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백리 후손의 단상
한 집안이나 어느 지역에 존경할만한 분이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내가 봉직했던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입학생들 중에는 명문 여고인 강릉여고 졸업생들이 많다. 이들이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하거나 학업을 마친 후, 사회에 진출하여 사는 것을 보면 공통점이 있고 주목할 만한 일이 많다. 제자들은 자기 자신이 마치 신사임당이나 된 것처럼 언행을 하고, 예의를 갖추며, 자식 교육에 철저하고, 자기 계발을 위하여 온갖 힘을 기우리는 것은 물론, 생활력이 강하고, 가정도 반듯하게 잘 꾸려 모범 가정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강릉, 그 곳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키우며 지냈던 문화적인 지역 전통이 있는 고장이다. 강릉 출신 여인들에게는 신사임당이라는 위대한 어머니상이 항상 가슴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제자들은 자신이 강릉 출신 여인이고, 자기 자신이 바로 살아있는 신사암당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진주(경남 진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진주 출신의 사회 지도층 인사가 못된 짓을 하여 국가나 민족에게 큰 해를 입혔거나 피해를 준 자가 극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그럴까? 진주도 사람 사는 평범한 지역이고, 다른 곳에 비하여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임진왜란 초기 진양성을 사수하던 진주 목사 김시민과 그 곳 성내 백성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왜군의 침략으로부터 국내 최초로 성을 굳건하게 지켜낸 애국애족의 충절의 역사정신이 있는 곳이고, 기생이던 논개 마저도 적장의 목을 껴안고 푸른 남강에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했던 절개와 충절의 역사가 있는 향토가 아니던가. 아마도 진주라는 지역이 갖는 애국애족의 뿌리 깊은 정신문화적인 요인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정신문화적인 요인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춘천에서 연 2회 정도 진주 출신들의 「남가람」이란 친목회 모임이 있다. 강원대•한림대 교수들과 검찰청의 판검사, 세무서, 정보부, 영관급 이상의 군인들이 주축을 이룬 모임이다. 필자를 보고 건배사를 하라고 하면, 나는 늘 위대한 여인 논개의 절의를 드높이는 건배사를 한다.
“기생 논개님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우리가 남이가, 어떻게 다른가. 어디서 무엇을 하던 푸르게 흐르는 진주 남강 물을 항상 기억하며 살자. 똥오줌 퍼부은 드넓은 벌판을 지나 왔음에도 불구하고, 늘 맑고 푸르게 흐르며 절개와 충절을 담아 끊임없이 흐르는 남강 물을 영원히 잊지 않는 진주 사나이들이 되자”고 건배사를 한다.
언젠가 내 건배사를 들은 어느 젊은 검사가 선배님의 이 건배사를 한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대가 먼 훗날 한국의 검찰총장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정말로 잘 나가는 검사가 되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나는 새로운 세대의 수많은 신사임당을 배출해 내는 강릉의 문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김시민과 논개의 충절을 담아 굽이굽이 흐르는 진주 남강의 역사를 사랑한다. 위대한 조상이 있는 가문과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던 지역은 또다시 위대한 인물을 잉태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
강릉 신사임당은 아들 율곡을 천재로 길렀다. 대제학과 판서를 지낸 율곡 이이는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혜안의 미래 전략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8세 때 지은 화석정 시(花石亭 詩)는 많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하였다. 강릉 연인들은 자기 자녀들을 모두 율곡과 같은 위대한 인물로 키우고 싶어 한다. 화석정 시는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의 자랑이기도 했고, 후대의 우리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시가 되어 전해온다.
화석정 시
숲 속 정자에 가을이 벌써 깊어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어라
먼 강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더욱 붉어라.
산은 외로이 둥근 달을 토해내고
강물은 멀리 바람을 머금고 있네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지
저녁 구름 속으로 그 소리 사라지네.
임정추이만 소객의무궁(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원수연천벽 상풍향일홍(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산토고륜월 강함만리풍(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색홍하처거 성단모운중(塞鴻何處去 聲斷慕雲中)
강릉에서 자란 여인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신사임당이 되려고 노력하고, 그곳 남정네들은 율곡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표정들이다. 율곡을 닮은 가장 최근의 강릉 남자는 소천(少泉) 조순(趙淳) 선생이다. 선생은 1928년 2월 1일, 이곳 강릉시 학산리에서 출생,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 전문부, 미국 보오든(Bowdoin) 대학, 캘리포니아 주립대학(Berkeley)•대학원을 졸업,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상대 교수와 한국은행 총재, 서울시 시장,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나라당 초대 총재, 민족문화추진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명성이 높아지자 강릉인(江陵人)들은 선생을 율곡의 반열에 올려놓고 강릉이 배출한 율곡을 닮은 남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릉의 아들들이 모두 소천과 같은 정열과 학구열로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동량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강원도 사람들은 율곡의 어머니이신 신사임당을 겨레의 영원한 스승으로서, 당당하고 기품 있는 영원한 겨레의 어머니상으로 남기고자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경포대 공원에 사임당상을 건립하고, 강릉 오죽헌에 사임당 수련원을 건립하였다. 강원도 여고생이면 누구나 이곳에서 2박 3일간의 수련을 통해 사임당의 교육과 헌신, 봉사정신을 배우고, 그녀의 일생을 통하여 자신을 뒤 돌아보며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는다. 또한 사임당의 얼을 후손에 널리 선양하고 강원 여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해마다 어진 인품과 부덕을 갖춘 여성을 선발하여 신사임당 상을 시상하고 있다. 이런 기념행사는 이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이 나라 여성들 모두에게 자긍심과 자존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도덕성 유발의 원동력을 제공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2009년 6월 23일부터 사용하고 있는 한국은행권 최고액 지폐인 오만원권에 신사임당상이 들어가 있다. 당시 오만원권에 들어갈 인물을 선정하는데 말이 많았다. 유관순 누나와 김구 선생, 광개토대왕이 거론 되었으나, 결국 국민여론 수렴으로 신사임당으로 결정이 났다. 대제학과 판서를 지낸 아드님상이 들어 있는 오천원권 지폐보다 10배나 높은 가치 있는 지폐가 되었다. 못난 후손들이 그 가치를 10배로 높게 책정은 했지만, 어디 10배로 끝날 일인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것이 부모와 스승의 사랑과 은혜라고 하지 않았는가.
가정이나 가문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나오면, 그 가족 구성원과 가문과 자손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때로는 그 영향력이 가정과 가문의 경계를 넘어 사회와 국가 전체의 발전에 보탬이 되고, 더 넓게는 세계와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 된다.
첫댓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5천원권 지폐에 율곡이 들어가 있고, 5만원권에는 그 어머니이신 신사임당이 들어가 있는 당연한 사실을 이 글을 읽고서야 그 연관성을 새삼 발견한 듯합니다. 두 모자(母子)가 우리 겨례에 끼친 사표로서의 위치는 위대하고도 영원할 것입니다.
이교수의 가슴과 머리에는 유교사상, 도덕군자,선비정신이 자리잡고 있고,지역 교대졸업 계속 학문의 길을 택해 후학들의 정신적 지주, 버팀몫 역활 계속해 주세요. 그것이 지도자,어른다움입니다. 나는 친한 친구와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밀양, 진도, 정선 아리량 공연을 뜻깊게 보았는데 우리의 한 정서가 묻어 있기때문이라 생각한다.건강해요.
몸은 마음의 지배를 받고 마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는 데 어떤 곳에 태어나서 성장하느냐가 어느 시기에 태어나느냐와 같은 비중으로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강릉, 진주, 춘천 하면 훌륭한 인품을 갖춘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아름다운 예향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영하면 동양의 나폴리라고 할 정도의 아름다운 바다가 강물처럼 시가지를 빙둘러 싼 아름다운 항구, 그 곳에서 시인, 음악가, 작가 등 실로 우리나라의 보배와 같은 예술인들이 많이 나온 것도 아름다운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찰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니까요.
좋은 글 감사 합니다. Thank You!
이형,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바로 통영에서 태어나 자라고 싶습니다. 박경리씨, 윤이상씨 등 기라성과 같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예향이 아닙니까?..
이 교수님, 불현듯 지리교육과 교수가 아니고 국문과 교수가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제가 남의 적성도 모르고 한 말인가요? ㅎㅎ 글쓰는 재주가 훌륭하십니다.
강릉과 진주, 두 도시 모두 민족과 겨레의 정신과 얼을 이끌어 주는 교육도시이지요.
정재종 선배님, 감사합니다. 도덕군자는 빼 주시면 제가 좀 가볍게 선배님들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경자 선배님쎄서 잘 지적해 주셨는데 제가 지리 선생이랍시고 명함을 내밀고 있지만 기실은 지리(길)를 잘 모르고 한 평생 헤매고 있습니다. 자동차 길도 잘 몰라 마누라한테 지리박사가 왜 이 모양이냐고 야단을 맞으며 겨우겨우 밥 얻어먹고 명을 붙이고 있습니다. 신도 회장님, 창욱 선배님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춘천 학원 배
문경자 선배님, 혹시 선배님 여자 동기님 중에 서수인 교수님을 좀 따르셨으면서 키가 작으만 하시고 성씨는 백씨 이신데, 성함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백증자? 이시던가, 백연자? 이시던가 좌우간 이런 동기님 비슷한 이름을 가진 분이 기억이 나십니까? 연락처를 알아 직접 제가 안부를 전하고자 합니다. 학원 배.
우리 동기 중에 백씨는 한 사람 뿐인데 백증자가 맞습니다. 졸업때 1 등으로 졸업했지요.
주소는 해운대구 우2동 동부아파트 106-1901 입니다. 5년전 주소지만 지금도 아마 그곳에 살고있는 줄로 압니다.
집 전화는 부산 743-5023 이고 016-570- 0702 입니다.
저는 2회 김순권씨와 부산 수성교에서 같이 근무했읍니다.
후배님,산에는 호랑이가 집안에는 어른이 있어야 함은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지요 요즘 철이 들었나 봅니다. 교육적이고 자상했던 친정 아버지가 못내 그리운 것은 자랄때 이런 교육을 많이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지금 저는 너무 못난 딸이 되어 있습니다.교만하게 살았다는 고백입니다.아픔을 안다는건 하늘이 내려준 복이기에 더욱 아파하며 살려고 합니다.우리들의 후손에게 "얼" 을 심어줄 수있는 어른. 후배님이 계셨군요.자랑스럽습니다.신사임당, 율곡, 논개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의미입니다 . 8세의 율곡이 자연을 머금고 토해내는 이시가 놀랍습니다.
무상보 선배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얼 빠진 국민, 얼빠진 자식, 얼 빠진 제자들이, 얼 빠진 정치지도자들, 얼빠진 국회의원들이 왜 수두룩하겠습니까? 내 나라 국방을 남이, 그 누구가 관심을 가지려 하겠습니까? 관심을 가지려는 듯 하는 국가들은 군장비를 팔아 먹을 욕심인 것 같아 씁씁합니다. 집안에 뿌리라는 책자를 만들어 자손들에게 준다던지, 자상하신 아버님께서 가장 기분이 좋은 때를 골라 집안 이야기를 하시며 지내는 가정은 축복 받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아니면 사춘기나 청년의 자녀들에게 괜히 반발심이나 일으켜 역효과를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4~5세 때가 최적 시기라고 생각
됩니다. 자식들에게 옷을 사주거나 선물을 사주어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남아 잇는 경우는 10세 미만 나이라고 하니 초등학교 3~4학년 때가 집안 역사 이야기 해주기, 선물 주기가 적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