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은 누가,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드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어요.
작가로서 국어사전을 늘 옆에 끼고 살았으면서도 말이죠.
사전 만드는 얘기가 영화로 나왔다고 해서, 참 궁금했어요.
도대체 무슨 스토리로 그 긴 시간을 메꾸려는 거지?
포스터에서 보는 것처럼 영화의 원제는 '배를 엮다'입니다.
언어라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엮는 작업을 사전 만드는 작업에 비유한 것이죠.
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1995년....
일본의 한 대형출판사에서 '대도해'라는 이름의 국어사전을 편찬하기로 합니다.
독특한 성향과 은둔자의 기질을 갖고 있는 남자, 마지메 미쓰야는 그 회사의 영업직을 맡고 있는데 말을 잘 못해서 실적을 도통 못 내고 있던 차....
은퇴를 하게된 편집자 때문에 후임자를 찾고 있던 사전편찬부에 스카우트됩니다.
그런데...사전 작업에는 너무나 적당한 인물 마지메....
오른쪽..을 정의해 보라니까, 많은 사람들은 머뭇머뭇대지만
마지메는 말합니다. 더듬더듬...
"서쪽을 보고 있을 때 북쪽을 나타내는 곳...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나타낼 때도 쓰는 말..."
감수를 맡았던 노 언어학자는 오른쪽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0이라는 숫자를 썼을 때 0"
저 같으면 뭐라고 정의했을까요?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머뭇머뭇 한참 생각하다 대답을 잘 못했을 것 같아요.
결국 사전을 만드는 작업은, 단어를 정의하는 작업인데
상투적인 정의를 내려선, 결국 상투적인 사전이 된다는 것이죠.
영화를 보고나서야
사전 만드는 일이 그토록 방대하고 까다롭고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공이 필요하고
엄청나게 많은 시간도 필요하고(영화에서는 15년이 걸려 세대를 아우르는 국어사전이 완성됩니다.)
게다가 세대를 아우르려면, 지금 현재 쓰고 있는 단어까지도 모두 포용해서
사람들 간의 격차를 없애야 하는구나......깨달았어요.
영화는 참 느리게 느리게 나아갑니다.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다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영화....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영화...
그러니까 보고나서, 피곤하지 않고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오랜만에 보는 참 좋은 영화...
독특한 주제를 가진 영화였습니다.
* 원작이 읽고 싶어집니다.
첫댓글 이거 보러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배탈이 나는 바람에 50분쯤 버티다버티다 그만 영화관을 나오고 말았다는...
제가 본 데는 하숙집 손녀와 막 이야기가 시작되려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마지메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맡긴다는 데.
아이고 아직도 아까워죽겠어요. 좋은 영화를. ㅠㅠ
사랑이라는 단어-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명확하게 잘 표현해내더군요. 마지메라는 사람...답답하면서 매력적인 인물...
이병주 소설에 <행복어 사전>이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읽어보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