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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제사,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1)
하계상 삼육대학교 신학대학 신학과 및 신학대학원 부교수
I. 문제의 제기 및 연구방법의 진술 창세기 4장은 1절 하단의 번역 및 해석 문제,2) 가인의 제사가 가납되지 못한 이유와 관 련된 문제,3) 그리고 7절의 번역 및 해석 문제 등 번역과 해석의 난제들이 많다. 그 중에서 1) 이 논문은 제97차 한국구약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했던 것을 성결대학교 임시영 박사의 논찬 중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반박하면서 부분적으로 수정 보완한 것이다. 2) 이 주제에 관한 논의들과 문헌들은 John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 2 nd ed., ICC, vol. 1 (Edinburgh: T & T Clark, 1930), 102-103, Claus Westermann, Genesis 1-11: A Commentary, trans. John J. Scullion (Minneapolis, MN: Augsburg Pub. House, 1984), 289-292,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BC, vol. 1 (Waco, TX: Word Books, 1987), 101-102,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 NICO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0), 220-221, Ellen van Wolde, “The Story of Cain and Abel: A Narrative Study,”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52(1991), 26-28, Afolarin Olutunde Ojewole, “The Seed in Genesis 3:15: An Exegetical and Intertextual Study” (Ph.D dissertation, Andrews University, Seventh-day Adventist Theological Seminary, 2002), 252-266, 그리고 C. John Collins, Genesis 1-4: A Linguistic,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Phillipsburg, NJ: P&R, 2006), 194-198 등을 참조하라. 이 주제와 관련된 필자의 논문은 다른 기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3) 이 주제에 관한 논의들과 문헌들은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1930), 103-105, Westermann, Genesis 1-11(1987), 294-298, Wenham, Genesis 1-15(1987), 103-104;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2-224; Herschel H. Hobbs and Joel D. Heck, “Was Cain’s Offering Rejected by God Because It Was Not a Blood Sacrifice?,” in The Genesis Debate: Persistent Questions about Creation and the Flood, ed. Ronald F. Youngblood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90), 130-147, 손석태, 『창세기 강의』(서울: 성경읽기사, 1993), 75-76, 장석정, “가인과 아벨 이야기 I (창 4:1-8): 본문 구성분석(Composition Analysis),” 「구약논단」 제5집(1998년 10월 15일), 5-24, 강성열, 『현대인을 위한 창세기 강해』(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76-79, 차준희, 『창 세기 다시 보기』(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38-40, 천사무엘, 『창세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1(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10-11, 이희학, 『창세기 1~11장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151-154, Collins, 199-200, 215-219, 그리고 제82차 한국구약학 회 추계학술대회(2009년 9월 24일)에서 발표한 이영재의 논문, “창세기 4장 2절의 ‘오베드 아다 마’”와 그 논문에 대한 김한성의 논찬 등을 참조하라. 야훼께서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가에 대하여 학자들이 제시한 의견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농민보다 는 유목민을 더 선호하셨다는 의견(H. Gunkel); (2) 하나님은 동물의 희생 제사를 농산물의 제사 보다 더 선호하셨다는 의견(J. Skinner, E. Jacob); (3) 하나님의 동기는 불가해하며, 하나님의 선 택의 신비요 그분의 독자적 주권을 보여준다는 의견(G. von Rad; B. Vawter; F. W. Golka; C. Westermann); (4) 히브리서 11:4에 근거하여 하나님만 아시는 그들의 서로 다른 동기가 결정적이 었다는 의견 (J. Calvin; A. Dillmann, S. R. Driver, E. König); (5) 제물의 질에 반영된, 예배에 대한 그들의 서로 다른 태도가 결정적이었다는 가장 일반적인 의견; (6) 창세기 4:4b-5a에서 제물 과 제물을 드리는 자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제물에 선행하여 제물을 드리는 자가 언급된 것은 제 물보다 제물을 드리는 자의 인격과 삶이 결정적이었다는 의견(C. J. Collins, 손석태, 장석정, 강성 열, 차준희, 이희학); (7) 하나님은 탐욕적인 인간이 교묘하게 자연으로부터 강제한 것보다 자연에 의해 저절로 자라는 것에 의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의견(Josephus). 도 특히 가인의 제사를 둘러싼 논쟁과 더불어 창세기 4:7의 번역과 해석을 둘러싼 논쟁4) 은,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고 합의점이 거의 없어 여전히 치열한 가운데 있다. 그 논쟁 들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가인의 제사 문제와 창세기 4:7의 번역 및 해석 문제는 그 각각의 논의에서 서로 배제되어 있지만,5)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밀 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창세기 4:7의 난제를 푸는 것이 가인의 제사에 관한 논쟁을 종식 시킬 수 있는 길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문제들이 따로 다루어져 온 것 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본 논문은 공시적/문학적 관점에서 진행할 것이며, 따라서 창세기 4:7의 문법적·구문론적 고찰을 근거로 하되 창세기 3-4장의 문맥을 고려한 창세기 4:7의 적확한 번역과 해석을 통 하여 가인의 제사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II. 창세기 4:7에 대한 문법적·구문론적 고찰 창세기 4:7은 그 번역 및 해석에 있어서 오래된 난제이다. 오토 프록쉬(Otto Procksch) 가 “창세기에서 가장 어려운 절”6)이라고 언급하기 훨씬 전에 이미 “[미쉬나와 탈무드의] 요마(Yoma) 52a-b는 이 본문을 그것의 정확한 문맥을 결정할 수 없는 본문들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7) “그 본문을 바꾸지 않고 이 구절의 문법적 그리고 어의적 구조를 설명할 수 있었던 저자는 지금까지 없었다.”8)고 말할 정도로 이 본문의 번역과 해석을 위한 그 숱 4) 이 주제에 관한 논의들과 문헌들은 Westermann, Genesis 1-11(1987), 298-301, Wenham, Genesis 1-11(1987), 104-106,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5-227, van Wolde, “The Story of Cain and Abel,” 29-32, 그리고 Joaquim Azevedo, “At the Door of Paradise: A Contextual Interpretation of Gen 4:7,” Biblische Notizen 100(1999), 45 n. 2 등을 참조하라. 5) 외국과 한국 공히 창세기 4:7과 상관없이 가인의 제사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외국의 경우에는 창 세기 4:7의 히브리어 본문에 문제(textual problem)가 있다고 생각하고 수정(textual emendation) 을 가하는 시도를 해왔다. 6) D. Otto Procksch, Die Genesis,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Band I, 2./3. Aufl. (Leibzig: Erlangen, 1924), 47, Westermann, 300에서 재인용; 참조, Wenham, 104, “‘창세기에 서 가장 모호한 절’(프록쉬).” 7) Nahum M. Sarna, Genesis, The JPS Torah Commentary (Philadelphia, PA: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9), 33. 8) Van Wolde, “The Story of Cain and Abel,” 31. 엘렌 판 올더(Ellen van Wolde)는 창세기 4:7 의 히브리어 본문을 수정하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으나, 필자의 논문의 해당 부분에서 지적하듯이 문법적·구문론적 부분에서 실패했다. 요아킴 아즈베도(Joaquim Azevedo)도 창세기 4:7의 히브리어 본문을 수정하지 않고 담화 언어학(discourse linguistics)과 문법적·구문론적 분 석, 그리고 고대 근동의 배경에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데, 필자의 견해와 부분적으로는 차 이가 있으나 거의 일치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요한 에르베스(Johann Erbes) 교수에게서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을 배웠던 바로 그 강의에, 비록 필자는 청강생이었지만, 함께 참석했기 때 문이다(참조, KyeSang Ha, “Cultic Allusions in the Suffering Servant Poem (Isaiah 52:13-53:12)” [Ph.D. dissertation, Andrews University, Seventh-day Adventist Theological Seminary, 2009], xvi). 필자는 본 논문을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2015년 3월 11일에 있었던 삼육 대학교 신학대학원 콜로퀴움 시간에 “가인의 제사, 무엇이 문제였나?”라는 주제로 발표했으며, 그 후 미국 앤드루스 대학 신학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수학 중인 박순규 목사에게 요청하여 3월 13일에 야 비로소 아즈베도의 논문을 접할 수 있었다. 에르베스는 일찍이 그 강의를 통하여 문법적·구문론 적 고찰에 있어서 필자의 논문에서 짚고 있는 몇몇 부분들을 언급했었다. 그러므로 아즈베도가, 비 록 보다 넓은 관점에서 창세기 4:7을 자신의 논문에서 다루었을지라도, 창세기 4:7을 문법적·구문 론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에르베스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 본문비평적인 제안들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제안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복잡하 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9) 예를 들면,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의 본문 비평 장치(apparatus criticus/critical apparatus)에 있는, 칠십인 역(LXX)에 기초한 새로운 히브리어 본문 제안도 그러하다.10) 창세기 4:7은 칠십인 역에 “네가 [그것을] 옳게 가져왔으나 옳게 쪼개지 않았다면 죄를 짓지 않은 것이냐? 잠잠하라. 네게 그의 순복이 있을 것이며,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다.”로 되어 있다.11) 칠십인 역의 창세기 4:7a에 근거하여 창세기 4:7aβ의 #bero taJ 'x; xt;P,l; 부분 대 신에 #bor. t;)aj ;)x); xT;n;l.[각을 뜨는 것(xt;n;)) 강세형 부정사 연계형]에 있어 너는 죄를 범하였다. 엎드리라.)가 새로운 히브리어 본문으로 제안되었다. 그러나 “각을 뜨는 것”은 짐승의 희생 제물과 관련된 것이므로(참조, 출 29:17; 레 1:6, 12; 8:20)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하나 님께 제물을 드렸다는 창세기 4:3의 기록과 조화될 수 없다. 게다가 창세기 4:7b에 대해서 는 칠십인 역과 전혀 상관없이 AB yliv .m.ti T.a ;w . Atq 'WvT %y il ;a ew.(그[가인]의 소원이 너[죄]에게 있 고, 너[죄]는 그[가인]을 다스릴 것이다.)가 새로운 히브리어 본문으로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하나님이 가인 자신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인데, 가인을 가리켜 “네”가 아니고 “그”로 지칭하는 것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뿐만 아니라 칠십인 역에 근거하여 제안된 창세 기 4:7aβ에는 “죄”라는 명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창세기 4:7b에서 “죄”에 대한 인 칭대명사와 접미사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이런 식의 히브리어 본 문 제안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데, 그 방식에 일관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 면 창세기 4:7aβ의 마지막 부분은 칠십인 역에 근거하여 새로운 히브리어 본문을 제안한 반면, 창세기 4:7b에 대해서는 마소라 사본(MT)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는 칠십인 역(“네게 그의 순복이 있을 것이며,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다.”)을 완전히 무시하고 마소라 사본을 임 으로 수정하여 새로운 히브리어 본문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4:7에서 어떤 의미를 끌어내는 모든 노력을 존 스킨너(John Skinner)는 “놀라운 재주”(tour de force)로 언급했는데,12) 그 난제를 푸는 것이 과연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창세기 4:7의 적확한 번역과 해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히브리어 본문을 우리는 새롭게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AB-lv 'm .T i hT 'a ;w > Atq'WvT . ^yl,aew > #b er o taJ'x ; xt ;P ,l; byjiyt e al{ ~a iw > ta ef . byjiyT e-~a i aAlh] 창세기 4:7 이 히브리어 본문에서 의문사 하(h])는 비록 한 번만 나오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접속사 인 임(~ai, “만약, if”)이 이끄는 절들 모두에 적용되므로,13) 창세기 4:7은 하나님이 가인에게 하신 “두 개의 수사 의문문과 한 개의 진술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14) 창세기 4:7aα의 서에트(ta ef.)는 나사((אָׂשָנ” ,들어 올리다, 짊어지다, 옮기다, 갖고 가다[lift 9)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6. 10) 필자의 논문에 대한 논찬 중 특히 이 점에 주의를 환기시켰던 임시영 박사에게 이 기회를 빌어서 감사를 드린다. 11) 참조, BibleWorks, Version 9. 12)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1930), 107. 13) Francis I. Andersen, The Sentence in Biblical Hebrew, Janua Linguarum, Series Practica 231 (The Hague/Paris: Mouton, 1974), 114. 참조, Wenham, Genesis 1-11(1987), 94;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6-227. 14) 참조,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7. (up), bear, carry, take (away)]”)15)의 기본형 부정사의 연계형(Qal inf. cstr.)이지만, 그 것에 대한 명사 상당어구가 본문에 생략되어 있어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16) 그러나 서에트 (ta ef.)는 바로 앞에 있는 6절의 “안색이 변함이 어찜이뇨”의 히브리어 본문의 자구적 의미인 “왜 네 얼굴이 떨어졌느냐”에서 “떨어지다”(나팔[לַפָנ([와 대조를 이루고 있으므로, “네 얼 굴”이 생략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17) 창세기 4:5bβ의 가인의 “안색이 변하니”(문자적 으로는 “그의 얼굴이 떨어졌다”)와 연장선상에 있음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4:7aα는 책망과 함께 약속으로서 “네가 선을 행하면 네 얼굴이 들리지 않 겠느냐?”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창세기 4:7aβ는 “[네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라.”고 번역되어 있으 나, 이것은 문법적·구문론적으로 문제가 있는 번역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조건절 다음에 나 오는 귀결절의 주어인 “죄”(핫타트[אתָּטַח ,[여성 명사 단수 절대형[n. f. s. abs.])와 그 동사 인 “엎드리다”(로베츠[#bero], 라바츠[ץַבָר[의 기본형 분사 남성 단수 절대형[Qal ptcp. m. s. abs.]) 사이에는 성의 불일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 난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죄(핫타트)를 의인화하는 주장18)이나 아카드어 ‘라비추’(rābiṣu)와 연결 지어 앗시리아의 마귀(demon)와 연관 짓는 주장19)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구약에 죄의 의인화가 민수기 32:23에 있 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곳에는 성의 불일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죄가 주어로 사 용된 경우에도 그 동사와 성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전혀 없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20) 15) 참조, BDB, 669; HALOT, 2:724. 16) 참조,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1930), 106-107과 Westermann, Genesis 1-11(1987), 299 등. 17) 참조, Gerhard von Rad, Genesis: A Commentary, OTL, rev. ed. (Philadelphia, PN: Westminster Press, 1973), 105; Karel Adriaan Deurloo, “hqwvt ‘dependency’, Gen 4:7,” ZAW 99 (1987): 405; van Wolde, “The Story of Cain and Abel,” 30, Collins, Genesis 1-4(2006), 198-199 등. 가인의 얼굴과 관련된 것은 그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은 것 에 대한 반응에서 출발하여 계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창 4:5bβ-7aα)을 고려할 때, “하나님이 가 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는 목적을 지닌 이 문장은… 제사를 드리기 이전의 가인의 생활 모습이 불의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이희학, 『창세기 1~11장의 신학』[2003], 156)는 주장은 옳다고 할 수 없다. 18) 참조, von Rad, Genesis(1973), 105;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7-228; van Wolde, “The Story of Cain and Abel,” 32; 손석태, 『창세기 강의』(1993), 76-77; 천사무엘, 『창세기』(2001), 111-112 등. 판 올더는 창세기 4:7aβ를 “and when you do not do well, there is at the door sin, (namely) being on the lurk?”라고 번역함으로써 “죄”(핫 타트[אתָּטַח([와 “엎드리다”(로베츠[#ber o])의 성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19) 둠(H. Duhm), 클로젠(G. E. Closen), 헤쓸러(B. Hessler), 스파이서(E. A. Speiser), 카숫토(U. Cassuto.), 사르나 등(참조, Westermann, Genesis 1-11[1987], 299, 301)과 Nahum M. Sarna, Understanding Genesis, The Heritage of Biblical Israel, vol. 1 (New York: Schocken Books, 1970), 30, 36 n. 90, 그리고 이희학, 『창세기 1~11장의 신학』(2003), 156. 20) 민수기 32:23에는 “너희가 만일 그 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אתָּטַח(가 정녕 너 희를 찾아낼(אָצְמִּת(줄 알라.”고 하여 하단에서 문장의 주어로서의 핫타트가 그 동사와 성이 일치하 고 있다. 사무엘상 2:17(“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hl 'AdG> ~yrI[ 'N >h; taJ;x; yhiT.w: da om.]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와 14:38(“사울이 가로되 너희 백성의 어른들아 다 이 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뉘게 있나[~AYh; taZ Oh; taJ'x ;h; ht 'y >h' hM 'B ;] 알아 보자.”)도 각각 상단과 하 단에서 문장의 주어로서의 핫타트가 그 동사와 성이 일치하고 있다. 심지어 핫타트의 남성 명사 헤 트(אְטֵח(가 문장의 주어로 나오는 신명기 24:15과 이사야 1:18에서조차도 그 동사와 성이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창세기 4:7을 제외하고는 구약 전체에서 핫타트(אתָּטַח(와 헤트(אְטֵח(가 문장의 주어로 서 사용될 때 그 동사와 성의 불일치를 보이는 곳이 없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라바츠(ץַבָר(가 창세기 4:7을 제외한 구약의 그 어느 곳에 서도 ‘휴식하기 위해 누워 있는’(lie down/couch for rest) 상태에 대한 동사이지 ‘기습하기 위해 잠복/매복하고 있는’(lurk/crouch for sudden attack) 상태에 대한 동사가 아니라는 것이다(특히 시 23:2과 사 11:6, 7의 용례를 보라). 빅터 해밀턴(Victor Hamilton)은 “창세 기 4:7 외에 창세기 49:9가 ‘매복하다, 잠복하다’라는 번역을 허용하는 또 다른 분명한 예이 다.”라고 주장했으나,21) 창세기 49:9 하단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그의 주장은 결코 옳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유다]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로 개역 한글판에 번역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본문에 의하면 “그 [유다]의 수그리고 엎드려 누움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일으킬 수 있으랴” 라고 번역해야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라바츠(ץַבָר (대신에 성적 함의의 용례도 갖고 있는 샤카브(בַכָׁש(22)를 사용한 것 외에는 똑같은 구절이 민수기 24:9 상단에 있기 때문이다. 사사 기 5:27은 카라(עַרָּכ(23), 나팔(לַפָנ ,(그리고 샤카브(בַכָׁש(를 순차적으로 병치하여 사람이 치명 상을 입고 파멸하는(샤다드[דַדָׁש[24) 수동 분사) 과정을 단계별로 묘사하고 있다.25) 이 구절 샤다드], נָפַל]나팔], כָּרַע]카라(하부 하단 와])שָׁכַב]샤카브], נָפַל]나팔], כָּרַע]카라(하부 상단 의 [דַדָׁש [수동 분사)를 비교해 볼 때 샤카브(בַכָׁש(와 샤다드(דַדָׁש (수동 분사가 서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사사기 5:27의 이 사실들과 민수기 24:9 상단에서 라바츠(ץַבָר (대신에 샤카브 (בַכָׁש(를 사용한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라바츠(ץַבָר(도 샤카브(בַכָׁש(와 마찬가지로 ‘기습을 위 한 잠복/매복’의 의미는 없다고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다른 사실은 라바츠(ץַבָר( 의 파생명사 레베츠(ץֶבֵר ,잠 24:15; 사 35:7; 65:10; 렘 50:6)와 마르베츠(ץֵּבְרַמ ,겔 25:5; 습 2:15)도 ‘휴식의 장소’를 의미할 뿐이지 결코 ‘매복의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26) 그리고 또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매우 의미심장한 사실은 ‘급습을 위한 매 복/잠복’과 관련하여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아라브(בַרָא(27)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사를 창세기 4:7에서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곳에서 그 동사를 라 바츠(ץַבָר(와 병치하거나 평행하게 사용한 예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근동의 문 헌에 기초한 “문지방 악령”(Schwellendämon)과 관련된 주장28)은 이제 파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29) 그러므로 창세기 4:7aβ의 귀결절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우리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찾아야 한다. 21)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7. 22) “눕다(lie down), 동침하다(lie with)”(참조, BDB, 1011; HALOT, 4:1486-1488). 23) “굽히다/숙이다(bow down)”(참조, BDB, 502; HALOT, 2:499). 24) “난폭하게 다루다(deal violently with), 파괴하다/파멸시키다(destroy)”(BDB, 994;HALOT, 4:1418-1420). 25) 참조, 사사기 4:17-22; 5:24-27. 26) 참조, BDB, 918; HALOT, 2:631; 3:1182. 27) “매복/잠복하다(lie in wait; ambush)”(참조, BDB, 70; HALOT, 1:83). 아라브(בַרָא(에서 파생된 명사들로서 ‘매복/잠복’이나 ‘매복처/잠복처’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들을 위해서는 BDB, 70; HALOT, 1:83; 3:541을 참조하라. 28) 이희학, 『창세기 1~11장의 신학』(2003), 156이 추종하는 둠(H. Duhm)과 카우펠(H. Kaupel) 등 의 주장이다. 29)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문지방 악령”과 관련된 주장을 뒷받침해 왔던, 근거없는 라바츠(ץַבָר(의 의미, 즉 “잠복/매복하다”를 BDB와 HALOT를 비롯한 히브리어 사전들 및 신학사전 들에서 삭제하는 작업이다. 히브리어 핫타트(אתָּטַח(는 흥미롭게도 “죄(sin)”와 더불어 그 “죄”를 대속(代贖)하거나 의 식적인 부정을 정결(淨潔)케 하는 수단인 “속죄제/속죄제물(sin offering; 보다 넓은 의미로 의 정확한 번역은 “정결제/정결제물”[purification or purgation offering]임)”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30) 특별히 레위기와 민수기에서 핫타트는 “죄”(24x)와 “속죄제[물]/정결제 [물]”(96x)의 의미로 수차례 번갈아가며 사용되었다.31) 따라서 창세기 4:7의 핫타트가 “죄”가 아니라 “속죄제[물]/정결제[물]”을 의미하고32) 그 제물에 해당하는 짐승이 수컷이 라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지 않겠는가? 레위기 4:28-2933)과 5:6에서는 암염소로, 레위기 4:32과 5:6에서는 어린 양 암컷으로, 레위기 5:11-12에서는 고운 가루 에바 1/10로 “속죄제”(핫타트)를 드리고, 민수기 19:8-9 에서는 의식적인 부정으로부터 정결을 위해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을 만들 용도로 “붉은 암송아지”를 잡은 후 태워 재를 만드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각각의 경 우에도 핫타트로 사용되는 제물이나 핫타트를 모두 여성으로 지칭하고 있다. 특히 “이는 속 죄제라.”고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이”에 해당하는 지시대명사로 여성(히[יאִה” ,[she”)을 사 용하여 성을 일치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예외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컷의 짐승 을 속죄제/속죄 제물로 사용하고 있으며,34) 수컷의 경우에는 “이는 속죄제라.”고 마무리하 는 부분에서 “이”에 해당하는 지시대명사로 남성(후[אּהו” ,[he”)을 쓰고 있어 성의 불일치 가 없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 핫타트가 주어로 사용된 경우에 그 동사와 성이 불일치하는 예가 전 혀 없을 뿐만 아니라 핫타트 용도의 짐승을 지칭하는 인칭대명사도 성의 불일치가 없다.35) 여기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수컷의 짐승을 속죄제/속죄 제물로 사용한 경우 그것에 대한 지 30) 핫타트의 동사 하타(אָטָח(와 그 모든 파생 명사들, 그리고 그 용례들에 관해서는 특히 KyeSang Ha, “Cultic Allusions in the Suffering Servant Poem (Isaiah 52:13-53:12),” 154-164를 참조 하라. 31) 참조, 앞의 논문, 160-161. 32) 참조, 윌리암 매기(William Magee)의 주장(William Magee, The Works of the Most Reverend William Magee, ed. A. H. Kenney [London: T. Cadell, Strand. W. Blackwood and Sons, Edinburgh; and A. Milliken, Dublin, 1842], 1:458-460; Henry Alford, The Book of Genesis and Part of the Book of Exodus: A Revised Version, with Marginal References, and an Explanatory Commentary [London: Alexander Strahan and Co., 1872; Reprint [Minneapolis, MN: Klock & Klock Christian Publishers, 1979], 21)과 YLT(Young’s literal translation)의 번 역. 그러나 YLT는 창세기 4:7b에 대해서 바람직하지 못한 번역(“and unto thee it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it.”)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속죄제의 용도는 부지중에 범한 죄(레 4:2, 13, 22, 27) 뿐만 아니라 알고 지은 죄(레 5:1)에도 해당하므로 가인과 아벨의 본문에서 속죄제를 다 루고 있는 것 자체는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33) 개인이 부지중에 범한 죄에 대해서는 암염소를 속죄제로 드리므로 가인의 경우에는 개인이므로 암염소가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4:6-7a이 암시하는 바에 의 하면 가인이 부지중에 범한 죄와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게다가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레위 기에서처럼 세부적으로 규정화된 제사법이 존재하기 전이라고 우리가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34) 참조, 출애굽기 29:14, 36; 레위기 4:21, 24; 5:9; 민수기 16:9[10]; 28:22; 29:5, 11, 16, 19, 22, 25, 28, 31, 34, 38; 에스라 8:35; 에스겔 43:25; 45:22; 미가 6:7; cf. 레위기 5:7; 14:22, 30-31; 15:14-15, 30. 35) 히브리어에서 어형론적으로는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취급되는 명사들이 있기는 하다 (참조, GKC, § 122 r-s). 해밀턴이 지적했듯이(참조,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7), 그 대표적인 예가 전도서의 저자로 언급된 코헬레트(tl ,h ,qo)이다. 그러나 그러한 명사들은 관 직명 또는 집합명사와 관련된 다수의 명사에 한정된 것이지 히브리어 핫타트와 관련된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핫타트를 의인화한 남성으로 보고 전개한 해밀턴의 주장은 그러한 명사들에 대해 단지 피상적으로만 이해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시대명사는 남성을 사용하고 있음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36) 따라서 창세기 4:7의 핫 타트가 “죄”가 아니라 “속죄 제물”을 의미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짐승이 수컷이라면,37) 주어 인 핫타트와 그 동사의 성은 불일치가 아니라 일치이므로, 성의 불일치로 간주되었던 그 문 제가 쉽게 해결된다. 따라서 창세기 4:7aβ는 “[네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속죄 제물이 문 에 엎드려 있지 않느냐?”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38) 창세기 4:7b는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로 번역되어 있으나, 이 번역도 문법적·구문론적으로 문제가 많다. 왜냐하면 4:7bα에서 “소원”이라고 번역된 히 브리어에 붙어있는 대명 접미사와 4:7bβ에서 “다스릴지니라”의 목적어에 해당하는 대명 접 미사가 모두 남성 3인칭 단수이기 때문에 “죄”(핫타트)를 지칭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세기 4:7b는 하나님이 하와에게 하셨던 선고의 일부인 창세기 3:16b의 “너는 남 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히브리어 본문[%B'-lv 'm .y I aWhw> %teq 'WvT. %v eyai-la,]의 문자적인 의미는 ‘네 남편에게 너의 사모가 있을 것이고, 그는 너를 다스릴 것이다.’임)와 완전한 평행을 이루고 있으므로 그것의 인용에 가까운 인유로 간주할 수 있다.39) 따라서 창 세기 4:7b를 3:16과 일관성 있게 번역하면 “그러면 그는 너를 사모하고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니라.”(히브리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러면 네게 그의 사모가 있을 것이고, 너는 그 를 다스릴 것이다.’)가 된다.40) 여기서 “사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트슈카”(הָקּוׁשְּת” ,갈 망/열망[longing/desire]”)인데, 창세기 3:16에서는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갖는 것으로, 아 가 7:10[H 11]에서는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갖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41) 창세기 3:16과 36) 참조, Magee, The Works of the Most Reverend William Magee(1842), 459. 37) 속죄 제물은 반드시 수컷이어야 하는 당위성(참조, Azevedo, 53)보다는 가인이 드리도록 권고받 고 있는 속죄 제물이 수컷일 개연성에 필자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왜냐하면 아벨의 제물이 암컷이 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4:4에서 아벨이 드린 제물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인데, 여기서 “그”는 히브리어 본문에서 3인칭 여성 복수 접미사에 해당한다. 그리고 YLT(Young’s literal translation)는 “양의 첫 새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본문을 “the female firstlings of his flock”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38) 마틴 케쓸러(Martin Kessler)와 캐럴 덜루(Karel Deurloo)는 성의 불일치 문제를 피하여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네가 죄의 문에 엎드리느라.”고 번역한 후, “선을 행치 아니하는 것으로부터 죄를 짓는 것까지는 단지 한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해석했다(참조, Martin Kessler and Karel Deurloo, A Commentary on Genesis: The Book of Beginnings [Mahwah, NJ: Paulist Press, 2004], 62). 그러한 번역을 Deurloo는 이미 그의 소논문 “hqwvt ‘dependency’, Gen 4:7,” 405에서 제시했다. 39) 참조, Alford, The Book of Genesis and Part of the Book of Exodus(1872), 21,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1930), 106, von Rad, Genesis(1973), 105, Wenham, Genesis 1-11(1987), 81, 106, Deurloo, “hqwvt ‘dependency’, Gen 4:7,” 405,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1990), 227, Kessler and Deurloo, A Commentary on Genesis: The Book of Beginnings(2004), 62 등. 스킨너, 게르하르트 폰 라트 (Gerhard von Rad), 고든 웬험(Gordon J. Wenham), 그리고 해밀턴은 이 인유를 언급하면서도 참 으로 유감스럽게 창세기 4:7b의 번역과 해석에는 전혀 반영시키지 못했다. 40) 판 올더는 창세기 4:7b를 “The desire to be on the lurk is for you, but you can master it.” 이라고 번역하고 야수처럼 아벨을 해치려고 숨어 기다리는 가인의 나쁜 의도의 열망을 드러내시고 그 열망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경고로 이해했다(참조, van Wolde, “The Story of Cain and Abel,” 32). 그러나 “열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트슈카(הָקּוׁשְּת(는 여성 명사이므로, 그것 은 4:7bβ의 남성 대명 접미어와 성이 불일치한다. 따라서 판 올더는 자신의 번역 및 해석이 또 다 른 성의 불일치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41) 참조, Marcus Jastrow, A Dictionary of the Targumim, Talmud Babli, Yerushalmi and Midrashic Literature (New York, NY: Judaica, 1971), 1703. 이 사전에서 ‘트슈카’(הָקּוׁשְּת(의 용 례로 시편 65:10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른 히브리어(슈크[קּוׁש([의 용례이므로 틀린 언급이 다. 아가 7:10[H 11]에서 이 용어가 남자와 남자 사이에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인 “죄” 가 남성인 “너”[가인]를 향한 사모 또는 남성인 “너”[가인]가 여성인 “죄”에 대한 사모로 창세기 4:7에서 해석하는 것이 구약의 다른 두 용례에 부합된다고 하는 주장은 앞에서 이 미 짚어보았듯이 창세기 4:7의 문법적·구문론적 고찰과 BHS의 본문비평 장치에서 제시된 새로운 히브리어 본문 제안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볼 때 결코 수용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용어는 죄가 사람에게 갖는 것으로서 혹은 사람이 죄에 대해 갖는 것으로서 사용될 수 없다 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4:7에서 남자가 남자에게 가질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 이 언급하고 있다면 이것은 결코 성욕일 수는 없을 것이며,42) 오히려 선망과 존경이라고 보 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는 창세기 4장의 문맥상 당연히 아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4:7b는 “그러면 네게 그의 사모[선망과 존경]가 있을 것이고,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니리라.”라고 번역해야 마땅할 될 것이다.43) 캐럴 덜루(Karel Deurloo)는 “창세기 4:7에 관하여 울리히 뵐러(Ulrich Wöller)와 머나헴 벤 야샤르 (Menahem Ben Jashar)가 가진 최근의 논의의 설득력 있는 결과는 lv'm .T i 다음에 오는 AB는 taJ'x ;(여성형)가 아니라 아벨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이다.”라고 인정했다.44) 덜루가 그 결 과를 인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창세기 2:18-3:24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 내에서 서술되었 듯이 창세기 4장은 남자와 그 아우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창세기 4:7을 그 문맥에서 다루어야 하는데 바로 그 창세기 4:7을 남자와 그 아우의 관계에 대한 진술로 해 석해야 한다는 것이다.45)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마샬(לַׁשָמ(과 평행되게 트슈카(הָקּוׁשְּת(를 보 다 더 사회적인 중요성이 부여된 의미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46) 42)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트슈카’(הָקּוׁשְּת(를 ‘성적인 열망’(sexual desire or yearning)으로 해석한 트 리블(Phyllis Trible)의 주장(참조, Phyllis Trible, God and the Rhetoric of Sexuality, Overtures to Biblical Theology [Philadelphia, PA: Fortress Press, 1978], 159-160)이나 데 이빗슨의 주장(참조, Afolarin Olutunde Ojewole, “The Seed in Genesis 3:15: An Exegetical and Intertextual Study” [Ph.D dissertation, Andrews University, Seventh-day Adventist Theological Seminary, 2002], 383 n. 1), 그리고 “성욕”(sexual appetite)으로 해석한 웬험의 주 장(참조, Wenham, 81)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트리블이 창세기 4:7에서의 그 단어의 용례를 전적으로 다른 것으로 인정하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참조, Trible, 164 n. 18). 43) 참조, LXX; Magee, The Works of the Most Reverend William Magee(1842), 460; Alford, The Book of Genesis and Part of the Book of Exodus(1872), 21; Deurloo, “hqwvt ‘dependency’, Gen 4:7,” 405. 44) Deurloo, “hqwvt ‘dependency’, Gen 4:7,” 405. 울리히 뵐러와 머나헴 벤 야사르의 논의에 관해 서는 Ulrich Wöller, “Zu Gen 4:7,” ZAW 91 (1979): 436과 Menahem Ben Jashar, “Zu Gen 4:7,” ZAW 94 (1982): 635, 그리고 Ulrich Wöller, “Zu Gen 4:7,” ZAW 96 (1984): 271-272을 보라. 45) Deurloo, “hqwvt ‘dependency’, Gen 4:7,” 405. 마틴 케쓸러(Matin Kessler)와 캐럴 덜루는 창 세기 4:7b를 “너[가인]에게 그[아벨]의 사모가 있고,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번역한 후 “이 이야기의 주제, 즉 남자와 그 동생이 여기 말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때 문제 들이 사라진다.”고 주장하면서 남자와 그 아내에 관해서 언급한 창세기 3:16b와의 연관성을 지적 했다(참조, Kessler and Deurloo, A Commentary on Genesis: The Book of Beginnings[2004], 62). 그러나 케슬러와 덜루는 ‘트슈카’(הָקּוׁשְּת(와 관련하여 쿰란 문헌이 “(의존 적인) 경향”을 그 의미로 지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고대 사회에서 여성이 그 남편에게 의존했 듯이, 동생은 형에게로 적응시킨다. 이 이야기에서 형은 자신의 거룩한 의무를 등한시한다.”고 언 급했다. 그 결과 케슬러와 덜루는 아가에서처럼 트슈카는 남자가 여자에 대하여 갖는 것일 수도 있 음을 간과했다. 46) Deurloo, “hqwvt ‘dependency’, Gen 4:7,” 406. 덜루는 ‘의존’(dependency), ‘헌신’(dedication), 그리고 ‘통제성’(directedness)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했으나, 이븐 에스라(Ibn Ezra)는 ‘순 종’(obedience), 이레니우스(Irenaeus)는 ‘종속’(subordination)으로 해석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 이상과 같은 문법적·구문론적 고찰을 통해서 볼 때 창세기 4:7은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권고인 동시에 그것에 순종할 경우의 약속으로서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해석해야 마땅할 것 이다. “네가 선을 행하면 네 얼굴이 들리지 않겠느냐?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속죄제물 이 문에 엎드려 있지 않느냐? [그것을 속죄제로 드려라.] 그리하면 그[아벨]의 사모[존경과 선망]가 네게 있을 것이고, 너는 그[아벨]을 다스릴 것이니라.” 속죄 제물을 희생으로 드리 지 않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죄로 인해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장자권(birthright)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가인에게 보여주신 것이다.47) 따라서 창세기 4:7은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경고가 아니라 은혜의 권고, 즉 복음이었던 것이다. III. 창세기 3-4장의 문맥에 의한 고찰 창세기 4:7을 앞에서와 같이 번역하고 해석하는 것이 창세기 4:7의 문맥에서 볼 때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을 검토하고자 창세기 3-4장의 문맥을 간략히 고찰하기로 한다. 1. 창세기 3장의 문학적인 구조 창세기 3장은 다음과 같은 교차대구적인 구조로 제시할 수 있다.48) A 뱀과 홀로 있는 여자; 하나님은 계시지 않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금령; 하와가 “선악을 알”도록 유혹을 받음(1-6절) B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7절) C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며 “아담을 부르시”다(8-9a절) D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다(9b-12절) E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신다(13절) F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신다(14-15절) E'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신다(16절) D'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다(17-19절) C' 여전히 동산에서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다(20절) B'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신다(21절) A' 하나님은 홀로 계심; 선악과를 먹지 않도록 하는 금령; 다(참조, Deurloo, “hqwvt ‘dependency’, Gen 4:7,” 406). 47) 참조, Magee, The Works of the Most Reverend William Magee(1842), 460. 장자의 장자권 상실은 특히 창세기에서 중요한 주제인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경우가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에서 에 서의 경우이며, 야곱의 열 두 아들의 이야기 중에서 르우벤의 경우이다. 에서의 경우에는 장자의 권리 중 부족의 영적 제사장이 되는 특권과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특권이 야곱에게 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르우벤의 경우에는 두 몫의 유산은 요셉에게,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창 참조, 48:5, 22),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특권은 유다에게(참조, 창 49:8-10), 그리고 제사장의 직분은 레위에게 (참조, 출 4:14; 28:1-2) 넘어갔다. 르우벤의 장자권 회복과 유다의 장자권 쟁취를 위한 암투는 Judah Goldin, “The Youngest Son or Where Does Genesis 38 Belong,”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96/1 (1977): 27-44와 Dohyung Kim, “The Comparison of Two Speeches Between Reuben and Judah in Genesis 42-43,” Korean Journal of Christian Studies 93 (2014): 43-59를 참조하라. 48) 참조, Ojewole, “The Seed in Genesis 3:15,” 98. “선과 악을 아는” 인간(22-24절) 선악과를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A와 A’)에도 불구하고, 뱀을 매개물로 사용하여 접근한 대적자의 유혹에 넘어가 여자가 선악과를 먹고 마침내 그 여자를 통하여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범죄한 인간은 무화과 나뭇잎을 가지고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고자 했다(B). 이것은 죄의 결과만 표면적으로 가리기에 급급한 인간 행위 중심의 자력구원 종교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찾아오셔서 범죄의 진상을 밝히시고(C-E) 뱀에 대한 징벌을 선고하시며 그 뱀을 매개물로 삼아 유혹한 대적자에게 파멸을 선언하시는 동시에 인간에게 고난과 희생의 메시아와 그의 승리에 대한 약속도 주신다49)(F, 교차대구적 중심). 이렇게 하나님은 먼저 복음을 주신 후 하와와 아담에게 심판을 선고하신다(E’-D’). 그러자 아담은 복음을 깨닫게 되고(C’), 하나님은 친히 (그리고 필시 짐승을 희생시킴으로써)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인간에게 입히신다(B’). 이것은 죄와 그 결과를 근본적으로 처리하는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의 타력구원 종교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50) 2. 제의(祭儀, cult) 모티프51)를 중심으로 한 창세기 3장과 4장의 문학적인 구조 1) 제의 모티프를 중심으로 한 창세기 3장의 문학적인 구조 α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음(창 3:7) β 메시아의 고난과 희생(15절) α’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심(21절) 이 구조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벌거벗음, 즉 죄와 그 결과는 메시아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2) 제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한 창세기 4:3-7의 문학적인 구조 α 가인의 제사(4:3) β 아벨의 제사(4:4a) β’ 하나님이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심(4:4b) 49) 하계상, “창세기 2-3장의 히브리어 아롬(~Ar['), 아룸(~Wr['), 에롬(~roy[e): 그 의미들과 번역들, 그리 고 그 절묘한 언어유희의 의도,” 「구약논단」 50집 (2013년 12월 31일), 151-152, 152 nn. 32-33. 50) 하나님이 인간에게 옷을 입히시는 모티프는 구약부터 신약까지 관통하는 핵심적인 구속의 모티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참조, 이사야 61:3-4; 에스겔 16:3-14; 스가랴 3:3-5; 마태복음 22:11-12; 누가복음 15:22; 로마서 13:14; 갈라디아서 3:26-27; 에베소서 4:24; 골로새서 3:10; 요한계시록 7:9; 19:7-8 등. 51) 창세기 2-4장의 제의적 모티프에 관한 자세한 다른 논의는 Gordon J. Wenham, “Sanctuary Symbolism in the Garden of Eden Story,” in I Studied Inscriptions from Before the Flood, Ancient Near Eastern, Literary, and Linguistic Approaches to Genesis 1-11, eds. Richard S. Hess and David Toshio Tsumura (Winona Lake: Eisenbrauns, 1994), 399-404와 Azevedo, 54-58을 참조하라. α’ 하나님이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심(4:5a) α’’ 가인의 격분(4:5b)과 하나님의 책망(4:6) α’’’ 가인에게 [아벨처럼] 속죄제를 드리라고 주신 하나님의 권면과 그에 따른 약속(4:7) 이와 같이 창세기 4장의 전반부도 제의적 문맥이므로 창세기 4:7(α’’’)도 창세기 3장의 제 의적 문맥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가인의 직업(農者)이 아벨의 직업(牧 者)과 다름에도 불구하고52) 이성적으로는 합당하게 보이는 가인의 제물인 “땅의 소산”을 가인과 함께 하나님은 열납하시지 않은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창세기 3장의 제의적 문맥에서 볼 때, 가인의 제물인 “땅의 소산”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만든 치마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가인의 제물은 아담과 하와가 엮어 만든 무화과 나뭇잎 치마처 럼 메시아의 고난과 희생을 예표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벨의 제물인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이 명시하는 짐승의 고난과 희생은, 하나님이 지어 아담과 하와에 게 입히신 가죽옷처럼 메시아의 고난과 희생이 예표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열납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3장에서 구속의 도리가 반영된 제사를 예시하 셨고, 인간은 창세기 4장에서 구속의 도리가 반영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었다. IV. 신약에 의한 고찰53) 가인에 대한 언급은 신약에서 요한일서 3:12와 히브리서 11:4에 나온다. 요한일서 3:12 은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 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11:4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πλείονα[πολύς의 비교급] θυσίαν)를 하나님께 드 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 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언급함으로써 요한일서 3:12이 말하는 아벨의 의로운 행위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히브리서 11:4의 바로 앞에 있는 3 절54)이 암시하듯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참조 8, 18 절)으로 보인다. 아벨이 의롭다고 증거를 받은(μαρτυρέω[마르투레오] 부정과거 직설법 수 동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의로운 52) 창세기 4:3-5a처럼 4:1-2도 다음과 같이 교차대구 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아벨의 직업과 아벨의 제사처럼 가인의 직업과 가인의 제사도 같은 연장선에 두고 있다. A 가인의 출생(4:1) B 아벨의 출생(4:2a) B’ 아벨의 직업(4:2bα) A’ 가인의 직업(4:2bβ) 53) 이 부분은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증에서라기 보다는 “구약과 신약을 다 함께 아우르 는 성서신학을 어떻게 수행할 것이냐” 하는 “성서신학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 를 생각해 보는 의미에서 부가한 것이다(참조, 임태수, “한국 구약학의 회고와 전망,” 「한국기독교 신학논총」제22집[2001년 10월 18일], 112). 54)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 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이탤릭체는 필자가 부가한 것임). 행위에 근거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의 예물”에 대해 증거하신다(μαρτυρέω 현재 능동태 분사 소유격)는 것이다. 아벨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인 것은 “그[의] 예물”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벨의 제사와 관련된 “더 나은”이라는 비교급에 주 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자체가 거듭거듭 비교급을 사용하는 논리 전개를 통하여55) 이스라엘의 인간 (대)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 예수에게, 옛 언약이 아니라 새 언약으로, 짐승 제물이 아니라 인간 제물인 예수에게, 지상성소가 아니라 천상성소로 우리 의 초점을 맞추어, 예수께서 자신의 십자가의 피로써 천상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 봉사 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4은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κρείττων, ἀγαθός의 비교급)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διαφορώτερον[διάφορος의 비교급] ὄνομα)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라고 말함으로써 천사보다 나은 예수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어서 히브리서 2장에서는 예수께 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서 잠간 동안 천사들보다 못한 존재로 인간 형제들과 같 이 되심으로써 시험을 받고 고난을 당하며 죽음을 맛봄으로서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 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 되셨음에 관해서 말한다.) 히브리서 3:3은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 광(πλείονος[πολύς의 비교급] δόξης)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 귀함(πλείονα[πολύς의 비교급] τιμὴν)같으니라.”고 말함으로써 모세보다 나은 예수에 관해 말한다. 히브리서 7:19은 옛 계명에 근거한 것이 아닌(참조, 18절) “더 좋은 소망(κρείττονος[ἀγαθ ός의 비교급] ἐλπίδος)”에 대해 말하며, 7:22은 인간 제사장과는 다른 영원한 제사장이신, 더 좋은 언약(κρείττονος[ἀγαθός의 비교급] διαθήκης)의 보증이 되신 예수에 대해서, 히브리 서 8:6은, “더 아름다운 직분(διαφορωτέρας[διάφορος의 비교급] λειτουργίας)”을 얻어 “더 좋 은 약속(κρείττοσιν[ἀγαθός의 비교급] ἐπαγγελίαις)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κρείττονος[ἀγ αθός의 비교급] διαθήκης)의 중보이신” 예수에 대해서 말한다. 히브리서 9:11은 “그리스도 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 고 온전한 장막(τῆς μείζονος[μέγας의 비교급] καὶ τελειοτέρας[τέλειος의 비교급] σκηνῆς)” 인 천상성소에서 봉사하심을 말하며,56) 23절은 천상성소는 지상성소보다 “더 좋은 제물(κρε ίττοσιν[ἀγαθός의 비교급] θυσίαις)”로 한다고 말하는데, 더 좋은 제물은 그리스도의 피다(참 조, 12절). 따라서 히브리서 10:29은 “하물며57)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55) 윌리엄 레인(William L. Lane)이 지적했듯이(참조, William L. Lane, Hebrews 1-8, WBC 47A [Dallas, TX: Word Books, Publisher, 1991], cxxiii, cxxix-cxxx), 히브리서의 논리 전개에 있 어서 표상학적인 해석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비교급의 사용이 수사학적인 방법으로 서 히브리서 전체에 걸쳐 사용되었는데, 그것도 지엽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제사장, 언약, 그리고 희생 등과 같은 중대한 문제들을 예수와 관련되어 다룰 때 했다(보다 더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Lane, cxxiii-cxxiv, cxxix-cxxxv를 보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레인은 믿음을 강조하는 중에 믿 음을 행위로 나타낸 아벨의 제사 및 예물과 관련하여 “더 나은”이라는 비교급의 중요성을 간과하 는 우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William L. Lane, Hebrews 9-13, WBC 47B [Dallas, TX: Word Books, Publisher, 1991], 334-335). 소위 믿음의 장이라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은 그 마음 자세와 태도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참조 1절과 6절) 믿음은 계속해서 순종을 나타내는 동사들로 표현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56) 참조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 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57) 참조,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히 10:28).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 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πόσῳ δοκεῖτε χείρονος[κακός의 비교급] ἀξιωθήσεται τιμωρίας).”고 말하며, 34절은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 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κρείττονα[ἀγαθός의 비교급] ὕπαρξιν καὶ μένουσαν)이 있는 줄 앎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논리 전개 후에 히브리서 11:4이 언급되는 것을 우리는 특히 주목해야 할 것 이다. 즉, 비교급으로 계속 전개되는 히브리서의 논리에 비추어 볼 때, 아벨의 제사가 가인 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였던 것은 “그의 예물”이 대속의 고난과 희생의 메시아이신 “더 좋은 제물”인 예수와 그의 “더 좋은 언약”의 피를 예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가인의 제물에는 무엇보다도 그 예표가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 은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를 통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창세기 4:7의 번역과 해석의 문제 그리고 가인의 제 사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될 수 있다. 첫째, 창세기 4:5bβ-6을 고려할 때 창세기 4:7aα는 “네가 선을 행하면 네 얼굴이 들리지 않겠느냐?”로 번역해야 하며, 그것은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동시에 약속이다. 둘째, 창세기 4:7aβ에서 핫타트를 “죄”가 아니라 “속죄제물/정결제물”로 해석하고 그 희 생 제물을 수컷으로 간주하면 성의 불일치 문제가 해결된다. 따라서 창세기 4:7aβ는 “[네 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속죄제물/정결제물이 문에 엎드려 있지 않느냐? [그것을 속죄제/정 결제로 드려라.]”로 번역하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창세기 4:7aβ-b는 “그리하면 그[아벨]의 사모[존경과 선망]가 네게 있을 것이고, 너는 그[아벨]을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번역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속죄제물/정결제물을 희생으로 드리지 않은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그 죄로 인해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장자 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가인에게 보여주신 것이므로, 그것은 하나님이 가인에 게 주신 경고가 아니라 은혜의 권고, 즉 복음이었던 것이다. 넷째, 창세기 3장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창세기 4:7aβ의 적확한 번역과 해석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은 이유는 그의 제물에 속죄제가 예표하는 메 시아의 고난과 희생의 요소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가인에 대한 신약의 증언들 중 특히 히브리서 11:4은 아벨이 의롭다고 증거를 받 은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의로운 행 위에 근거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의 예물”에 대해 증거하신다고 증언하고 있다. 즉, 아벨 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인 것은 “그의 예물”에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창세기 4장의 증언, 특히 7절의 증언과 신약의 히브리서 11:4의 증언 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있어서 서로 완전히 일치한다. VI. 참고문헌 강성열. 『현대인을 위한 창세기 강해』.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손석태. 『창세기 강의』. 서울: 성경읽기사, 1993. 이영재. “창세기 4장 2절의 ‘오베드 아다마’.” 제82차 한국구약학회 추계학술대회(2009년 9 월 24일). 이희학. 『창세기 1~11장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임태수. “한국 구약학의 회고와 전망.”「한국기독교신학논총」제22집(2001년 10월 18일), 99-117. 장석정. “가인과 아벨 이야기 I (창 4:1-8): 본문 구성분석(Composition Analysis)”, 「구약 논단」 제5집(1998년 10월 15일), 5-24. 차준희. 『창세기 다시 보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천사무엘. 『창세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1.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하계상. “창세기 2-3장의 히브리어 아롬(~Ar['), 아룸(~Wr['), 에롬(~roy[ e): 그 의미들과 번역들, 그리고 그 절묘한 언어유희의 의도.” 「구약논단」50집(2013년 12월 31일), 144-171. Alford, Henry. The Book of Genesis and Part of the Book of Exodus: A Revised Version, with Marginal References, and an Explanatory Commentary. London: Alexander Strahan and Co., 1872; Reprinted by Minneapolis, MN: Klock & Klock Christian Publishers, 1979. Andersen, Francis I. The Sentence in Biblical Hebrew. Janua Linguarum. Series Practica 231. The Hague/Paris: Mouton,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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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ugh these two questions have been treated as if mutually exclusive, the problem of Cain’s offering and that of the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of Genesis 4:7 are closely interrelated, from the author’s view point. To solve the problem of Genesis 4:7 seems to be the way to end the debate over Cain’s offering.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solve the problem of Cain’s offering by a proper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of Genesis 4:7, which is based on grammatical and syntactical observations, and considering the context of Genesis 3-4. The research was done using a synchronic/literary approach, and the results may be recapitulated as follows: First, considering Genesis 4:5bβ-6, Genesis 4:7aα should be translated as “If you do well, will your face not be lifted up?” It is not only God’s rebuke for Cain but also His promise to him. Second, if ḥaṭṭāt is not translated as “sin” but “sin offering/purification offering” and the sacrificial animal for it is regard as male, the problem of gender incongruity is solved. Then, Genesis 4:7aβ can be translated and interpreted as “And if you do not do well, is sin offering crouching at the door? [Offer it as a sin offering.]” Third, Genesis 4:7aβ-b should be translated and interpreted as “And unto you [Cain] shall be his [Abel’s] desire[respect and envy] and you [Cain] shall rule over him [Abel].” God shows Cain the way not only to be forgiven of his sin that he has not offered a sin offering/purification offering to Him, but also to recover his birthright, now in jeopardy. It is not God’s warning to Cain but His admonition of grace, that is, a Gospel. Fourth, seen from the continuity of Genesis 3 and a proper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of Genesis 4:7aβ, the reason God did not accept Cain and his offering is that his offering lacked the elements typifying the Messiah’s suffering and sacrifice. Fifth, NT testimony to Cain, especially Hebrews 11:4, indicates that the attestation that Abel was righteous is based on his righteous act of offering to God “a more excellent sacrifice than Cain” by believing and obeying God’s word, and that God testified of his gifts. That is, the reason Abel’s sacrifice is “a more excellent sacrifice” than Cain’s lies in “his gifts.” Sixth and last, in the matter of Cain’s and Abel’s offerings, the OT testimony of Genesis 4:7 and the NT testimony of Hebrews 11:4 coincide. Cain’s offering grammatical and syntactical observation gender incongruity sin offering/purification offering cult motif <한글 요약문> 가인의 제사와 창세기 4:7의 번역 및 해석에 관한 논쟁들은 학자들 간에 일치점이 없다. 그 논쟁들은 상호배타적이었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창세기 4:7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인의 제사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 로 보인다. 본 연구는 공시적/문학적 관점에서 할 것이며, 그 목적은 창세기 4:7의 문법적·구문론적 고찰에 근거하고 창세기 3-4장의 문맥을 고려하여 창세기 4:7의 적확한 번역과 해석을 제 시함으로써 가인의 제사 문제를 해결함에 있다. 본 연구의 결과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창세기 4:5bβ-6을 고려할 때 창세기 4:7aα는 “네가 선을 행하면 네 얼굴이 들리지 않겠느냐?”로 번역해야 하며, 그것은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동시에 약속이다. 둘째, 창세기 4:7aβ에서 핫타트를 “죄”가 아니라 “속죄제물/정결제물”로 해석하고 그 희 생 제물을 수컷으로 간주하면 성의 불일치 문제가 해결된다. 따라서 창세기 4:7aβ는 “[네 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속죄제물/정결제물이 문에 엎드려 있지 않느냐? [그것을 속죄제/정 결제로 드려라.]”로 번역하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창세기 4:7aβ-b는 “그리하면 그[아벨]의 사모[존경과 선망]가 네게 있을 것이고, 너는 그[아벨]을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번역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속죄제물/정결제물을 희생으로 드리지 않은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그 죄로 인해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장자 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가인에게 보여주신 것이므로, 그것은 하나님이 가인에 게 주신 경고가 아니라 은혜의 권고, 즉 복음이었던 것이다. 넷째, 창세기 3장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창세기 4:7aβ의 적확한 번역과 해석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은 이유는 그의 제물에 속죄제가 예표하는 메 시아의 고난과 희생의 요소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가인에 대한 신약의 증언들 중 특히 히브리서 11:4은 아벨이 의롭다고 증거를 받 은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의로운 행 위에 근거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의 예물”에 대해 증거하신다고 증언하고 있다. 즉, 아벨 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인 것은 “그의 예물”에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창세기 4장의 증언, 특히 7절의 증언과 신약의 히브리서 11:4의 증언 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있어서 서로 완전히 일치한다. <한글 초록> 본 연구는 공시적/문학적 관점에서 창세기 4:7의 문법적·구문론적 고찰에 근거하고 창세 기 3-4장의 문맥을 고려하여 창세기 4:7의 적확한 번역과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가인의 제 사 문제를 해결하였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은 이유는 그의 제물 에 속죄제/정결죄가 예표하는 메시아의 고난과 희생의 요소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