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의 얼굴을 숨기지 마십시오.
내게 주님의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가 부르짖을 때에, 속히 응답하여 주십시오.
[시편 102:2]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너무 쉽게 고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자.
견딜만한 아픔을 주시는 분이라고도 너무 쉽게 말하지 말라.
다들, 아픔을 견디고 사는 것이지, 견딜만한 아픔은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도 아니다.
그냥,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견디는거다.
시인은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의 얼굴을 숨기지 마십시오!"간구한다.
그러나 주님이 얼굴을 숨긴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재, 침묵하시는 하나님, 혀 짤린 하나님, 절룩거리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는 한결같은 하나님(27)을 고백할 수 없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주님의 얼굴을 숨기신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함께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고난을 인내를 위한 연단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것이라고,
죄의 결과라고도 말하지 말라.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고난에 갇혀 눈이 먼다.
시인을 보라.
고난에 갇혀 눈이 멀었을 때에는 '주님께서 저주와 진노로 나를 들어서 던지는 것(10)'처럼 느꼈다.
하지만 눈을 뜨니 '한결같은 주님(27)'이 보이는 것이다.
주님은
내가 고난 중에 있을 때,
마음이 풀처럼 시들어서 말라버렸을 때(4),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7),
원수들이 종일 모욕하고 비웃는 자들이 저주할 때(8),
재를 밥처럼 먹고, 눈물 섞인 물을 마실 때(9),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말라가는 풀과 같을 때(11),
헐벗었을 때(17)에
그곳에 함께 계시며, 그 고난을 함께 견디며, 그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시다.
주님도 나와 똑같이 고난을 당하신다.
아니,
내가 겪는 고난은 주님이 당하신 고난에 비하면 차라리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주님은 한결같은 분이시다.
우리에게 얼굴을 돌린 적이 없으시다.
그러나 얼굴을 돌려버리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