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꽃 흩날리는 밤 덕수궁 석조전의 문이 열린다
덕수궁 석조전의 야경.
“이젠 다시 불타지 않으리. 돌로 지은 이곳처럼.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대한의 꿈’ 영원히.”
오얏꽃(자두꽃) 흩날리는 봄밤, 덕수궁 석조전의 문이 열리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2024 상반기 ‘밤의 석조전’이 한창임을 알리는 노래다. 석조전은 대한제국 말기에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서양식 석조 황궁이다.
‘밤의 석조전’은 밤에는 개방되지 않던 석조전에서 야경과 공연,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야간 체험 프로그램으로 2021년부터 시작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024년 행사 기간을 기존 48일에서 70일(상반기 행사는 4월 16일부터 5월 25일까지)로, 참여 인원도 회당 16명에서 18명으로 확대했지만 인기가 많아 신청 접수는 순식간에 마감됐다. 현장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해 지면으로 소개한다.
‘밤의 석조전’은 저녁 6시 15분 덕수궁 대한문에서 출발한다. 덕수궁 야외 동선과 석조전 실내 동선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해가 져 어두워진 공간 곳곳을 조명이 밝힌다. 조명이 닿은 나무들은 낮의 초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에 상궁 차림을 한 해설사, 자칭 ‘이 상궁’의 설명이 함께한다.
금천교를 건너면 덕수궁 전각들이 나온다. 황제의 침전이었던 ‘함녕전’, 덕수궁에 남은 유일한 중층 목조건물 ‘석어당’, 대한제국의 정전(궁궐의 중심 건물)으로 쓰였던 ‘중화전’ 등이다. 중화전 창호는 금칠이 돼 있고 답도(임금이 가마를 타고 지나는 계단)와 천장에는 용 문양이 새겨져 ‘황제 궁’으로서 위용을 드러낸다. 이 상궁은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는 황후마마가 머무는 침전이 없었다”며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시해된 후 고종황제가 새로운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각들을 지나자 이전과 정반대 느낌의 건축물인 석조전이 등장했다. 석조전은 이름 그대로 돌로 지은 서양식 건물이다. 영국인 건축가의 설계 아래 1900년 착공해 1910년 준공됐다. 자주 독립국을 향한 고종의 의지가 반영된 곳이다. 당초 고종은 석조전을 정전으로 쓸 목적이었으나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뤄지면서 계획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외국 귀빈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석조전 안에서 창작 뮤지컬 ‘고종대한의 꿈’ 공연이 한창이다.
해설사가 고종의 마지막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돌로 세운 서양식 건물
석조전은 3개 층으로 구성됐다. 지하층은 시종들이 대기하던 공간과 창고, 1층은 공적 공간, 2층은 생활 공간으로 쓰였다. 석조전의 첫 관람 코스는 1층 중앙홀을 기준으로 뒤를 돌아 왼편에 놓인 귀빈 대기실이다. 외국 사신들이 고종과 접견하기 전 이곳에 잠시 머물며 샴페인, 커피, 위스키 등을 즐겼다. 장식장과 장의자 위로 놓인 샴페인 잔들이 과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석조전에는 가구 133점이 놓여 있는데 이 중 41점만 준공 당시의 원본 가구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 궁을 공원으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1933년 석조전은 미술관이 됐다. 이때 내부가 훼손되면서 다수 가구가 소실됐다. 석조전은 1950년 6·25전쟁 이후에도 미술관, 박물관으로 쓰이다가 2009년 복원 공사를 통해 2014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난간은 석조전에서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곳이다. 세월의 흔적을 손으로 느끼며 고종의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섰다. 고종이 죽기 1년 전인 1918년 촬영된 마지막 가족사진이 관람객을 맞는다. 사진 속에는 고종, 순종, 영친왕, 순정효황후, 덕혜옹주가 석조전 중앙홀을 배경 삼아 나란히 앉아 있다.
대한제국 궁궐의 중심 건물이었던 중화전. 사진 C영상미디어
‘가짜 문’과 ‘거울’이 많은 이유
고종 침실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장식돼 있다. 고종을 위한 방이었지만 고종이 이 방에서 취침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주로 함녕전에서 잠을 잤던 것으로 보아 전통 가옥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침실의 복원 과정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적인 공간이다 보니 사진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본 가구 뒷면에 ‘emperor’s bedroom’이라는 문구가 적힌 것을 보고 짐작했다고 한다. 석조전 안내를 맡은 해설사는 “영국 유명 회사에서 수입한 가구들이다. 당시 영국 슈퍼바이저들이 가구를 보낼 때 어디에 둘 것인지 기록해둔 내용을 반영했다”며 “영국 회사의 카탈로그와 돈덕전(덕수궁 내 서양식 건물)의 침실 사진을 토대로 복원했다”고 부연했다.
침실 다음으로는 서재다. 황제가 책을 읽거나 귀빈을 만나는 장소였다. 침실과는 반대로 사진 자료가 많았다. 서재 원탁에 책을 배치한 인테리어 또한 1918년 실제로 촬영된 사진을 토대로 재현했다. 다만 사진 속 책 이름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고종이 많이 읽었을 법한 ‘국제법 기초(Elements of International Law)’를 원탁 위에 배치했다. 미국 법학자인 헨리 휘튼(Henry Wheaton)이 저술한 도서로 모든 국가는 경제력이나 군사력과 상관없이 동등한 자주권을 갖고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황제의 공간이 끝나자 황후의 공간이 시작됐다. 먼저 거실은 황후가 차를 마시거나 내빈을 맞은 곳으로 황제의 공간과 달리 꽃문양으로 장식된 화려한 가구를 볼 수 있다. 한가운데 테이블 위에는 커피 잔 세트가 놓여 있다. 고종이 커피를 좋아했다는 기록에서 착안한 것이다. 커피는 우리나라 탕약과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 ‘서양에서 온 탕국’으로 알려졌으며 당대에는 ‘가비’ 혹은 ‘가배’라고 불렸다.
황후의 침실은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를 위한 방이었다. 그러나 엄씨는 1911년 생을 마감해 이곳을 써보진 못했다. 대신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 여사가 임시 숙소로 활용했다.
석조전의 흥미로운 점은 ‘가짜 문’이 많다는 것이다. 문을 열면 곧장 벽이다. ‘비례와 대칭’을 특징으로 한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한쪽에 문이 있으면 반대편에도 문이 있어야 했다. 방 안에는 거울이 많다. 일부는 윗면에도 붙어 있다. 당시 서양에서 거울은 ‘힘’과 ‘부’를 상징한 것으로 미뤄볼 때 고종이 부를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밤의 석조전’ 투어의 마지막에는 ‘테라스 카페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다과를 하는 동안 간이 클래식 연주회가 열린다. 사진 C영상미디어
고종이 사랑한 ‘가배’ 체험하기
투어 끝엔 ‘테라스 카페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구겔호프(왕관 모양의 파운드 케이크)와 카카오 마들렌, 음료 한 잔(따뜻한 커피, 차가운 커피, 온감차, 상심자차 중 선택)을 내준다.
간단한 티타임 직후에는 15분짜리 창작 뮤지컬 ‘고종-대한의 꿈’이 펼쳐진다. 1909년으로 돌아가 고종의 고뇌를 고스란히 겪어보는 시간이다.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던 고종과 그의 아들 순종, 고종의 꿈에 나타난 명성황후까지 세 사람의 목소리가 석조전을 메운다.
“이제는 내가 지킬게요. 당신의 꿈을 영원히”,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낼 거야. 우린 언제나 함께 있으니 내가 지켜줄거야”.
대한문에서 출발해 90여 분, 돌담을 사이에 두고 궁궐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 듯하다. 못다 이룬 고종의 꿈이 석조전 접견실을 채우는 동안 궁의 밤은 깊어진다. 궁궐을 둘러싼 빌딩의 요란한 조명도 궁의 담을 넘지는 못한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