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강신석 목사님 추모의 글
<진실하라 온유하라 두려워 말라>
광주의 큰 스승이 떠났습니다.
당신은 신실한 목회자요, 장애인과 연약한 자들의 어머니였습니다.
당신은 종교, 교육, 통일 등 사회운동 전반에 평생을 헌신해 온 광주의 아버지였습니다.
당신의 삶을 생각하면 화가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탕자의 귀향’에 나오는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돌아온 아들의 등을 감싸는 아버지의 왼손은 남자의 손이고 오른손은 여자의 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은 부여잡고 어머니의 손은 쓰다듬습니다. 아버지는 확신을, 어머니는 위안을 줍니다."(헨리 나우웬)
강 목사님은 이처럼 부성과 모성이 교차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강 목사님을 80년대 금남로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깊은 울림이 담겨있는 목소리는 그보다 훨씬 넓고 깊은 삶에 닿아있었습니다.
민족과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한반도의 갈릴리라 할 수 있는 전라도 땅에서 평생을 사셨습니다.
당신은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분이었습니다.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며 3차례의 옥고를 치른 투사이면서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자애로운 어머니였습니다.
당신이 담임하고 있던 광주무진교회 청년회는 설립 초기부터 실로암재활원(현 이팝너머)의 자매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1991년부터는 당신이 한국실로암선교회(현 실로암사람들)의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1992년에는 광주무진교회(남구 구동) 내에 사무실 공간을 내어주었고, 목요모임(채플)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강 목사님이 사주셨던 상무정의 오리바켄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실로암사람들이 2000년대 이후에 이동권이나 인화대책위 등 장애인권 운동의 일선에 나선 것도 강 목사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당신의 삶과 정신이 궁금하던 차에 작년 설날 세배하러 갔을 때 그 답을 얻었습니다.
책상에는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80년 광주 증언록 <5.18 광주사태>가 놓여있었습니다.
평생의 화두였던 5.18에 대하여 지금까지 붙잡고 계셨구나 싶었습니다.
책상에 깔린 유리 아래에는 1982년 마하트마 간디 34주기 추모모임에 대한 함석헌 선생의 친필 초대장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간디의 친필로 쓴 ‘진실하라, 온유하라, 두려워 말라(Truthful, Gentle and Fearless)’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은 평생 예수와 간디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목회자였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한없이 온유한 어머니였으며, 불의한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제가 실로암사람들 대표가 되었을 때 당신이 가르쳐주신 말씀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철저하고, 타인에게는 부드럽게 대하라. 치열하게 살되 부드러움을 잃지 말아라.”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 가르침 만은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강 목사님, 당신의 품이 얼마나 넉넉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지네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유족들과 남겨진 사람들에게 하늘의 안식과 위로를 빕니다.
(사)실로암사람들 대표 김용목
(2021.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