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영포럼강연, 8240부대 고 최희화 부대장 화랑무공훈장 수여식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리는 인천경영포럼에 참석하였다. 어제 새얼아침의 대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정방향에 대한 강연을 하였다. 많은 기업인들이 참석하였다. 갑오년의 의미를 돌이켜 보았다.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즉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났던 해이다. 당시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요구를 수용하고 조병갑을 비롯한 탐관오리들을 척결하고 타협을 해서 내부정리를 하고 청나라 군대를 부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1905년 을사늑약에 이르기까지 약 30여년의 기간을 우리 조선정부와 대한제국은 이렇게 무능하게 보냈을까?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갑신정변의 결과 한성조약과 텐진조약이 체결되고 텐진조약에 의해 청일양국은 조선에 출병할 때 서로 통보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우리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1884년부터 1894년까지 10년동안 무슨일들이 일어났을까. 청은 1888년 북양함대를 창설하고 일본 역시 해군력을 강화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다오위다오, 센카구열도를 둘러싸고 방공식별구역을 상호선포하여 비행기가 출격하면 상호 요격하고 함정이 오면 같이 대응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일본의 힘을 빌어 개혁을 해보려고 하였던 김옥균이 상해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되어 시신이 조선으로 돌아왔다. 고종은 죽은 김옥균의 시체를 능지처참하여 전국에 순회 전시하였다고 한다. 동학농민전쟁,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이 결정적인 폭발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전부터 일본상인들의 수탈, 양곡유출에 따른 방곡령과 이의 실패 등이 쌓이면서 조선정부와 외세 일본에 대한 분노가 쌓여오고 있었다.
이토오히로부미와 리홍장 당시 동아시아를 주도하던 인물들이다. 이토오히로부미의 고향 야마구치현(당시 죠수번)의 후배인 아베신조, 이등박문을 존경하는 아베신조, 이등박문의 스승이자 아베신조가 제일 존경한다는 정한론의 태두 요시다쇼인, 야스쿠니신사 제1호 위패로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화, 헌법개정 움직임 등과 중국 시진핑의 강력한 대일정책 등이 맞부딪히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모습은 어떠한가? 당시 동학농민군과 조선정부간의 심각한 민심이반과 대결처럼 국내적으로 과도한 이념논쟁, 편가르기로 분열되고 거기에 남북관계마저 분단되어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라 어떤면에서는 120년 갑오년 당시의 상황보다 더 심각한 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무력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하려면 남북간의 대화가 있어야 한다. 관계를 풀어내야한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간의 경제협력이 필요하다. 474 경제혁신3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4% 경제성장과 70% 고용률달성과 4만불시대 달성이다. 경제성장의 목표를 제시한 것은 만시지탄이라고 생각한다. 4% 경제성장은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 서비스산업혁신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남북경협에 그 해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가지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전략적인 도시가 바로 인천이다. 박근혜정부의 474 전략의 성패는 바로 인천의 발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기업인들에게 우리시의 역점방향을 잘 설명하였다. 많이 공감을 해주었다. 우리시가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일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집>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300만 경제도시, 도약하는 인천>의 슬로건으로 시민과 함께 하는 아시안게임 성공과 함께 잘사는 원도심, 그리고 투자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3가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우리 인천시는 2013년 12월말 현재 2,485건의 99억 1,700만불의 투자를 유치하였는데 민선5기때 유치한 액수가 61억 3,100만불로 전체 유치액의 61.8%이다. 경제자유구역은 외국인 직접투자유치 50억 7,700만불중 36억 8,100만불을 유치하여 전체의 72.6%를 민선5기 때 유치한 것이다.
강연을 마치고 바로 가평으로 향했다. 오늘 맹호부대, 즉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고 최희화 부대장에 대한 화랑무공훈장 전수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바쁜 일정중에도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은 최희화 대장이 8240 동키부대출신,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바로 백령도 서북 16개 섬을 탈환하여 지켰던 영웅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시와 관계된 분이다. 그리고 밥퍼목사로 유명한 최일도 목사님의 부친이기도 하다. 최일도 목사님의 초청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박종민 안보특보와 함께 참석하였다. 맹호부대는 우리나라 육군 최초의 창설부대이고 최초의 월남파병부대이자 최초의 기계화사단이다. 이석구 사단장은 육사 41기로 나와 같은 또래이다. 절친한 친구인 육군사관학교 박석봉 대령의 동기, 친구이기도 하다. 최일도 목사님의 아들 최산이 이 부대의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한달 남겨두고 있다. 최희화 대장의 여러 공적이 입증되어 뒤늦게나마 화랑무공훈장을 받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가족들에게 축하인사를 보냈다. 부대에서 오찬을 나누면서 사단장과 연대장, 간부들을 격려하였다.
5대 LH 박인서 인천사업본부장이 신임인사차 내방하였다. 1959년 생으로 우리 인천광성고등학교 출신으로 이성만 의장의 2년 선배라고 한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 인천대에서 석, 박사과정을 마친 우리 인천분이다. 황종철 본부장 후임으로 오게되었다. 환영을 표시하였다. 십정2지구 사업의 조속한 추진 필요성과 대헌공고 지역 보상착수문제를 이야기하였다. 루원시티문제와 검단신도시문제도 상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