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선 목사
어제 밤에 뉴질랜드 역사상 최고의 액수가 걸린 로토를 추첨했습니다. 액수가 무려 2,500만 달러나 된다고 하더군요. 혹시 여러분 중에 당첨되신 분 없습니까? 한 달에 2,500달러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2,500만 달러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만한 매직파워일 수 있습니다. 그 돈이면 인생이 정말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2,500만 달러를 가진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행복할까요? 빌 게이츠나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에게는 2,500만 달러 로토가 당첨된다 해도 인생이 달라지거나 더 행복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25,000달러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500만 달러를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 세상 불공평하지요?
여기 2,500만 달러는 껌 값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솔로몬입니다. 그가 그렇게 화려하게 인생을 살고 나서 노년에 이르러 쓴 책이 전도서인데,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생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책의 처음 부분, 1장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리고 마지막 12장에서 끝날 즈음에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렇다면 무엇이 헛되다는 것이냐?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겠지요? 솔로몬은 최고의 부귀와 권력, 그리고 지혜를 가졌던 사람인데, 그가 경험하고 성취했던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학문을 연구하고 우주의 이치를 밝히려고 했던 것도 헛되고, 쾌락을 추구했던 것도 헛되고, 큰 권력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것도 지나고 보니 다 헛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는 이 헛된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2:24).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논리의 모순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간의 활동 대부분은 행복을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버는 것, 권력을 추구하는 것, 오락을 하는 것, 인간관계를 맺는 것 등이 궁극적으로 행복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헛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허무한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논리학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논하고 있습니다. 즉, 행복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진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행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이나 명성, 로토 당첨 같은 거창한 것 아니라도 우리의 인생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뭔가를 잘 하고 성공을 해야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솔로몬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 하나를 말해 주는데, 그것은 바로 아내입니다. 행복의 비결이 아내라고 하면 여자들이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솔로몬이 남자의 입장에서 말한 것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여자에게는 행복의 비결이 남편이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바울은 처녀가 시집가지 않고 주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잘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도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 전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고전 7:40).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인간의 창조 원리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경험하고 관찰한 인생은 힘들고 허무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이라고 인생을 묘사합니다. 그렇지만 그 힘들고 허무한 인생을 가장 잘 사는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동반자는 아들이나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입니다. 그래서 반려자라고 합니다. 반려자라는 말은 짝이라는 뜻입니다. 짝은 하나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둘이 있어야 온전해지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신 후에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시고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와의 의미를 돕는 배필이라고 하셨습니다(창 2:18). 남편과 아내가 짝을 이루어 산다는 것은 고달픈 삶이 아내에게서 위로를 얻고, 허무한 인생이 남편으로 인해 의미를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라고 남편에게 아내를 주셨습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화병이 생기기도 하고, 아내 때문에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주고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전에 어떤 아내는 저와 상담을 하면서 자기 남편을 남의 편이라고 부르더군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정말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반려자 즉 짝인데, 그 남편이 남의 편이라면 그것은 창조의 질서와 원리에 역행하며 사는 모습입니다.
과거에 우리 어머니들은 남편에게 실망하고 아들에게 남은 모든 기대를 걸고 살기도 했었습니다만, 그것도 잘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자식을 평생 붙잡고 살아서도 안 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자식이나 부모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자식이나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려자로 주신 것은 아내이고 남편입니다. 고달프고 허무한 우리 인생을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남편을 존중하고 아내를 아끼는 것입니다. 인생의 짐을 나누어 질 사람은 남편과 아내뿐입니다. 무능해도 내 남편이 내가 의지할 사람이고, 좀 못났어도 내 아내가 내가 기대어 쉴 수 있는 안식처입니다. 그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가장 잘 사는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우리가 해 아래서 수고하여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우리 모두의 가정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실천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살아가는 모습에 흐뭇해하실 만큼 행복한 가정 이루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