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추억 : 9월 모의고사
오늘 아침 메뉴는 김밥입니다. 아침부터 웬 호강입니까? 평소에는 땅콩잼을 바른 빵 한두 조각과 우유 한 잔, 과일 한 조각이 나의 아침식사인데 오늘은 특별식이 준비되었습니다. 식탁에는 아직 졸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내가 김밥 재료를 펼쳐 놓고 김밥을 싸고 있습니다. 나도 졸린 눈을 비비며 마주 보고 앉아 있으니 정성스럽게 만든 김밥 한 줄을 내어 줍니다. 황홀한 아침상입니다.
당연히 내일은 오늘처럼 황홀한 아침을 먹을 수 없습니다. 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루틴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오늘은 고3인 막내가 긴장하며 만나게 되는 9월 모의고사 날입니다. 수능을 앞두고 치르는 중요한 시험이라 수능의 전초전이라고도 불리는 시험입니다. 재학생은 물론 밥 먹고 공부만 하는 그들, 재수생들도 함께 시험을 치릅니다.
막내가 오늘 하루를 수능 보는 날처럼 보내고 싶다며 수능 날처럼 도시락을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아침잠을 반납하고 막내의 9월 모의고사 도시락을 싼 것입니다. 덕분에 나도 맛있는 김밥을 얻어먹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첫 시험을 준비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수능을 앞둔 9월 모의고사를 치르는 고3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시험을 치렀습니다. 이제 학교 시험으로 결정되는 내신성적은 거의 정해졌고 마지막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참 고생스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 막내가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하고 있는 수많은 고3 아이들과 재수생들도 고생이 많습니다. 다들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공부를 많이 하고, 또 잘하기도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니 말입니다.
막내는 오늘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었습니다. 저녁에 집에 와서 뒹굴거리며 모의고사 시험지를 채점했습니다.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는지 몇 점인지는 물어보지 말라고 합니다. 하긴 이제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동안 자기가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올 것이고, 남은 수능까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스스로 하게 되겠지요.
거의 다 왔는데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 이제 남은 마무리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어쩌면 그동안 달려왔던 시간만큼 중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집중해야 하고, 체력도 조금 더 버텨줘야 합니다.
방금 막내를 다시 학교에 바래다주고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몇몇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부지런히 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도 집에 잠시 다녀오는 길인가 봅니다. 오늘은 고3 아이들에게 참 중요한 9월 모의고사 날이었습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는 ‘주초고사’가 있었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는 암기과목을 포함한 전 과목 시험을 치렀지만, 매주 월요일이면 주요 과목 가운데 한 과목씩 시험을 봤습니다. 아마 국어,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시험을 쳤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주말에도 마음껏 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명화극장’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시험을 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공부를 포기해 버리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대부분 열심히 공부했고 주초고사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매주 시험을 치르고, 중간고사를 치르고, 기말고사를 쳤습니다. 그리고 상위 30등까지의 이름을 적어 학부모 가정통신문으로 만들어 집으로 보냈습니다. 통지표는 아니었지만 그 가정통신문에 내 이름 석 자가 올라가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하나의 기준이었습니다. 이름이 적힌 학생들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갈 수 있다는 표시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콩나물 버스를 타고 힘들게 등교하고,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조금 넉넉한 친구들은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뜨거운 물을 붓고 도시락의 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내 도시락의 남은 절반은 저녁에 먹어야 하니 남겨 두었습니다. 공부하다 저녁이 되면 한참 식어 버린 도시락을 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친구들과 잠시 놀다가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한 학년씩 올라갔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참 많은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가고, 어른이 되고, 직업을 갖고 나니 어느 순간 시험이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꼭 받아야 하는 직무연수를 듣고 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있지만 원하지 않으면 굳이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시험을 친다고 해도 꼭 좋은 점수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승진을 생각하는 사람은 몇 번의 고비를 넘어야 하는 시험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시험을 대하는 마음은 고등학교 시절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시험은 젊음이 가질 수 있는 계급장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시험 하나하나를 지나며 나이를 먹었습니다.
시험을 보는 날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모르는 문제를 만나면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3월에 첫 시험을 보던 날이었습니다. 5학년이던 나는 모르는 문제를 만나자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야 했습니다. 조용히 시험을 보다가 손을 들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교실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창밖으로 운동장에 가득 모여 있는 1학년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그날은 1학년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운동장 속에는 이제 1학년이 되는 내 동생도 서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5학년인 오빠입니다. 동생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좋은 오빠, 공부 잘하는 오빠가 되어야 하는데 시험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그날 나는 시험을 그럭저럭 잘 치렀고, 동생도 학교에서의 첫날을 잘 보냈습니다. 동생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의 일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에는 예전과 같은 시험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수업시간에 공부한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받습니다. 평가 시간에도 옛날에 내가 가졌던 그런 긴장감과 압박감은 없습니다. 자기가 배우고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평가 결과도 예전처럼 점수나 수·우·미·양·가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의 모습이 문장으로 서술되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됩니다.
긴장되는 시험을 만나지 않았던 우리 아이들도 중학교에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시험을 앞에 두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처음 만나는 시험에서 우리 아이들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장의 시험지가 우리 아이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9월 모의고사를 치르느라 고생한 우리 아이들이 오늘 밤만큼은 시험지를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푹 잤으면 좋겠습니다.
시험을 잘 본 아이도, 생각만큼 잘 보지 못한 아이도 오늘 하루 참 고생했습니다.
우리 막내도 푹 자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6.9.2.
첫댓글 험난한세월 지나고
우리아이들은 만족하고 행복해야 하는데..우리세대의 노력은 부족하다고 느낀다.
내 자리 그대로가 모두 행복한 자리여야 하는데..
갈수록 나아지면 좋겠다.
주님 오셔야 해결 되나..ㅇㄷㅇ
친구의 시험과 학교 생활 추억을 보니 내 경험도 살포시 떠오르네.
1학년때 서정리국민하교 다닐때 지나가던 골목과 계단을 한참 올라야 나왔던 교실이며 태평양처럼 넓어보이기만 했던 운동장 등. 3학년 때는 밖에서 테니스공으로 축구하던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교실에서 못 통과한 구구단을 반장에게 검사 받던일도 아련하데.
ㅇㅅㅇ
저에겐 너무 힘들어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바로 고등학교입니다.
교장선생님의 막내도 무사히 잘 이겨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