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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66권 기초공사(123)_복음에서 생명으로(9)_성질 죽이는 법(5)_굴종과 지배 관계에서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 안으로(골3:18-4:1,엡5:25)
골로세서 3장 18절에서 4장 1절로 갑니다. 성질 죽이기 마지막 편입니다. 복음에서 생명으로 승재일 죽이기 마지막 편 안으로 들어갑니다. 클로스에서 지난 시간 17절까지 18절부터 4장 1절로 갑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저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저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의 자네를 격력케 마주치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죽게 다듯하고 사람에게 하지 말라 이는 위험에 상을 죽게 받을 줄 알미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봉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치하심이 없느니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달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하면 복음 안으로 들어왔는데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그런 성경 구절들이죠.
십계명을 갖다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복음에서 생명으로 이제 성질 죽이기 마지막 시간입니다. 여기에 잘 보시면은 관계가 새롭게 나옵니다. 우리는 이제 앞부분에 보면은 3절 앞에 다시 더듬어 보시면 10절 우리는 이미 다 죽었고 10절에 새 사람을 입었다 그랬죠 옛사람을 벗고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미 입었습니다.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쫓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 사람이 됐다. 라는 거죠. 그런가요?
그런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사는지 쭉 나와 있고 그다음에 지난 시간까지 한 내용들에 포함이 되어 있고 오늘은 이제 관계안으로 새롭게 나옵니다. 이제 세 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관계 관계법이 나옵니다. 세 사람은 세 사람의 관계법이 있어요. 인간관계법을 말합니다. 관계 안에서 어떤 법을 따라야 하는가? 옛사람은 옛사람의 관계법이 있죠. 옛사람의 관계법은 뭔가요 굴종과 지배의 관계였죠 그런가요?
사람의 관계법 이건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저주의 증상이죠. 그런가요? 했던 기억납니까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려고 하는 게 힘이 세서 잘나서 뭐 이런 이런 게 아니고 뭐라고 그랬어요. 저주받은 자라고 그랬죠 그게 그러니까 남자는 여자를 다스리려고 하고 여자는 해산하는 고통을 하고 남자는 수고하고 땀을 흘리거나 가시와 은근키밖에 없고 이런 걸 하면서 말씀을 드렸어요. 부부관계 이야기도 말씀을 드렸는데 그래서 남자는 지배하려고 군림하려고 하는 게 전부 저주의 증상입니다.
잘나서 그런 게 아니고 그래서 무조건 남자 말을 들어라 목사 말을 들어라 위에 있는 사람 말은 무조건 들어라 이렇게 군림하는 거죠. 그거는 저주받은 증상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여러분이 누군가를 자꾸 지배하고 다스리고 내 원하는 대로 막 이렇게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이용하고 사용하려고 하고 내 멋대로 어떻게 손아귀 쥐고 하려고 하는 이런 것들을 저주받은 자의 증상입니다. 알거나 하고 계시죠. 말씀드렸어요.
누차례 벌써 저주받은 증상에 대해서 하면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잘 모르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당하고 남자를 섬기고 뭐 이런 것들이 전부 그런 거예요. 저주받은 증상 중에 하나입니다. 이게 이제 세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유교사상에 보면 별의별 게 다 있죠. 공자 맹자 이런 데 여자들에게만 불리해요. 칠거지악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귀 맞고 3년 눈 맞고 3년 입 맞고 3년 이런 거 만들어 가지고 조선시대 영감들이 못돼 먹었어요. 맞아요. 지금 세 사람이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시집 장가 가면 먼저 누가 이기느냐 가서 무조건 선수를 쳐서 이겨라 뒤집어 엎어버려 안 되면 확 엎어 그래서 깨갱한다면서요 지금이라도 해보세요. 안 되면 지금이라도 엎어가지고 한번 그래서 밥 먹어 가면 아니야. 꼼짝 안 하고 그냥 그렇죠. 반찬 투정 안 하고 반찬 투석합니까? 그 집 남자 해요. 엎어버리세요. 저기 순회 군사님한테 가서 배우면 돼요. 반찬을 싸서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이 확 넣어버리세요. 그럼 다음부터 절대로 반찬 투정 안 할 겁니다. 소금만 갖다 놔도 하면 하고 먹을 겁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세요.
삼식이야 삼식이 그렇게 하면 바로 일식이로 무식이로 밖에서 먹고 들어옵니다. 잔소리 듣기 싫어서 그 집은 삼식이에요. 엎어버리세요. 당장에 가서 냉장고 확 비워버리세요. 목사가 남자 편이 아니고 말이야. 이게 저주받은 인간관계라니까요? 굴종이에요. 굴종과 지배의 관계 그런데 세 사람의 방사는 인간관계법이 달라요. 완전히 굴전과 지배해서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으로 완전히 새로운 관계법이 이루어지고 그게 이게 천국의 법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천상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이렇게 살아야 마땅해요.
그래서 이렇게 살아라 하는 명령이 아니고 권유이면서 그 세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너희는 사는 사람들이다. 라는 거예요. 그걸 말하는 거예요.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 또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옛날에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어요. 왜 이렇게 살 수 있는 세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됐기 때문에 세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중요한 것은 거기에 보면은 16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이 거하여 그러니까 피차 가르치고 근면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그랬을 때 말씀이 풍성이 거나 거하는 것은 성령 말씀충만 성령충만 같은 말이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성령이 세 사람 가운데 이제 성령이 충만하게 가기 때문에 이제야 천상의 법대로 관계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한다는 거예요. 우리를 그렇게 천상의 관계 법대로 새 인간관계 법대로 살 수 있도록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신다라는 거죠. 예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살아내야 억지로 율법을 지키는 게 아니에요. 그건 율법 안에 있으면은 자기 의거가 되죠. 이거는 아닙니다. 그거는 망하는 행위고 율법은 사람을 죽이는 거고, 그렇죠. 절대로 살리지 못하죠. 그래서 이제 우리는 세 사람이기 때문에 새 질서를 가지고 있는 거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고 독립한 아담의 저주의 정상이 바로 굴종과 지배 바로 혼돈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질서가 깨졌죠 하나님과 나와 만물 모든 질서가 다 깨졌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난 인간은 왕이 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타고나가는 거예요. 아담으로부터 그러니까 누구든지 보면 자기 발 아래 손 안에 다스려야 되는 본능을 가지고 여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그러지 않아요.
남자를 다스리고 싶잖아요. 말로 완력으로 안 되니까. 살살해서라도 다스리고 싶잖아요. 그렇죠. 알랑방구 껴서라도 이렇게 다스리고 싶죠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남자나 여자나 그건 똑같습니다. 저주받은 증상이기 때문에 그 dna가 어디 가겠어요. 그게 바로 저주의 증상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 동안에는 수고하시오. 고통과 괴로움 무거운 짐에서 못 벗어납니다. 누군가를 지배해서 내 굴종하게 만들면 행복할 것 같죠 행복할 것 같습니까? 굴종 당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굴종을 할까요?
언젠가는 이제 힘 빠질 때가 온다 그렇게 기다리고 계세요. 먼저 빠질 것 같은데, 먼저 빠져서 후 해버리면 날아갈 것 같아 예 세신 분들은 먼저 힘이 빠지면 조심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저도 되게 조심하고 있어요. 먼저 힘이 빠지면 매 맞아 이제 매 맞으면서 이거 아무거나 먹어 화상화하게 무슨 밥투쟁이에 늙어가지고 이렇게 된다니까요?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세요. 있을 때 저는 지금 되게 잘하려고 해요.
무조건 내가 가서 솔순주범 먼저 해버려 먼저 설거지 하라 말 안 해도 먼저 가서 해버려 해버려 아이고 오늘 괜히 또 오후에 배 이게 혼돈 때문에 그래요. 다시 혼돈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질시가 다 깨져버려서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것을 통해서 만물 안에서 질시가 유지된 게 다 깨져버리니까 이제 모든 것이 전부 다 말을 안 들어요. 모든 것이 만물도 지나가는 똥개도 말을 안 들어요. 물려고 그러잖아요. 이상해 나만 지나가면은 이상하게 개들이 험악하게 이렇게 하더라고.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순회권사님 개만 괜찮아 저기는 아래위가 관계가 잘 돼 가지고 개도 말을 잘 들어 알아보나 봐 그런데 말 안 듣는 개들은 있잖아요. 내가 가면 이제 혼날 줄 아니까 미리 멀리서부터 막 눈을 부라리고 난리예요. 개들도 안 와봐요. 날 잡으러 오는구나 된장 들고 온다고 저는 지나갈 때마다 된장 발라야 되겠다. 맨날 그런 소리 하네 큰일 났네 잡혀갈라 또 요즘은 돈 내야 된다면서요 징역 살아야 그런 관계가 깨져버렸어요. 그러니까 누군가를 내 손아귀에 쥐고 이렇게 하겠다라는 꿈 깨세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건 저주의 정상이기 때문에 일생이 고통스러워요 저주 가운데 살게 되는 거라고요. 크게 에스미코도 그렇게 살게 돼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죠. 그러니까 세 사람 세 인간관계법이 따로 있어요. 그건 예수님이 표본이죠. 그렇죠. 그래서 사상 1절까지 말씀을 하나님께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 있는 자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이 되는 걸 말하고 있고 그 인간관계는 이렇게 나타난다 라는 걸 말해요. 이렇게 하라는 거 아니에요. 사실은 율법으로 행할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누가 합니까? 지구상 누구도 안 합니다. 할 수 없이 하죠. 할 수 없이 왜 해요. 적나라하게 우리 좀 이야기해보죠.
돈 때문에 돈 안 벌어오고 돈 안 줘버리면 곤란하잖아요. 그거밖에 없어요. 돈 벌러 나가세요. 그런 거죠. 혹시 말 안 들었다가 두들겨 맞을까? 봐 그건 반대 같고, 거기는 퇴근도 몇 단이에요. 그냥 했어요. 반을 셀 수가 없었구나 이런 관계법이 이제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 존과 상전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나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와 같이 이건 상하관계 지침이죠. 어떤 인간관계 안에서 분명히 상하가 있게 돼 있어요. 어떤 단체를 형성하면 가족에게도 있죠. 부모가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이런 거 많잖아요.
그런 관계가 있다고요. 그걸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자연인으로 살아야죠 산속에 처박혀서 그렇죠. 산속에 뭘 혼자 이렇게 다 털어버리고 이 모든 속세가 이제 싫어서 산속으로 깊은 속세 안으로 들어가면은 거기는 관계가 없을 것 같아요. 그게 더 심해요. 여러분 더 심해 자연관계에 순응해야 되잖아요. 집 지어놓고 뚜껑 안 덮고 살 수 있어요. 자연이 좋다고 별 보는 게 좋다고 됩니까? 늑대 들어오면 어떡할랍니까 안 되거든요. 점점 심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죠 어리석은 인간들이 하는 짓입니다. 어쨌든 상하관계의 지침은 있을 수밖에 없고 인간관계 안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고요.
질서가 있어야 모든 것이 평강 가운데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질서는 인간의 질서와 하나님 질서는 달라요. 하나님이 말하는 질서예요. 여기는 그 관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저주의 증상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평강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걸 말하죠. 그래서 이 새로운 상하관계의 지침은 영생의 본체이신 성자와 성부의 관계 안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가 있어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만의 관계를 보세요. 완전한 순종이죠. 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종에서 그러니까 죽기까지 아버지 권위에 완전히 복종하는 아들이죠. 그런데 아들은 굴종인가요? 그게 잘 아셔야 되죠.
복종함으로 어떻게 되는가 하면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게 관계 형성의 핵심이에요.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15장 10절에 정확하게 나오죠.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그렇죠. 그런가요?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하네 가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계명을 지키는 그 자체가 사랑의 관계의 표현이라는 거예요. 온몸으로 그 법을 온몸으로 표현했을 때 보여줬을 때 그게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라는 증거라는 거죠. 그런가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동일한 사랑 안에서 이렇게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에요. 예수님은 사랑하기 때문에 복종 그래서 요한일수록 하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켜요 여기도 그러지만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고 그래서 그 관계를 말하는 거예요.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에요. 이게 하나님과 사랑받는 자녀의 관계가 바로 여기에 근거해 있죠.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복종하는 관계라는 거죠. 그렇게 사랑으로 복종할 때 하나님 상위권이신 하나님은 어떡한다는 거죠. 다 내어주는 거죠.
우리를 위해서 사실 내어주는 사랑을 행했었잖아요. 예수님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 관계 우리에게 미쳤죠 그게 그런 거죠. 그래서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자녀 의 관계 방식을 결정하는 건 바로 그 승부 하나님과 승자 하나님의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으로 말미암은 거죠. 우리에게도 우리는 이제 천국의 백성이고 천국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 관계 안에 있다라는 거죠. 그런가요?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 안에는 질서가 있죠. 없을 수가 없어요. 그 질서에 따라서 상위 권위와 하위 권위가 구분이 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관계 사회 모든 단체를 유지하는 근본이죠. 그게 하나님이 에덴에서도 똑같이 그렇게 질서 안에서 유지했잖아요.
관계 질서라는 하나님 인간 만물이라는 질서 안에서 그게 관계 안에서 상하관계죠 그렇죠. 그런데 그 관계가 잘 보시면은 굴종이 아니고 억지로가 아니에요. 할 수 없어서가 아니에요. 내게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그래서가 아니고 그것이 가장 사랑의 표현의 핵심이기 때문에 사랑의 관계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세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 존재법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 말해요. 창생에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을 천상의 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그걸 몸으로 알고 있어요. 몸에서 그걸 알고 있다고요.
그래서 그 질서에 따라서 상위 권위는 하위권위 하위권위는 상위권위에게 복종합니다. 복종하고 상위권위는 복종하는 하위권위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합니다. 바로 이 관계예요. 여러분 그래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런 주 안에서 마땅한 주 안에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복종과 사랑의 관계법이 유지가 되어 있는 천상의 법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행하셨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라는 거예요. 아내들이 남편에게 이렇게 복종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억지로가 아니고 당연한데 왜 그렇게 할 때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바로 그렇게 될 때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한다.
두 개가 누가 먼저냐 이거 따질 건 아니죠. 사실은 그 관계법 안에서 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래요. 보통 인간관계는 상위 권위에 있는 사람이 일방적인 희생만 막 강요하죠. 그거는 저주의 증상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 둘의 관계는 언제 틀어질지 몰라요. 그러니까 자기가 쓰여지면은 역전이 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인간관계 안에서는 자기가 더 위로 올라가려고 죽어라 노력하는 거예요. 죽어라 누가 아래에 있다라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본질적으로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에게 순종하기 싫은 게 당연한 겁니다. 하기 싫으면 절대 하지 마세요. 그냥 엎어버리세요. 그리고 재정비하세요. 안 됩니다. 그거는 하려고 하지도 마세요. 안 됩니다.
단지 그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한 거예요. 우리는 밖에 있어요. 안에 있어요. 걸려드렸어요. 우리는 날 때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어요. 이미 어디 나오죠. 고린도서 1장 30절 라이 안에 그거를 지금까지 한 거잖아요. 우리는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이 방식대로 사는 게 자연스러워요 너무 자연스럽죠 그런데 그 상위에 있는 그 남자가 그 밖에 있어서 영 안 자연스럽죠 어떡하겠어요. 그럴 때는 이제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는 그 방식으로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가요? 나는 천상의 사람이고 그는 천하의 사람이기 때문에 천상의 사람이 천상의 법을 따라 십자가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먼저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이제 돌이키겠죠. 그런가요? 그럴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권위 안에 복종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자를 복종시키고 싶죠 결혼하면 그러고 싶죠 에이 결혼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안 된다니까 안 된다니까 아면 했어요. 지금 이 여자가 내 여자다 아까 그렇게 했잖아. 오전에 그러니까 이 법은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동일한 관계법이에요. 사실은 누가 잘나고 못나고 이런 것도 아니고요. 누가 먼저 사랑해야 하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남편이기 때문에가 아니고요.
내가 그 그리스도 아내 천상의 사람이기 때문에 천상에서 온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속한 말 안 듣는 나 죽이기까지 말 안 듣는 나 그날을 위해서 자신을 죽여서 내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럼 둘 다 그 안에 있다. 그러면 복종과 사랑의 순종과 사랑의 법 안에서 살게 돼요. 그러면 너무너무 편한 거예요. 천국을 누리는 거예요. 그게 에덴의 질서예요. 그래서 에덴이 기쁨이잖아요. 기쁨의 동산이에요. 그래서 남편에게 막 이렇게 순종하는 게 너무 기쁜 거야. 너무 기쁘죠 지금은 그렇죠. 아닌가 전혀 아니에요. 전혀 조금 가끔 아니에요.
자주 기고 가끔 아니에요. 훌륭한데 그 정도면 여러분 어때요 남편을 막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호령합니까? 누나 그거 아니죠. 그러니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상대방을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한 법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둘 다 그 안에 있으면 이 관계법을 따르게 되어 있어요. 억지로 하려는 게 아니고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게 자신의 최대의 행복이다라는 걸 알아요. 그리고 남편은 자신을 내어주는 거고, 남편이 훨씬 더 손해 같아요. 자신을 내어줘야 된다니까 완전히 예수님의 피를 받았으니까 당연한 거죠.
여자들 말 안 듣는 게 당연하고 그렇죠. 그래서 내어줘야 되는 거고, 그러네 맞네 좋아하는데요. 되게 그렇게 할 거다 그거죠. 아멘 예 하는지 안 하는지 보고하세요. 실시간으로 톡 하세요. 법에서 벗어났다고 그러면 제가 전화하겠습니다. 바로 집사님 왜 그럽니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냐고 그렇게 사시면 곤란하지요 그만큼 내가 이 관계가 유지가 되지 않고 굴종의 관계 지배의 관계가 있다라는 그 자체가 저주받은 자들의 증상이거든요. 그러면 그 안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계속 언제 터질지 모르고 언제 똑같죠 쌍방이 시키는 대로 다 할 것 같아요.
여자가 그런 시대가 지난 전제인데요. 조선시대 같으면 몰라도 지금은 거의 반대 수준이죠. 행인들 보세요. 전부 여자들 가방 핸드백 남자가 다 메고 다니지 우유병 들고 이렇게 여자들은 휘파람 불면서 아이스름을 빨면서 이렇게 다니고 안 그러던가요 장가 고려하세요. 고려 고려하라 고려 그래도 괜찮겠어요. 뭔 기도를 해봐요. 기도를 해봐 죽기까지 나를 내어드리라고 하는데 무슨 기도를 해 한쪽만 알면 안 되죠. 그래도 맨날 뭐 유모차 밀 건 아니잖아요.
가끔 가다 성질 나서 유모차 엎어버릴 수도 있는 거지 안 쉬워요 그런가요? 한숨소리도 나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상위 권위에게 복종하는 건 본능이에요. 세 사람의 본능이지 굴종의 관계가 지배의 관계가 아니에요.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저주받은 증상이기 때문에 내가 지배하려고 하면 지배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내가 지배를 하려고 되어들면은 상대방이 반드시 이탈하게 돼 있어요. 그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 관계 안에서는 그런데도 어리석게 지배하려고 힘을 가지고 움켜쥐고 만나주고 그러죠 결국은 그게 나한테 돌아옵니다. 부메랑이 되어서요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런 것들을 아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복정하는 하위 건위에게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 그게 당연한 겁니다. 부부관계를 들면 바로 똑같아요. 이런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거죠. 남편의 아내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복종하는 관계가 같이 일어나는 거예요. 부모와의 자녀관계도 마찬가지고요. 전부 다 똑같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하게 되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그런 관계법을 따르게 되어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그런 그리스도 밖에서는 그 저주의 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 말을 들을 것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만큼 어리석은 거 없어요. 절대 안 듣습니다. 부모 말 잘 들어요. 모르겠어요. 서진이 말 잘 들어요.
웃어버려 그러니까 허탈하죠. 허탈한 웃음 아닌가요 굴종하죠. 혹시 용돈 안 줄까 봐 오락 못하게 할까 봐 그거 아니에요. 기쁨으로 순종해요. 그것도 아니에요. 뭐 그걸 아셔야 돼요. 여러분 내가 부모의 말을 안 듣는데 자식이 내 말 들을 것 같아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을 안 듣는데 와이프가 남편이 내 말 들을 것 같아요. 천만이에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꿈도 꾸지 마세요. 종과 주인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은 육신의 상잔에게 순종하되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 그러니까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 라는 게 이건 당연하죠.
그러죠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다하여 죽게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게 여러분 총과 상전의 관계에서 행하는 행동 방식이 전국의 법은 이렇다라는 거예요. 주님께 하는 듯 한다라는 거죠. 그래서 주인을 섬기는 것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 같죠 그리스도가 우리 주인님이시잖아요. 그러죠 그 대신 상전들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이는 그들에게도 상전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게 사장 1절이에요. 그런 관계법 안으로 우리는 들어가는 거예요. 인간관계에서 복종과 사랑의 법은 결국은 복종하는 자에게 유익을 주어야 하는 거예요. 사실은 이게 핵심이에요.
자신을 내어줘서 상대방을 유익하게 해주는 게 이제 상하 관계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의 핵심이에요. 만일 복종을 받는 상위 권위자가 복종을 하는 하위 권위자에게 이런 이 자신을 내어주는 그런 유익하게 해주는 그런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그렇게 복종시키려고 하면은 야나님이 정하신 이 사랑의 관계법을 어기는 거예요. 복종과 사랑의 관계법 존재법이 존재법이에요. 존재 그러니까 세 사람의 존재에는 이런 법을 따라야 한다. 그거죠. 세 사람의 존재법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둘 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나마 좋은데 율법 아래에 있든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으면은 힘 아니요. 힘들지 않아요. 이 본성이 새로운 사람이 어떻게 힘이 들어요. 그게 사랑할 기회가 막 하루 종일 생기잖아요. 나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다라는 그 모습을 하루 종일 나타낼 기회를 주셨잖아요. 할렐루야 아메 아메 그렇게 되나요? 되나요? 해야죠 언제 하시려고 언제 하시려고 이런 걸 몰라요. 우리는 저 인간 또 저 모양이다. 맨날 이런 불편 나오죠.
저 인간 조금만 고치면 좋겠죠. 그것만 안 고칩니다. 다른 건 다 고쳐도 절대로 그것만은 안 고칩니다. 하나님이 그걸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했습니까? 택도 없는 소리예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고치기를 꿈도 꾸지 마세요. 불가능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그 사람에게 나를 내주는 게 먼저입니다. 그게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은 회복될 길이 영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살렸잖아요.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어요. 정확하게 그게 천상에서 온 우리의 존재법이에요. 그 외에 어떠한 방법도 없어요.
이 어떤 뭐 법적인 걸 조치를 취하고 아니면은 뭐 단식투쟁을 해버리고 니 죽고 내 죽자 해버리면 될 것 같아요. 같이 죽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안 됩니다.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 천상에 존재하는 법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께 100% 순종복종해서 자신을 우리에게 드린 거예요. 요한복음 12장 50절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은 영생인 줄 알아 그 명령대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자신은 죽어야 되겠거든요. 그게 복종의 사랑과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잖아요. 하나님을 사랑해서 복종했고 하나님은 그 아들의 사랑 때문에 아들의 복종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거기다 다 부었고요. 그 존재법이거든요.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에요.
그런데 내 안에 그래서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이걸 행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게 율법이 돼버릴 수가 있어요. 그러면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러니까 그 순종 십자가를 지듯 자신을 내어주는 게 의무화가 되고 고통이 되어서 역사가 안 일어나요? 십자가 아니고 억지로가 돼버려요 억지로 십자가를 지닌 사랑의 표현이 아니고 억지로 굴종하는 게 되어버려서 그 지배와 굴종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고착화돼요. 그럼 둘 다 고통 가운데 저주의 정상 가운데 계속 죽어가는 거예요. 이해 다 되셨죠 너무 간단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여기에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성이 우리 안에 거해야 되고요. 그리스도의 본성이 내 안에 충만하게 거하고 능력이 넘칠 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성령충만 말씀충만 영적으로 생명의 능력이 충만해야 나오는 본성이지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열심히 내가 한번 해 봐야 되겠다가 아니에요. 그래서 실패하는 겁니다. 율법 아래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분들이 실패하는 게 그거예요. 내가 해보려고 그래서 끝까지 참는다고 남편이 십자가라고 하고 그러죠 아니 그건 잘못된 거예요. 십자가가 아니고 굴종이에요. 굴종 억지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역사는 안 일어납니다. 절대로 그래서 율법 아래에는 죽음밖에 없죠 그래서 죽는 거예요. 계속 고통당하는 거예요. 저주의 정상이 안 떠나가는 거예요. 수고와 슬픔이 내 인생에서 안 떠나가는 거예요. 너무 간단합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주로 섬기는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게 먼저예요. 그러면 이게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이거 내가 하는 건가요? 아니죠. 하나님이 이미 해 놓으셨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 안에 있고요. 그렇죠. 이미 완성해 놓은 거예요. 나타나지 않는 건 아직도 내가 말씀과 숙련으로 충만해서 달려가 그 안으로 연합되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내 원함을 가지고 상대방을 복종시키려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그 앞에 십자가를 치고 자신을 내줄 수가 없기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상대방이 안 변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안 변합니다. 불가능합니다. 기대조차 하면 어리석은 짓입니다.
기대하는 만큼 100% 실망을 하게 되고 거기에 고통이 따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법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본성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기대합니까? 기대할 수 있겠어요.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모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죠 그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의 말씀에 속아서 죽었다고 그랬잖아요. 자신이 마치 사망의 시체와 자신을 딱 붙여놔서 서서히 썩어가 죽는 그런 고통을 당한다고 그랬거든요. 교회 오래 다닌 사람이 그런 고통을 당하다가 죽는다고요. 율법 안에서 사랑의 관계 존재법이에요. 그냥 법이 아니고 존재법이라고 그런 존재가 행하는 법이라고요. 그렇지 않은 존재가 행하는 법이 아니고 존재법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려면 먼저 그리스 안에 들어가 있어야 되죠.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나는 내 자리에 있어야 이루어지는 법이잖아요. 그럴 때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거든요. 나를 유업으로 받으리라 그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는 건 그게 사랑이에요. 자신의 존재 전부를 우리에게 부어준다고요. 그러면 우리는 신성의 모든 충만함으로 이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십자가에 사랑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그 법이에요. 그 존재 법이지 성경 한 번 읽고 교회 좀 다녔다고 내가 사랑해야지 참아야지 죽는 길입니다. 여러분 그 참아주고 억지로 사랑해주고 굴복해주는 그런 것들은 상대방이 인정 안 합니다. 너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요 그게 저주받은 자아의 증상이잖아요.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려고 하고 그래서 그 저주받은 증상에서 묶여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 안에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본능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가 되면서 계속 지배하려고 하는 거예요. 남자든 여자든 똑같습니다. 요즘은 남녀 평등 시대잖아요. 남자가 여성 상해시대 그런 저주 중에 저주예요. 그건 평등이 없어요. 절대로 여러분 남성 상인시대도 당연히 마찬가지고요. 그건 아담으로부터 내려앉혀주고 그걸 뒤엎어보고 싶죠 죽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이 관계 존재법 외에는 답이 없는 거예요.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법인데요. 어떤 것 같아요. 여러분 그래서 이거 다스리려고 하니까 안 되니까. 성질이 올라오잖아요.
분이 올라오고 녹아 올라오고 왜 그게 본능인데 본능대로 돼야 되니까. 그런데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하고 더 세고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어때요 남자라도 여자를 못하잖아. 그럼 어때요 매일 술 마셔요 매일 술 마시고 게임 행패 뿌리고 해야 될 것 이 여자가 잘 나면 아주 심각해집니다. 그래요. 그게 좋을 것 같죠 그런데 이제 남자 위에 군림하려고 하죠. 그러면 이제 더 힘들어지는 거예요. 저주의 증상이라는 걸 깨달으셔야 돼요. 먼저 그러지 않고는 평강 가운데 안식 기쁨 일생 못 누립니다. 처절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찬양할 때 계속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그래요.
이 관계 안에 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열려요 세 사람의 세상은 다른 세상입니다. 천상의 삶이라니까요? 어떻게 똑같겠어요. 다르죠 당연히 이 존재법을 그래서 남자들이 권위로 누르려고 하는 그런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막 지배하려고 하는 거 이거는 그 존재법을 어기는 거예요. 거기에는 심판이 있어요. 하나님이 그 관계법 안에서 그걸 어겼기 때문에 심판에 있어요. 왜 심판이 있을까요? 왜 단순히 그 존재법이기 때문에 그런가요? 물론 법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단순히 그것만 그런 게 아니에요. 자신이 나를 위하여 다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당연히 그걸 일어나야 그게 일어나기를 하나님이 예수님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거를 정면대적하잖아요. 그러니까 심판이 오는 거예요. 심판을 받게 되어 있어요.
내가 만약에 그 사랑의 존재 안으로 들어가서 지속적으로 그런 섬김을 행하고 있는데도 계속 안 바뀌고 있으면 분명히 하나님은 심판합니다. 누군가를 법 밖에 있는 사람을 복종받는 자는 그리스도가 복종하는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준 것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복종하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록 행동을 해야 되는 게 바로 이 존재법이에요. 그게 에비소스 5장 25절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여기도 똑같이 나와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은 굴충과 지배관계가 계속 유지가 되면서 관계가 결국은 그래서 깨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혼을 많이 하고 부모 자식이 원수가 되고 아버지를 막 이렇게 떠나고 살인하고 이런 일들이 막 생기는 거예요.
그걸 사회적인 도덕적인 법 윤리의 법을 갖다 대서 될 것 같아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시간 낭비예요. 너는 아들이기 때문에 내가 너를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 네가 이 모양이냐 당연히 이 모양입니다. 안 됩니다. 기대조차 하지 마셔야 합니다. 그건 뭔가 내가 너에게 다 줬는데 자식이란 놈이 그래 이 모양이야 생일 때 한 번 얼굴도 안 내밀고 이 천하의 후레아들 같은 놈아 그리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거 왜 그런지 가르쳐 드릴까요? 내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그래요. 그 관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하위 질서가 그 상태에서 밖으로 벗어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내가 그리스도 안의 관계 안에 들어갔을 때는 절대로 그렇게 안 됩니다. 여러분 일시적으로 그걸 왜냐하면, 그 존재라는 본능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튕겨 나가고 그렇게 될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하나님은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게 내가 그와 관계 안으로 못 들어갔기 때문에 질서 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그게 혼돈이에요. 혼돈 자식들 당연히 안 따릅니다. 그러지 않던가요 그 원망 불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그 안으로 안 들어가 하나님 말씀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리스도 아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 아내 그게 뭐예요? 새 언약이죠. 그건 세 사람의 언약이에요.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오전에 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 전부 이 안에 있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이 질서를 잡아간다고 그랬죠 그 발 아래 당연한 겁니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는데 자식들이 내 말을 들을 것 같아요. 부모에게 효도할 것 같습니까? 내가 안 지키는데요. 안 됩니다. 안 들어갑니다. 절대로 안 들어갑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그래서 관계가 파괴되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신이 복종받는 자는 자신이 복종을 받는 위치에 있다면 복종하는 자의 유익을 당연히 구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에게 복종하는 거에게 그 자에게 유익하게 하도록 자신을 내어줘야 되는 거예요. 그게 관계법 안의 존재예요.
그런 존재가 유지가 되는 거죠. 이게 참 어렵죠 내 안에 그거 나 혼자 그거 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래서 죽어라 십자가를 치면서 사랑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럴 때 상대방은 하나님이 만지시죠. 그런가요? 내가 만지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에도 지도자와 성도 간의 관계도 똑같아요. 질서가 우리는 어떤 집단이기 때문에 질서가 있잖아요. 그래서 누군가가 예를 들어서 어떤 리더의 교회 지도자의 말을 안 듣고 대적을 많이 한다 그러면은 틀림없어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반대로 똑같습니다. 그러죠 성도는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게 존재법의 그대로 본성처럼 존재법이 맞아요. 그게 당연하죠. 그런데 지도자가 그 희생을 그 순정을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건 존재법이 이탈한 거죠. 법을 어긴 거죠.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가만 안 둬요 그래서 여러분 저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거예요.
아메 저 자식 좀 이러면 좋겠는데 가서 밤에 아무도 없을 때 가서 때려버릴까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하나님이 알아서 때릴 거예요. 순종 안 해서 여러분이 맡는 건 내가 책임 못 져요 그거 아시겠어요. 목사 말 듣기 싫죠 솔직히 솔직히 까놓고 까놓고 듣기 싫죠 싫잖아. 속으로 목사 말 듣기 좋아하는 사람 본 적이 없어요. 저는 당연하죠. 본능이 그럴 수밖에 있겠죠. 순종하지 않는 게 본능이기 때문에 그래요.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했던가요 그래서 그 피를 타고 나왔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 게 본능이에요. 단지 목사 말 안 들으면 벼락 맞는다 이런 걸 들어와 가지고 저주받는다. 이런 말을 들어서 그게 거짓말인 줄 아는데도 안 들으면 왠지 찝찝하고 그렇죠. 왠지 일이 안 될 것 같고, 막 그러죠 실제로 그래요. 아니 관계법에 맞잖아요. 제가 권위를 내세우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제가 여러분 앞에 권위를 내세운 적 있어요. 제 말 들으라고 제가 뭐 이렇게 한 적 있나요? 개인적으로 제가 뭐 이렇게 시키고 이렇게 하던가요 절대로 안 합니다. 여러분 안 들을 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순종 안 할 줄 알기 때문에 안 합니다. 인사 좀 해라 안 합니다. 그 사람은 죽어도 인사 안 할 걸 알기 때문에 제가 그런 말 안 해요.
그런 말 한 적 있던가요 제가 소용없는 걸 알기 때문에 안 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그러면 심판 당하는 게 좋아서 그럴까요? 아니요. 심판을 통해서 관계 안으로 들어와 천상의 존재로 이 땅의 삶에서 살아낼 수 기 위해서 하나님이 새롭게 하셔야죠 안 그러면 저주의 증상대로 살아야 돼요. 목사 말 듣기 싫은 것은 저주의 증상 때문에 그래요. 100%입니다. 부정하고 드실지 몰라도 그래요. 그러면서 잘 되기를 기대하신다면 좀 오산이에요. 제가 목사의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한 번도 그런 적 없어요. 저는 안 들어도 좋으니까 잘하시라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으면서 이집사촌 말 지독하게 안 듣는데 말 좀 들었으면 좋겠는데 막 욕하고 그래 봐요.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당장 나를 쳐버립니다. 아시겠어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걸 그 밖에서 말을 안 듣고 맨날 뺀질대며 대어든다. 그건 틀림없어요. 내가 하나님 말을 안 듣고 뺀질대기 때문에 여러분 말을 잘 듣죠 그래서 대답을 잘 해야 될 것 같지 않아요. 왠지 아메 어떻게 해야 정답이지 잘 아시겠어요. 그 관계 그리고 저주의 법을 아시라는 거예요. 이 실증 존재법을 아시라는 거예요. 그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하나님 그래도 여러분의 하나님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 내가 막 내 유기를 위해서 성도를 부리고 한다 그러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새끼는 맨날 저래 그렇게 하지도 마세요. 그냥 하나님 저 새끼 어떻게 해주세요. 이렇게 하세요. 아시겠어요. 그러면 하나님 그 새끼 어떻게 합니다. 완전히 막 빡에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해야 되는데 왜 이렇게 더디지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때에 알아서 하기 때문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시니까 그 머리 안에 또 머리 그 머리 안에 또 머리 그 머리 그 머리 목사가 예수님께 복종 머리인 예수님께 복종 안 오면 성도들이 어떻게 그 아래 사랑의 법 안에 갇혀 있겠어 사랑의 법으로 내게 자신을 내어주지 못한다면, 성도들이 어떻게 그 안에서 목사에게 순종하겠습니까? 안 하죠. 죽어도 안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께 순종을 강조 못 하는 겁니다. 하라고 절대 말 안 합니다. 제가 그렇게 될 때는 여러분이 알아서 할 거예요. 이탈하고 싶은 마음이 일도 안 날 거예요. 어서 말씀하시옵소서 내가 즐거이 순종하겠나이다. 이러고 싶어서 뭐 할 말 없어요. 목사님 이러고 막 올 거예요. 아메 뭐 시켜주세요.
목사님 내가 기쁨으로 해볼랑께 이렇게 나올 거예요. 그게 안 되는 건 제가 아직 덜 돼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용서하시고 여러분이 먼저 그 안에 계시니까 저에게 큰 사랑을 베푸시기를 똑같아요. 쌍방이 그래서 만약에 쌍방 전체가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징계가 꿀실함을 하나님이 내려요 그래서 성령이 계속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이 계속 안에서 들추는 거예요. 못 살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 한 번 안 하고 나면 내 안에서 계속 성경이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렇게 되게 되어 있어요. 그게 감사하죠. 너무 감사한 거죠. 그렇죠. 그런 일이 이제 신앙생활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문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전부 그리스도 밖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건 100%입니다. 그래서 그때 부혈을 힘입어 깨닫고 돌이켜서 그 안으로 들어오면은 이제 문제가 잠잠해지고, 해결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신앙생활 사회생활 다 마찬가지예요. 어떤 상황에서는 상위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 가면 또 하위가 될 수 있죠. 언제든지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잖아요. 그러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잘 새기시면 내가 이 저주의 정상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 존재법 안에서 천상의 모든 폭락을 다 누릴 수가 있어요. 이 부분을 정확하게 깨달으시면 좋겠어요. 권위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굴종하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순종과 사랑의 관계법 존재법이에요. 존재법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세요. 그전에는 예수님의 말을 아무도 순종 안 했죠. 제자들도 따라간다고 하니까 순종 아무도 한 사람도 순종 안 했어요. 전부 예수님 말씀을 부정하든지 대적하든지 대항하든지 도망가든지 예수님을 오히려 죽여버리든지 그랬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환경 안에서도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서 복종했죠. 내 뜻대로 마우시고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어요. 그렇게 전부 그 발아래에서 도망가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여버리고 그랬던 사람 그 사람들이 하나님 아들을 인정하고 그 발아래 전부 평정되고 무릎을 꿇었죠.
우리에게도 그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니까.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싹 다 들어오게 되죠. 우리도 하나님 말씀에 죽기까지 그렇게 복종 사랑의 관계 안에서 내 자신을 먼저 내어주게 될 때 모든 것이 그 발 아래 재정렬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너는 내게 구하라 열방을 내게 유업으로 주니 내 소유가 땅끝까지 그래서 예수님이 주가 되어서 땅끝까지의 주가 되신 거예요.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겠죠. 그런가요? 에베스 1장 22절 23절 이거잖아요. 만물을 충만케 하는 그리스도의 내 머리 교회 머리로 우리가 머리 안에 몸으로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에요. 맞나요?
예수님의 머리가 아니고 예수님의 몸이라고요. 우리가 그래요. 그럼 머리가 지령하는 대로 움직여야죠 그렇게 될 때 만물을 충만하게 이 흐름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 데서 3장 21절 23절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 밖에서 이걸 이루려고 하죠. 돈으로 힘으로 권력으로 이렇게 하려고 하죠. 그래서 죽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를 심판하시고 그 당하는 자의 편이에요. 일단은 그 타당한 자를 살리시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고통을 내가 먼저 당해요. 그 관계를 철저하게 깨달으셔야 돼요.
왜 우리 가정이 왜 우리 교회가 왜 내가 속한 곳이 이렇게 말이 많고 탈이 많고 말도 안 듣고 맨날 불화가 생기고 이러냐 게 있어서 그래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주님 앞에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갈 때야 모든 질서가 재정렬되고 완성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겸비하지 않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질서를 이탈하게 돼 있고요. 대적하게 돼 있어요. 힘과 권세권위를 내세우고 지배하려는 게 마귀의 본성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다스림을 벗어나 자기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쿠데타 일으키다가 땅으로 쫓겨왔잖아요. 그놈이 우리 안에 쏙 들어오니까 어떻겠어요. 맨날 이거지 누군가 나를 지배하려고 하면 무조건 싫은 거야. 목사가 뭐라고 하면 무조건 싫은 거야. 일단 어른 말 진리도 싫은 거야. 그렇죠. 아메 크게 하세요. 일단 아메 아멘 무조건 싫은 거야. 그랬어요. 여러분 여러분도 집에 가서 애들에게 그렇게 하려면 무조건 애들이 싫어하는 거예요. 튕겨나가는 거예요. 진짜로 그래요. 내가 그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절대로 지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내주려고 하지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내어줘서 그 발 앞에 희생이 되어서 그 질서 안으로 사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죠. 절대로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서 쟤는 왜 내 말을 이렇게 안 들어 하는 사람이 제일 문제입니다. 당연히 안 듣는데 왜 안 들으라고 하면 당연히 안 듣는데 그래서 여러분 뺀질대면서 말 안 듣는 저는 너무 기뻐요 본성대로 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그렇죠. 손은 하나님이 알아서 보실 거고, 그런 거 아닌가요 걱정을 안 해요. 하나님이 손 보면 곧바로 돌아오거든요. 여러분도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세요. 배우자들에게 그렇게 하세요. 남편 말 좀 들으면 좋겠죠.
어떡하면 좋아 다 똑같아요. 그 남편도 똑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아마 우리가 다 그래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혼자 살 수는 없거든요. 혼자 살면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 사랑의 존재법 안으로 못 들어가서 영원히 저주받은 증상을 안고 평생 살다가 마지막에 일을 갑니다. 그 구원 안으로 못 들어온 증거죠. 그게 새 법 안으로 못 들어왔잖아요. 그런가요? 새 법이 뭐예요? 말씀을 새겨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거 그게 세법이 1조 1항이잖아요. 그게 깨트러져 버렸는데 언약 위반이잖아.
그러고 어떻게 내가 천국에 입성하겠소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하는 거지 믿는다고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래서 이 지배하려는 마귀의 본성이 발동되는 거고, 저주받은 본성 부정성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그걸 보고 아차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돌이키고 얘기해야 정확하게 맞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렇습니다. 그게 회복되어 그 관계 안에 있어서 사랑과 복종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 안에서 서로 그렇게 이루어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 관계 안에 하나님이 기록을 보시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그래서 천국의 삶을 지금 시간에서 누리도록 행하시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이 하나님 제 자리에 있는 그것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하위 권위가 내게 뭔가 순종과 복종을 하리라는 꿈도 구제하는 게 좋으시고 그 관계는 있지 않으면서 내가 상위 권위에게 십자가를 주고 내 자신을 내어 놓는다 하위 권위에게 안 됩니다. 그게 항상 위에서 권위를 세우면서 내가 누군데 내가 내가 누군데 이게 마기적인 본성이에요. 그렇죠. 그래서 갑질하죠. 갑질 그러면서 질서가 유지가 되겠습니까? 율법으로 될 것 같아요. 세상법으로 얽매고 협박하고 그래서 율법을 강조하는 거예요. 순종하라 했잖아. 그러면서 이렇게 막 엇박지르는 거예요. 그건 뭐예요? 자신이 그리스도 밖에 있다라는 증거예요. 그건 뭐야?
내가 곧 심판을 당해서 고통을 당해야겠구나 임박한 진노가 지금 위에 이렇게 떠 있어요. 먹구름처럼 곧 쿵쾅 하면서 확 쏟아지게 돼 있어요. 그걸 아셔야 돼요. 하나님이 질서 안에서 만물을 그 발 앞에 복종케 하는 능력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죠. 내가 먼저 스님처럼 하나님께 복종할 때 하위건이가 그 앞에 복종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랑으로 내 자신을 내어줍니다. 복종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래요. 억지로가 아닙니다.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 사랑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셔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셔야 돼요. 나와 누군가의 관계 오직 사랑의 매는 띠로만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죠.
그게 존재법이에요. 여러분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만물을 충만케 하는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죠. 창조의 질서가 회복되게 되고 아담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순종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때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그 관계가 영원토록 유지되도록 그게 영생입니다. 창조 질서가 회복 저주가 풀어지고 고통과 괴로움이 다 떠나가고 평생 감사와 평강과 희락 가운데 살게 되는 청상의 그 봉락을 지금 시간 안에서 누리게 되죠. 아니면은 평생 저주의 증상 가운데 다투면서 살다가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죽어가는 겁니다. 여러분 그 부분을 철저하게 깨달으시고 이 세 사람은 세 존재법이 있어요.
복전과 사랑의 존재법 그 안에서 천상의 모든 복락을 다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율법이 아니고 존재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항상 기뻐하는 삶을 더러워서 내가 하고 말지가 아니고 너무 사랑해서 내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멘 그래서 막 새 노래가 나오는 겁니다.
1. 새 인간관계법
1-1. 천국의 법과 세 사람
- 성경은 복음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단계를 표현함
-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되었다고 말함
- 새 사람은 굴종과 지배의 관계가 아닌, 사랑과 복종의 관계를 지님
- 우리는 새 인간관계법을 따라 살아야 함
- 이 관계법은 세 사람의 관계법으로, 천국의 법임
1-2. 새 인간관계법의 의미
- 우리는 새 사람, 새 관계법을 지님
- 이 관계법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함
- 우리는 사람을 다스리려는 본능을 가지고 타고남
- 아담의 저주의 원인은 굴종과 지배, 혼돈이었음
- 우리는 새 관계법을 지키며, 성령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권유함
1-3. 새 인간관계법의 적용
-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충만하여 천상의 법대로 살 수 있음
- 우리는 새 인간관계법을 따라, 하나님의 지배 아래 살아야 함
-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 관계법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함
- (중요) 우리는 사람을 다스리려는 본능을 가지고 살 때, 수고와 고통이 찾아옴
- 우리는 율법이 아닌, 새 관계법을 따라 살아야 함
2. 인간관계의 질서와 사랑
2-1. 하나님의 질서와 사랑의 존재법
-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이 가능함
- 상위 권위와 하위 권위가 구분되어야 함
- 상하관계의 지침은 필수적이고 인간관계 안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함
- 질서는 인간의 질서와 하나님의 질서는 다르며, 하나님의 질서가 사랑과 복종을 통해 유지됨
- 하나님과 사랑받는 자녀의 관계는 사랑으로 복종하는 관계임
2-2. 복종과 사랑의 관계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랑의 표현임
-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에 근거함
- 사랑하기 때문에 복종하고, 복종하기 때문에 사랑함
- 하나님의 질서와 사랑은 천국의 백성과 자녀로서의 관계를 결정함
- (중요) 상위 권위와 하위 권위가 복종과 사랑의 관계 안에 존재함
2-3. 인간관계의 질서와 사랑
- 인간관계는 상위 권위에 있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과 사랑의 관계를 형성함
- 복종과 사랑은 스스로를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 이루어짐
- 하위 권위가 상위 권위에 복종하고, 상위 권위가 하위 권위에 사랑을 베풀어야 함
- 복종하기 싫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용납하고 사랑해야 함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 나타남
3. 복종과 사랑
3-1. 복종과 사랑의 본질
- 본인이 자연스럽게 사는 것은 복종과 사랑의 법 안에 있음
- 천상의 사람이 천상의 법을 따라 십자가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먼저 함
- 돌이키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권위 안에 복종해야 함
- (중요) 여자를 복종시키려면 결혼을 하지 말고 복종시키는 것이 중요함
- 복종하는 것은 사랑의 순종과 법 안에서 사는 것임
3-2. 상하 관계의 법
- 남편은 아내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복종해야 함
- 아내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함
- 이 관계는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 종-주인관계에서도 적용됨
- 복종과 사랑의 법은 상하 관계의 본질이며, 이를 따라야 함
-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복종시키려는 것은 사랑의 관계법을 어기는 것임
3-3. 복종과 사랑의 실천
- 복종하는 하위 권위에게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중요함
-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을 우선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
-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도 주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중요함
-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고, 복종과 사랑을 실천해야 함
- 이를 통해 하루 종일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하는 삶을 살 수 있음
4. 복종과 사랑
4-1.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
-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른 이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우선임
- 그 사람이 회복될 길이 없으면, 그에게 나를 내주는 것이 먼저임
-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드리셨듯이, 우리는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으로 타인을 살릴 수 있음
- 다른 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을 행하는 것임
- 우리가 복종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해야 함
4-2. 사랑의 표현이 되는 자아
- 순종과 십자가를 짓는 것이 의무화되고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됨
-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성해지고, 그리스도의 본성이 내 안에 충만해져야 함
-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생명의 능력이 넘쳐나게 됨
- 성경 한 구절을 열심히 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것이 먼저임
- 이렇게 되면, 우리는 십자가에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
4-3. 하나님의 사랑
- 하나님의 말씀으로 풍성한 존재가 되어야 함
-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본성이 충만하고 능력이 넘쳐나야 함
- (중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것이 중요함
- 아직은 자신의 원함을 가지고 타인을 복종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 됨
-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내어줄 수 없기에, 상대방이 안 변한다고 기대할 수 없음
5. 하나님 관계법
5-1. 관계법과 본성
- 관계법은 상호 간의 올바른 관계를 규정한 것임
- (중요) 하나님이 관계법 안에서만 사귈 때, 단순히 상호 관계가 아니라 법과 복종의 관계로 이해해야 함
- 복종하지 않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됨
- 스스로를 내어주고 복종하는 것이 관계법의 본질임
-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질서를 잡게 되고, 교회 안에 거하면 복종을 당연시함
5-2. 지도자와 성도의 관계
- 성도가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임
- 지도자가 순종하지 않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
- 지도자의 희생과 순종은 존재법의 본성으로, 성도가 교회를 위해 희생해야 함
- 지도자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이탈한 것임
- 하나님은 사랑받는 자가 복종하는 자에게 유익을 구하도록 하심
5-3. 권위와 관계법
- 권위를 내세우려는 것은 잘못된 것임
- 권위를 세우려는 생각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것임
- 스스로를 내어주고 복종하는 것이 관계법의 본질임
- 심판을 통해 관계 안으로 들어와 천상의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음
-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마음은 심판을 받게 하는 것임
6. 순종과 사랑
6-1. 복종의 힘
- 본인이 유기하려고 성도들을 부릴 때 걱정하지 말라 함
-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복종하지 않으면 성도들이 목사에게 순종하지 않음
- 죄와 의에 대한 심판이 계속되면 내 안의 성경이 난리 침
-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그리스도 밖에 있기 때문임
- 돌이켜서 사랑의 법 안으로 들어오면 잠잠해지고 해결됨
6-2. 사랑과 순종
-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순종하지 않던 제자들을 향해 죽기까지 복종하심
- 예수님은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을 무릎 꿇게 하고, 자신의 아들임을 밝히심
- 우리는 예수님의 몸인 우리는 예수님의 뜻대로 움직여야 함
-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발아래에서 도망가고 죽임
- (중요) 우리가 먼저 자신을 내어주면 예수님의 질서가 재정렬되고 완성됨
6-3. 사랑의 힘
-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안에 있어야 함
-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마귀의 본성은 발동되고, 저주받은 본성이 드러남
- 하나님의 은혜로 새 법을 깨닫고, 영원히 저주받지 않도록 해야 함
- 말씀을 새겨서 하나님을 믿고, 새 법을 통해 천국에 들어야 함
-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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