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 수필: 백령도 이야기>
(인간극장) "어디가세요 봉삼씨" 그 이후
두무진(頭武津) 촛대바위 / 창(窓)바위 / 아낙들 조개캐기
작년 추석 특집이었던가? 인간극장「어디가세요 봉삼씨」가 방영된 후 미국에 사는 딸이 언젠가 귀국하면 백령도에 가서 꼭 봉삼씨를 만나보고 싶다는 전화를 해서 웃은 적이 있다.
백령도 북포초등학교 바로 앞에 사는 봉삼씨는 초등학교 때 해안에서 놀다가 지뢰를 잘못 만져 두 눈을 잃었다. 비록 눈은 안보이지만 8순의 노모를 모시고 사는 올해 쉰 한 살의 봉삼씨는 손재주가 뛰어나 못 만들고 못 고치는 것이 없다.
주로 노인들이 많은 동네에서 경운기 고치기, 보일러 손보기, 전구 갈아 끼우기 등은 물론이려니와 바다에서는 낚시, 해삼 잡기, 전복 캐기, 미역 캐기까지 못하는 일이 없다. 닭도 키우고, 농사도 짓는다.
또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보조 보행기로 바퀴달린 차도 직접 만들고 페인트칠도 예쁘게 한다. 언젠가는 벽에 타일을 붙이는 사람 뒤에 섰다가 줄이 비뚤어졌다고 해서 자로 재어보았더니 정말로 비뚤어졌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극장에서 도시의 한 여인이 찾아와 얼마동안 동거하다가 재산을 몽땅 털어 도망가 버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애인으로 받는 수당을 모아 놓은 것은 물론, 통장에서 마이너스로 뺄 수 있는 한도까지 몽땅 빼 가지고 도망가 버리지만 봉삼씨는 그 여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성치 않은 자신과 얼마간이지만 함께 살아 준 것에 감사한다고....
그 이후 서울에 산다는, 40세 중반의 한 여인이 또 찾아왔다. 자칭 글을 쓴다는 그 여인은 봉삼씨의 인간성에 반하여, 또 백령도가 좋아 그냥 봉삼씨와 살겠다고 왔다고 한다.
먼저 여자로 인하여 인생의 비애를 맛본 봉삼씨도 그러하거니와 쇼크로 몸져눕기까지 했던 봉삼씨 어머니도 막무가내로 밀어 냈지만 여자가 찰떡처럼 들러붙어 몇 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올해 4월초 봉삼씨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동네사람한테 물어 보았더니 그 글 쓰는 여자는 가버리고 또 다른 여자가 와서 산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 가버린 여자가 돈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물론 가지고 갈 돈도 없었겠지만...
오늘 학교 앞 농협에 갔는데 새로 온 여자가 봉삼씨 손을 잡고 농협에 와서 돈을 찾고 있었다. 그러려니 해서 그런지 봉삼씨의 모습이 예전보다 더 늙어 보이고 활기가 없어 보여 안타까웠다. 참 세상은 요지경 속인 것 같다.
제발 더 이상 봉삼씨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