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제가 왜?
이틀이 멀다고 비 소식이 전해진다. 지역에 따라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려 인명과 재산 피해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생겼다. 며칠만 기다리면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름 방학이다. 예년과 달리 가족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가 식판에 밥과 반찬을 채워 담는다. 자리에 앉아 한 숟갈을 드는데 맞은 편 선생님의 애잔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회 시간부터 반 학급 학생들이 혈압을 올렸단다. 며칠째 늦잠을 자고 자각하는 학생이 생겨 잠 깨우는 알람 역할, 교실에 냉방 가동 중이라 열린 뒷문을 닫아 달라고 요청하는데 다짜고짜 ‘싫어요’라는 대꾸에 어이가 없단다. 분리배출 통이 가득 차 쓰레기를 옮겨 달라는 요청에 내일 하겠다며 미루었다. 이틀이 지나 오늘은 치워야지 하는 요청에 친구 이름을 말하며 걔가 비우지 않았나요 한다. 뒤이어 이제는 ‘제가 왜 해야 해요’라며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았다며 밥 한술에 목청을 돋운다.
요즘 학생들이 교사의 요청이나 지시에 불평이 여간 아니란다. 복도에서 몇 번 학생들과 입씨름하는 모습을 본 옆 반 학생이 다가와 ‘선생님이 불쌍해요’라며 측은한 눈빛까지 보낸다. 그러면서 선생님 반에는 초등학교 다닐 때 문제를 일으켰던 학생들이 몰려 있어요. 진짜 힘들겠다며 도리어 응원을 보낸다. 학생의 위로까지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년간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등교 대신 원격 수업이 이루어졌다. 교사의 직접 지도를 벗어난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모양이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와 교실을 교사들이 수시로 순회를 하지만 곳곳에서 다툼이 생기고 학업 분위기가 갖추어지지 않는다. 기말고사가 끝나 느슨한 가운데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고함에 노래까지 울려 퍼진다. 학교에서는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불응하는 학생에게는 교권 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을 차단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다.
식사 시간 내내 교직 경력이 십오 년 가량 되는 선생님의 열변은 계속된다. 한동안 듣고 있다가 한마디 건넨다. ‘학생 지도에 수고가 많으시다’라며 선생님을 응원하겠다고 하였다. 학생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가진 인격체다. 당장은 학생의 무분별한 행동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잣대를 맞추어 행동을 바라본다. 문제 행동을 일으킨 학생의 입장을 헤아리는 여유는 뒷전이기 십상이다. 당장 전체 학생을 지도하고 교육 과정에 맞추어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교사로서는 일탈 행동이나 문제 행동을 하는 이들을 우선 제지해야 하는 처지다.
교육적인 측면만 우선하다 보면 교사의 마음은 피폐해지고 상처가 깊어지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학생의 인성은 교사의 지도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안내하기 어렵다. 가정에서 부모의 자녀 교육이 밑바탕이 되고 학교와 사회가 공동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한다. 교육의 책임은 무한대다. 교육 환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문가의 몫으로 미룬다. 각종 미디어의 발달은 학생들이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어 자신에게 유익한 자료를 받아들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정서를 황폐화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책을 멀리한다. ‘좋은 책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라고 했던가. 스마트 기기 속에 넘쳐나는 영상물은 더더욱 책을 멀리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아닐까.
3년 전 몸담은 교직 생활을 끝내고 육 개월의 휴식 시간을 뒤로하고 텃밭 가꾸기와 전원생활로 인생 후반기를 이어가고 있다. 시간에 여유가 생겨 독서와 취미 생활을 이어가던 중 인연이 되어 근처 중학교에 강의를 나간 지 몇 개월이 지났다. 근무하고 있을 때와 달리 의무감보다 사명감이라는 즐거움으로 교실에서 학생을 만난다. 작은 문제 행동은 너그럽게 넘기고 행여 눈에 거슬리는 일이라도 지켜보며 학생 스스로 개선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학생들은 미성숙 존재다. 아니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 문제 행동이 먼저 보인다. 아이들은 별일 아니다. 척도 자체가 다르다.
선생님의 학생 지도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이성적인 행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정은 있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순탄한 일만 기다리지는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을 보이면 아무리 철없는 아이일지라도 변화하고 바뀌는 작은 감동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만 교직 생활을 끝낸 나이기에 중학생을 바라보는 태도는 그동안 바깥에서 이야기로만 듣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무서운 중2’라는 말은 지금까지 만난 학생들과는 해당 없는 말이다. 도리어 순수한 마음과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가까운 미래의 목표를 앞두고 제각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얻기 위해 지금 이 시각을 채워가고 있다. 가끔 수업 시간에 적응이 어려워, 책상에 엎드리거나 교과와 관계없는 자료를 꺼내놓고 자신만의 시간을 채워가기도 한다.
교사가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싶어 한다. 오로지 정한 날에 통장에 들어오는 돈만 확인하는 직업인으로서 남기 바라는 교사는 별로 없지 않을까.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를 지켜보면서 지난날 나의 모습을 연결한다. 학생 지도를 하면서 감동과 고통이 함께 하였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깨달아 바른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참된 교사의 길을 걷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천직이라는 말,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어 즐겁다. 논어에서 이야기했던가.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더 낫다.’. 스스로 묻는다. 좋아하고 즐기는 생활을 누려 왔는지. 덤으로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있다. 언제까지 강의할 기회가 이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하루하루가 흥겹다. 출강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학생들을 보면서 누구에게나 기회의 장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한 달간의 방학이 시작된다. 기온이 높다 못해 들끓는 느낌이라 냉방기 가동은 필수가 되었다. 오늘의 강의는 끝이 났다. 의자에 앉아 책상 정리를 하는데 어느덧 오후 수업 시간이 다가온다. 가방을 챙겨 놓고 근처 편의점을 찾아 빙과류를 몇 가지 골라 연구실 냉장실에 넣고 메모지에 간단한 문구를 적어본다. ‘시원한 오후 시간’ 되라며 선생님들의 노고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잠깐 쉬어가면서 활력을 찾는 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주의 휴식이 스스로 성숙한 시간을 만들어 변화하는 자신들의 만족감으로 채워졌으면 한다. 나 자신도 성장하고 익어 가는 인생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