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인생철학 고(考)
연일 폭염으로 여름날에 조선조 한 선비의 인생의 삶을 드려다 보며 무더위 일상을 식혀가자.
최근 필자가 문중에서 추앙받는 용주 조경(龍洲 趙絅)(1586~1669) 선생의 시선 문집에 들어 있는 시문 천 백 여 편 중에서, 30여 편을 골라 『용주 조경선생 시선집』을 출간했다.
선생은 조선조 중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대를 이어오며, 벼슬로는 육부의 이조와 병조, 예조, 대제학 등의 판서 벼슬을 역임하고 만년에는 청백리에 녹선 되어 영의정에 추서되신 분이었다.
선생이 남기신 시문들은 임진왜란 이후 피폐할 대로 피폐했던 민중의 삶과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의 격동기를 거치며 지어낸 시문들이었다.
선생의 인생철학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시로 이 뜨거운 여름을 진정시킬 오언절구(五言絶句)의 한 편을 음미하고자 한다.
「고거음(高車吟) -높은 수레를 읊다」
어제 높은 수레를 타고 (작일승고거, 昨日乘高車)
오늘은 하택거를 타네 (금일승하택, 今日乘下澤)
하택거와 높은 수레가 (하택여고거, 下澤與高車)
내게 무슨 상관 있으랴 (어아하손익, 於我何損益)
여기서 ‘하택거(下澤車)’는 질퍽거리는 습지도 통과할 수 있는 가벼운 수레를 말한다.
선생은 인생의 변화무쌍함을, 인생의 극적인 영욕과 부침을 뜻하는 “어제 높은 수레를 타고, 오늘은 하택거를 타네”라는 단 두 줄로 요약했다.
이 시문에서 ‘하택거와 높은 수레가, 내게 무슨 상관 있으랴’는 이 시의 하이라이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잘 나가다가 하루아침에 처지가 곤궁해지면 억울해하거나 원망하기 마련일 테지만, 선생은 내가 화려한 수레를 타든, 시골 수레를 타든 그것이 내 삶의 본질이나 내 마음의 평화에 무슨 손해를 끼치고 무슨 이익을 주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한마디로 인생의 외적인 조건(권력, 재물, 명예)에 내 영혼을 흔들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세상 사람들은 높은 수레를 타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하택거를 타게 되면 낙담한다. 하지만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선비(혹은 수행자)에겐 외적이 지위나 환경은 그저 몸에 걸치는 옷과 같아서, 그것이 바뀐다고 한들 자신의 본질(내면의 가치)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짧은 넉 줄 속에 ‘세상 풍파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겠다는 자유로운 마음을 오묘하고도 멋지게 담아낸 조선 중기의 한 선비의 시에 귀를 기울만한가. 해가 중천에 떴듯 여름도 다 가고 있다.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대니 인생의 덧없음이 더욱 심란해지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