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맛집] ‘새 세상’의 희망 천불천탑에 새기다
기이한 일이다. 거대한 미완성 와불, 천개의 탑과 천개의 불상.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올 거라는 전설도 그럴싸하다. 탑과 불상이 각각 천개씩이니 그 탑과 불상 앞에 두 손 모은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됐을까. 기원만큼 간절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새 세상은 이미 운주사, 그 절에 있었을 것이다.
875년 도선이 말했다. “지금부터 2년 뒤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고귀한 사람’은 고려 태조 왕건이었다. 왕건은 훈요십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도선은 산수 순역(順逆)에 따라 정한 자리에 사찰을 세웠으니 함부로 사찰을 세우면 국운이 길하지 못하리라. 신라 말 함부로 세운 사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
전남 화순 운주사는 도선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도선비기>로 더 잘 알려진 도선은 15세에 지리산 화엄사에서 불경 공부를 시작했다. 천도사, 옥룡사 등을 돌아다니며 수도했고, 태백산에 움막을 짓고 고행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천불천탑의 전설이 깃든 화순 운주사를 세웠다.
석불에 새겨진 마음
화순 읍내를 지난 버스가 시골길을 달린다. 논 사이 좁은 길로 자전거가 느릿느릿 지나간다. 마른풀과 흙냄새가 시골버스 안을 가득 메운다. 버스는 넓은 들을 지나면서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마을 어귀마다 멈춘다. 흙빛을 닮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타고 내리면서 서로서로 안부를 묻는다.
처음 찾아가는 길을 버스운전기사에게 맡겼다. 시골길에서 만난 그는 지도보다, 내비게이션보다, 관광안내원보다 자세하고 친절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주고받아야 할 게 말의 내용뿐이랴, 말 사이에 따듯한 그 무언가가 묻어난다. 시골버스 안 사람들 풍경에 낯선 여행자도 묻힌다.
매표소를 지나자 바로 일주문이 나온다. 이곳이 세속과 비속을 나누는 경계다. 간절한 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문을 지나 길을 걷는다. 절은 산 속에 있지 않았다. 단단하게 다져진 흙길을 느리게 걸어가며 주위를 살핀다. 길 옆 잔디밭에 석불이 나란히 서 있다. 천불천탑의 전설이 천년이 지난 지금 여행자의 눈앞에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 운주사의 이름 없는 석불들.
이름 없는 석불들이 산기슭에, 바위 아래, 잔디밭에 서 있다. 돌탑 또한 그렇게 이곳저곳에 자리잡았다. 석불은 비바람에 깎여 눈, 코, 입, 손 등 조형의 윤곽이 희미하다. 위엄 있는 부처의 모습이나 동양최대,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거대한 불상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작고 수수하다. 손잡고 안부를 묻고 싶은 고향 친구 같다.
돌탑 또한 화려하거나 정교하지 않다. 돌을 다듬어 올려놓은 게 전부다. 균형과 비례가 맞아 아름다움을 발산하거나 그 규모가 커서 경외의 마음을 들게 하지도 않는다. 그 길에서 처음 만난 석불 앞에 섰다. 사람의 손으로 파고 다듬은 흔적이 희미하다. 천년 전 석불을 만든 석공의 피땀 어린 손길이 오랜 세월에 묻혀 아련하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천개의 탑과 천개의 석불을 만들었을까.
무엇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절절했으면 그렇게 많은 차디찬 돌덩이에 그 마음 얹었을까? 그것이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든, 정토를 향한 마음이든, 평등 세상을 향한 마음이든…. 바람의 손길에 깎여 이제는 아련해진 석불의 눈동자에 석공의 눈망울이 겹쳐진다.
지금도 많은 돌탑과 석불이 경내에 산과 들에 서 있는 이곳은 그 전설 때문에 더욱 신비롭다. 전설 중 하나가 통일신라시대 도선대사와 얽힌 이야기다. 도선대사가 지금의 운주사가 있는 산골짜기의 풍수지리를 살펴보니 그 지형이 배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 땅에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돌탑과 불상을 세우고자 했다. 도선대사는 하늘나라의 석공을 불러 하룻밤 새 천개의 탑과 천개의 불상을 세우려고 했는데 마지막 불상을 세우려던 찰나 함께 있던 동자승이 닭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바람에 석공들이 모두 하늘나라로 돌아갔고 마지막 불상을 세우지 못했다.
전설에서 역사로 살아난 천불천탑 이야기
지금도 남녀 형상의 거대한 불상이 땅에 누운 채 남아 있다. 지금 사람들은 그 불상을 ‘와불’이라 부르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 불상이 일어나는 날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 이루어진다. 그 밖에 ‘운주’라는 스님이 운주사를 창건하면서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설과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도선대사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천불천탑의 전설은 전설이 아니라 실재한 역사였다. 153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절과 좌우의 산에 천개의 석탑과 천개의 석불이 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또 1632년(인조 10년)에 발간된 <능주읍지>에 ‘운주사는 현의 남쪽 이십오 리에 있으며 절이 있는 산 좌우에 천개의 석탑과 천개의 석불이 있다’라는 기록과 함께 ‘금폐(今廢)’라는 기록이 덧붙여 있는 것으로 보아 절은 임진왜란 때문에 소실되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 이후 폐사됐다가 1918년에 중건했다. 1942년까지 석불 213개와 돌탑 30개가 있었고, 지금은 석불 70개와 돌탑 12개가 남아 있다.
전설이 역사가 되고 역사의 증거가 현재에 남아 여행자 앞에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설의 무게보다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가까운 석불들이다. 토속적인 얼굴형태, 비뚤어진 몸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이목구비의 선들, 목이 잘려나간 석불, 목만 남은 석불 등 운주사 석불은 온전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게 없다. 어딘가 부족하고 어수룩하다.
▲ 1 운주사 인근 마을의 일몰 풍경. 2 운주사 와불.
3 운주사 뜰의 탑들.
사람이 부처다
석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군내버스 안에서 본 술 취한 할아버지 모습이 겹쳐진다. 농사일에 집게손가락이 휘어버린 할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몸뻬’에 광주리를 이고 버스에 올라타는 아줌마 얼굴이 생각난다. 코흘리개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보인다.
그리고 또 석불에는 스무 살 첫사랑의 마음이 새겨 있고,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 있고, 어제저녁 시내버스에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던 누군가의 뒷모습이 남아 있다. 석불의 얼굴과 모양이 다 다른 것은, 아마도 천년 전 석공이 사랑했던 세상,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헤아려 담아 석불을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모든 사람 마음에 부처가 살아 있다는 말처럼 석공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 있는 부처를 일깨우기 위해 천불천탑을 만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언젠가는 전설처럼 와불을 일으켜 세워 세상을 뒤엎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 했던 것은 아닐까?
절을 세울 때 도선이 올라 바라보았다는 대웅전 뒷산 불사 바위에 올라 운주사 경내와 산세를 굽어보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취해 잠시 눈을 감았다. 오후의 햇살이 포근하게 얼굴에 내려앉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운주사 오른쪽 산등성이에 있는 와불을 돌아보고 산을 내려오는 것으로 운주사 나들이를 마친다.
나가는 길옆에 마른풀들이 서걱거리며 오후의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 혹은 생명 없는 돌덩이조차 마음을 흔들었다.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생각, ‘사랑도 혁명 같은 것이 아닐까’. 붉은 노을이 하늘에 퍼져 절 아래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 1. 운주사 석탑들. 2 운주사 대웅전을 살펴보고 있는 스님.
여행길라잡이
◇길 안내
● 자가용 : 광주(12km) → 화순(10km) → 능주(5.1km) → 평리사거리(2.4km) → 클럽900(2.8km) → 도장리(8km) → 도암삼거리(3km) → 운주사
● 대중교통 : 광주종합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 건물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318-1번, 218번 운주사행 군내버스를 타야 한다. 약 1시간꼴로 있다.(318-1번, 218번 버스 중에 운주사를 가지 않는 버스도 있으니 승차 시 운주사 가는지 꼭 확인하고 타야 함)
◇먹거리
운주사 주변에는 식당이 드물다. 광주시 광산구 광산구청 부근 광산시장 떡갈비나 비빔밥이 유명하다. 광산구청에서 시장 쪽으로 조금만 가면 송정떡갈비(062-944-1439)가 나온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반반씩 섞고 거기에 꿀과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든 떡갈비가 주 메뉴다. 비빔밥도 맛있다. 구수한 돼지뼛국이 함께 나온다.
◇숙박
운주사 주변에는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다. 광주까지 나와야 한다.
◇운주사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는 없음.
▲ 운주사의 석불.
Tip 운주사의 보물들
운주사에는 세 개의 보물이 있는데 그 하나는 9층석탑이다. 이 탑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운주사 절 경내는 배 모양을 하고 있고 9층석탑은 돛대 역할을 한다. 운주사에서 가장 큰 탑이다. 보물 제796호. 둘째는 운주사 석조불감인데 팔작지붕 형태로 만든 조형물 안에 앞뒤로 석불좌상 2개를 만들었다. 보물 제797호. 마지막 하나는 원형다층석탑인데 바닥에서 탑 꼭대기까지 둥근 모습을 하고 있다. 보물 제798호.
2011.11.7. / 이코노미플러스 /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