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와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백남경 인제대 미래교육원 글쓰기교실 강사
작가가 글을 쓸 때 언제나 부닥치는 문제가 시간이다. 수필가는 대부분 자신의 삶(경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글을 쓴다. 그렇다면 기억을 토대로 할 수밖에 없다. 기억은 과거의 문제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으로, 지금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한 축이자 영역이다. 사실, 시간은 문리학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눈다. 두 개의 모습으로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크로노스(cronos)는 시계 시간을 지칭한다. 무한히 흘러가는 수평적이고 직선적이며, 시계에 의해서 계측되는 물리적인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통의 일상적 시간이다. 1초, 1분, 1시간, 한 달, 일 년 등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객관적 의미의 시간이다. 이는 시간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편익을 위해 약속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에서는, 한 번 가버린 청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반면 카이로스(kairos)는 주관적인 의미의 시간이다. 심리적이고 질적인 시간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활용하는 삶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인간이 그때마다 자신을 뛰어넘어 주체적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실패, 상처, 좌절, 이별, 투병, 죽음의 망각과 재현, 확대 또는 축소되는 시간, 1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해 느끼고 감상하고 음미하는 시간이다. 시험에 합격했던 감격의 그 순간, 첫사랑과 사랑을 확인한 그 순간, 첫 아이를 낳아 품에 안았던 그 순간, 그 순간들로 순식간에 달려갈 수 있는 건,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직 한 번 뿐인 시간, 즉 1회적인 삶을 살다가 죽는다. "흐르는 물에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은 크로노스의 시간에 의한 표현이다. 오직 일회성의 시간, 분분각각 유일한 시각만을 살아간다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수필가의 삶은 다르다. 수필 작가는 추체험(追體驗)과 재현을 통해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창작을 하는 동안, 소가 먹이를 되새김질하듯 과거에 경험한 것을 재현하면서 글로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카이로스의 삶을 살아가는 이가 수필가이다. 다음 글은 작고한 의사 수필가 박문하의 수필 '나무로 살자'의 일부다. 함께 감상해 보자.
「1964년 7월 29일 오후 4시, 이날 이 시각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큰 아이 의언이가 송정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다가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서 스물한 살이라는 아까운 나이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불귀의 몸이 된 날이다.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날 이 시각을 잊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어제 그 삼우를 끝내고 나는 오늘부터 다시 뒤에 남은 가족들을 위하여 이렇게 병원에 나와 앉아서 환자들을 보고 있으나, 내 마음은 이곳에 있지 않고, 갈매기가 되어서 멀리 송정 바다의 푸른 물결 위로 흐느끼면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수일 동안은 슬픔보다도 물속에 빠져 행방을 알 수 없는 시체를 찾기에 마음이 더 허둥거렸고, 그런 중에서도 비보를 듣고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일일이 대해야 했고, 또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는 아내를 돌보기에 바빠서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가 이제 장의를 모두 끝내고 이렇게 혼자서 조용히 앉아 있으니…」
작가는 아들이 익사한 연월일시를 구체적으로 표기했다. 두고두고 기억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수필은 그러한 슬픔을 떨쳐내려는 것이 아니라 간직하며 살아가겠다는 맹세다.
크로노스의 시간에서는 순간이 지나가면 그다음 순간이 오고,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올해가 가면 내년이 온다. 그렇게 해서 상처받은 이에게 세월이 약이 된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다르다. 아들이 죽었는데, 그 슬픔과 고통은 시간이 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을 철저히 거부(기억)하며 사는 삶의 방식이다.
흔히 수필을 내 삶의 기록이라 한다. 내가 과거에 걸어온 의미 있는 구간의 시간이다. 그것은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기에 재현할 수 있고, 추체험할 수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만 있다면 수필은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수필과 카이로스의 시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시간은 지평선이다, 순간이 영원이다" 같은 표현도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카이로스 시간의 존재에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