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눈의 티와 들보 사이에서”
본문: 마태복음 7:1-5
사람은 누구나 정의를 원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노하고, 불공평한 일을 보면 화를 냅니다. 사회가 더 바르게 되기를 바라고, 악한 것은 심판받기를 원합니다. 이것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언제나 “남의 죄”는 선명하게 보면서 “자기의 죄”는 흐리게 본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은 정의를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죄라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누구보다 강하게 죄와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고 선언하셨고, 성전의 타락을 보시며 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먼저 요구하신 것은 자기 성찰이었습니다.
인간은 이상하게도 자기 죄에는 관대하고 남의 죄에는 엄격합니다. 남의 작은 허물은 확대해서 보지만 자기 안의 교만과 탐욕은 쉽게 정당화합니다. 이것이 죄인의 본성입니다.
오늘날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정의를 외치지만 상대의 잘못만 바라봅니다. 정치도, 인터넷도, 인간관계도 점점 심판의 언어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보라.”
참된 회개는 세상을 먼저 바꾸려 하기 전에 자기 마음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내 안에도 미움이 있고, 내 안에도 욕심이 있고, 내 안에도 위선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들보를 빼낸 후에는 형제의 티를 빼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랑 안에서 서로를 바르게 세우라는 뜻입니다. 신앙은 무조건 침묵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정죄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의는 사랑 없는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동시에 진리 없는 관용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사랑하셨지만 죄를 죄라 하셨고, 용서하셨지만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의를 말하면서 미움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나는 신앙을 말하면서 정작 내 삶은 변화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남의 티는 보면서 내 들보는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우리 마음을 바꾸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변화된 사람을 통해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하십니다.
참된 의로움은 자기 의를 자랑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