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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예수를 잘 만난 사람의 축복. 눅19:1-10
인생은 만남에서 모든 일이 시작됩니다. 만남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만남으로 부부가 되어 인류 최초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며 우리의 최초의 삶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어떤 부모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됨은 별 수 없는 사람이지만 부모님을 잘 만난 일로 훌륭한 사업가로 대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민상기 목사는 자기 아버지가 목사이기 때문에 목사가 되었으며 그의 생애는 목사직으로 끝낼 것입니다. 사람은 잘나고 훌륭한 사람이 될만한 인재지만 부모님을 잘못 만남으로 아까운 인재가 빛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한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라는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를 잘 만난 사람들은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 큰 회사의 중역이 되기도 하며 훌륭한 사업가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사람을 잘 만남으로 그들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일은 부부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느 모로 보던지 복이라고 든 곳이 한 곳도 없는 여자가 남편을 잘 만남으로 한평생 팔자 늘어진 인생을 보내는 사모님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휘호 여사보다 못난 데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손명순 여사보다 못난 곳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권양순 여사보다 얼굴이 못났습니까? 학식이 부족합니까? 그런데도 그 분들은 남편 덕분에 한 분은 대통령 영부인으로 호강하고 두 분은 전직 대통령의 아내로 호사한 생애를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씨도 착하고 얼굴도 예쁜 여자가 남편을 잘 못 만남으로 한 평생 지지리 고생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아내를 잘못 맞아 드림으로 한 나라를 망치고 세상에서 가장 악한 왕이란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웃 필립핀의 마르코스 대통령도 아내 이멜다를 잘 못 만남으로 인하여 지난날의 애국자가 민족 반역자의 자리로 전락되어 버린 일도 있습니다.
1. 삭개오의 인생
우리는 오늘 주신 본문 말씀에서 삭개오라고 하는 하나의 기구한 인생을 만나게 됩니다. 삭개오는 난쟁이로 소문이 난 사람입니다. 그는 부모를 잘 못 만남으로 태어날 때부터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모욕 받는 세리직에 들어갔는데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운이 좋아서 세리장의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어느 날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그의 인생의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때 삭개오를 향하여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에서 그의 생애의 대 전환기를 이룰 만치 사람을 잘 만난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날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은 새로워졌습니다. 그는 오랜 죄의식에서 깨어났습니다. 삭개오는 언제나 자기는 죄인이라고 하는 무서운 죄책감 때문에 그의 인생은 보람도 없고 늘 패배주의적인 생애를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것을 인생의 무거운 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짐을 진 사람들을 향하여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자 그 앞에 이 무거운 자기 인생의 짐을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참으로 좋으신 분을 적절한 시기에 만난 것입니다.
이제 삭개오는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향하여 난쟁이라 불러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고 죄인이라고 불러도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삭개오의 인생길은 이제 예수를 만난 것으로 인하여 밝은 소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만 삭개오는 이제 지난날의 토색질하고 남을 괴롭혔던 죄인의 자리에서 떠나 새로운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 배만 불리는 지난날의 이기적인 생활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그 많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바치겠다고 예수님께 약속한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만난 일은 삭개오에 있어서 그의 인생에 무한한 축복을 안겨 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은 그 사람의 인생 일대의 위대한 사건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인생을 살아온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를 만남으로 그의 심령 속에서 생수의 물이 강처럼 흘러나와 그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모님을 잘못 만남으로, 남편을 잘못 만남으로, 지극히 불행한 생애를 살아 왔다 해도 우리의 생애에서 예수만 제대로 만날 수 있다면 그 문제 뿐 아니라 더욱 비극적인 문제라도 근원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을 잘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성경에는 예수님을 잘 만나는 일로 그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불행에서 행복으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촌부의 자리에서 위대한 사도로 바뀐 이야기가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입니다.
(1) 먼저 베드로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란 이름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성경적 인물입니다.
베드로는 어느 날 새벽녘에 게네사랫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날 밤 밤새도록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이곳저곳에 던지며 애를 썼지만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실의에 찬 모습으로 그물을 씻었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나타나 그의 배를 빌려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깊은 곳에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지는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아뢰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가 이 때 예수님을 만난 인연으로 인하여 그는 말할 수 없는 풍요한 축복의 인생으로 변화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만난 사람은 베드로처럼 그가 비록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나 잡아온 무식한 어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위대한 일꾼으로 들어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 쓸모없는 인간이요 아무 곳에도 사용될 수 없는 폐인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예수님만 잘 만나면 우리의 인생이 180도로 새롭게 변화 받아 보람 있고 만족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의 천하고 보잘것없는 미천한 여인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 여인의 이름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 여인처럼 비참하고 짓밟힌 인생을 살아온 여인이 세상에 어디 있을 것입니까? 그는 7귀신이 들린 미친 여자였습니다. 집에서도 쫓겨났고 누구 하나 사람답게 대접해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예수님을 길에서 만난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일이야말로 그의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적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귀신으로부터 놓임 받았으며 그의 생애는 이제 그리스도를 위한 새로운 인생으로 전환되었고 그녀는 위대한 여인으로 성경에 그의 이름을 남겨 놓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 나의 인생도 막달라 마리아나 무엇이 다름이 있겠는가? 나는 그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이 찍혔고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자탄하며 슬퍼하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를 바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예수를 위하여 여러분의 생애를 바쳐보시기 바랍니다. 확실히 여러분의 인생에는 변화의 역사가 올 것이며 여러분의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같이 하나님 나라에서 찬란한 빛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는 나인성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불쌍한 과부가 예수님을 만난 연고로 그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내는 축복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과부는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만을 소망으로 삼고 살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비통한 마음을 안고 통곡하면서 아들의 관을 붙들고 장례지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인성 성문을 나갈 때였습니다. 이 과부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아들의 시신이 담긴 관에 손을 얹으시고 “청년아, 일어나라”고 외치셨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명령에 죽어서 관에 누워 있었던 아들이 관 뚜껑을 열어 재치고 일어섰습니다. 지금까지 울며 슬퍼했던 어머니의 얼굴에 기쁨이 찼습니다. 그의 슬퍼했던 인생이 당장에 즐거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잘만 만나면 이 나인성 과부와 같이 애통과 슬픔과 불행이 예수로 말미암아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를 잘못 만난 사람들
그러나 성경에는 간혹 예수를 잘못 만남으로 그의 인생이 비참해 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잘 따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영리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돈을 관리하는 회계직을 맡았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값진 나드향을 부었을 때,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이 좋지 않았겠느냐며 다른 사람들 보기에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위기가 온 줄을 알자 자기 스승을 은30에 원수의 손에 팔아먹는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선생을 판 은30을 한 푼도 써 보지 못하고 자신은 나무에 목메어 자살해 버렸습니다.
자신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돈벌이나 하려는 사람들은 예수를 바로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언제인가는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다가 재앙을 만나 그의 인생에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못 만난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만나기도 하였고 말씀을 듣기도 하였으며 이적을 행하시는 것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믿음이 없이 예수를 만나는 사람들, 예수를 만나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 믿는 것이 하나의 고역이요 그로 인하여 그 사람의 인생은 오히려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를 바로 만나자.
우리들이 교회에 나오고 있는 이상, 우리는 예수를 만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를 어떻게 만나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를 바로 만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생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눈앞에 먹을 음식이 태산처럼 쌓았다 해도 그것을 먹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배고픔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가 필요한 것을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해도 그것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언제까지나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바로 만난 사람은 예수로부터 풍성한 인생의 축복을 누리는 생애를 보내겠지만 바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그의 약속에 대하여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때, 내 생명의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죽으신 분으로 알고 그 분 예수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요일3:16절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그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같은 예수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요일4:10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내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예수를 만날 때, 비록 우리의 인생이 가난하고 어려움에서 지내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당장에 풍요롭고 소망이 넘치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고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인생에 큰 보람을 느끼며 그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다음에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풍성한 축복의 창조자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만을 주시는 것으로 마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롬 8장에서 이르시기를 “그 아들을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애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무한한 축복을 그의 권능으로 친히 이루어 주시는 축복의 창조자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예수를 만나야 하고 이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3) 다음에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들 인생의 반려자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남녀가 결혼을 하면 두 몸이 하나가 되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의 온 생애를 통하여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 여러분은 정말로 예수님을 제대로 바로 만난 사람들입니까? 똑바로 예수를 만나서 제대로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예수를 잘 만난 사람들만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충만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15장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같은 생활을 누리지 못하신다고 하여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신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언제까지 가도 하나님의 약속과는 별도의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생활을 하면서도 무엇인가 해 보려고 노력한다면 그 해답은 분명히 나옵니다. 다.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은 이 시간, 여러분의 생애에 들어오셔서 여러분의 운명을 새롭게 열어 주시며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모든 충만한 축복을 안겨 주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바로 만나는 이 시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구주로 만나시고 여러분의 인생의 충만한 축복의 창조자로 만나시고 여러분의 인생의 가장 친근한 반려자로 만나셔서 여러분의 생애에 새로운 소망과 기쁨과 행복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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