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수필
설렁탕 한 뚝배기
아 울컥! 목이 메다
緣 깊은 시계 풀어
한 끼를 건너는데
조계사 무쇠가 울어
무소유라 무소구라
ㅡ범종소리
人生逆轉
-로또 당첨기
헉,
6, 7, 11, 아 그래그래 17, 33, 옳지옳지......숨 딱 멎는 순간, 44!!
캭! 됐다 로또!!
바싹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 다시 눈에 불을 켰다.
보고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고...... 햐! 틀림없다 틀림없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아아 하눌님 부처님 공자님 삼신님 조상님 소크라테스님, 마호메트님,
진짜 진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요.
휘유ㅡ
퍼뜩 눈을 스치는 마누라쟁이 얼굴, 그리고 누구 누구 누구 누구......
가만 있자. 정신 좀 차리고..... 지금 몇 시지? 어쩐다? 세상 모르고 퍼드러져 자는
요 할마시를 아닌 밤에 깜짝 놀래켜 줘? 보나마나 또 헛소리 마, 남 잠도 못 자게.....
씨부렁거리면서 돌아누울 테지? 흐흥 그래..... 좋다 이거야..... 그럼 어쩐다?
아으 가슴 벌렁거려 사람 죽것네.
서리귀뚜리 현을 켜는 고즈넉한 뜨락에 서서 구름자락을 헤치며 하늘가는 달을 본다.
별이 없다. 썰렁한 허공을 유성처럼 빨간 불을 깜빡거리며 소리 없이 날아가는
저 여객기,
그 큰새 뱃속에서 내일의 재회를 그리며 선남선녀들 세상모르고 잠들었을 테지....
저 아래 일망무제 펼쳐진 지상에는 이 한밤에도 물방게 같은 차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무엇을 위해 저리도 불나게 줄을 이어 달리는 걸까.
靑紅黃白 온갖 보석을 흩뜨린 듯 불야성을 이룬 저 야경 속에 지금 이 시간, 천태만상 별별 일을 연출하며
밤은 깊어가는데.....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지금 공중부양인가 뭔가 허공에 떴다.
정적이 나를 에워싼 이 한밤에 내가 지금 돈더미에 깔려....
어쩐다? 가만 있자, 그러니까 5만원권 백장 한 다발이 500만원, 열 다발이면 5천만원, 百다발이면 5억원, 千다발이면 5십억원, 아으 그럼 100억이면? 으와 그 산더미만한 돈다발을 도대체 엇다 쟁인담.....내방에? 어림도 없지, 그럼 어쩐다?
아 맞다. 그래 은행이 있잖아, 근데 거 뭣이냐 언젠가 은행이란 데도 파산하는 걸 봤는데...... 이러다 내가 심장마비라도 일으켜 꼴깍 하는 날이면? 얼른 신경안정제부터 몇 알 삼켜야겠다.
돈벼락 100억? 이대로 내가 죽으면 만사휴의, 정신 차려야지 그나저나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날,
생각만 해도.....마누라쟁이가 붕 떠서 흥야항야 설치는 꼴을 어찌 보며 항렬도 모르는 일가붙이란 것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눈깔 까뒤집는 꼴 하며 온 동네가 시끌벅적 들썩이고 그 뿐인가 같지도 않은 어중이떠중이들......
아으 생각만 해도 지레 숨이 질린다.
그래도 저 먼 하늘 아래 척박한 풍토에서 바야흐로 아사직전의 난민구제를 위한 각 구호단체들 하며 당장 우리 가까이 있는 쪽방동네의 의지가지없는 독거노인하며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폐지를 주워 하루하루 연명하는 고달픈 이들의 눈물겨운 사정은 어쩌고....
일약 하루 아침에 졸부가 된 나로서 딱히 눈 감고 모른 체 한대서야 그게 어디 말이나 된다던가.
우선 나랏빚부터 청산하자.
1997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마른하늘 날벼락에 나라 거덜 나던 IMF 사태로, 잡담 제하고 한 마디로 줄초상이 나던 때 나도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게도 구럭도 다 잃고 졸지에 빚더미에 깔려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다 빨리우고도 모자라 공중분해 된,
인정사장 없이 땡처리 된, 내 재산에 뭣이라 양도세?야 주민세야 무슨무슨 稅야......
결국, 적색 신불자로 낙인 찍혀 통장은커녕 카드 하나 못 지닌 알거지 신세로 굴러떨어졌는데....
오냐, 당장 세금 변제부터 먼저 하고, 그나마 돈이 남거들랑 곧장 신용불량자 딱지 떼고.......
흥, 어디 보란 듯이 나도 카드 한 장 긁어볼기라....
禍不單行이라 했던가.
가뜩이나 섭생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에 뭣이라? 당뇨?? 허 참, 어처구니없게도
이래저래 죽을 지경이 돼버렸다.
게다가 이러구러 내 몸뚱이에 둘러 감은 나이테가 여든 하고도 다삿 둘레나....
죽을 나이가 지났는데도 무슨 억하심정으로 야속한 저승귀신이 이런저런 병만 내 몸뚱아리에 들입다 떠안기더니
저도 양심에 찔렸던가 허긴, 남의 눈에 눈물 뺀 일 없는 나를.....
흥 저도 생각이란 게 있었던 게지.
다 늦게라도 내게 돈벼락을 떠안김으로써 흐흥 거 뭣이냐 선심 한 번 쓰시것다?
오냐 그래 알았다.
그나저나 줄 테면 좀 더 일찍이 줄 것이지 다 늙어 꼬부라진 이제 와설라무네........
아니지 그래도 그간의 怨과 恨을 다 씻고도 남을, 그럼그럼 어디 그렇다 뿐인가 감지덕지 할 일이지 암.
근데 당장 이 걸 어쩌면 좋담?
통장 한 장에 다 꿍쳐 넣고 이걸....베개 밑에... 아니, 가뜩이나 잠버릇 하나 고약한 내가...
그럼 천장의 반자를 뜯고? 천만에, 이빨 가려운 쥐란 것들이 웬 떡이냐고 이리 쏠고 저리 갉고 흔적도 안 남길 걸.....
그럼 내 속바지 깊숙이.....안되지 거긴 할마시가 당장.......
가만 있자 그럼 요걸 금괴로 바꿔서 날도깨비도 모르게 땅 속에 묻어?
아냐 아냐 음 그럼 누구 꼭 믿을만한 사람?? 왜 고양이 한 테 생선가게를 맡기지.....
옳지 생각났다!
그 왜 있잖은가. 그 몬테크리스트 백작처럼 어느 섬 깊은 동굴 속에 금화며 보석을 숨겨두고
나도 폼나게 쪽 빼고설랑 어디 보자, 흠 내 눈에 피눈물 쏟게 한 그 불구대천의 원수들 보기 좋게 한 방 갈기고
자 봐라 내가 누군가?
하하하하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도록 앙천대소 웃어주는 거다 암.
아니, 아니지, 제행무상이라 인간사 凹凸 길에 얽히고설킨 怨도 恨도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는 것을,
제 깜냥대로 살게 그냥 두고 보리라.
드디어 오늘, 바로 내 인생역전의 대 역사적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행운의 로또 복권을 다시 꺼내들었다.
에엥~~적막을 긋는 모깃소리,
6, 7, 11, 그래그래 17, 33, 옳지옳지 44!! 허, 허허허 어허허허
요걸 요렇게 접어서 속 포켓 깊이 꼭꼭 챙겨넣고.....
아 여명이 밝아온다.
저기 이윽고 붉은 빛살을 쏘며 금빛 구름자락을 헤치고 해가 불끈 솟는다.
느긋이 소파에 등 기대고 앉았다가 자꾸만 터지려는 웃음을 꾹꾹 참고 다시 꺼내 보는
행운의 757회 복권.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안락의자 깊숙이 묻혀서 TV 채널을 탁 켰다.
어???
화면에 떠오른 금주의 758회 당첨복권!
아니 그럼 이건?????
이번 주 로또 당첨 소식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밤 10시 이후로 미뤄졌다는 사과방송이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