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시대에도 신앙적 질문은 가능한가?
존 호트. (2021). 『 과학 시대의 신앙 』두리반
내가 사는 강북구에서는 최근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라는 주제로 명사특강 강좌를 열었다. 강의 주제만 본다면 종교인이 강사로 섭외 될 듯도 한데, 초대받은 강사는 최근 메스컴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아주대 심리학 교수 김경일 씨였다. 그가 명사인 것은 사실이니 아주 틀린 강사 선정은 아니지만,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종교적 질문에 더 가깝다고 생각과 함께 지금은 심리학자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모양이라는 여러 생각들이 두서 없이 엉키었다. 그렇다. 지금은 종교보다 과학에 대한 신뢰가 더 높은 시대이다.
<과학 시대의 신앙>의 저자 존 호트는 조지타운 대학교의 명예 교수로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에 관한 20여 권의 책을 저술한 가톨릭 신학자이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한 과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어왔다(고 한다). 아서 피콕(생화학), 존 폴킹혼(물리학), 알리스터 맥그라스(분자 생물학), 그리고 마크 해리스(물리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과학을 주전공으로 하며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시도하여 과학신학 분야를 정립하였다. 반면에 존 호트는 신학자의 입장에서 신학과 신앙의 관점에서 과학과 대화를 시도하여 보다 풍성한 신학적 의미를 드러낸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 책에서 과학과 과학주의를 구별할 것을 주문한다. 과학은 자연 세계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사건들의 인과적 관계를 설명하는 체계이다. 반면에 과학주의는 과학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으며 과학으로 설명 가능한 자연 세계 자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다. 과학주의는 과학과 같지 않다. 과학은 물리 세계에 대한 중요한 것들을 배우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물리 세계를 인식하는 다른 방법들도 분명 존재한다. 무신론자들은 과학과 과학주의를 혼합하여 마치 무신론이 과학적인 양 호도하지만, 이는 또다른 믿음의 체계일 뿐이다.
저자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크게 세 개의 입장으로 정리한다. 곧 갈등, 분리, 대화의 입장이다. 갈등은 자연과학과 신앙이 서로 배타적이라는 입장이며, 분리의 입장은 과학과 신앙이 서로 다른 수준의 실재 또는 서로 다른 차원의 실재와 각각 관계를 맺고 있기에, 과학과 신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대화의 입장은 종교적 신앙과 자연과학이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신앙과 과학이 필연적으로 상호 소통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저자는 과학 시대에 제기할 법한 12개의 질문들을 목차로 하여 과학과 신학의 서로 다른 세 가지 입장에서 어떤 대답들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을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면, 과학과 신앙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차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단점과 장점, 그리고 나의 위치는 어디에 가까운지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이 책의 부제는 ‘첨단과학 사회에서 신앙인이 고민해야 할 12가지 질문’이다. 책의 당위를 생각한다면, ‘고민하는 12가지 질문’이 맞을 듯한데, 편집자는 굳이 ‘고민해야 할 12가지 질문’이라고 명명했다. 어찌 보면 교회 안에 이런 고민이 없다는 뜻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런 질문을 할 법한 사람들은 이미 대화의 문을 굳게 닫은 교회의 현실에 절망하여 이미 교회 밖으로 떠났고, 교회 안에는 이런 질문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니며 덮어놓고 믿기로 작정한 사람만 남았다는 자조적인 뉘앙스로 읽는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할’과 ‘하는’는 약간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여러 사건이 현존하는 듯하다. 바라기는 이런 책들이 많이 읽히고 논쟁되어 ‘고민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