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묵상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설교를 놓치지 말라!웨스트민스터 체플의 오랜 사역 기간 동안 로이드 존스는 성탄절 기간에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뛰어난 설교들로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기간을 이용하여 복되신 우리 주님이 강림하신 이 귀한 일을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누가복음 1장의 마리아의 찬송을 다루고 있는 로이드 존스의 이 네 편의 설교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의 그 찬란한 경이를 우리에게 유감없이 드러내 준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그 크신 역사 앞에서 우리는 그저 경탄과 찬양과 감사를 올릴 뿐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역자의 말
1. 하나님을 찬양하며
2. 하나님의 지혜
3. 하나님의 신실하심
4. 그리스도인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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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5-49, '2. 하나님의 지혜'중에서]
1. 성탄의 진정한 의미
이 위대한 사건이 - 여러가지 면에서 인류의 전 역사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이 사건이 -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오늘날 대부분 희미하게 흐려져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주로 다음 두 가지의 중의 한 가지 방식으로 이 사건을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위대한 사건을 그저 복과 용기와 행복등에 대한 어떤 모호한 느낌으로 증발시켜 버립니다. 곧, 술 마시고 친지들끼리 만나 즐기는 계기로 삼는 것이지요. 아마 세상의 전반적인 모습을 볼 때에 이런 것이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한 사람들의 주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크리스마스란 그런 것이고,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 이런 사람들도 굉장히 많습니다만 - 이 사건의 중심 되는 목적은 그저 무언가를 행하도록 사람들을 권하는 데 있고, 복을 비는 이런 심정을 실천하는 데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로, 전쟁을 종식시키고 무장을 해제시키며 나라들끼리 서로 사이 좋게 지내도록 사람들을 독려하는 데 써먹을 수 있는 그런 시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탄에 대한 사람들의 지배적인 생각은 이렇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마그니피캇에 나타나 있는 이 엄청난 진술을 자세히 살펴 봄으로써, 이런 모든 생각이 얼마나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거짓인가를 함께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생각이 필요한 주제가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의 문제가 그것일 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가 케롤 예배를 드리지 않고 말씀을 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먼저 생각부터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성탄절은 과연 진지하고도, 건전하며, 생명이 있는 생각을 요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일년 중에 우리의 복되신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계절만큼 마귀가 우리를 망가뜨리려고 애쓰는 때가 없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
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에 관한 이 근본적인 원리들에 대해서 여기서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과연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의 선언의 계절입니다. 그것과 관련된 모든 사실들이 이 점을 시사해 줍니다.
여러분, 그 시초에 되어진 일을 기억하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1장 전체를 읽어보면,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가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세례요한의 아버지였습니다. 제사장들의 예대로 자기 순서를 따라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별다른 무슨 기대가 없이 그저 자기의 일상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천사가 그에게 나타납니다. 천사는 그에게 무엇을 행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한 가지 일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해서 그에게 말해 준 것입니다.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단산한 상태였고, 두 부부는 이제 다시는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선언은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의 선구자가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성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마리아의 경우에도 그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마리아는 그저 평범한 처녀였고, 아무 것도 별달리 기대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그녀에게 말을 걸면서, '은혜를 받은 자여'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 선언이 계속됩니다.
엘리사벳이 이미 그렇게 했듯이, 마리아고 그것을 선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을 보면, 마리아가 그 사실을 깨닥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이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훈계가 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애매모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은 강력한 선언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탄은 마치 국가 시책을 전하는 담화문이나 라디오 같은 데서 나오는 선언 같은 성격을 띈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접근해야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마귀의 사주를 받아서 그것을 세상 자체의 철학에 속하는 어떤 것으로 뒤틀어 왜곡시켜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성탄의 선언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런 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때때로 무언가 정말 굉장한 일이 선언되려고 할 때에, 어느 날 어느 시에 위대한 선언이 공포될 것이라는 식으로 미리 예비적인 아내가 주어집니다. 특별히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그랬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이 발생하기 몇 시간 전에 이런 선언이 들립니다: '어느 어느 시각에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니 다 주의하여 들으라.' 그러면 우리는 모두 궁금해하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시각이 되면 선언이 나옵니다.
자, 여러분,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예비적인 선언들이 있습니다. 곧,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계속 말씀했습니다: '보라, 무슨 일이 장차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선포가, 하나의 선언이, 행해졌고 모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 선언이 임한 것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선언입니다! 선포입니다! 기쁨으로 뛰놀게 만드는 무슨 특별한 일이 선언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서의 이 예비적인 부분의 표면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본문 가운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