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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Haeparang Trail)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보면서
너와 내가 함께 걷는 길'이란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총 길이 770km의 걷기여행길이다
2010년 9월 15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해안 탐방로 이름으로
해파랑길을 선정하였으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기성망양해수욕장(箕城望洋海水浴場)
원래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망양정해수욕장과 구분하여 기성망양해수욕장이 되었다
완만하게 펼쳐진 백사장은 길이 600m, 폭 80m이고
수심은 1,5∼2m 정도로 비교적 얕은 편이며
백사장 뒤 도로 주변으로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해수욕 후 햇살을 피해 휴식하기 좋으며 야영장과 오토 캠핑장도 마련되어 있다
백암온천과 덕구온천이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이 해수욕장은 새로운 2000년을 맞아 해맞이 장소로 새롭게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해수욕장의 백사장과 수평선이 거의 일직선상으로 보여
이곳에서 해맞이를 하면 마치 바로 눈앞에서
해가 바로 떠오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하면 할 수록 시작점이 멀어지는 해파랑길~
열심히 달려 기성망양해변에 도착
간단하게 몸을 푼 뒤
해안 방풍림 사잇길로해서 시작한다
지난 어느 코스할때는 한두송이 보았던 해란초
이 곳 해안가는 많이도 피어 눈을 즐겁게 기쁘게 해 준다
해란초
통화식물목 현삼과 해란초속
여러해살이풀, 높이 15∼40cm
잎 다육질, 마주나기 또는 돌려나기
길이1~3cm,피침형
꽃 7∼8월, 노란색, 총상꽃차례
열매 삭과, 10월, 지름 6~8mm
더위는 한풀 꺽여 그렇게 덥지는 않지만
날씨가 흐려 하늘도 바다도 회색빛 가득함이다
열심히 꿀을 모으는 나비
지난 코스때도 열심히 파도랑 데이트를 하더니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리 없는
초반부터 파도랑 함께 하기 위해 해안가를 거닐고 있는 님들~~
역시 제대로 여름을 즐기시는 열정에 감동이다
8월 첫주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즐기고 있었는데
오늘은 드문드문하다
망양정옛터로 오른다
박선장의 망양정 시판
망양정 유허비
망양정 옛 터(望洋亭舊地)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413-4
이곳은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 옛 터(舊地)로
망양정이 두 번째로 옮겨온 장소이다
망양정은 고려 시대 기성면 망양리 해변가에 처음 세워졌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허물어졌다
조선시대 들어와 1471년(성종 2) 평해 군수 채신보(蔡申保)가 현종산(縣鍾山) 남쪽 기슭인
이곳으로 옮겨 다시 세웠다
1517년(중종 12)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어 다음 해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 군수 김세우와 함께 중수하였으며 1590년(선조 23) 평해 군수 고경조(高敬祖)가
다시 중수하였으나 그 후 세월이 오래되어 다시 허물어졌다
1860년(철종 11) 울진 현령 이희호(李熙虎)가 망양정이 오랫동안 무너진 것을 한탄하여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함께 지금 망양정이 있는 근남면 산포리 둔산(屯山 )으로 옮겨 세웠다
1888년(고종 25) 울진 현령을 지낸 류태형의 「선사록(仙槎錄)」에 의하면
망양정이 둔산으로 옮겨진 이유는 "후세 사람들의 안목이 고루하여 읍치(邑治) 조금 멀다는 이유로
강과 바다 사이로 옮겨지었다"라고 한다
그동안 이곳은 옛터 동쪽으로 도로가 나면서 상당 부분의 터가 사라지고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2015년 정자를 건립하여 지역주민 및 탐방객의 쉼터와 선인(先人)들의 정취(情趣)를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되었다
관동8경의 중의 하나인 망양정
두번째로 옮겨 온 옛터에 누각을 복원 해 놓았다
망양정에서 조망을 해 보지만 흐린날씨로 뿌옇다
진행 할 방향도 담아보고
다시 한번 담고 내려간다
수줍게 피어있는 층층잔대
망양1리
와우~~!!!!
한다발의 해란초
합창을 하는 듯 깜찍하니 이쁘다
오징어가 많이 나는 곳답게 건조대도 오징어 모형으로 해 놓았다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
춥지도 않은가 보다
망양황금대게공원
대게의 원조! 울진
「동국여지승람」과 「임원경제지」, 「대동지지」 등에 자해(紫蟹, 자줏빛 게)로 기록된
대게는 울진의 주요 토산물로 명시되어 있다
「해포(蟹浦)」, 「해진(蟹津)」, 「기알게(지형이 게 알을 닮은 바닷가라는 뜻)」로 불리는
평해읍 거일리(원조마을)는 울진대게의 주요 서식지이면서 해양생태계의 보고로 확인된
왕돌초(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게라는 이름은 몸체가 크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있는 다리의 모양이
대나무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대게는 보통 황금색, 홍색 등 색깔에 따라 4종류로 구분하는데
진짜 대게는 황금색이 짙은 「참대게」 또는 「박달게」를 말하며 다리의 마디가 여섯이라 해서
육촌(六寸)이라고도 하고 대나무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죽촌(竹寸)」
「죽육촌(竹六寸)」이라고도 불려 왔다.
1930년대 교통수단이 원활치 못할 당시 서울, 대구, 포항, 안동 등 대도시에
해산물을 공급할 때 교통이 편리한 지역으로 반출 하였으므로 집하지인
지명(영덕)으로 불려 왔을 뿐 실제 대게의 원조는 울진대게이다
울진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대게 생산량과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대게 자원의 서식지와 생태환경보호로 원조 울진대게의 우수성을 지키고 있다
대게 공원의 트릭 아트
전망대
어린고기 방류장소
울진군 매화면(梅花面)
매년 봄이면 매화꽃 향기가 가득한 고장인 매화면은 남쪽으로 온정면(溫井面)
동남쪽으로 기성면(箕城面), 북쪽으로 근남면(近南面), 서쪽으로 금강송면과
영양군 수비면(首比面)에 접하고, 북동 일부가 동해에 면한다
길곡리 내길마에서 발원하여 면 중앙을 남북으로 흐르는 왕피천(王避川)의 지류인
매화천(梅花川)은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간직되어 다슬기가 살아 숨 쉬는 맑고
깨끗한 하천이며,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동해안의 청정 항구 오산항에는
어족자원이 풍부하다고 한다
매화면 덕신리(德新里)
조선시대 때 덕신역이 있었으므로 덕신 또는 역말이라 하였다
덕신리의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신흥리와 경계를 하고 있으며
남쪽은 현종산(懸鍾山, 416.7m)이 높이 솟아 있고 500m 거리에 망양휴게소가 있으며
기성면 망양리와 경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북쪽은 오산 1리와 인접해 있는 산간(山間)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큰골, 환리(環里), 후리(厚里), 한밭, 항실(項實, 項谷), 밤월 등이 있다
환리(環里)는 산(山) 모양이 가락(고리)과 같이 생겼다 하여 환리(環里)라 불렀다 한다
후리(厚里)는 그물로 고기를 몰아서 잡는다 하여 후리라 하였고
또 마을 뒷산이 그물처럼 둘러싸였다 하여 후리라 하였다고도 한다
망양휴게소를 지난다
영신해수욕장 해변
사위질빵
미나리아재비과로 산과 들에서 흔하게 자라는 덩굴성 나무이며
낙엽만목(落葉蔓木)으로 길이 3m정도 자란다
6~8월에 상아(象牙)빛 흰꽃이 무리지어 핀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는데 약간의 독이 있으므로
우려내고 먹어야 한다
나무 이름인 사위질빵에는 숨겨진 깊은 뜻이 있다고 한다
질빵은 짐을 질 때 사용하는 멜빵을 말하므로 사위의 멜빵이 된다
한편 비슷하게 생긴 덩굴로 할미밀망이 있는데 할미질빵 혹은 할미밀빵이라고도 부른다
이를 두고 임경빈 교수는 재미있는 풀이를 하고 있다
사위질빵은 덩굴이 가늘고 약하여 큰 짐을 옮기는 멜빵으로
부적합하고 할미밀망은 덩굴이 굵고 튼튼하여 무거운 짐을 나르는 데 제격이다
귀한 사위가 힘든 일을 하지 않도록 지게의 멜빵끈을 끊어지기 쉬운
사위질빵으로 만들어 조금씩 짐을 나를 수 있게 한 반면에
항상 들볶아대는 얄미운 사람인 시어머니에게는 튼튼한 할미질빵으로
멜빵끈을 만들어 골탕을 먹였다는 해석이다....<박상진 교수님 우리나무의 세계1>
덕산1리로 들어간다
오산리(烏山里)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오산 1리, 2리, 3리 세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오천동(烏川洞)과
초산동(草山洞)에서 ‘오(烏)’ 자와 ‘산(山)’자를 따 ‘오산(烏山)’이 되었다
오산항
오산항 등대
방파제로 가 본다
오산항
1960년 이후에 축항 공사를 실시하여 100m 방파제가 축조되었고
1990년에는 1종항으로 승격되었다
죽변항과 후포항의 중간 지점에 있어 풍랑으로 위급할 때에는
어선 대피소의 역할을 하며
각종 해산물의 물양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1989년부터 국립 수산 진흥원 종묘배양장에서
넙치·전복·연어 등 종묘를 배양하여
앞바다에 방류로 어민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오산항에서 잡히는 꽁치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 한다
오산1리 마을과 오산항
오산항 방파제
되돌아 나간다
온통 회색빛 날씨가 차츰 맑아지더니
바다도 하늘도 눈이 시리게 푸르다
다양한 모양의 갯바위가 유난히 많은 곳이다
줄을 쳐 놓아 들어가지 못한....
갈매기들의 쉼터가 되었다
오산2리
1670년경 안동 김씨가 마을을 개척한 이래 마을 이름을 지심이라 하였는데
그 뒤 울진 임씨가 입향하면서 뒷산에 나무가 무성해지고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면서
초산(草山)이라 개칭하였다 한다
홍게 모양의 건조대
참말로 푸르디 푸른 바다
불영사계곡16km 성류굴12km를 알리는 교통 표지판을 지나간다
자꾸만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바다색~~
진짜 참말로 파랗다
특이하게 기와 버스승강장이다
흐리다고해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멋진 자연선물을 받다니 행운이다
파도치며 어쩔려고 위험하게 낚시를 하시는~~
오산해변을 뒤돌아 보고
근남면으로 들어선다
근남면(近南面)
근남면의 북·서·남쪽은 각각 울진읍(蔚珍邑)·금강송면(金剛松面)·매화면(梅花面)에 접하고
동쪽은 동해에 면하는데 울진읍에서 남쪽에 가까운 면이라 해서 근남면이라 하였으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7개리를 관할하고 있다
울진군에서 비교적 면적은 좁지만 인구밀도는 높은 면이다
면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왕피천(王避川)과 지류인 광천(光川)은 서부 산지에서는
심한 천입곡류(穿入曲流)를 하나 노음리(老音里) 일대와 하구에서는 상당히 넓은
충적평야를 이루어 면의 주된 경지 분포 지역이 된다
왕피천 하구 후리(厚里) 부근에서 매화천(梅花川)을 따라 매화리에 이르는 구간에는
조선계에 속한 석회암이 분포해 있고 구산리(九山里)의 선유산(仙遊山:199m) 기슭에는
지하 금강이라 일컬어지는 유명한 성류굴(천연기념물 155)이 있다
그 외에도 산포리(山浦里)에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望淨亭)
행곡리(杏谷里)의 불영계곡(佛影溪谷)·천량암(天糧岩)과
수산리에 굴참나무(천연기념물 96) 등의 명승지가 있다
근남면 진복리(進福里)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새로 복을 받는다는 뜻으로 진복리라 하였고
또한 마을의 뒷산이 진복봉(進福峯)이므로 진복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백연산(白蓮山) 지맥이 동남쪽으로 뻗어 마을 뒤를 둘러싸고 있고 마을 앞은 동해이다
서쪽은 원남면 금매리와 경계를 하고 있으며 남쪽은 오산리 무릉(武陵)과 접하고
북쪽은 산포리(山浦里)와 인접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오원, 동정, 홍촌, 최촌, 맛불, 샛불 등이 있다
갯바위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진복리 해안가의 다양한 바위들~~
나름대로 이름을 마음속으로 정하면서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진복방파제
진복항
참으아리가 많이도 피어있다
바닷바람 솔솔~~
너무 좋아서 한참을 쉰다
진복2리 해변
와~~~~~!!!
이 물빛 어쩌란 말인가~~
소나무랑 갯바위의 공생
속이 뻥~~~~
오원마을 해안가
자연이 만든 작품속으로 풍덩~~
진복1리(선진마을)
16세기 중엽에 광주노씨가 처음 들어와 개척한 마을로
마을 뒷산에 오동나무를 많이 심었다 하여 오원(梧原)이라 하였는데
최근에 선진 마을로 지명이 바뀌었다
산포3리 해안가의 갯바위
근남면 산포리(山浦里)
옛날 왕피천 하구(河口)에 모래가 쌓이기 전에는 1000m 이상이 포구(浦口)로 되어 있어
배가 왕래(往來)하였다 하여 산포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1650년 경에 달성 서씨(達城徐氏)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1916년 세포동·흑포동(黑浦洞)·
도촌동(島村洞)·둔산동이 통합되어 산포리로 개편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가는개, 호암(狐岩: 여우가 살던 바위), 화수독, 월증리, 망지등, 목동바우 등이 있다
화수독은 1750년 경에 가는개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마을이 전소되고부터 마을 앞산에
독을 두 개 묻어 놓고 매년 음력 2월에 물을 독에 채워 두었는데 독의 물이 많이 줄면
화재의 위험이 있다 하여 주의하고 적게 줄면 재해(災害)가 없다고 전해오고 있다
검은개는 망지등이 있는데 이것은 바닷속의 고기떼를 찾기 위하여 망(望) 보던 산봉우리를
망지대(望知臺)라 하여 일컫는 말이며 촛대바위는 동해안에 빼어난 경관을 이루는 바위이다
물개바위
물개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는 듯....
자연의 신비이다
촛대바위가 보인다
뒤돌아 보고
한참동안 머물고픈 곳이다
산포3리(흑포 : 黑浦)
1600년 경 홍천 용(龍)씨가 터전을 잡은 후 제주 고(高)씨가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다
당시에 마을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동네의 모습이 검게 보여 흑포동(黑浦洞)이라 하였으며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마을 뒷산 네 곳에 화강(火瓨) 항아리를 묻어 놓고 매년 2월 초하루에
물을 가득 채우고 제(祭)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화수독은 1750년 경에 가는개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마을이 전소되고부터 마을 앞산에
독을 두 개 묻어 놓고 매년 음력 2월에 물을 독에 채워 두었는데 독의 물이 많이 줄면
화재의 위험이 있다 하여 주의하고 적게 줄면 재해(災害)가 없다고 전해오고 있다라는
말과 결이 약간 다르게 전해오고 있다
산포3리 마을
몽돌
해맞이 광장과 망양정 해수욕장의 갈림길~
보이는 이정표 지나 직진하지 않고 왼쪽으로 진행한다
아직도 피어있는 해당화
망양정으로 오른다
망양정 공원 -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일원
망양정(望洋亭)은 울진 성류굴 앞으로 흐르는 왕피천을 끼고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언덕에 세워져 있으며 그 경치가 관동팔경 중에서 제일 가는 곳이라 하여
숙종(肅宗)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친필의 편액을 하사하였으며
숙종과 정조(正祖)가 친히 지은 어제시와 정추(鄭樞)의 망양정시, 정철의 관동별곡
채수(蔡壽)의 망양정기 등의 글이 전해져 오고 있는 곳이다
망양정 공원은 정부의 경북 북부지역 경제개발 촉진을 위한 「경북 북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사업」에
선정되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국·도비 지원을 받아 망양정 개축 및 울진대종 건립 전통체험장
파고라, 조경시설, 순환도로, 화장실, 주차장 조성 등 망양정을 중심으로 주변 정비를 완료하고
군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역사문화 향기와 동해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원의 중앙부에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으며
해맞이 행사의 타종식을 위한 울진대종과 종각이 세워져 있다
소망 전망탑
이 언덕은 원래부터 일출 장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해발 45m 정상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섬이나 다른 장애물이 없어
떠오르는 해를 한눈에 쏙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공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해맞이 행사를 열어 왔다고 한다
소망전망탑에서 내려다 보고
산포리 해안이 보인다
울진 대종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인 박한종이 높이 2.86m, 바깥둘레 1.638m,
무게 7,518㎏(2,005貫)의 대종을 2006년 12월 제작 완료하였다
문양은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의 아름다운 비천상을 응용하였고
명문은 향토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교수이자 시인인 김명인이 맡아 울진군의 무궁한 발전과
화합을 염원하는 내용을 새겼다
망양정이 보인다
망양정으로 가는 길은 바다 소리길~~
살짝 건드리니 맑고 경쾌한 소리가 참 좋다
바람에 연주되는 윈드차임벨이라고 한다
해파랑길보다 더 긴 동서트레일~~
언젠가 도전 해 보고프다
망양정(望洋亭)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1번지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로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이다
고려 시대에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 군수 채신보(蔡申保)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縣鍾山) 남쪽 기슭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517년(중종 12)에는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자 다음 해 안렴사(按廉使) 윤희인(尹希人)이
울진 군수 김세우(金世瑀)와 협의하여 중수하였고 1590년(선조 23) 평해 군수 고경조(高敬祖)가
또 중수하였으나 허물어진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690년(숙종 16) 숙종이
안원군(眼原君)에 편액(偏額)을 보내어 게판(揭板)하였다
1858년(철종 9) 울진 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함께
지금의 근남면 산포리 둔산으로 옮겨 세웠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8년 중건하였으나
다시 퇴락하여 2005년 기존 정자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 건립하였다
1888년(고종 25) 울진 현령을 지낸 류태형의 「선사록(仙槎錄)」에 의하면 망양정이
현종산 남쪽 기슭에서 이곳 둔산으로 옮겨진 이유는 "후세 사람들의 안목이 고루하여
읍치(邑治)와 조금 멀다는 이유로 강과 바다 사이로 옮겨지었다" 라고 했다
때문에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내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이나,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망양정 편
숙종과 정조는 어제시(御製詩), 정선(鄭敾)의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정추(鄭樞)의 시
심수경(沈守慶)의 시, 임회(林薈)의 시, 박란(朴蘭)의 시,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시 등은 모두
이전 현종산 남쪽 기슭의 망양리에 있었던 '망양정'을 노래하고 화폭에 담은 것이다
망양정에 내려서서 진행하면
탐방로에 관동8경에 대한 설명 안내판이 쭉 있다
8경부터 담아 본다
제8경 월송정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있는 누정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낡고 무너진 것을
1980년에 고려시대의 양식을 본떠 다시 세웠다
월송정이라는 이름은 신라 때 네 명의 화랑이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달을 즐겼다는 이야기와 월국에서 송묘를 가져다가 심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망양정과 함께 동해안의 손꼽히는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제7경 총석정
북한에 속하는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동해안에는
예로부터 바닷가의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을 거친 수백여 육각, 팔각 돌기둥이 무리 지어 있다
총석은 빽빽이 발달한 주상절리 군집을 일컫는다
총석 사이사이에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있고
사철 푸른 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총석정’이라는 명칭은 돌기둥 고개에 세워진 정자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나
정자뿐만 아니라 일대의 기암절경도 함께 아울러 불러진다
제6경 망양정은 찍은 줄 알았는데 사진이 없다....????
경상북도 울진군 동해안 망양해수욕장 근처 언덕에 있는 누정이다
정자는 무성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으며 언덕 아래로는 동해안의 망망대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로부터 해돋이와 달 구경 명소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숙종대왕이 관동팔경의 그림을 본 후 망양정이 가장 아름답다 여겨
친히 ‘관동제일루’라는 글씨를 적어 현판으로 걸었다고 한다
제5경 낙산사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오봉산 기슭에 지어진 절이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강화도 보문사, 남해군 보리암, 통천군 금란굴과 함께 4대 관음성지 중 한 곳으로 일컬어진다
경내에 의상대와 홍련암, 칠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제4경 죽서루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성내동에 오십천 인근에 있는 누정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벽 위에 있는 자연 암반을 반석으로 삼아 서로 다른 길이의 13개 기둥을 세워 지어졌다
관동팔경의 정자들 중 가장 크며 바다 근처에 있는 다른 정자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다
누각 내에는 옛 삼척부사들이 적은 여러 현판들이 걸려있으며 정조와 율곡 이이가 지은 시도 남아있다
제3경 삼일포
북한 지역인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큰 호수이다
신라 때 네 명의 화랑이 하루만 놀다 가려 했으나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취해
3일을 놀다 갔다 하여 삼일포라 이름 붙여졌다
호수 위에는 소나무가 우거진 와우도, 화랑들이 노닐던 정자라는 뜻의 사선정
신선들이 춤을 추다 간 무선대, 매향비가 있는 단서암 등 4개의 섬이 있다
제2경 경포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정이다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 형태이며 48개의 기둥을 갖추고 있다
고려시대에 한 관리가 인월사 옛 터에 지은 것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내부에는 숙종이 지은 ‘어제시’를 비롯하여 율곡 이이의 ‘경포대부’ 등 명사들의 글이 걸려있다
1981년 인근 호수와 함께 강원특별자치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제1경 청간정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토성면 동해안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진 바 없으나 조선시대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한 기록이 남아있어
그 이전 시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자를 둘러싼 울창한 소나무 숲, 절벽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만경창파와 주변의 풍경
일출과 월출의 장엄함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이다
관동팔경(關東八景)
강원특별자치도와 경상북도에 걸친 동해안의 여덟 명승지
강원특별자치도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청간정과 삼일포,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경상북도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을 일컫는다
흰 모래사장과 우거진 소나무 숲, 끝없이 펼쳐진 동해의 조망, 해돋이 풍경 등
바다와 호수 및 산의 경관이 잘 어우러진 빼어난 경승지들로 이곳에 얽힌 전설·노래·시 등이 많다
특히 고려말 안축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는 총석정·삼일포·낙산사 등의 절경을 노래하였고
조선 선조 때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는 관동팔경과 금강산 일대의 산수미를 노래했다
다시 울진대종 앞으로 와서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산행을 하든
트레킹을 하든
날씨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하루종일 흐리다는 일기예보였는데
차츰 맑아져 파아란 바다를 맘껏 볼 수 있었음에
너무 좋았던 날의 발걸음이었다
청송휴게소를 지나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버스 천장에 비 떨어지는 소리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자연의 멋진 화음이었음을~~
그리고 빗속을 얼마나 달렸을까......
거짓말 같이 멀쩡~~
노을로 물드고
서서히 넘어가는 햇님을 담으면서
오늘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
함께하신 모든님.....수고 많으셨습니다^^
2023. 8. 20(일)
첫댓글 와~~
대단하십니다.
구석 구석… 좋은 비경만
쪽 쪽 ~~
눈 호강했어요..
해설도 너무 좋았어요^^
꽃이 너무 예뻐서 궁금했는데..해란초 였네요
대게 원조가 울진인데 왜? 영덕대게 더 유명?
울진군 4만3천명이고
영덕군 3만4천명..인구에서도 밀리지 않는데
피가 되고 살이되는 많은 지식들 감사합니다
작품 사진들이네요.
자세한 설명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