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작가의 검찰 이야기
이인규/소설가
작년 이맘때, 소설 쓰는 거 외에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내게 불만을 품은 아내가 검찰청에서 시행하는 형사조정위원 공모를 권하였다. 이에 할 수 없이 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몇몇 분들이 이미 조회를 한 상태였다. 대략 선발 인원은 20명 내외였고 해당 검찰청은 내가 사는 산골에 이웃한 조그마한 소도시에 있었다. 집에서 차로 가면 30~40분 거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석하는 일이라 그리 까다로운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의 이미지는 최악이었고, 나 또한, 이 정부의 정치검찰에 관하여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던 때였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조정위원의 면면이 거의 변호사, 대학교수, 행정관료, 전직 경찰 등이어서, 한낱 소설이나 쓰는 내가 선정이나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종 선정 결과에 들어갔다. 첫날 기존 위원 중 누군가 나의 이력을 알고 “작가(소설가)가 위원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다.” 하였지만, 나는 나의 이력 중 젊은 날, 교정직(교도소) 경력이 선정에 어느 정도 참조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리된 것, 조정위원으로 열심히 하고픈 마음이 들었고, 이왕 시작한 것, 제대로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형사조정제도는 재산범죄 고소 사건(사기, 횡령, 배임 등)과 소년, 의료, 명예훼손 등 민사 분쟁 성격의 형사사건에 대하여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화해에 이를 수 있도록 지역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검찰청에 설치된 ‘형사조정위원회’에서 조정하는 제도이다. 쉽게 말하여 지역사회 내에서 중범죄가 아닌 경미한 사건에 개입하여 피해자의 실질적인 피해를 돕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첫날 환영회 및 워크숍 때 지청장을 비롯한 현직 검사를 보았는데, 현재 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역사에 퇴행적인 전·현직 검사와는 달리 다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선량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주민센터에 가면 볼 수 있는 평범한 공무원 같은 여성 검사들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러니 그동안 정치 검사들의 비윤리적인 행태에 실망하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검찰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떻든 한 달에 한 번씩 출석하면서 나는 검찰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경로는 현 형사조정위원회를 담당하는 공무원, 즉 검찰 수사직 6급 직원을 통해서였다. 소탈하지만 업무에 베테랑이던 그와 조금 친해져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마침내 친구인 K에 관하여 물었는데, 그는 금방 기억을 해내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물어보니 그에게 있어 K는 그의 몇 년 선배였고 검찰사무직으로 정말 열심히 근무하였으나, 퇴직 한참 전에 어떤 이유로 불명예 퇴직(아마 술로 인한 사고로 추정)하였다고 했다.
그날 두세 건의 형사조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래간만에 K를 떠올렸다. K, 그는 암울했던 1989년 가을에 교정직에 입사한 동기생이었다. 나와 나이가 같았던 그는 부산의 명문대학을 마치고 잘생긴 외모에 키까지 훤칠하여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다. 단지 너무 올곧고 비관적인 성격 탓에 시대와의 불화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고 술에 병적인 면모가 있었다. 같은 부에서 근무하였기에 우리는 낮과 밤이 바뀌는 퇴근 시간 후에 늘 함께 술을 마셨으며, 경직된 근무조건 등 부당한 교정환경에 관하여 성토할 만큼 친하게 지냈다. 그는 술에 취하면 늘 “우리는 법무부 연수원에서 배웠던 재소자들의 교정·교화를 담당하는 교도관이 아니라, 그자들을 감시하는 간수로 전락했다. 우짜든지 빨리 때려치우자.”하고 푸념했다.
결국 이듬해 K는 검찰사무직 시험에 합격하여 다니던 교도소를 박차고 나갔다. 나 또한 얼마 되지 않아 그곳을 그만둔 뒤, 다시 공무원 시험을 봐서 부산시 행정직에 합격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첫 발령지는 그가 근무하던 검찰청 인근의 동사무소였다. 소식을 들은 그는 대번에 날 불러내었고 우리는 재차 둘의 근무지 중간에서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술에 취하면 그는 재차 검사를 비롯한 검찰의 불합리한 행태를 성토하였고, 나 또한 구청과 동 사무소의 부조리에 관하여 열변을 토하면서 우정을 지속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연락이 뚝 끊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방 검찰청이라는 낯선 곳에서 그의 소식을 들었다. 그와 나는 놀랍게도 비슷하게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20년 정도만 근무하고 퇴직한 것이다.
에피소드가 길었다. 내일도 나는 검찰의 요청으로 형사조정에 참여한다. 이 일은 내게 매우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지금은 하 수상한 검찰 독재 시절이라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검찰은 해체되어야 하고, 기소청과 수사청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당시 일개 검찰 조직의 신입이었던 K가 술만 취하면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하던 말이 요즘 들어 더욱 내 귀에 쨍쨍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인규
2006년 제9회 공무원 문예 대전 장려상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소설(내 안의 아이) 당선
현 경부울 문화연대 스토리 위원장
작품집 : 장편소설 ‘53일의 여정’ 등 다수
음반 :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창작곡 ‘비와 그대’ 등 8곡 수록)
이메일 : leeingu6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