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림기간에는 신문사 기자들이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이라는 주제로 직접 사랑의 실천을 경험하고 이를 세 차례에 걸쳐 지면으로 전달합니다.
영등포 쪽방촌 ‘토마스의 집’에서 만난 예수님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방 한 칸이 없이 베들레헴 한 마구간의 구유에 누워야 했던 분. 참새도 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자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한탄하셨던 분. 이처럼 예수님보다 노숙의 어려움과 고통을 잘 아시는 분이 있을까?
대림 첫 주, 노숙인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그분들에게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서울 영등포 토마스의 집을 찾았다.
토마스의 집은 1993년 2월, 가난하고 소외된 행려자들을 위한 사랑의 급식소로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매주 목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노인, 행려자, 노숙자 및 주변 쪽방 거주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주일 오전 여덟시 반. 기자가 토마스의 집 문을 열자, 열심히 무를 썰고 계시던 정희일 할머니(안나·91세)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안나 할머니는 23년 동안 토마스의 집을 지켜 온 터줏대감이다.
“어떻게 왔어?” 귀가 잘 안 들리시는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소개를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잘 왔다” 하시며 창고방으로 안내해 주신다.
▲ 봉사자 식탁을 차리는 최용택 기자(오른쪽).
노숙인들을 위해 배식을 시작하기 전, 봉사자들의 식탁을 먼저 차려낸다. 따끈한 식사를 기다리는 이들이 벌써 문 앞에 줄지어서 있을 때라
봉사자들의 마음은 더욱 분주하다.
서툰 음식 준비
창고방에서 장화를 신고 앞치마 끈을 단단히 묶은 뒤 식탁 겸 조리대 앞에 선 기자의 첫 소임은 무 썰기.
토마스의 집에서는 밥과 국 외 세 가지 반찬을 제공하는데, 이날 주 반찬은 민물새우 무 조림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서툰 칼질로 큼직큼직하게 무를 썰고 있는데, 밖에서부터 왁자지껄한 아주머니들이 들어선다.
바로 목5동본당의 레지오 단원들. 다섯 명의 아주머니들은 서로 김장 이야기와 아들 며느리 뒷담화(?)를 나누며 무 썰기 대열에 동참하셨다.
아주머니들의 노련한 칼 솜씨에 지름 1미터 남짓의 빨간 소쿠리 두 개에는 금세 두 자루의 무가 가득 썰려 담겼다.
다음 소임은 파 썰기. 김치어묵국과 무 조림에 들어갈 대파를 어슷하게 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대도 다 썰기 전에 기자는 칼을 놓아야만 했다. 파의 매운 기운으로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 썰기는 결국 포기하고, 봉사활동 온 학생과 후식을 미리 준비했다. 외부 창고에서 기증받은 초콜릿과 빵, 과자, 사과 등을 꺼내왔다. 빵과 과자는 적당한 양으로 나눠 비닐봉지에 담고 사과는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를 닦아냈다.
이제 식판에 반찬을 담을 시간. 몰려드는 손님을 빠르게 맞이하기 위해 밥과 국을 제외한 반찬을 미리 200개의 식판에 담아 놓는다. 반찬이 담긴 식판이 차곡차곡 쌓이자 기자의 마음에서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노숙인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남루한 행색 등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던 것도 사실. 과연 나는 이분들에게 제대로 맛있는 식사봉사를 할 수 있을까?
▲ “맛있게 배부르게 드시길 바랍니다.” 좁은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밥상에 밥과 국 등을 계속 채워주는 것도 봉사자의
몫이다.
봉사자의 혼을 빼놓는 식사 시간
손님맞이에 앞서 봉사자들은 11시경 먼저 식사를 하고 11시30분 배식을 시작하기 전에 삼종기도를 미리 드리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드디어 배식시간. 25개의 자리에 ‘밥 한상’씩 놓고 손님을 받기 시작한다. 몇몇 분들은 밖에 마련된 간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기도 한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위해 대기하던 기자에게 첫 손님들이 식사하던 10여 분은 폭풍전야의 고요와도 같았다. 이윽고 첫 식판이 왔다.
초벌 설거지, 비누칠, 초벌 헹굼, 마무리 이렇게 4단계로 이뤄지는 설거지 동안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손을 놀려야 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개수대가 식판으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아 기자의 몸은 땀 공장이 되어 버렸다. 밥이 익고 국이 끓는 주방의 열기와 뜨거운 설거지물, 비닐 앞치마, 그동안 게을렀던 기자의 몸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끊임없이 땀을 토해내고 있었다.
대략 30분 정도 땀 닦을 새도 없이 설거지하던 기자에게 토마스의 집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박경옥 총무가 해방령을 내렸다.
주방에서 풀려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배식 담당의 일이 주어졌다. 배식 담당은 식사를 마친 분이 놓고 간 식판을 회수하고, 안나 할머니가 행주로 닦고 물과 숟가락을 놓으면 다시 새 식판을 가져다 놓는다.
오후 2시30분까지의 배식시간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끊임없이 ‘밥 한상’씩을 차려내고 치우고 닦고 또 차려내는 일의 반복이었다.
또, 밥바가지와 반찬바가지를 들고 좁은 테이블 사이를 다니며 더 내어준다. 식사를 마친 분들에게 빵과 사과, 초콜릿을 나눠주는 것도 배식 담당의 일.
잘 돌아가던 식당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던가? 한창 배식 중에 밥이 동이 난 것이다.
주 반찬이 고기반찬이 아닌 무 조림이라 손님들이 식사를 좀 빨리 하게 된 탓이다.
다시 배식이 시작됐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술에 잔뜩 취해 오신 분 한 명이 잠시 소란을 일으킨 것. 이분은 억지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달라 하고 몇 술 뜨더니 이내 졸기 시작했다.
이때는 토마스의 집 군기반장이기도 한 안나 할머니가 나설 차례다. 구순 할머니의 노기 띤 목소리엔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다. 그 손님은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배식을 마감하고, 주방 및 식당 청소 등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나면 그날의 매상을 확인한다. 토마스의 집은 밥값으로 200원을 받는다. ‘자존심 유지비’ 명목이다. 이날 모두 403개의 밥상이 나갔으니, 8만 원이 넘는 매상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이날 밥값은 7만5270원. 밥값을 알지만 돈이 없다면서 10원씩 50원씩 내는 이들도 있고, 다음에 와서 갚겠다는데 이들을 야박하게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밥도 국도 듬뿍듬뿍 담아 정성껏 차린 ‘밥
한상’이다.
노숙인으로 오신 예수를 기다리며
토마스의 집은 이날 403명의 예수님에게 정성껏 식사를 대접해 드렸다. 기자도 노숙인의 모습을 한 예수님이 맛있게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했다.
하루 봉사 체험을 마치고, 총무님과 안나 할머니 등 토마스의 집 식구들에게 인사를 전하며 또 오겠다고 약속드렸다.
토마스의 집에서 나오면서 한 봉사자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진정한 봉사의 기쁨은 한두 번으로는 알 수 없어요. 꾸준히 해야만 그 기쁨을 알고 또 그래서 더 꾸준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안나 할머니가 어떻게 2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토마스의 집에서 봉사를 해 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할머니는 오늘도 노숙인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