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의 시련과 3부의 성립 |
♣ 1920년대 독립 전쟁 봉도동 전투(홍범도의 대한독립군. 1920.6) → 훈춘 사건(독립군 토벌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작) → 청산리 전투(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대한독립군, 서로군정서 등 연합, 1920.10) → 간도 참변 → 대한독립군단 → 자유시로 이동(자유시 참변) → 3부 결성(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 미쓰야 협정(1925) → 통합 기운 → 3부 통합 운동 전개(북만주 : 혁의회, 남만주 : 국민부) →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 못함 |
간도 참변 (1920~21) | * 참변(慘變) : 뜻밖에 당하는 끔찍하고 비참한 재앙이나 사고 = 참사 * 1920년 간도에서 한국인들이(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 일본군에 의하여 무차별 대량 학살당한 사건. 거주지를 초토화 시킴 * 초토화 :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하여. * 청산리 전투 등에서 독립군에게 참패한 보복으로. = 경신참변이라고도 |
자유시 참변 (1921) | * 자유시 : 소련(러시아) 영토, 알렉셰프스크 지역을 말한다. * 간도참변으로 간도 지역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진 독립군 부대들은 → 서일의 대한독립군단을 중심으로 김좌진과 홍범도도 이 부대에 합류함 → 일부는 만주로 가고, 일부는 소련 영토인 자유시로 → 일본의 사주를 받은 소련 적색군(러시아 붉은 군대)의 배신(무장 해제 요청), 소련군 편입 요구 → 독립군의 반대 → 독립군과 소련군의 총격전(소련군이 독립군을 포위하여 사살) → 만주, 연해주 지역의 독립군에 소멸 상태에 빠짐 → 홍범도는 소련 적색군에 편입되고, 김좌진은 만주로 내려와서 3부를 결성함 |
3부 조직 | 자유시 참변 이후 만주로 돌아와 독립군 조직을 재정비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로 재정비 |
3부 통합 | 3부 통합운동으로, 3부가 혁신의회(북만주. 1지청천)와 국민부(남만주)로 재편됨 이로써 완전한 하나로의 통합은 성취되지 못함 혁신의회는 한국독립당으로, 국민부는 조선혁명당으로 계승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