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과 러시아의 '백색혁명'
필자 : 에릭 월베르그 칼럼니스트
번역 :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출처 : <The 4th Media> 2012년 2월 12일자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방지하는 치밀한 각본이 결국 러시아 자체의 색깔혁명을 가져오고 있다.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 선거 국면은 중동의 정치바람과 인근의 색깔혁명으로 지난 2개월 동안 분명히 변화되고 있다.
정치적 실력자를 선호하는 러시아의 전통을 바꾸고 싶고 투표로 심판하는 선거과정을 원하는 유권자들에게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대통령직 복귀가 낯 두꺼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0년대 경제위기로부터 러시아를 구하고 과두 지배층을 억누르며 지하자원 국가통제를 선언하고, 러시아를 미국의 뒷마당이 아니라 유라시아의 자주적인 나라로 재설정한 푸틴의 전설적인 역할, 그의 이러한 뚜렷한 업적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보더라도(블라디미르 레닌과 조셉 스탈린이 제일 높고 그 다음에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미카일 고르바초프와 보리스 옐친이 가장 낮게 나옴),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가장 인기 높은 지난 세기 지도자들만큼 인기가 높다. "푸틴 없는 러시아"를 요구하는 지난 2개월 동안의 항의시위에도 불구하고, 3월 4일 대선에서 푸틴은 50% 이상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럼 왜 그는 링에 돌아왔는가?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가겠다는 그의 결정과 12월 총선의 적지 않은 부정선거 폭로가 지난 11월 반 푸틴 집회를 촉발했을 때, 푸틴은 대단히 놀랐던 것 같다.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야당들이 단결하여 의미 있는 집회 등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추운 겨울날씨에도 이 주에 총 13만 명이 모스크바 주변 4군데 집회 장소에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을 반대하는 세력의 대표적 인물 중에는 과거 푸틴사단의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까지 포함돼 있다. 처음으로 독립 좌파세력도 지지하는 공산주의 지도자 주가노프와 민족주의자 지리노프스키, 공정 러시아의 세르게이 미로노프, 그리고 과두지배층의 망나니 미하일 프로호로프 - 푸틴을 이길 수 있는 주자는 한명도 없다 - 같은 대선주자들도 있다.
푸틴의 대변자 등 많은 논객들이 참석하는 25개의 토론회가 2월 6일 시작되었다. 과연 크레믈린으로 복귀하는 푸틴의 행진이 반대세력의 인위적인 장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푸틴의 이 시도는 갈수록 더 공격적인 미국과 나토에 맞서 러시아를 유라시아의 대항마로 확고하게 위치 설정하는 동시에, 국내 선거현장을 뒤흔들어 정치적 무관심을 깨트리는 숭고한 노력인가? 만일 사태가 잘못 비화되면, 이것이 러시아 엘리트들이 오래 두려워했고 서방 음모가들이 오래 노려왔던 러시아의 백색혁명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러시아 정치는 항상 서방의 관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푸틴은 도도하기로 유명하며 자기 뜻대로 다할 것이다. “백색리본은 콘돔 같은데, 에이즈 반대 켐페인 하는 것이냐”고 반대세력의 데모를 조롱했다. 그럼에도 푸틴은 20년만의 최대 규모 반정부 집회를 막지 않았다.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NED, 인권과 민주주의를 앞세우고 친미, 반공을 전파하는 미국의 세계지배의 도구/번역자 주) 등 미국의 NGO들이 지금 러시아 반대세력 안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러시인들을 이용한 지난 미국의 정치공작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푸틴은 장담하며 내기를 걸고 있다. 러시아 의회, 두마 선거도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약진했으며, 서구 자유주의자들은 미국의 NED가 결코 원하지 않은 4등으로 뒤처졌기 때문이다.
푸틴은 바로 지난 주 시베리아에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미국 정치인들에게 "나는 가끔 미국이 동맹국이 아니라 속국을 필요로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러시아 대외정책은 서방의 잘못된 미사일시스템과 시리아를 킬링필드로 몰아넣는 짓에 맞서는 확고한 반 나토 정책이다.
러시아-이란이 시리아를 위해 서방과 협상한다는 풍문은 허구적임이 입증되었다. 이란이 미국 무인항공기 격추 지원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방어용 미사일 S-300를 도입할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있다. 이란은 벌써 4개의 방어용 미사일 S-300을 보유하면서 최근 자체 버전을 개발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친 푸틴 집회도, 토요 축제 모임에 당국 통계로 약14만 명이 참석해 반대파의 그 것과 비슷한 규모였다. 푸틴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데모를 반 오렌지 집회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정치 분석가, 세르게이 쿠르지난은 모스크바 포크로나야 고라 추모공원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파괴를 원하지 않는다. 오렌지의 오만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정부를 원하지 않는다...오렌지 쓰레기를 내다버리자"고 간절하게 얘기했다. 푸틴은 이 집회의 주최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나는 그들의 의견에 공감한다."고 겸손하게 논평했다.
푸틴 대통령 복귀의 진짜 이유는 지난 임기 중에 그의 주권 민주주의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부패 억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의 한국 전철을 밟아 현대화된 권위주의를 낳으면서 푸틴의 통치는 소련 말기와 붕괴 초기의 골칫거리인 부패를 심화시킨 것이다.
정치적 자유와 효율적인 통치를 거래하면서도 이 중요한 약속, 즉 부패 척결을 이행하지 않고 러시아인의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옥죄었던 것이다. 국가와 과두지배층의 결탁을 종식시키지도 못했다. 시대의 반항아, 알렉세이 나바르니가 "러시아연합은 사기꾼과 도둑들의 파티"라며 야당들까지 갖고 노는 이유다. NED가 우크라이나 국가를 더욱 약화시키고 2004년 서방후보, 빅토르 유스첸코를 세운 우크라이나도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푸틴은 오렌지 혁명을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거나 국내 요인에 주목하기 보다는 러시아 정치안정을 위협하는 외부 요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서방의 간섭에 대한 러시아인의 우려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러시아는 1919년과 1941년 파괴적인 침공을 당했고 또 다른 반세기를 서방과의 냉전을 겪게 만든, 대영제국에 의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말려든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러시아 연방의 해체는 사실상 서방의 목표인데, 작은 매판 엘리트, 서방의 다국적 기업, 그리고 펜타곤 이외 아무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투명한 선거를 통한 푸틴의 국가주권 민주주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위해 서방에 많은 것을 양보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렇게 나쁜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푸틴의 새로운 유라시아 연합론이 대륙 전체의 더 책임 있는 통치에 도움을 주었다. NED가 염두에 두는 것과는 다르지만, 중국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위구르 족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의 일반시민들로부터 광범위하게 환영받았다.
미국-나토 군사기지와 NED 선전의 도움도 없이, 유럽연합(EU)은 해체와 취약이 아니라 통합과 상호안전 쪽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다. 색깔혁명의 어머니, 우크라이나-시민들은 러시아와의 국경이 개방되고 더 밀접한 경제통합을 그리워하는-를 귀속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또 다른 극락정토에 대한 꿈은 사라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오늘의 현실이, 러시아식 정치변화에 적합한 흰색의 색깔혁명을 탈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푸틴을 세 번 씩 대통령으로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의 관건은 부패문제다. 지난 주 모스크바의 2012년 러시아 투자포럼에서 푸틴은 관료주의와 관련 뇌물을 줄여 러시아를 세계은행의 투자매력지역 현재 120위에서 20위로 끌어올리겠다고 설명했다. "이런 조치들로는 충분치 않다. 사회가 반부패 의제 설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선언했다.
부패와의 전쟁에서 핵심 관건은, 대통령의 시행령이 아니라 권한을 주고받은 공무원과 유권자들을 통해 법적 시스템을 개혁하고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는 이번 주에 네 번 째 연설에서도 연방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고 인터넷 활용을 늘여 더 좋은 정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상황은 좋아 보인다. 1995년 이후 처음으로 뜨겁게 경쟁하고 투명하게 감시받는 대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신임 대사, 미카엘 맥파울이 대사관저에 NED를 초청하지만 않는다면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종류의 대선토론, 대규모 야당 집회, 깨끗한 선거를 위한 새로운 유권자조직은, 지금에도 향후에도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토론 기회를 보장하는 좋은 사례이다.
러시아의 색깔혁명을 막아보려는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붕괴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또렷이 말하는 유권자들을 통해 크레믈린의 정치이론가들과 서방의 NGO 이론가들이 모두 바라는 러시아식 혁명이 시작되었다.
* 필자 에릭 월베르그는 중동,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문제를 다루는 캐나다의 작가다. 캠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소련-러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유엔 자문위원, 작가, 통역, 강사로 일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집트 국영잡지 주간<알 아하람>에서 동서양 관계에 대한 글을 써왔다. 그리고 몇 개의 국제 공인 웹사이트의 고정 필진, 라디오<카페의 목소리>해설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