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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와 서울대는 여러모로 비슷하다.각기 일본과 한국에서 최고 엘리트들을 길러낸 대학으로 인정받아온 자부심을 지녔다는 점이나 대규모 종합대학으로 다소 방만하게 운영돼왔다는 비판 역시 공통점이다.두 나라의 대표 대학을 비교하면 어떨까.
먼저 도쿄대학은 학생 2만6천4백69명(학부 1만5천8백60명,대학원 1만6백9명)에 교수진이 4천82명이다.교수 1인당 학생 수 비율이 6.48대1이다.이 학교 1년치 예산은 96년도 경우 1천7백41억엔(약 1조7천억원)이다.
서울대는 학생 2만9천3백41명(학부 2만5백명,대학원 8천8백41명)으로 도쿄대보다 3천명이 많다.반면 교수진은 1천4백72명으로 교수 1인당 학생비율은 20대1로 교육여건은 도쿄대보다 열악하다.98년도 서울대의 세출예산은 2천2백46억원으로 도쿄대의 7분의 1 수준이이었다.
지난해 아시아위크는 일본 도쿄대를 아시아지역 종합대학중 최우수 대학으로 꼽았다.반면 서울대는 6위로 선정했다.올해는 도쿄대가 조사에 응하지 않아 순위에서 빠진 반면 서울대는 지난해보다 3단계 오른 3위에 랭크됐다.이 조사는 응답여부와 방법에 따라 순위가 오락가락하는 단점이 있다.
흔히 과학기술분야 연구실적을 비교할 때 쓰이는 SCI(Scince Citation Index: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 인용 논문 수를 비교해보자.
SCI는 미국의 과학정보연구소가 61년부터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분야의 잡지에 수록된 논문을 모아놓은 색인이다.전 세계 5천여종의 학술지가 대상인데 우리나라는 대한화학회지 등 16종류의 학술지가 SCI에 인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부는 BK 21 사업단 신청자격을 지난 3년간 3편 이상의 논문이 SCI에 인용된 경력이 있는 교수가 전체 사업단 교수진의 40%이상이어야 한다고 제한하고 있다.그만큼 SCI는 대학의 연구실적을 계량화하는 중요 잣대로 쓰이고 있다.
97년도 자료를 보면 도쿄대가 5천5백36편이 인용돼 전 세계 대학중 하버드(8천3백64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서울대는 1천3백95편이 인용돼 1백26위를 기록했다.일본의 교토대,오사카대 등이 20위권에 들어있고 대만대도 1백7위를 기록해 서울대보다 앞서 있다.
- 도쿄대와 비교하면 논문 수가 4분의 1이 채 안된다.
우리나라는 서울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도 SCI는 바닥권이다.KAIST가 1천1백64편이 인용돼 1백60위를 기록했다.이들 두 대학을 포함해 연세대(2백90위),포항공대(3백87위),고려대(4백26위),한양대(4백73위),경북대(5백69위),부산대(6백12위)까지 국내 8개 대학의 논문 수를 모두 합쳐야 도쿄대의 84%에 불과하다. - kukminilbo/7/20/99 -
- 도쿄대 연구소
우리나라 교육부가 대학개혁의 핵심사업으로 추진중인 두뇌한국 21(Brain Korea 21,약칭 BK21) 사업은 여러 학문분야가 컨소시엄형태로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공동연구와 협력의 정신이 중요하다.그러나 우리는 아직 서로 다른 전공분야간 공동연구 관행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협업정신이 희박하다.
BK21 사업 참여를 준비중인 서울대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학문분야간 공동협력이 중요하긴 한데 어느 학과나 단과대학이 이 사업을
주도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어 사업단 응모 방식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어요”
서로 전공이 다른 학문분야간 공동연구 방식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을 따내려면 수많은 전공분야 교수들을 효율적으로 묶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BK21을 둘러싼 갈등이 인문사회 분야 지원이 소홀하다거나 소수 대학만 집중지원하는데 따른 상대적 박탈감만 주로 부각돼 있으나 전공분야가 다른 교수들을 연구비를 같이 쓰는 한 사업단으로 구성하는 것도 까다로운 숙제이다.서울대 교수의 고민도 학제간 공동연구에 익숙지 않은 우리 학계 풍토를 지적한 것이다.
본보는 해외교육 시리즈 마지막편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달 20일부터 열흘간 취재기자를 일본에 파견하면서 가장 먼저 일본 대학의 공동연구 실태를 알아보았다.
그중 학문분야간 공동연구가 가장 활발한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소를 찾았다.이 연구소는 87년 설립때부터 공동연구를 설립이념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연구소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요요기 공원에서 멀지 않은 시내 한 곳에 있었다.
이 연구소의 소장을 지낸 니키 에츠오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첨단과학기술분야 연구에 있어서 공동연구의 정신은 대단히 중요하다.우리는 이를 `학제성(學際性)의 원칙'이라고 말한다.공동연구는 여러 학문분야가 동일한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과 돈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보다 역동적인 연구분위기 조성에도 도움된다.과거와 같이 각자 전문분야가 고립된 상태에서 시간과 돈을 들이면서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을 고집할 경우 중복연구나 비효율성에 빠지기 쉽다”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학문분야의 범위는 대단히 넓다.재료공학과 기계공학을 접목시키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인문학 등 전 학문분야가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어떤 특정 첨단기술 연구과제가 주어지면 이공계 교수들은 기술개발 자체에 매달리지만 사회과학 교수들은 이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연구하고 경영학이나 법학교수들은 개발된 기술을 어떻게 하면 기업과 사회에 효과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이 연구과제로 주어지면 의학,생물학 등 자연과학 분야 교수들이 이를 응용하는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 교수들은 유전자 조작기술을 윤리적으로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를 연구한 뒤 개발된 기술의 사회적 적용에 대해 조언한다.
이 연구소에 객원교수로 와 있는 안넨 준지는 법학박사이다.그가 맡은 연구 과제는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연구기술을 기업과 사회에 환원하는 효율적인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특허청에 근무하다 객원교수로 스카우트된 마스다 요시히로는 지적재산권 대처방법과 벤처기업 육성방안을 집중연구하고 있다.
다마이 가츠야 교수는 첨단기술분야를 중심으로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 보호 등 과학기술재산법을 연구하고 있고 야스다 이로시 교수는 과학기술개발법을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이 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주요 첨단기술개발 연구사업은 간호사가 움직이기 어려운 중환자를 다루거나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한 집도가 요구되는 수술실에서 의사를 보조하는 로봇개발부터 동맥경화치료약 개발,고감도 바이오센서 개발,아무리 오래 햇볕에 노출되도 더러워지지 않는 자동차 페인트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기술개발 프로젝트는 해당 이공계 분야뿐 아니라 법학,경영학,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의 학문분야 전문가들의 협력과 공동연구로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소의 또다른 특징은 유동성이다.새로운 연구과제가 주어지면 그에 맞는 조직을 새로 구성한다.사람도 연구성과에 따라 교체한다.뛰어난 연구성과를 보이는 사람은 내외를 막론하고 초빙하되 성구성과나 수준이 미달되면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과 연구성과를 자극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의 고용기한을 최장 10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설립된 지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총 21개 연구분야 조직중 8개 분야가 개편되고 20개 분야의 교수들이 교체됐다.연구소측은 조직개편이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연구소는 대학원 과정 학생과 연구원에게는 희망자 전원을 수용할 수 있는 전용기숙사를 마련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운영방식에 힘입어 이 연구소는 일본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연구소로 꼽히고 있다.96년에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탁월한 연구소'로 지정받는가 하면 여러 민간기업으로부터 밀려드는 연구프로젝트 예산이 정부지원 예산 못지 않았다.
지난해 이 연구소가 배정받은 연구비는 모두 15억엔(약 1천5백억원)으로 문부성 등 정부기관에서 지원된 돈이 8억엔이고 나머지 7억엔은 민간기업에서 지원했다.
지난 1년동안 우리나라 정부기관이 지출한 연구개발예산을 모두 합치면 2조7천억원이었다.
도쿄대의 40여 부설연구소 중 1개에 불과한 이 연구소가 우리나라 연구개발예산의
5%가까이를 쓰고 있는 셈이다.- kukminilbo/7/20/99 -
- 게이오대학 입학방식
게이오 대학의 입학 방식은 독특하고 다양하다.일반시험,학교장추천,자기추천,게이오부속고교생 전형,기타 독자적인 전형 등 종류가 다양하고 시험과목도 학부마다 다르다.
국공립대학은 거의 대부분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통일시험 성적을 주로 반영하지만 사립대학인 게이오는 법학부만 일부 대학입시센터 시험성적을 반영하고 나머지는 자체 선발고사를 치른다.
일반시험의 경우 학부별로 3∼4과목을 보는데 문학부는 외국어,지리역사,소논문 등이고 의학부는 이과과목(물리,화학,생물 등)과 수학,외국어 등이다.이 중 소논문은 의학부와 이공학부를 제외한 전 학부의 필수과목이다.
과목별 배점도 모집단위마다 다르다.문학부의 경우 외국어가 1백50점으로 가장 비중이 높고 일본사와 세계사가 각 1백점으로 필기성적 총점은 3백50점이다.논술과 면접 등 다른 전형자료를 종합해 사정한 뒤 최종합격자를 고르는데 필기성적이 학교가 정해놓은 하한선을 넘어야 한다.문학부의 경우 2백47점이 넘지 못할 경우 면접 등 다른 성적이 좋아도 최종사정에선 탈락된다.
2000학년도 모집요강을 보면 일반시험으로 입학정원의 60%를 뽑고 나머지는 다양한 방식의 특별전형으로 뽑는다.특별전형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이 게이오부속고등학교 출신에게 부여되는 입학정원(20%,1천2백90명)이다.이 때문에 게이오부속고등학교 출신 중 희망자는 대부분 게이오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나머지 20%는 학교장추천,자기추천,귀국자 및 외국인 자녀 추천 등이다.학부마다 채택하는 특별전형도 다양하다.모든 학부가 게이오부속고교 출신자에겐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문을 열어놓았지만 학교장추천은 법학부와 상학부,이공학부에만 적용되고 자기추천은 문학부에만 적용된다.
학교장추천이나 자기추천이나 학업성적이 아닌 사유로 들고 있다는 점에서 취지는 비슷하다.학술,문화,예술,스포츠 등 분야에서 연구,창작발표 실적이나,콩쿠르 대회 입상경력 등 탁월한 평가를 받았거나 고교 생활중 사회봉사활동 등으로 지역사회로부터 리더십을 인정받는 등 교과성적이 아닌 특정 분야에 특별한 소질이 있으면 추천대상이 된다.
우리의 논술에 해당하는 소논문의 경우 ‘진화론를 보는 기독교와 가톨릭적 입장을 비교하라’는 식으로 주제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주제가 없는 경우도 있다.어떤 학생은 비틀스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글을 써낸 뒤 당당히 합격한 경우도 있었다.
게이오의 이러한 입시방식 개선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66년 학교장 추천제를 시작한 이래 91년 독자적 기준 전형을 채택했고 94년에
자기추천 방식을 도입했다.- kukminilbo/7/27/99 -
- 대학개혁의 선두 게이오대학
역사가 오래된 명문대학일수록 개혁과 변화엔 소극적인 게 보통이다.그런 점에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대학 게이오가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를 통해 추구하는 변화는 상당히 이례적이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이오 대학은 올해로 설립된지 1백41년된 일본의 대표적 명문 사학이지만 후지사와 캠퍼스는 10년밖에 되지 않았다.도쿄와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게이오 대학의 4개 캠퍼스 중 가장 최근에 설립됐으며 학부 신입생 정원이 8백명에 불과한 소규모 캠퍼스다.게다가 도쿄에서 서쪽으로 70㎞쯤 떨어진 시골에 위치한 지방 캠퍼스다.
그러나 일본의 유수한 대기업들이 최근 쇼난 후지사와 출신 게이오 졸업생들을 스카우트하지 못해 혈안인데다 각 기업마다 후지사와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이 캠퍼스 출신 학생들의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이 캠퍼스에선 학생들의 과목 선택에 문?이과 구분을 하지 않는다.거의 모든 과목을 문·이과 출신 학생들이 제한없이 섞여서 같이 듣고 있다.입학할 때만 문·이과로 나눠 뽑을 뿐이다.
과목도 문학,철학,법학 등 전통적인 범주의 학문보다 생명시스템 등 문·이과 구분 자체가 어려운 통합학문적 성격의 과목들이 많다.인간행동론,사회환경론,화상해석론,지식처리론….얼핏 과목 이름만 열거하면 인문사회과학 과목인 것 같으나 사실 이과쪽에 가까운 환경정보학부의 전공과목들이다.
이중 환경정보학부의 생명시스템이란 수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통합 학문을 가르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의학기술의 하나인 유전자 치료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기술적 가능성과 함께 유전자 치료의 법적,윤리적 문제점 및 사회적 허용 범위 등을 놓고 찬반양론으로 나눠 토론한다.
캠퍼스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노희선씨(24·여·환경정보학부 1년)는 “생물학과 의학에 대한 책 한권도 읽지 않고 무작정 토론에 뛰어들었다가는 망신 당하기 일쑤”라며 “인문학적 소양과 자연과학적 지식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국인 유학생 홍석영씨(21·환경정보학부 4년)는 통합 학문의 장점에 대해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점’을 꼽았다.홍씨는 “학문발전과 정보의 축적이 워낙 급속도로 이뤄지기 때문에 과거 방식의 전통적인 학문만 고집해선 변화하는 다음 세기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이 학교 커리큘럼이 현실적이고 진취적이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커리큘럼 운용이 초기엔 일본 사회에서도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10년 전 게이오 대학이 이 지역에 입학정원 1천명 규모의 단일학부를 두기 위한 캠퍼스 설립을 추진하면서 지역교육청에 신고서를 제출했을 때의 에피소드.교육청에선 이 학부가 문과인지 이과인지를 물었다고 한다.게이오측은 “문과도 이과도 아니다”고 답했다.그러자 교육청에선 “종합정책학부란 이름을 보니 문과쪽인 것 같다”며 신고서를 반려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명문대학인 게이오가 새로운 학부를 만들면서 문과 출신으로만 1천명을 뽑으면 이 지역 군소대학 문과는 망하고 인재 독점의 소지가 있다는 것.
게이오측은 할 수 없이 이과 냄새가 나는 환경정보학부를 하나 더 만들어 문·이과 구분해서 5백명씩 나눠 뽑겠다고 설립신고를 다시 냈더니 허가가 났다.
학생들은 입학당시 소속 학부는 정해지지만 전공은 따로 없다.2개 학부 통틀어 6개 분야(환경정책,사회경영,국제정책,지식정보,인간환경,미디어환경) 중 졸업 때까지 20학점(10과목) 이상 들은 분야가 있으면 그게 곧 자신의 전공이 된다.그러니 이 캠퍼스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전공이 뭐냐고 물으면 “졸업때 가 봐야 안다”는 대답이 나온다.
정규 과목과 별도로 ‘연구회’란 이름의 수업이 있다.이중 컴퓨터오락게임 만드는 연구회 수업을 살펴보면 문과학생들과 이과학생들이 공동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잘 드러난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1학기 동안 시장에서 팔릴 만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학생들은 기획반,프로그램반,음악반,영상반 등 소그룹으로 나뉜다.
문과쪽 학생이 기획을 맡아 발표한 상품 아이디어 중 구미가 당기는 쪽을 이과쪽 학생이 채택하면 두 학생이 한 팀이 되어 기획과 제작을 맡는다. 음악반과 영상반 학생들도 각자 아이디어로 참여한다.만일 아이디어가 시원찮아 스카우트나 제휴 등에 실패한 학생은 아무 그룹에나 사정해서 낀 뒤 잔심부름을 도맡아야 한다.이 과정에서 교수의 개입은 거의 없고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작상의 문제점 등을 토론하면서 학생들끼리 수업을 진행한다.
이 캠퍼스 학생들은 1,2학년때 누구나 필수과목 2개를 들어야 한다.외국어와 컴퓨터다.학교측은 외국어를 자연언어,컴퓨터를 인공언어로 명명한 뒤 이 두 가지 언어구사 능력은 학생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초소양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어는 영어,독일어,불어,스페인어,한국어,중국어,러시아어,이탈리아어,아랍어,말레이어 중 1개 언어를 익혀야 한다.이 중 한국어와 중국어가 가장 인기다.캠퍼스측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녹음한 테이프를 제출토록 한 뒤 ,일정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내려져야 이 과정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컴퓨터를 떠나선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컴퓨터 과목 이수가 필수인 탓도 있지만 학교측의 각종 고지는 물론 동아리 모임이나 친구들간 서신 등이 온통 전자우편(E메일)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그래서 학생들은 등교하면 컴퓨터 앞에 앉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컴퓨터로 각종 연락사항을 챙겨보고 자료를 조사한다.리포트도 인쇄하지 않고 곧바로 E메일로 전송한다.학교안 곳곳에 산재한 컴퓨터실은 24시간 개방돼 있다.8백대의 단말기(5명당 1대꼴)가 학교 곳곳에 설치돼 있지만 학교측은 1명당 1대꼴로 설비를 확충할 계획이다.
기미오 우노 종합정책학부장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이렇게 말했다.“여러분이 졸업하면 당장은 일본 사회가 냉대할지 모르지만 10년쯤 지나면 여러분이 이 사회를 주도해 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여러분은 미래에서 온 유학생들입니다”- kukminilbo/7/27/99 -
- 동아리활동·자원봉사 열심히 하면 이지메 몰라요"
일본에선 올 상반기에만 학생이 교사를 찔러 살해한 사건이 2건이나 발생하는 등 청소년들의 학교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다.일본 문부성 통계에 따르면 중학교에서 발생한 폭력 건수가 86년에 9백79건이었던데 비해 10년만인 96년엔 1천8백62건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같은 기간 고등학교에선 3백14건에서 9백13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집단 따돌림 현상인 이지메는 최근 들어 감소추세를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왕따나 학교폭력,등교거부 등은 일본 사회에서도 학교교육의 어두운 단면으로 지적되고 있다.최근 우리 사회도 같은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교육당국과 학교 사회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기자는 일본 문부성의 추천으로 둘러본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이지메나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이 두 학교는 각각 학생들에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방과후 활동을 보장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인성교육에 힘쓰고 있었다.
◇하치오지히가시 고등학교=방과후 활동에 열중인 학생들. 도쿄 시내에 있는 이 학교의 3학년 학생들은 오후 4시30분까지 과목마다 교실을 옮겨다니며 보충수업을 받고 있다.치열한 입시경쟁이 우리나라 못지않은 일본 역시 고3들의 교실 분위기는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1,2학년들은 달랐다.오후 3시무렵 정규시간이 끝나자마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방을 팽개친 채 교실 밖으로 내달렸다.상당수 학생들은 체육관 락커룸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어떤 학생들은 목검을 쥐고 검도장으로 향하거나 라켓을 흔들며 탁구장으로 달려갔다.또 어떤 학생들은 야구방망이와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야외수영장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배드민턴,테니스,댄스 등 체육활동 동아리가 19개,음악,미술,연극 등 문화활동 동아리가 14개가 있었다.체육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이 6백77명으로 문화활동 참여학생(2백43명)의 3배 정도로 많았다.여학생 중에도 뛰고 달리며 땀을 흘리는 운동종목을 즐기는 학생들이 문화활동 참가 학생보다 많았다.
수영장,야구장,검도장,댄스교실까지 모두 갖춰져 있어 방과후 활동이 대부분 학교 안에서 가능했다.달리기를 좋아하는 학생들만 학교 주변 도로와 공원을 이용하는 정도였고 학교를 벗어나는 학생들은 없었다.시설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부러울 정도였지만 이 학교와 같은 도쿄시내 공립학교는 모두 같은 수준이라는 게 이 학교 도노마에 야스오 교장의 귀띔이었다.
전교생 1천여명 중 방과후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이 9백20여명으로 참여율이 90%가 넘었다.일본 고등학교의 평균적인 방과후 활동 참여도가 2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학교 학생들의 참여도는 대단히 높은 편이다.고3은 5월까지만 참가한다.
방과후 활동이 아직 정착되지 못한 우리나라는 상당수 학교에서 생활영어,과학교실이란 이름으로 변형된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곳이 많지만 이 학교는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거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도노마에 교장은 “체육활동이나 문화활동 등 다양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강요하진 않는다”며 “그러나 방과후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1950년 학교설립 이후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회장 쓰다군(17)은 “히가시 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동아리 활동 외에도 이 학교는 4월이면 신입생 환영회 축제와 체육대회를 열고 9월엔 교목(校木)이름을 딴 ‘가시나무 축제’를 연다.1월엔 마라톤 대회,합창제 등 다양한 행사가 많다.
그러나 처음엔 학부모들의 반발과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다른 학교들처럼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가르쳐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방과후 활동이나 축제를 그리도 많이 하고 열성적으로 장려하는지 내심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았던 것.
이지메 담당교사라고 소개한 유노키씨는 “동아리 활동이 학생들에게 집중력과 대화의 기술,인내력과 응용력을 길러주고 목적의식의 설정이나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을 개발하는데 대단히 유용한 기회”라며 “동아리 활동이 학습동기 유발이나 학습의욕고취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타인존중 습관을 길러주기 때문에 이지메나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공부방식도 친구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함께 배우는 공동학습법을 강조하고 있어 좋은 학우관계가 성적향상으로 이어지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이 학교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학교측이 지난 5월 전교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70%의 학생들이 만족감을 표시했으며 만족 이유로는 좋은 친구와 학교분위기를 꼽았다.
재미있는 것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 평소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1시간∼1시간30분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30분∼1시간)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놀라운 것은 이 학교의 높은 진학률.98년의 경우 동경대 합격자가 7명(재수생 포함)을 비롯해 게이오대,와세다대,학습원 등 명문대 진학생이 1백41명에 달했다.
학교측은 도쿄 시내 공립학교 중에선 동경대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같은 해 국공립대학 진학생이 1백32명이었다.모 출판사가 전국 6천여개 고등학교를 상대로 학력수준을 평가한 결과 이 학교는 72위에 랭크됐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교우관계나 방과후 활동에도 적극적인 이 학교에선 당연히 폭력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학교측에 따르면 3년전 어느 학생의 락커룸에 넣어둔 참고서가 분실한 사건이 발생했다.학교측은 즉시 교무회의와 학생회의를 잇달아 소집한 뒤 이 사건을 이지메의 첫 징조라고 판단했다.학교측은 이 사건을 쉬쉬하지 않고 모든 학생들에게 대대적으로 알리는 것으로 대응했다.이런 대응에는 누가 이런 짓을 하는지 금방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그 이후 비슷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노마에 교장은 “이지메나 학교폭력은 일본 사회가 갑자기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모든걸 돈의 가치로만 따지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인간존중의 정신이 희박해진데 따른 부작용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방과후 활동은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인간존중의
정신을 심어주고자 하는데 취지가 있다”고 말했다.
◇오메 제1중학교=자원봉사 활동으로 타인 존중의 마음을 기르는 학교.
도쿄 시내 중심가로부터 북서쪽으로 1시간30 정도 차를 달려야 나타나는 꽤 변두리에 위치한 조그만 중학교였다.건물도 운동장도 조그마한 것이 우리나라 중소도시에서 흔히 만날 법한 학교였다.
지난 6월19일 이 학교 학생 5백10명 전원은 자원봉사 활동에 나섰다.이날 자원봉사 활동엔 오메 시민 1백여명도 참여해 지역주민과 학생이 함께 한 행사였다.
자원봉사의 주제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과 함께’였다.학생들은 18개 그룹으로 나눠 각자 희망대로 장애기관을 방문,재활치료중인 장애인들을 돕거나 휠체어를 밀어주며 대화를 나눴다.일부 학생들은 혼자 사는 노인을 방문하여 이야기 상대가 돼주거나 빨래,청소 등을 돕기도 했다.
이날 행사 중 재미있는 부분은 장애인 체험이었다.학생들은 2명씩 짝을 지은 뒤 그중 한 명은 안대로 눈을 가린 뒤 스스로 시각장애인이 되었다.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파트너의 손에 맡긴 채 학교안 복도를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렸다.
한 학생은 “잠시나마 시각장애인 입장이 되어보니 복도를 꺾어 돌거나 계단 오르내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며 “시각장애인의 불편을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길 안내를 맡은 파트너 학생은 “장애인을 돕는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중에도 장애인 2명이 있었다.정신지체자 1명과 보행까지 불편한 정신지체자가 1명이었다.학교는 이들을 위해 별도로 전용 교실을 마련했다.교실 옆엔 전용 화장실과 세탁실,목욕탕을 별도로 만들어주었다.이들의 수업은 특수교육을 전공한 전문교사를 포함해 과목별 전담교사들이 맡고 있었다.
학교측은 장애학생들과 일반 학생들간 통합교육은 불가능하지만 이들간 단절이나 벽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일주일에 한번은 정상학생들이 장애아 교실을 방문,급식을 함께 하고 또 한번은 장애학생들이 정상학생들 교실을 방문,식사를 같이 하도록 하고 있었다.소풍이나 운동회때도 마찬가지였다.이 학교 장애학생들은 친구가 많다고 자랑했다.
다카기 기오후미 교장은 “이지메나 학교폭력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데서 발생한다”며 “장애인 체험 활동이나 자원봉사는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건강과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kukminilbo/8/1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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