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계룡초교 변영호
교사가 여태 조사·연구·발표한 주제는 물고기와 잠자리 긴꼬리투구새우 세 가지다. 이 가운데 대중적·학술적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우는 바로 긴꼬리투구새우다. 2005년 발표한 '
거제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 긴꼬리투구새우 생태 및 서식지 조사'는 제51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경남도민일보> 10월 7일자 변 교사 관련 두 번째 기사 "11년 동안 거제
하천이란 하천은 다 뒤졌죠"에서도 다뤘지만, 세 주제 가운데 물고기와 잠자리는 미리 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긴꼬리투구새우 조사·연구는 갑작스레 시작됐다. 발단은 2003년 6월 12일 거제 일운초교 4학년 소우민군이 이상한
생물을 잡아 온 것이었다.
당시 어린이 생태 모임 하늘
강동아리를 이끌고 있던 변 교사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
영화 속에 나오는 우주 괴물 같았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몇 군데 알려 무엇인지 알아보는 동시에 서식지 조사에 들어갔는데 나흘 뒤인 16일 연락이 왔다. '긴꼬리투구새우'였다.
변 교사는 '긴꼬리투구새우'가 무엇인지 자료를 찾았다. 쉽지 않았다. 없다시피 했다. 긴꼬리투구새우에 관한
단행본은 없었다. 교학사에서 1999년 펴낸 <한국의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에 나오기는 하지만 17쪽에 간략하게 나올 뿐이었다. 전남 강진군
농업기술센터에서 2003년 펴낸 <농경과
원예>에 실린 '긴꼬리투구새우를 이용한
유기농법'이 전부였다.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정부 당국의 기록은 더욱 없었다.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2급 보호종'이고, "한국 남부
지방의 민물 웅덩이, 못자리, 논가장자리에서 자란다"가 전부였다.
전문가라 할
대학교수에게도 자료를 청했으나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생태와 분류 자료를 구하기 힘들며 일본과 외국 논문도 산발적이어서
추천할 자료가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자료가 있었다면 변영호 교사는 조사·연구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황당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테니까. 변영호 교사 생각은 이랬다. "한국 남부 지방 어디? 어떻게 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이리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어떻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한다면서 어디에 사는지 어떤 조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등등을 이렇게 팽개쳐 둘 수가 있을까?"
이렇게 해서 변 교사는 2003년부터 3년 동안 조사·연구에 들어갔다. 이와 동시에 거제도에 긴꼬리투구새우가 서식한다는 사실을 대중매체에 알려 6월 26일부터
서울과 지역의
미디어마다 보도가 잇따르게 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이 때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는 물론 충청도와
경기도
강원도까지 '남한 전역'에서 긴꼬리투구새우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봇물 터지듯 하게 됐다. 굳이
해석하자면, 예전에도 긴꼬리투구새우가 곳곳에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다가 변 교사 발견과 보도 이후 관심과 지식이 늘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정도가 된다.
긴꼬리투구새우는 이른바
화석 생물이다.
독일에서 3억5000만 년 전 고생대 석탄기 지층에서 화석이 발견됐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 등에 갑각(투구)이 있고 갈라진 꼬리가 한 쌍 있으며
가슴과 배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니까, 변 교사의 이번 조사·연구가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 전문 작업이었다.
대학이나 전문 연구기관에 '서식'하는 전문가들에게
양식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변 교사는 서식지를 찾아 관찰하고 발생과 소멸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까지 찾았다.
변 교사는 먼저 거제도 일대를 뒤져 일운면 소동, 칠천도 곡촌, 연초면 한내 등 24개 논에서 긴꼬리투구새우를 확인했다. 5월 하순 모내기를 위한 써레질을 할 때부터 7월 중순 모내기를 마칠 때까지 물이 많이 있는 논에서 발생했다가 8월에 접어들면 산란을 마치고 한꺼번에 사멸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긴꼬리투구새우가 사는 논의 특징도 밝혔다. 물을
대고 써레질을 한 논. 올챙이가 없거나 적은 논. 물벼룩·풍년새우가 많은 논. 물이 흐린 논. 논바닥에 작은 구멍이 흩어져 있는 논.
수면에 때때로 잔물결이 이는 논. 또 대부분은 큰길이나 마을이랑 붙어 있는 문전옥답과 논흙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논.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조사했다.
농약 뿌리기 등 인간의 간섭과 올챙이와 먹이 싸움, 천적인 개구리의 존재였다. 보통 농약을 치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발생기 5월 산란기 6월에 농약을 치면 이듬해에 100% 없어지지만 소멸기 7월을 거쳐 잠복기인 8월 이후 농약을 치면 흙표층이 알을 보호해 이듬해에 볼 수 있었다.
천적은 새,
물방개 개구리 물고기라지만 조사 결과 뚜렷한 변인은 올챙이였다. 올챙이는 긴꼬리투구새우와 크기가 비슷해서 성체를
먹지 못하지만 알은 먹는다는 것이다.
토양이 미치는 영향도 더했다.
인산이나
유기질이 많을수록 많이 산다는
경향성을 찾아냈다.
변 교사가 애씀 덕분에 우리나라는 긴꼬리투구새우의 서식 실태와 생활 모습에 대한 기록을 갖게 됐다. 발생과 소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처음 파악됐다.(물론 한계도 있어서, 변 교사는 긴꼬리투구새우가 소멸할 때는 농약을 치지 않아도 한꺼번에 자취도 없이 싸그리 사라지는데 그 까닭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가장 큰 성과는, 긴꼬리투구새우의 서식지가 남부 지방의 민물 웅덩이, 못자리, 논가장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뚜렷하게 밝힌 데 있다. 서식지를 특정(特定)했으며 묵정논이나 (흐르지 않고) 고인 물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로 말미암아 환경부는 2005년 2월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를 경북
경산과 경남 거제도로 못박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긴고리투구새우는 남한 전역에 살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서식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논을 메우는 개발 탓이다. 변영호 교사는 보호 방법에 대해 "대규모 발생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개체 한 마리가 아니라 서식지 중심으로 보호 정책의 초점을 옮겨 그런 논에 농약을 치지 못하도록 하고 그에 합당한 지원을 정부에서 하는 편이 이치에 맞다"고 짚는다. 정부 당국이 조사연구는 제대로 못한다 해도 이런 말은 재빨리 알아듣고 실행에 옮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