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철 요양보호사를 만나러 간 곳은 서울시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노인요양원. 현관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취재진을 반기는 사람이 있다. 온화한 표정에 88세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한 모습의 유연철 요양보호사다. 이곳의 근무 시간제는 1일 삼교대인데, 유연철 요양보호사는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근무할 차례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밤에도 종종 살펴줘야 하고, 잠은 잘 자고 있는지,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는지 수시로 나와서 살펴봐요. 아침이 돼야 숙직실에서 눈을 붙이죠.” 젊은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밤 근무지만 유연철 요양보호사는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이곳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들은 노인장기요양 1~3등급까지 다양한데, 유연철 요양보호사는 주로 2, 3등급의 어르신들을 돌보고있다.
그의 활동은 먼저 방마다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의 상태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리를 이렇게 펴고 있어야지. 팔도 좀 움직이고.” 유연철 요양보호사는 뇌졸중으로 인해 한쪽 팔이 마비된 할머니에게 다가가 팔과 다리를 안마해 준다. “아이고 시원해. 이 이가 손힘이 얼마나 센지 몰라. 젊은 사람들 못지않다니까.” 유연철 요양보호사의 손길은 옆 침대에 있던 할머니에게로 옮겨진다. “어깨가 아파? 여기? 여기?” 그와 같은 또래인 할머니는 쑥스러운 듯 연신 웃으면서도 시원한 표정을 짓는다. 방안은 금세 웃음꽃으로 환해지고 한동안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할머니들을 돌아 본 후 유연철 요양보호사의 발길은 또다시 옆방으로 옮겨진다. “병원 갔다 왔어? 옷을 갈아입어야지.” 유연철 요양보호사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정창모 할아버지는 혼자서는 잘 움직이 지도 못하는 데다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다. “환자들은 마치 고목나무와도 같아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종잇장처럼 다뤄야 해요.” 정창모 할아버지에게 옷을 갈아입히는 그의 모습이 상당히 노련하다. 치매로 인해 두서없는 말을 꺼내는 정창모 할아버지. 하지만 유연철 요양보호사는“응, 그래. 팔을 이렇게 해야지. 그래, 그래.”라며 한 마디 한마디에 대꾸를 해준다. 대부분 이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는 어르신들의 나이가 유연철 요양보호사와 비슷하거나 동생뻘이 대부분이다. “친구 같기도 하고 동생 같기도 하죠. 오히려 나이대가 비슷하니까 이해되는 부분들도 많고….” 그래서일까. 유연철 요양보호사에게 도움을 받는 어르신들의 표정도 상당히 안정되고 편안해 보인다.
유연철 씨가 요양보호사가 된 것은 아내의 병간호에서 비롯됐다.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병 고쳐 줄려고 여기저기 다녔지요. 3년 동안 고생하다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이곳이에요. 결국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지만…. 그게 인연이 됐네요.” 요양원에 입소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동안에도 그는 같은 방 환자들도 마치 내 가족처럼 보살펴줬다. 하지만 아내는 결국 6개월을 넘기지 못했고 유연철 씨는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집에 가도 허전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 여기 지부장님이 계속 일을 해보라고 잡더라고요. 그때 시작한 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어르신들을 노련하게 대하는 데는 벌써 10년 이상의 경력으로 쌓은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다. 유연철 씨를 요양보호사로 만든 것은 조춘월 지부장이다. “그때 아내를 간호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까지 내 일처럼 돌봐주는데 감동해서 제가 잡았죠. 지금도 저 연세에 물을 두 통씩이나 번쩍번쩍 들고 다녀요. 젊은 사람들보다 더 성실하고 부지런하다니까요. 우리 요양원에 보배에요, 보배.” 조춘월 지부장의 칭찬에 유연철 요양보호사는 오히려 손사래를 친다. “이 나이에 내가 어디 가서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한 거죠.” 하지만 1주일은 일하고 1주일은 쉬는 스케줄에도 유연철 요양보호사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요양원을 떠나지 않는다. 그의 자녀들에겐 누구를 보살피기보단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가 걱정스럽기만 한 일. “아들, 며느리는 그만두라고 난리지만 집에 있어봤자 딱히 할 일이 없어요. 일을 하면 기분도 좋고 건강해지는 거 같아요. 난 이 일이 좋아요.”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유연철 씨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품게 하는 원동력이 돼주고 있었 던 것이다.
이 요양원에서 최고령의 요양보호사는 단연 88세의 유연철 씨다. 하지만 74세인 남궁갱한 씨를 비롯해 60~70세가 넘는 요양보호사들도 10여 명이나 된다. “힘이야 젊은 선생님들보단 못하겠지만 어르신들 돌보는 일이 어디 힘쓰는 일만 있나요. 오히려 나이든 선생님들이 어르신들을 대하는 게 더 노련해요. 젊은 사람들을 따라 올 수 없는 인생의 연륜이란 게 있죠.” 조춘월 지부장의 말에 유연철 요양보호사도 한마디 거든다. “힘 안 드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고생도 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죠. 요양보호사는 참을성있게 일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나처럼 나이든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하는 것 같아요. 나이든 사람들에게도 기회만 된다면 요양보호사를 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네요.”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나이 일수록 요양보호사를 하기에 더 적당하다며 강력하게 추천한다는 유연철 요양보호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요양원 현장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88세의 고령에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공감대를 형성하는 어르신들과의 생활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그는 친구 같고 동생 같은 어르신들을 돌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첫댓글 좋은 자료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