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요셉 두 아버지
(창48:5)
요약
신약 요셉이 그러했듯 구약 요셉의 다른 아버지는 누구일까? 그것은 요셉을 높여 성부의 예표가 된 바로 왕이다. 바로 왕은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다 주어 요셉은 바로에게 양아들과 같았다. 그런데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새도 조부 야곱이 양아들 삼음으로 졸지에 두 아버지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육과 영의 두 아버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 요셉이 받은 축복은 구약에서는 성취도지 않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놀랍게 성취되었다.
지난번에 신약의 요셉에게 두 아버지가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 신약 요셉의 두 아버지의 예언적 근거와 예수님의 두 아버지 우리의 두 아버지 문제 그리고 요셉이 받은 축복의 행방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신약 요셉의 두 아버지 문제의 구약적 근거입니다.
신약 요셉의 두 아버지 문제 역시 구약 요셉의 두 아버지가 그 예표입니다. 구약 요셉의 아버지는 이삭의 아들 야곱인데, 또 다른 아버지가 있었는가?
족보상으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독특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독특하다는 것은 양아버지 격인 아버지입니다. 그렇다고 확실한 양아버지는 아닙니다. 그래서 양아버지 격인 아버지라고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바로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당시 바로 왕은 요셉과 아람 출신으로 혈통도 같고 요셉과 그 민족을 대접한 아주 좋은 왕입니다. 이 왕이 요셉을 총리로 높임을 볼 때 이 왕은 모세 시대 바로와는 달리 예수님을 하늘까지 높게 하신 성부를 예표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성부를 예표하는 인물이 요셉을 높였던 바로 왕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에게 바로 왕이 형태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 실제로 바로 왕이 아버지 역할을 했느냐?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데 이 왕이 요셉에게 양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창41:40에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했습니다. 왕이 모든 권한을 요셉에게 맡겼다는 것은 왕위 계승할 아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인장반지를 요셉에게 주었는데 이것은 왕으로서 결재권입니다. 그리고 왕만이 입는 세마포 옷과 버금수레를 주었는데 이는 온갖 권세와 부귀영화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당시 왕은 백성들의 주요 아버지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바로에게 양아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장차 신약의 요셉에게 두 아버지가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왕과 헬리라는 이름이 비슷합니다. 바로라는 뜻은 '태양'인데 헬리라는 뜻은 '높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성경의 인명, 지명 사건 등이 우연히 기록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성경에서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이런 요셉에게 야곱은 축복하기를 "네 후손 가운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리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12지파의 예언은 다 역사 속에서 성취 되었는데 이 요셉에게 한 예언만은 구약 마당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구약의 요셉과 똑 같은 배경을 가진 신약 마당의 요셉에게 그대로 성취되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고전10:4에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했습니다. 벧전2:8에도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또 요10:11에 "나는 선한 목자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창49:24의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리라"는 말씀이 신약 요셉에게서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요셉의 두 아버지는 신약 요셉의 두 아버지를 위해서 귀한 근거가 되고 예표가 된 것입니다.
2. 예수님과 우리의 두 아버지 문제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에게도 두 아버지가 계시지요?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 요셉, 이처럼 우리도 두 아버지가 계십니다. 영의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입니다. 이 근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우리가 창세기를 보면 또 다른 두 아버지 사건이 나옴을 봅니다. 그것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야곱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즉 야곱은 손자들을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 말씀이 창48:5-6에 있습니다.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야곱은 이스라엘 열 두 아들을 축복하기 전에 갑자기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니까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선포해 버리고 열두 지파 속에서 요셉의 이름을 쏙 빼버립니다. 그래서 므낫세와 에브라임도 순식간에 두 아버지가 생겨납니다. 즉 한 아버지는 자기를 낳은 요셉 아버지요, 족보상으로는 할아버지 야곱이 자기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나도 안다 나도 안다"고 한 것을 보아 노년에 정신이 나가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차 나타날 어떤 일의 예표가 되기 위해서 한 일입니다.
이 예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장차 예수님에게 두 아버지와 우리 성도들에게 두 아버지가 있을 것을 시사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요20:17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 그 말씀처럼 예수님과 우리에게는 두 아버지가 계십니다. 한 분은 하늘에 게신 영의 아버지이시고 한 분은 육신의 아버지이십니다. 성경이란 이처럼 예언 없이 된 것은 없습니다. 마치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모두 성경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만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까지 두 아버지를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요셉이 받은 축복 문제입니다.
요셉이 받은 축복은 성취될 수도 없고 또 성취된 적도 없는데 과연 이 축복의 행방은 어디인가?
요셉이 받은 축복의 내용은 창49:22-26절입니다. 그 중 일부만 읽어 드리면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49장에서 축복을 받지만 요셉은 48장에서 축복을 받고 49장에서 또 다시 아들들과 함께 곱곱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축복의 분량도 두 장을 합해 놓으면 유다가 받은 축복을 능가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셉이 아들들이 받은 축복 말고도 자기가 받은 축복이 있기 때문에 요셉도 가나안 땅을 분배받아야 하는데 자기 이름마저 열두 지파에서 빠집니다. 즉 요셉에 대한 축복은 구약 마당에서 성취되지 않은 채 남겨졌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이 바로 요셉 축복의 행방불명에 담긴 귀한 비밀인데 답을 말씀드리면 요셉에게 한 축복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될 예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담긴 깊은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럼 구약 요셉에게 한 축복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
먼저, "샘 곁에 무성한 가지가 된다"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요셉은 두 아들을 야곱에게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후손을 기대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지파보다 더 무성하게 샘 곁의 무성한 가지처럼 번성한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 축복이 상식적으로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까요? 후손이 없는 요셉에게 번성이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구약 마당에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예언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신약 요셉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인류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성취되었다.
그래서 갈4:26-28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했습니다. 여러분 육신의 자녀 없다고 한탄 마시기 바랍니다. 전도하여 만든 믿음의 자손이 많으면 이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다음에,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는 축복입니다.
여기 담을 넘었다란 장차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계 이방에까지 미칠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갈3:14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활 쏘는 자가 학대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여기 활 쏘는 자는 사단 마귀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방패로 사단이 쏘는 악한 사상의 불화살을 막아야 합니다. 즉 신약 요셉의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놀라운 구원의 복음이 세계에 전파될 터인데 거기에는 많은 사탄의 방해가 있을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 팔이 힘이 있어 그것을 무너뜨린다"고 축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아무리 복음 전파를 방해해도 더욱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 충만하여 이기고 이겨 세계를 복음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요셉이 받은 축복은 구약 마당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신약 요셉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백성들에게 놀랍게도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문자와 육으로만 풀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서 가끔 선보이듯 충실한 영적 해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조직신학의 틀 안에서 성서신학이 더욱 발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정관념을 철저히 버리고 성경 기자들이 보여주었던 새 것에 대한 충분히 이해와 접근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구약의 두 요셉은 메시야를 나타내는 귀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도 두 요셉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최고의 축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셉에게 두 아버지가 있음 같이 우리도 하늘과 땅의 두 아버지가 있음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요셉이 받은 축복이 예수님을 통해서 다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 안의 무궁한 복을 누리십시다. 그들은 예언만 했지만 우리는 그 복을 누리게 된 사실을 감사하십시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