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
2014년 4월 16. 그 날로부터 8년이 지났다. 하지만 8년 전, 그날에 멈춰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우리는 항상 이것을 떠올리며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후 매년 4월이 되면 학교는 노랗게 물들었다. 4.16세월호 참사와 추모활동으로 노란색 리본을 만들었던 것이다. 작은 리본에 희생자분들께 전하는 말을 꾹꾹 눌러 담고 그것을 학교 운동장 한켠에 매달아 놓았던 적이 있다. 봄바람이 살랑하고 불어올 때면 노란 리본들이 하나의 파도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그 노란색 파도는 내 마음속으로 먹먹함을 밀고 들어왔다. 먹먹함 말고도 답답함, 미안함, 속상함 등 여러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잔잔하게 들려오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4.16세월호 참사 추모곡을 들으며 이 노란색 파도가 저 하늘 끝까지 닿아 희생자분들게 안식을 전달해주기를 소망하였다.
소중한 생명들을 앗아간 4.16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분명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무수한 추측만이 가득한 채 그 진실은 저 깊은 바다 아래 잠겨있다. 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 올때까지 우리는 4.16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지났음에는 연연하지 않고 말이다.
'4.16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전다빈]
짧아도 봄이라고 학교 계단 옆에 개나리가 활짝 폈다. 노랗게 물든 길에 한순간 마음이 붕 뜰 때도 있었다. 화사한 봄의 출발신호였기 때문이다. 이번 봄은 조금 달랐다. 4월이었고, 개나리보다 인터넷에 드문드문 올라오는 노란 리본들을 먼저 봤다. 깨달은 후에는 개나리에 노란 리본이 쉽게 겹쳐보였다. 올해 봄은 개나리가 유독 슬펐다.4월 16일 이틀 전, 학교에서 세월호 참사 8주기를 추모하며 노란 리본 고리와 스티커를 나눠주었다. 작년에 받은 것과 같았다. 작년 뿐만 아니라 중학생때도 꾸준히 받았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여섯개는 있어야 할 것이, 허전한 가방에 고리를 달며 내 방 구석구석을 떠올려봐도 이뿐이었다. 혹여나 과거의 내가 버렸을까봐 마음이 어수선했다. 잊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하며 자랐는데, 어느 순간 잊었을지도 모른다. 4월 하루 노란 리본에 기대었다가 남은 삼백여일을 잊은 채 보냈을지도 모른다. 무지해서 생긴 리본의 공백이 후회스러웠다. 이제라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알고 기억해야했다. 진실을 알수록 원망스럽고 참담했다. 그 많은 사람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어서 슬펐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끝까지 대물림돼야 할 기억이었다그릇된 욕심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기억은 세상에 널린 욕심들이 이처럼 끝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 세상의 욕심에 대한 경계가 둔해지지 않도록 기억해야 했다. 그날 어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되, 피해자들과 남은 사람들을 기억하기로 했다.노란 리본은 잘 묶어놓는다면 사시사철 피어있다. 하물며 궂은 비에 진 개나리도 매해 봄마다 다시 피는데, 리본은 젖어도, 얼어도, 해 뜨면 마르고 녹는다. 부디 올해는 한 철지나도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2022년 4월 16일, 8번째 리본을 묶는다. 모두의 마음에 영원한 노란 리본이 매어있기를 바란다.
[이채은]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학교에서 공지를 하나 해주었다. 그 공지는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수영장을 간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신이났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지옥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영을 배우며 물 위를 헤엄쳐야 했다. 운동신경이 좋지 않았던 나는 금방 힘이 들었다. 잘하는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바르게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이 수영을 왜 배우는지 궁금해서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왜 수영을 배우는 거예요?"
"세월호 사건처럼 바다에 빠졌을 때 헤엄쳐서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어차피 내가 바다에 빠질 일은 없는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세월호 배에 탔던 학생들도 자신들이 바다에 빠질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이를 대비하기 위해 수영을 배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5학년이 되었다. 다시 여름은 찾아왔고 지옥같았던 수영교실도 여름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그때 나는 수영이 너무 하고 싶지 않아서 선생님께 몸에 나있는 아토피를 설명한 후 수영을 하지 않았다. 사실 수영은 해도 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수영을 하지 않으면 편하게 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최악이었다. 벽을 보고 앉아있는다. 처음부터 벽을 보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수영을 하지 않는 애들끼리 붙어 앉아,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른 친구들은 다 수영 배우는데 너넨들은 놀고 있냐?'라며 우리를 떨어뜨렸고, 그래도 조금 떠들자 벽을 보고 앉아있게 했다.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빠지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6학년이 되었고 6학년부터는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 그래도 세월호 영상을 보는 건 끊기지 않았다. 항상 비슷한 영상, 같은 이야기가 지겨웠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날따라 세월호 영상을 조금이지만 진지하게 보았다. 그때부터 점점 세월호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4월 16일이 지나면 바로 잊어버리는 행동이 반복되었다. 그날도 그랬고, 작년도 그랬으며 올해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라고는 해도 지금은 나름 세월호 사건을 진지하게 보고있다. 당시 그 순간, 그날만 지속된다고 해도 잠깐이라도 진지하게 보는 것이 예전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매년 세월호를 장난으로 삼아서 보냈지만 올해는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세월호에 대해서 장난을 치지 않는게 목표이자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