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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
영국 왕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직조(織造)된 필름 < 킹스 스피치 >.
영화는 언어 장애(신경성 말더듬증)를 극복한
한 남자의 성장사이자,
두 남자의 신분을 넘어선 우정, 그리고 역경을
이겨낸 영웅의 서사로 울려옵니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놀림을 당했던 왕자가
많은 존경을 받은 왕이 되기까지의 사연에는,
웃음과 감동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자질에
관한 질문까지 포함돼 있죠.
드라마의 막을 여는 건 1925년 대영제국
박람회장의 '라디오 마이크' 입니다.
폐회식을 앞두고 극단의 로우 앵글 숏으로
잡아낸,
마이클 앞 앨버트 왕자(콜린 퍼스 분)의
풍채는 보는 이들을 압도할 만한 가분수의
크기로 비춰지죠.
가글, 입안 소독, 발음 연습, 마이크와의
거리재기까지,
왕자와의 알현을 앞두고 아나운서가 치르는
신성한 의식 또한 마이크의 권위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한데... 앨버트 왕자의 입술은 초조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죠.
드디어 폐회사의 생방송을 알리는 빨간불이
켜집니다만, 침묵. 침묵. 또 침묵...
왕자는 힘겹게 입을 열지만 이내 단어들
사이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저는 오늘... 국왕 폐... 폐..."
연설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시선을 피하고,
왕자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하죠.
그의 세례명은 '앨버트 프레데릭 아서
조지' 로,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만 서면 말을 심하게
더듬었던 치명적인 언어 장애가 있었던
겁니다.
그때는 막 라디오가 보급된 시기로... 왕실의
권위가 방송 전파를 타고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변혁기였죠.
그토록 병약하고 소심한 말더듬이 왕자
앨버트가 어떻게 2차세계대전 중에도 끝까지
국민들을 지킨 군주로 자리매김했을까요.
< 킹스 스피치 > 는 역사의 이면에 기록된
또 다른 남자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
분)를 통해 그 과정을 재조명합니다.
로그는 자기 그림자에 짓눌린 왕자의
마이크 공포증을 치료해준 사람으로,
무엇보다 평생을 함께한 친구였습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조지 6세가 아직 앨버트
왕자와 요크 공작, 혹은 버티로 불리던
1930년대 런던이죠.
불리워지는 다양한 호칭이 시사하듯 버티는
적지않은 난관과 장애물에 끊임없이
부딪힙니다.
아버지인 조지 5세(마이클 갬본 분)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형 에드워드 왕자
(가이 피어스 분)는,
미국인인데다가 두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월리스 심슨(이브 베스트 분)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무책임한 장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조지 5세는 둘째 아들인 버티에게
왕족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하죠.
버티에게는 무엇보다 아버지를 대신해
연설을 해야 하는 일이 가장 큰 곤욕입니다.
소문난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지만 발음
연습에 치중한 그들의 치료법은 버티에게
모멸감만 느끼게 할 뿐이죠.
남편의 고통을 보다 못한 엘리자베스
(헬레나 본햄 카터 분)는 수소문 끝에
호주에서 온 괴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찾아갑니다.
엘리자베스는 첫 만남의 라이오넬과
인상적인 선문답을 나누죠.
"제 남편은 연설할 일이 많아요."
"그럼 직업을 바꿔야죠."
"그럴 수 없어요."
"노예계약인가요?"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리 그래도 본인이 얼굴을 내밀어야죠.
여기선 제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부군과
상의하시고 전화주세요."
"제 남편이 요크 공작이라면요?"
"흠... 왕족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호주 퍼스 출신의 라이오넬 로그는 재야에서
소문난 언어치료사인 동시에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심취해 있는 연극배우 지망생였죠.
왕자를 처음으로 대면한 라이오넬은
무엄(?)하게도 동등한 위치에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당차게 말합니다.
“ '전하' 라는 호칭대신 '버티'(왕가에서만
부르던 이름)로 부를께요."
필시 왕자와 평민이라는 신분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만...
쌩뚱맞게도, 그는 왕자에게 기억나는 어린
시절이 언제냐고 묻지요.
"무.. 무슨 말이요?"
"가장 오래된 기억이 어떤 거냐고요!"
"나.. 난 여기에 상담을 받으러 온게
아니오!"
그럼 여기 왜 왔냐고 비아냥대드는 듯한
라이오넬을 향해 앨버트 왕자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물론 더듬거림없이 말이죠.
"내가 빌어먹을 말더듬이니까!"
화를 내거나 욕설을 퍼부을 땐 막힘이
없는 버티를 보며 라이오넬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는 고객의 의지를 믿을 뿐이라며, '네댓 살
쯤부터 말을 더듬었다' 는 버티에게 후천적인
경우이니 당장 이 자리에서 고칠 수 있다고
단언하죠.
결국 두 사람은 1실링을 걸고 내기를 합니다.
라이오넬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흐르는,
미국의 최신판 실버톤 헤드폰을 버티의
귀에 씌워주며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 의
대사를 낭송하게 하죠.
그 와중에 두 사람은 날선 공방을 이어갑니다.
"음악이 나오잖소? 그러면 내가 뭘 읽는지
어떻게 확인하란 말이요?"
"자기가 말하는 걸 꼭 알아야 하나요?"
"왕자에게 말하는 본(本)새하고는!"
그런데... "한심하군, 한심해. 이 방법은
아무래도 아닌 거 같소" 라고 투덜대며
피카디리 저택에 돌아온 버티는,
막상 라이오넬이 공짜 기념품이라며
건네줬던 자신의 녹음 음반을 들어보고
깜짝 놀랍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꽂힌 고통을 죽은듯
참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거친 파도처럼 밀려오는
재앙과 맞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 옳은가.
잠자는 것은 죽는 것일 뿐,
만일 잠자는 것으로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피치 못할 괴로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삶의
극치일진대..."
마치 연극배우가 매끄럽게 낭송하는 것처럼
셰익스피어를 유창하게 읊고 있었던
것입니다.
버티가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머뭇거림이나 떨림이 없는 목소리로
말이죠.
모차르트 오페라 서곡으로 자신의 말을
가린 덕분에 오히려 언어 장애가 사라진...
음악이라는 커튼이 장애물이 아닌
보호막으로 작용한 셈입니다.
그렇게, 삐걱거리는 첫 만남을 통해
대영제국의 왕자와 일개 호주 출신 배우
지망생의 지위는 반전되죠.
온갖 치료에 넌더리가 난 버티...
하지만 더이상 사랑하는 두 딸 엘리자베스와
마가렛 앞에서조차 말을 더듬을 순
없었던 그는,
한번 더 언어장애 치료를 받는 용기를
내어보기로 합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적인 부분까지
간섭하려 드는 라이오넬의 권유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버티는 그의 이상한(?) 치료 방식에
응해보기로 애써 맘을 고쳐 먹죠.
결국 두 사람은 독특한 방식의 언어장애
치료법을 치열하게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연습과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말더듬 증세에 짜증이 난
버티의 입에서는 급기야 금기의 단어
(Fuck!)가 쉴새없이 터져나오죠.
이렇듯,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하며 전진과 좌절을
되풀이하는... 조지 6세 이야기는 자못
고전적으로 다가옵니다.
'라디오 방송' 을 통해 성탄절 축하 메시지를
발표한 후 아버지 조지 5세는 탄식 조로
말하죠.
“이 괴물(라디오) 때문에 모든 게 변할거야!
왕족은 어떤 피조물보다도 낮고 비천한 존재가
됐어.
옛날에는 말에서 떨어지지만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모든 가정에 비위도 맞추고 홍보를
해야 해. 우리는 광대가 된 거라고!”
그랬던... 선왕 조지 5세의 서거를 알리는
BBC 라디오 방송에서는 진혼곡(鎭魂曲)
으로,
브람스의 < 독일 레퀴엠 > 중 2곡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를 내보내며 국왕의
죽음을 애도하죠.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을 품으며 버티는
라이오넬을 찾아와 술을 나누게 됩니다.
그는 평민에겐 처음으로, 로열패밀리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던 트라우마를 털어놓죠.
왼손잡이에서 오른손잡이로, 안짱다리에
철제 부목을 대 일자의 곧은 다리로 강제
교정당해야 했던 어린 시절,
무서운 아버지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형의 틈바구니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과거,
형 에드워드보다 한 살 터울인 버티를
괴롭혔던, 첫번째 유모...
"한 번씩 부모님에게 보일 때 날 꼬집어
올려서 자기한테 오게 했죠."
유모의 그런 학대를 3년이 지나서야
부모님이 아셨다며 버티는 노래 가락을
빌려 되뇝니다.
"나만 굶겨놓고 멀리멀리 갔다네..."
"위장병이 생겼겠네요" 라는 라이오넬에게
버티는 간질병으로 숨어 지내다 13살에
죽은 동생 존 왕자의 얘기도 꺼냅니다.
"전.. 전염병도 아니었는데..."
왕족임에도 그 누구보다도 깊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는 버티가 말을 심하게 더듬게
된 원인이 됐던 게죠.
부모의 품에 안겨 따뜻한 사랑을 받는
일상을 어릴 적부터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버티는 토로합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눈을 감기 전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버티 배짱이 형제들 다 합친 것보다
낫구나'.
그렇지만 '버벅 버티' 라고 날 놀리던 형...
늘 돋보이던 그 형이 왕위에 올라 난 솔직히
한시름 놨소. 내가 왕이 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말이오."
그러나 내각은 버티에게 에드워드 8세를
대신해 국왕의 자리를 맡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스테판 볼드윈 수상은 강변하죠.
"국왕이자 교회 수장이 국정은 내팽긴 채
미국 출신의 이혼녀와 결혼한다고요?
국가의 권위를 무시하려면 물러나야
합니다."
형의 퇴위는 어떻게든 막아야한다는
버티에게 라이오넬은 그가 형 에드워드를
능가하는 왕이 될거라 나름 조언하죠.
그러자 버티는 반역죄가 될 수 있는 말을
함부로 한다며 불같이 화를 냅니다.
"난 선(先)왕의 아들이고 또 현(現)왕의
동생이오.
호주 촌구석에서 놀고 먹던... 양조장 아들
주제에 어딜 감히 그 뱀같은 혀를 놀리다니.
이제 치료는 끝났소!"
그토록 원하지 않았건만... 형 에드워드
8세의 왕위 포기로 어쩔수 없이 떠맡게된
대영제국 수장의 엄청난 부담은 버티를
짓누릅니다.
볼드윈은 후임 체임벌린에게 수상 자리를
넘기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죠.
"히틀러와 스탈린이 좌우에서 유럽을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물러나게돼
죄송합니다.
이 위기가 전하의 시험 무대가
될겁니다만..."
이제 조지 6세가 된 버티는 아내 엘리자베스를
향해 울부짖죠.
"난 불량품 꼭두각시야! 왕이 아니야,
아니라고!"
엘리자베스는 그런 남편 버티(조지 6세)를
위로합니다.
"당신 청혼을 두번이나 거절한 것은 당신이
맘에 안들어서가 아니라 왕실 생활이
싫어서였죠.
공무에 해외 순방을 많이 하다보면 내 삶이
없어지고 말테니까요.
그렇지만 당신은 말을 좀 더듬길래
안심했던 건데..."
라이오넬은 걱정하는 아내(제니퍼 일리
분)에게 고객과 갈등이 있었다고 고백하죠.
"크게 되실 분인데 말을 안듣네요. 내가
선을 넘었소..."
아내는 당신 욕심이 앞선 건 아니었냐며
충고합니다.
"그럼 당신이 먼저 사과해요!"
궁전으로 찾아간 라이오넬을 버티는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았습니다만...
왕위 수락 연설을 버벅거린 끝에 그의 도움이
절실해진 조지 6세는 결국 엘리자베스와
함께 라이오넬의 집을 방문합니다.
"왕의 사과를 받으려다 목빠지는 수가 있소."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다들 라디오 듣다 묵념하게 생겼으니
말이오..."
서로에게 먼저 진솔한 미안함을 건네는
둘 사이엔 예전의 앙금따윈 남아있지
않습니다.
대관식 편집 영상에 이어지는 히틀러의
기록 영상을 보던 조지 6세는 큰딸(훗날
엘리자베스 2세)에게 말하죠.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연설은
정말 잘하는구나.”
그는 '나치의 야욕에 맞서 국민들이 믿고
따를 왕이 필요합니다' 라는... 더할 나위
없이 무거운 의무인 왕위를 받아들인 채,
“나도 말할 수 있으니까!” 라는 절박한
외침에 스스로 답하게 되기까지의 질곡의
장애물을 어렵게, 어렵게 뚫고 나가죠.
마침내 조지 6세는 전쟁을 앞둔 국민을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게 해 줄 역사적인
라디오 연설을 하게 되죠.
녹음실 안에 마주 선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신뢰감이 찬연하게 빛을 발합니다.
연설을 앞둔 조지 6세는 라이오넬에게
감사의 소회를 전하죠.
"결과야 어떻게 나오든, 그간 날 도와줘서
정말 고맙소."
라이오넬은 "작위 주시게요?" 라며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쓰며 차분히 조지 6세의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다른 건 다 잊어버리고 나만 보고 말해요.
친구에게 말하듯이요."
조지 6세는 준비된 연설문을 라이오넬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읽어나갑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이 암울한 시간이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은 우리의
동맹국들과 함께 전 세계의 문명을
위협하려는 세력에 맞서는 것입니다.
- - - - - - -
우리 모두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을 때
옳은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은 결의를 가지고 신념을 잃지 않는다면
신의 은총으로 이번 전쟁에서도 반드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 'Speaking unto nations'
https://youtu.be/W9UktXoM6Zw
무사히 연설을 끝낸 후 아직 이중모음
'W' 발음을 다듬어야 겠다며 짐짓 딴지를
거는 로그를 향해 조지 6세는 얘기하죠.
"좀 더듬어야 '나' 인줄 알 거같아 그랬소..."
"전시의 첫 번째 연설을 훌륭하게
끝내셨습니다” 라는 관계자들의 찬사에도
그는 여유를 품으며 화답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설을 해야겠지요!”
영화 음악을 맡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 킹스 스피치 >의 클래식 스코어로,
교전국 오스트리아와 독일 출신의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의 음악을 모두
5곡 차용하고 있읍니다.
첫 만남에서 버티의 낭독을 로그가
녹음해주는 장면에서 모차르트의 < 피가로의
결혼 > 서곡이 함께 하지요.
본격적인 언어 치료를 보여주는 장면과
엔딩 크레딧에서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중 1악장 선율이
흐릅니다.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조지 6세의
연설에서 엄숙하고도 비장하게 어우러지는
배경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7번 중 '리듬과 무도의
화신' 이라는 전체적 뉴앙스에서 비켜나
있는... 고요한 색깔의 '2악장 알레그레토'
이죠.
영국 국민의 피와 땀을 이끌어낸, 오롯이
두 사람의 호흡으로 빚어진 대국민연설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베토벤이 짧지 않았던 공백기를 깨고
발표한 교향곡 7번이 초연 당시 극찬을
받았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죠.
천형(天刑)의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마침내 생애 최고의 연설을 해낸 시퀀스로
말입니다.
연설을 마친 후 군중 앞에 나서는
에필로그 신을 감싸는 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의
서정적인 '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 이죠.
음악의 혁명가요, 또 고전주의를 넘어
낭만주의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
새시대의 선구자로서 ,
인류에게 지역과 인종의 차이를 넘어
환희와 화합의 메시지를 공유케 했던
악성(樂聖) 베토벤...
그의 위대한 음악은 그렇게 <킹스 스피치>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우뚝 서지요.
1. < 킹스 스피치 - King's Speech > 트레일러
https://youtu.be/GSfJF3xFYBA
영화 < 킹스 스피치 > 는 118분 간 주인공
조지 6세의 버티의 말더듬증을 고친다는
하나의 사건만으로 이뤄졌습니다.
빠르고 감각적인 플롯보다는 유장한 호흡의
서사로 승부하는 이 영화는,
다소 지루한 측면도 있지만 드라마적
감동이 자못 크죠.
감독은 라이오넬과 티격태격하던
조지 6세가 라디오 대국민연설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장면을 통해 기어이
결정적인 '한방' 을 터트려냅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톰 후퍼 감독은,
< 킹스 스피치 > 가 특권층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죠.
“내가 이 작품에 흥미를 느낀 건 특권층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지 6세의 이야기는 역사로 보이지
않았죠. 그 역시 평범한 인간처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1937년생 데이비드
세이들러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생긴 정신적
외상으로 유년 시절 말더듬증을 겪었죠.
장애 극복 과정에서 조지 6세의 일화를
접하고 감명받았던 작가는 1980년대
들어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조지 6세는 왕이기 전에 가련한
인간이었죠.
“버티가 바란 건 단 하나, 사람들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는 거였습니다.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대영제국 박람회
폐회사의 자료 화면을 보면 가슴이
먹먹할 수밖에 없죠.”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격랑의
시대에 말더듬이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영화는 더디고 불편하게만 보이는 영국식
민주주의의 미덕을 은유하지요.
고루한 전통과 낡은 권위로만 여겨지는
영국 왕실이 절대절명 위기의 순간에는,
영국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에둘러 설파하는 겁니다.
< 킹스 스피치 > 는 클리셰적인 상징일 수도
있겠지만 불멸의 가치인 '신뢰' 와 '우정' 을
화두로 건네며,
이미지 정치가 태동한 시점으로 돌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이상적인 자질이 무엇인지도 묻고 있죠.
2011년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톰 후퍼 감독의 < 킹스 스피치 > 에게 ,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헌정하며,
영국식 민주주의를 향한 찬사인 이 작품을
기렸습니다.
https://youtu.be/K8rnIkdKOqg
드라마 속 '과장된 말더듬음' 은 버티가
과거에 겪었던 트라우마와 원치않는
왕관을 투영하는 심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인 '라디오'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것도 전시에 '연설' 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짐에 따라,
왕위 후계자로서 버티의 말더듬증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죠.
체통과 권위 속 엄격한 왕실 교육을
중시했던 아버지 조지 5세는,
마이크 앞으로 아들을 불러내 연설을
해보라고 윽박지르기 일쑤였습니다.
"마이크만 믿고 자신있게 말해!
어서 내뱉으란 말야! "
극중 조지 6세는 자신의 즉위 연설문을
읽다가 끝내 말을 더듬고 말지요.
카메라는 영국 역대 국왕의 초상화를
번갈아 비춰주면서,
그런 버티의 심리적 중압감을 암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라이오넬을 향해 탄식하죠.
"왕위에 오르는 것은 죽은 자나 죽을 자를
잇는 것인데,
왕위를 포기한 채 물러난 왕(형)은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으니..."
실은 라이오넬 로그 자신도 동병상련의
고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외우다시피하는
그는 지역 극단을 찾아가 오디션을 받지만,
"국왕 역할을 식민지 출신의 촌뜨기에게
맡길 수 없다" 라는 이유로 번번이 떨어지고
말지요.
일개 변방에 불과했던 호주식 강한 억양이
라이오넬에게는 언어와 문화의 크나큰
장애였던 셈으로,
이렇듯 치료받는 자와 치료하는 자 사이에는
신분과 출신을 뛰어넘는 공감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주교 측의 뒷조사 보고를 접한
조지 6세는, 자신을 철저히 속였다며
라이오넬을 비난하죠.
"교육을 제대로 안받아 학위가 없고,
면허증도 없는... 박사도 물론 아니면서
평등을 요구하다니! 실패한 배우 주제에."
이에 라이오넬은 1차세계대전 후 전쟁의
상흔에 시달리는 호주 병사들을 치료했던
일화로 응답합니다.
"근육 치료와 운동만으론 부족했던... 심신이
피폐해졌던 그들의 한(恨)과 절규를 저는
열린 마음으로 들어줬지요.
의사나 박사는 아니지만 전쟁의 체험을
통한 배움으로 말더듬을 치료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보다 더 필요한게 있을까요?"
선대 왕 조지 3세의 광기와 말더듬이인
자신의 비참함을 비교하며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버티...
"그래도 말은 할 줄 아는 왕이니까" 라며
자조(自嘲)하는 그를 향해 라이오넬은
충심으로 답합니다.
"5살 때 겁먹었던 기억은 잊어버리세요.
이젠 성인이시니까 전하의 모습이 당당하게
새겨질 거에요.
전하는 내가 아는 가장 용감한 분이에요.
훌륭한 왕이 되실겁니다."
그렇게, 한바탕 서로의 속내를 후련하게
드러낸 후...
대주교는 학위를 가진 정식 언어치료사를
추천합니다만,
조지 6세는 군주 개인사는 자신이 결정할
거라며 거부하지요.
2-1. < 킹스 스피치 > - '조지 6세의 연설'
: feat.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https://youtu.be/PPLIw64rLJc
연설이 시작되며 흐르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 라는 애매한
템포로 설정된 2악장은,
장송행진곡 풍의 처연한 멜로디로 초연
당시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이죠.
특유의 비감미어린 음악은 국왕의 스피치에
힘을 실어주는 마법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저음 현악기들의 조용한 울림으로 시작하는
곡은 점차 참여 악기군을 넓혀 가며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다 결의에 찬 듯한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데,
이는 처음에는 어눌한 듯 시작된 조지 6세의
연설이 점차 마음속의 진심을 전하는
굳건한 믿음의 소리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진중하게 보여주죠.
그렇게... < 킹스 스피치 > 의 주제 음악처럼
쓰이는 베토벤 교향곡은 이중의 역설로
풀어집니다.
베토벤은 왕정보다 공화주의를 신봉했던
작곡가인데다 영국의 주적인 독일을
대표하는 음악가였죠.
이토록 그 결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베토벤' 이란 위대한 악성(樂聖)과
< 킹스 스피치 > 를 묶어주는 매듭은,
바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불굴의 의지에
대한 믿음일 것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고전적이고 또
보수적이지만...
동시에 고결한 낙관주의적 휴머니즘의
가치로 가득하죠.
2-2.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 크리스티안 텔레만 지휘 빈 필하모니커
https://youtu.be/nh92AFBojOg
2-3.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2악장
-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커
https://youtu.be/3nQp0IVkqDE
사라 브라이트만은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괴테의 시 '마왕' 을 이 2악장에 가사로
넣어, 'Figlio Perduto(잃어버린 아들)' 라는
제목의 노래로 불렀죠.
'Figlio Perduto'
- 사라 브라이트만
https://youtu.be/fGsUvyY1Yzc
3. '조지 6세의 실제 연설 장면'
https://youtu.be/p1TubkzxPFY
4-1. 피날레 신 : 에필로그(Epilogue)
- feat.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Adagio un poco mosso)
https://youtu.be/3oFmeT1RVQs
4-2.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 장조
'황제' - 조성진 피아노 : 정명훈 지휘
서울시향
https://youtu.be/qP9gE8Enxfo
5. 'Exercises'
- feat.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1악장 https://youtu.be/7WJts0gKCRM
6. 모차르트 오페라 < 피가로의 결혼
- Le nozze di Figaro > K.492 서곡
- 볼톤 지휘 네덜란드 챔버
https://youtu.be/1zKpcj8A20A
7. 'The Logue Method'
- 모차르트의 오페라 < 피가로의 결혼 >
서곡과 클라리넷 협주곡 1악장
https://youtu.be/6dMuz15bfJ8
8. 브람스 '독일 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2곡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커
https://youtu.be/l6zpVsGbvNo
9. 알렉상드라 데스플라 OST
- 'Lionel and Bertie'
https://youtu.be/PFwHcdVccB0
- 'The King's Speech'
https://youtu.be/TMFRqrf_qXg
- 'My Kingdom, My Rules'
https://youtu.be/zfr8f6-Jip0
- 'The King is dead'
https://youtu.be/Gbdfj2oj1Ec
- 'Memories of Childhood'
https://youtu.be/f8esKs1LKlM
- 'The Royal Household'
https://youtu.be/7d40yMYGLUE
- 'Fear And Suspicion'
https://youtu.be/Er-bY92oGN0
- 'The Threat of War'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RDa_hMH-lCYWc&feature=share&playnext=1
10. '60 Minutes' : 콜린 퍼스와
< 킹스 스피치 > - 스콧 펠리 리포트
https://youtu.be/aHTZWMr0xn8
- 李 忠 植 -
첫댓글 < 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
트레일러
https://youtu.be/GSfJF3xFY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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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
- 조지 6세의 대국민연설
(Speaking unto nations)
feat.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https://youtu.be/W9UktXoM6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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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
예고편
https://youtu.be/K8rnIkdKO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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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6세의 실제 연설 장면
https://youtu.be/p1TubkzxPFY
PLAY
< 킹스 스피치 > 피날레 신
feat.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
https://youtu.be/3oFmeT1RVQs
PLAY
< 킹스 스피치 > 'Exercises'
feat.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1악장
https://youtu.be/7WJts0gKCRM
PLAY
< 킹스 스피치 > - 'The Logue Method'
feat.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클라리넷 협주곡 1번 1악장
https://youtu.be/6dMuz15bfJ8
PLAY
브람스 < 독일 레퀴엠 - Ein Deutsches
Requiem > Op. 45
- 2곡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커
https://youtu.be/l6zpVsGbv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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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브라이트만은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괴테의 시 '마왕' 을 2악장에 가사로 넣어
'Figlio Perduto(잃어버린 아들)' 라는
제목의 노래로 불렀죠.
'Figlio Perduto'
- 사라 브라이트만
https://youtu.be/fGsUvyY1Yzc
PLAY
'60 Minutes' : 콜린 퍼스와
< 킹스 스피치 > - 스콧 펠리 리포트
https://youtu.be/aHTZWMr0xn8
PLAY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 92
- 크리스티안 텔레만 지휘 빈 필하모니커
https://youtu.be/nh92AFBojOg
PLAY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2악장
-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커
https://youtu.be/3nQp0IVkq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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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 73 '황제'(Emperor)
- 조성진 피아노 : 정명훈 지휘 서울시향
https://youtu.be/qP9gE8Enx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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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6세가 즉위한 1936년은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였으나 쇠퇴 일로에
접어들고 있던 대영제국, 그 왕실의 존재에
대한 의심과 회의로 가득한 격동의 시기였지요.
조지 6세는 왕위에 오르며 자신의 일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머니께 말씀드릴 때 나는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조지 6세는 영국 귀족과 대화를 나누며
걱정하지요.
"내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를 두려워했고,
나는 나의 아버지를 두려워했으므로,
나 또한 내 아이들이 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말 것이오."
즉, 자신이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므로
자신도 그런 아버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에 비슷한 언급이
나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도 널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치유를 통해 말더듬을 고쳐가며 평생의
친구로 남은 버티와 라이오넬, 두 남자의
우정어린 서사를 꿰뚫는...
베토벤, 모차르트 그리고 브람스의 클래식 음악은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의 중요한 역할을 하죠.
둘을 이어주는 영혼이자 심적 울림으로 아름다운
감정의 동화를 이끌어내며,
아카데미 주연상에 빛나는 두 연기파 배우의
완벽한 앙상블을 섬세하게 감싸주는 마감제로
말입니다.
아내 엘리자베스와 함께 찾아온 버티를 향해
라이오넬은 묻습니다.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처음엔 전하... 그 다음부터는 공작님..."
"치료할 때 쓰기엔 좀 딱딱하네요. 성함을
부르면 어떨까요?"
"그러면 앨버트 프레데릭 아서 조.. 조지
왕자님이라고 불러요."
"버티(앨버트의 애칭)는 어떤지요?"
"그건 가족들만 쓰는 이름이요."
"완벽하군요. 그러나 여기선 동등한게 좋죠..."
그러자 버티는 혼자말 하듯이 답합니다.
"당신 말처럼 우리가 동등했다면 이 고생
안하고 가족들과 평범하게 살았겠죠."
이에 라이오넬은 엉뚱한 질문을 건넵니다.
"농담하기 좋아하세요?"
"타.. 타이밍이 꽝이라서..."
라이오넬은 치료를 위한 질문의 방점을 찍습니다.
"생각할 때나 혼자 중얼거릴 때도 더듬어요?"
"당.. 당연히 아니죠!"
"그럼 영구적인 증상은 아니네요."
촬영 감독 대니 코엔은 특유의 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에 음향과 시각적 장치를 더해 극중
버티가 느끼는 짓눌림과 답답함의 고통을
극대화했죠.
나치 독일의 광기어린 도발로 대혼란에 빠진
격동기에 주인공 버티가 이루고, 또 겪는 성장과
변화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서 말입니다.
어딘가 어색한 화면 속, 처음 대면한 버티와
라이오넬의 대화 사이에 가라앉는 정적은...
버티가 느끼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가감없이
드러내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