는 사업이라면 ‘요즘 사업 잘 되세요?’ 하며 인사할 수 있는데,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이 많아야하는 사업인지라 안부전화를 할 수 없었다. 개업 1주년 쯤 되었을 때, 소식이 날아왔다. K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 듣고 문병 갔을 때, 췌장암 말기 투병 중이었다. 가랑잎처럼 바싹 마른 몸으로 누워계셨다.
문병을 다녀온 한 달 후,K선생님이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결국 자신이 마련해 놓은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사업부실로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잘못 택한 직업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심사숙고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