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드나무를 심어 수원(水源)을 확보하고 수질정화식물로서의 가치도 인식해보자!
노론정권에 좌지우지되던 조선의 정치판에서 정조가 꿈꾸는 개혁 작업이 있었다. 일단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이장한 정조는 방위와 교통을 염두에 두고 몇 년에 걸쳐 수원화성 축조와 상업도시로의 작업을 진척시켰다. 그리고 사회기반시설을 하나씩 갖추어 나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수원에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수원(水原)이라는 이름과 달리 수원에는 물이 부족했다. 어찌할 것인가.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는 법. 정조는 제방을 쌓고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 버드나무는 물이 많고, 튼튼한 뿌리로 제방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원천을 시작으로 수원에 흐르는 크고 작은 개천들을 서로 잇고 이어 인공 저수지를 만들었다. "히야! 우리 수원에 이렇게 물이 많았어?" 놀란 건 수원사람들이었다. 이후 버드나무가 무성해지면서 수원사람들은 이 개천을 '버드내'라 불렀고 버드나무를 심은 덕에 물길이 성해져 농업이 발달했다. 수원에 종종 능행차(세계문화유산 화성행궁)를 했던 정조는 수원을 일컬어 유경(柳京:버드나무가 많은 서울'이라는 뜻)이라 칭하기도 했다. 왕다운 왕이 되어 수원을 한양에 버금가는 도시로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개혁을 이루겠다는 포부에 다름 아니었다.
장산에는 물은 많지만 보존하려는 지혜 2% 부족하여 아까운 자원을 마냥 흘려보내고 있다.
▲이산(李山)표석 : 정조 이산의 드라마와 “李山”은 장산과 어떤 연관성을 가졌을까?
o.해운대구청 토지정보과 보관 → 산1-2의 임야대장등본 확인해보자.
o.조선총독부 토지조사령에 의한 “산림산야급미간지 국유사유구분표준”
o.장산일대와 윤산, 화기산, 그리고 아홉산 일대 경계선 지점에 李山 표석있다. 왜...?
o.李山 표석은 일제무단정치의 산림임야 약탈 때 이왕실인 창덕궁이 이들 산의 소유권 있음을 표시한 증거로서 역사적 산물의 표석이다.
⇒ 장산생태 숲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으로 주민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의지결집의 표상으로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고 장산국 역사를 재현하는 자연적 가치있는 나무들을 찾아서 생육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어느해 부산에 살고있는 강을 사람하는 사람들이 버스 한대로 전국의 강투어를 하였다. 낙동강지류인 금호강, 상주보가 있는 낙동강 , 자연그대로 보전한 도심하천인 전주천, 수원천을 둘러 보았다. 도심속 수원천을 자연대로 흐르는 것을 기다리고 지켜보고있는 수원시민들의 인내력이 대단하였다. 강을 비교하니 개발이 자연의 파괴하는 일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