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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 그리고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사랑그리고편지
최근 회원으로 가입하여 큰 도전과 은혜를 받아온 유명 싸이트에서 회원한분이 올린 글을 읽고서
참 마음이 좋았습니다.
글이라는게 각자의 마음에 드는게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생각의 같음을 발견한다는것도
참 즐거운 일이지요.
제가 올린 글들이 현실 적으로 기성 교회의 부정적인 부분을 자꾸 들춰내서
약간 삐닥하게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너무 부정적으로 교회의 허물을 들춰내기에 반감도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은혜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맘 상할 일도 없고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게 안좋은 면만 들어내면 혹 초신자들이나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헷갈릴 수도 있고
복음을 전파하는데 걸림이 되는 그런 글들은 피하는게 지혜롭지..하면서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옳은것과 틀린것과 아닌것을 그냥 방관하기만 하는것도 먼저 구원얻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소명에 대한 직무 유기라고 생각합니다.
불이 났고 썪었는데 냄새가 나고 악취가 나는데 그냥 쉬쉬하면서 모르는척 해버리면
그것을 과연 우리 주께서 기뻐하실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정말 걸리는 곳이 한두곳이 아닙니다.
특히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모 카페에서조차 거절을 당하고
나름대로 균형적인 복음관을 갖고 있다는 곳에서조차 금기시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주일성수와 십일조와 교회중심에 대한 다른 이견입니다.
이런 말을 꺼내면 점잖게 목사님들은 타이르면서 마음에 악한 사단이 심어놓은 가라지와
쓴 뿌리가 있으니 내적 치유를 필요로 한다고 상담을 해주는 식입니다.
분명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십일조가 당연히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식은 전혀 비성경적이라고 말을 할라치면
구약의 말라기나 출애굽기를 들이 대면서 당연히 구원얻은 성도기에 마땅히 감사함으로 지켜야 하고
행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들이대시는 분들에게
도대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아할 정도입니다.
사도들과 초기 기독교 성도들의 삶에서 전혀 나오지도 않는 십일조와 안식일에 대한 것을 당당하게 가르치고
마치 그것을 거절하면은 구원받은 성도가 아닌것처럼 호들값들을 하시는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유명하다는 목사의 방송설교들을 어쩌다가 들어도 여전히 똑같은 설교 내용들을 보면서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방송에 설교를 보내려면 어지간한 교회의 형편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예전에 철없을 적에는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부르시고 사용하시기에 저 목사님들은 방송에서 설교를 할 수
있구나 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대부분의 착한 성도님들은 (권사님 장로님들 집사님들은) 그렇게 믿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송역시 후원금이 없으면 운영이 되지 않습니다.
현대 교회의 운영역시 교인들의 헌금과 십일조와 각종 명목상의 헌금들로 유지가 됩니다.
아니, 그냥 유지만 한다면 사실 이런 불필요한 글을 쓸 이유도 없습니다.
교회 건물 유지는 일정부분일 뿐이고 많은 부분에서 사실은 목회자 개인용도로의 지출이 훨신 크다는것은
이미 방송이나 뉴스등을 통해서 불거져 나온것을 아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자립이나 가난한 개척교회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해당이 되지 않겠습니다만
대부분 어느정도 자립해 가는 교회에서 피할 수 없는 닮은 꼴들이 복재생산되어지는 것을
부인할 순 없을 것입니다.
물론 모범적으로 잘 운영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만...
방송사나 대형 교회나 운영방식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 구조적인 상황속에서 과연 십일조가 비성경적이며 주일 성수가 역시 성경과 상관 없으며 구원역시
교회가 전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것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한번(주일 ) 빠지거나 새벽기도회에 안나가면 무슨 큰 대역 죄인이나 된것같은 분위기속에서
목사의 설교는 주일 강단에서 힘차게 선포되어 집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사람이 어떻게 집사요 장로인가?
장로나 중직자가 새벽기도를 불참하다니?
십일조를 안내고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려고?
교회를 목숨걸고 나오지 않으면 사단의밥이 될 수 밖에...
주의 종을 통해서 영적인 말씀과 음성을 듣지 않으면?
언제부터인지 목사의 설교의 중심은 오직 예수가 아니라
교회중심이며 주일성수와 십일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성도들을 교회안으로 몰아 넣어서 속된말로 뺑ㅂ뺑이를 돌리는(굴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목사에게 순종하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어떻게 주님을 알아야 하며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를 알려주어야 하는데...
주일대예배(대형교회의 경우는 1~7부예배까지) 하며 수요 저녁, 금요 철야, 화요 전도모임, 토요일 청년모임, 재직 헌신, 남 여 전도회 헌신, 청년 헌신, 특별 부흥성회, 년중 계속하는 심방, 구역예배등등....
참고로 어린이 주일,어버이주일,생일 감사예배,개업예배등등 도무지 예배에다가 아무것이나 막 석어놓고
태연하게 예배라는 말을 할수 있는 의식부터가 참담한것을 아시는지요?
이미 이러한 예배 의식과 문화속에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도무지 직장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는 무슨 로봇트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빡박한 스케줄로 인하여 잠시도 쉼이 없는 형국입니다.
사회 생활만도 얼마나 무한 경쟁속에서 지치고 긴장의 연속인지 목사님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적응한다는것은 초인이 아니라면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공식적인 예배에 정확하게 참가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도들의 마음에 구원의 감격으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죄책감에 괴로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늘 죄책감으로 풀이 죽어서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 마다 뜨끔뜨끔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성경 구절을 들이 대면서 모두가 죄인이다 하면 거기에 아니라 할 성도 누가 있습니까?
주님을 믿는다면서 교회를 안나와? 혹은 주일을 빼먹어? 십일조를 도둑질을 해?
이것은 주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그동안 죄와 사망가운데 죽었던 우리의 상태를 깨우쳐 주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어야할 교회가
앞장을 서서 성도들을 죄인 만들려고 작정을 한것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모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가 하면서 의기양양 큰소릴 칩니다.
삯군 목사들과 이단 사이비들도 버젓이 건물 짓고 교회 간판 달고 큰소릴 치는 힘이 어디있어요?
건물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공갈을 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공갈을 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이유는
놀랍게도 기성 교회와 교단들 역시 같은 논리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이 없으면 예배할 수 없는가?
정말 그렇습니까?
목사가 없으면 예배가 불가능 합니까?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공통적으로 현대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긴 글을 힘들여 가면서 하는냐고요?
바로 이런 글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예배를 드린 주일의 의미는 결코 날짜 중심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왜냐하면 일요일의 주일에 그리스도인들이 한 곳에 모인 목적은 그곳이 성전이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받은 주님의 지체로서 우리의 온 마음과 몸, 그리고 영으로 주께 예배드리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요4:24)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행20:7), “매 주일(每週日: every week)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利)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2),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정할지니라”(롬14:5)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목회자가 있는 주의 몸된 교회에 소속되어 주님의 영적 말씀을 공급받고 형제의 교제를 나눔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야 한다. 복과 저주의 안식일 개념이 아니라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주일을 지켜야 한다. 만일 어떤이가 목회자를 거부하며, 영적 예배 모임을 배척하고, 주일을 거부한 채 홀로 예수를 믿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다.
진정 구원받은 성도라면 1년 365일 성전 된 자기 몸을 거룩히 여겨 죄를 멀리해야 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는 일요일의 주일 모임에 철저히 동참하여 신령과 진리 안에서 감동적인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안식일을 지키듯 억지나 형식이 아닌 자원하는 심령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일을 기다려야 마땅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박하규, <한국 교회 어떻게 살릴 것인가>, 도서출판 대장간, 1995,P83 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괜찮구나 했습니다만 보십시오.
진정 구원받은 성도라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목회자가 있는 어쩌고 하면서 주일지키고 교회나가고 목사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살짝 끼워 넣어버리지 않습니까? 정말 교묘한 내용이지요? 깜박 속을 뻔 했습니다.
초기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올때 어떻게 들어 왔는가를 아실 것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이 먼저 들어 왔습니다.
한글로 성경이 번역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에 진리를 알게 하는 중요한 일을 한것입니다.
선교사가 들어 오기도 전에 말씀이 먼저 들어 온것입니다.
우리가 건물이 없거나 목사가 없어서 예배할 수없다는 그런 거짓말을 당당히 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양심이 무뎌진 이 시대여...
아무리 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들 무엇하리요...
명백한 진리의 성경을 읽고도 두려워 하기는 커녕 진리를 외곡하고 감추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양심적으로 묻습니다.
목사님들 신학박사님들께
정말로 건물 교회나 목사 없으면 예배가 불가능 합니까?
교회 없으면 교회당이 아니라면 예배가 전혀 불가능 한것입니까?
성도들이 교회 절대중심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구원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배 처소가 교회 뿐이라고 알기에 그런 것입니다.
아닙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얻은 성도들이라면
우리 스스로
우리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비좁은 공간이면 어떻습니까?
당신이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사람이라면 바로 거기가 예배할 처소요 예배의 자리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자가 바로 여러분 자신임을 아시는지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께서 이산 에서도 말고 저 산 에서도 말고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바로 지금!
예수 이름으로 예수와 함께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찬송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펴서 낭송하십시오.
주의 구원을 찬양하십시오.
아내와 단 둘이면 어떻고
친구와 두 셋이면 어떻고
여러분 혼자이면 어떻습니까?
지금 그 시간이 여러분 혼자가 아니라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것을 모르시는지요?
무엇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까?
우리안에 계신 예수와 성령과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손에 들려진 성경 말씀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무슨 십일조를 말하며 헌금을 말하며 성찬을 말하는지요?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 아직도 모르시는지요?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말씀을 읽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겉으로는 세련되었고 웅장하고 부족한 것이 없지만은
성도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온통 프로그램과 절기들과 의식에 매여서 아무것도 못하고 오직 목사의 설교를 받아 먹어야 하기 때문닙니다.
그 설교가 진정 바른 복음으로 나온다면 천만 다행이겠지만
결국은 주일지키고 십일조 철저히 하고 교회 봉사에 충성하는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라고 세뇌시키는 것 밖에 할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만일 한번이라도 교회를 빠지면 큰 벌을 받을 것처럼 벌벌 떠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들입니다!
종이아닙니다.
종은 언제나 주인을 두려워 하기에 벌벌떠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아래 매여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다가 하나라도 걸리면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희생제사를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종이 아니라 자유한 자들이요 아들입니다.
아들이 큽니까?
교회 건물이 큽니까?
종입니까?
아들들입니까?
우리가 구원 얻었다는 것은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분이 옮겨진 것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자녀로 위치가 바뀐것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누가 여러분들을 속입니까?
여러분들의 자유함을 누가 간교한 속임으로 속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누가 빼앗을 수가 있습니까?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흠모할 만한
하나님의 놀라운 시랑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누가 율법아래로 초등학문아래로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셨는데 누가 감히 속이는 것입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걱정 하지마시고 살아있는 주님과 함께 살아계신 아버지를 찬양하십시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시고 기뻐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과 함께 즐거워 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란 아버지를 만나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데 무엇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예수 그 이름이면 충분합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해야할 일들은
예수를 전하고 만날 수 있도록 서비스해주는 섬기는 봉사의 기능을 해야 합니다.
온전히 낮아짐으로 성도들을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성도들 앞에 걸리는 돌들이 있다면 치워 주고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 문을 막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의 몸을 드려서 새롭고도 산 길을 열어 주셨건만
그 길을 가는 성도들을 헷갈리게 하고 광야를 헤메이듯이 힘들게 만드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복음을 섞으면서 헷갈리게 하고 어렵게 만들고 복잡하게 만들고 율법화 하면서 제도화로 치달으면서
예수 앞으로 갈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구조속에서 과연 ....
오늘날의 교회가 앞장을 서서 그 길을 혹시 가로 막는 일을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는지요?
이런 말 하면 너나 잘하라고 쏘아 부치겠지만 ...
복음을 복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에게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주어야 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길을 가로 막는 일들이 언제쯤이면 중단이 될까요...
개인적인 단상을 두서 없이 올려서 죄송합니다.
2009/04/27.ⓒ사랑그리고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