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리태가 들어간 밥과 반찬을 자주 먹는다. 농부의 보살핌 속에서 여름과 가을까지 쨍쨍한 햇살과 바람을 받아 검은 진주처럼 윤기가 흐르는 서리태를 먹을 때마다 달고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서리태는 늦가을 서리를 맞은 후에 수확한다고 해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겉은 까만데다 속은 파랗고 하얀 눈이 있어서 ‘속청’ 또는 ‘쥐눈콩’이라고 부른다. 밥에 섞거나 반찬으로 많이 먹는다. 풍부한 식물성 단백질과 함께 까만 성분이 머리를 검게 해주고 노화를 방지하는 등 효능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서리태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산골 농촌에서 구입하고 부터이다. 만날 때마다 인사를 나누며 정을 쌓은 경작인한테 한 말에 일 십 만원씩 이십 만원을 주고 두 말을 샀다. 친척과 절반 씩 나누려고 저울에 달았다. 한 말에 8kg이고 두 말이면 16kg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15kg이다. 1kg이 부족하다. 시골 인심이 야박해졌다고 하더니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울을 속이면 하늘로부터 벌을 받는다고 했는데 농사꾼한테 서운한 감정이 쌓인다. 전화를 걸어 항의하려다가 자료를 찾아보기로 하고 마음을 잡았다. 자료에는 일반 콩은 한 말의 무게가 8kg인데 비해서 서리태는 한 말에 7kg이라고 되어 있다. 아차 싶었다. 내가 사온 양은 정량에서 1kg이 더 많다. 후하게 덤을 준 셈이다. 시중 가격을 알아보니 메주콩으로 부르는 흰콩은 8kg인 한 말에 오만원인데 비해서 서리태는 곱절이나 더 비싸다. 내친김에 골동품처럼 보관하고 있는 되를 꺼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라는 속담에 나오는 바로 그 계량기이다. 검푸른 얼룩과 때가 덕지덕지 묻어서 반질거린다. 바닥이 군데군데 패였지만 내부는 멀쩡하다. 언제부터 갖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보다 연륜이 더 많은 용기이다. 서리태와 쌀을 꺼내서 되에 담아 각각 저울에 달아 보았다. 쌀은 800g이고, 서리태는 700g이다. 열 되가 한 말이니 쌀 한 말은 8kg이고 서리태는 7kg이 되어 자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저울에서 내려온 서리태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까만 콩 한 알 한 알이 흑진주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궁금한 터에 농산물의 가격과 무게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부피와 무게의 단위가 모두 다르다. 보리쌀과 참깨 들깨 좁쌀 등의 한 말에 대한 무게가 제 각각이다. 쌀과 보리의 경우 쌀은 한 말에 8kg인데 비해서 보리쌀은 한 말에 7kg이다. 들깨는 5kg, 참깨는 6kg, 검정 참깨는 5kg이다. 좁쌀과 팥은 8kg이다. 거기다가 경상도 전라도의 기준과 서울, 경기, 강원도가 다르다. 또 대두 한 말과 소두 한 말로 구분한다. 모두 국가표준기본법에 의한 부피와 무게에 대한 법정 계량 단위의 기준이 되는 용량이다.
날마다 세 번씩 일용하는 음식을 만드는 곡식이 종류에 따라서 맛과 효능이 서로 다르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같은 부피의 무게가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요즘은 농촌이 피폐해지고 농사짓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 흔하던 곡물의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점점 희소해진다. 머지않아 국내산 잡곡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는 농사를 거들며 살았다. 지금도 시골을 오가며 몇 종류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터여서 농작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갈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지한 것도 죄라고 했는데 하마터면 또 죄를 지을 뻔 했다. 서리태를 먹을 때마다 뙤약볕에서 땀 흘린 농사꾼한테 고마움이 들면서 세상 물정에 얼마나 무지한지 반성하게 한다.
|
첫댓글 '검은 진주'라는 독특한 표현이 역시 육회장님 다운 시각입니다. 서리태에 대한 새롭고 풍부한 지식을 얻습니다.
경작자한테 하마터면 실수를 저지를 뻔 했습니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써봤습니다.
좋게 봐 주신 윤회장님께 감사드려요^^
농작물에 따라 부피와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고는 놀랐습니다. 그러고보니 도량형기가 말, 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곡식도 부피에 따라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물의 재료가 되는 농산물의 계량이 참 복잡합니다. 농사짓기도 힘들지만 판매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읽어 주신 교장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아, 그렇군요! 나름 도시녀인지라 저야 말로 무지한데, 꼼꼼히 자료를 찾고 재 보시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입니다.^^ 흑진주처럼 반짝이는 서리태를 먹고 싶어집니다.
서리태의 경우 국산품의 가격이 수입품 보다 두 배에서 세 배 비싸다고 합니다.
국산품은 달고 고소한 맛이 나는데 비해서 수입품은 밋밋하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