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英園)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1897~1970)과 부인 이방자(李方子,1901~1989)비의 원소(園所)이다.
입구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자형 팔작지붕 건물로 다른 곳에 비해 아담한 제실이 있다. 홍살문을 지나 초라한 참도 끝자락에 정자관, 그 우측에 비각이 있다. 묘역은 해방 이후에 조성되어 그 형태나 조각이 홍릉, 유릉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슷한 양식으로 나지막한 담장으로 두르고 그 안에 봉분과 석물을 조성하였다.
봉분은 병풍석은 없고 연꽃 문양을 조각한 난간석만 둘렀다. 봉분 앞으로 석양(石羊), 상석(床石), 망주석(望柱石), 장대석(長臺石),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마석(馬石), 장명등(長明燈)이 있다. 상석은 귀신을 쫓아 준다는 귀면(鬼面)무늬가 새겨진 4개의 북석이 받치고 있고 망주석의 받침돌은 팔각형으로 그 위에 안상(眼象)문양과 꽃잎이 위로 향한 꽃문양과 청설모를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문인석으로 금관조복형(金冠朝服形)이며, 장명등은 사각형의 받침대 모양으로 사방에 꽃문양을 새기고 그 위에 불창을 만들었다.
◼ 회인원(懷仁園)
대한제국의 마지막 회은(懷隱) 황세손 이구(李球1931~2005)의 원(園)이다. 2005년 일본에서 훙서(薨逝)하자 창덕궁 낙선재로 운구 안치하여 국장을 지내고, 이 해에 문화재청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주최로 홍유릉 권역 내 아버지 영친왕묘 영원 옆에 예장하였다.
◼ 의친왕(義親王) 묘
의친왕 이강(李堈)과 의친왕비 김씨(1878~1964)의 합장묘이다. 일반 형태의 봉분, 좌우측에 망주석, 장명등, 혼유석, 상석, 향로석, 주조석이 있다.
의친왕은 1877년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출생하여 1891년(고종 28) 의화군(義和君)에 봉해지고, 1955년 세상을 뜨자 화양리에 모셨다가, 1965년 서삼릉 어머니 귀인 장씨와 같은 곡장 안으로 천장 했다, 1995년 이곳으로 다시 이장해 왔다.
의친왕비 김씨는 1893년 의친왕과 혼인하여 1907년 의친왕비로 책봉 되었고, 1964년 세상을 뜨자 홍유릉 경내에 모셨다가 1995년 의친왕을 이곳에 모시면서 합장 했다.
◼ 덕혜옹주(德惠翁主)묘
고종의 딸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의 묘.
고종과 귀인 양씨(貴人梁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925년 일본으로 끌려가 쓰시마섬 도주의 후예인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하였다가 구황실복원사업이 전개되자, 1962년 귀국하여 낙선재에서 살았다. 귀국 20년이 지난 1982년에 호적이 만들어졌고,결국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낙선재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무덤은 최근에 조성되었다. 봉분 뒤에는 흙으로 나지막한 담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장대석(長臺石), 망주석(望柱石), 장명등(長明燈), 묘표(墓標), 등의 석물을 두었다. 묘표는 사각받침대와 대리석으로 만든 월두형(月頭形)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석은 북석으로 받치고 있는데 북석의 사방에는 귀신을 쫓아 준다는 귀면(鬼面)무늬가 새겨져 있다.
※ 이외에 홍유릉 권역에는 고종의 후궁 광화당 귀인 이씨(光華堂 貴人 李氏, 1887년 ~ 1970년), 삼축당 김씨(三祝堂 金氏, 1892년 ~ 1970년 9월 23일)/ 의친왕 의 후궁 수관당 정씨(修觀堂 鄭氏), 수인당 김씨(修仁堂 金氏)의 묘(墓)가 있다.
첫댓글 이 자료는 지난 4월 말 제가 활동 하고 있는 <한가람역사문화 연구원 포럼> 회원 홍유릉. 사릉 영역 답사시 회원 참고자료로 정리 한 것입니다.
고궁박물관 해설 안내 자원 활동자 일부 임들의 지식 수준에 못 미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외 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행복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