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7장, 19장에는 바리새인으로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를 언급하고 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웠기 때문에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거듭나는 문제를 질문했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주옥같은 영적인 지식을 접한 인물이다. 이후로 그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성토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편을 들었고(7:49-50), 예수님의 장례에 고가의 많은 양의 침향 섞은 몰약을 가져와서 사용할 정도로 자신의 사랑을 드러냈다.
칼빈은 “니고데모”의 신앙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25년간이나 “니고데모파”를 언급하면서 투쟁하였다고 한다. 칼빈이 말하는 “니고데모파”는 이런 사람들이다. “내면적으로 종교 개혁의 신앙을 받아들이면서도 로마 가톨릭의 의식에 계속해서 참가하고, 특히 미사에 참석하여 성체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감추었던 이들”로서, “이 가장자들이 “니고데모”를 본보기로 하여 방패로 삼는다고 하여 지칭”한 말이다(강경림, 37-38). 칼빈의 생애를 보면 자신도 박해를 피해 친구의 집에서 은둔할 때 표면적으로는 가톨릭교도인 것처럼 가면을 쓰고 살았던 몇 년의 기간이 있었다. 때문에 누구보다 “니고데모파”의 실상을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칼빈은 진리를 알아감에 따라 신앙을 가장하는 문제를 극복하고 일생을 하나님께 철저히 헌신할 수 있었다.
국내 신학자 강경림은 칼빈의 “니고데모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다. 그의 순교론을 통해서 박해에 직면한 신앙인들의 대조되는 태도를 살펴볼 수 있으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순교자의 신학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구분선 아래의 글은 학술논문으로서 각주에 라틴어와 외국어 비중이 큰 관계로, 가독성을 위하여 우리말로 달린 각주의 일부만을 게재하고 나머지는 삭제하였음을 알려드린다.
칼빈은 니고데모파의 "육적인 것에 신중함"(prudence charnelle)에 대하여 모든 시대의 순교자의 신학, 특히 초대 교회 순교자의 신학을 조명하면서 그것과 대비시키고 있다. 따라서 "순교자의 신학은 니고데모주의의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는 순수하고 진솔한 고백을 통하여 유지된다고 한다면, 니고데모파 사람들은 박해를 감수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 한 것이다. 이는 곧 “전혀 새로운 또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를 다듬어 내어야만 함"을 뜻하는 것이다. 칼빈은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잃을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로써 칼빈은 "신앙고백이 없는 그리하여 고난이 없는 기독교는 환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견지하려 한다.
"죽음을 무릅쓰는" 일은 교회를 위축시킨다는 변명들이 등장하자, 칼빈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의 위력"이 나타나야만 함을 강조한다. 만일 교회를 위축시킨다는 그러한 변명을 초대 교회 신자들이 했다면, 기독교는 존재하기 전에 괴멸되어 무너지고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신학적 지식이 많은 박사들이, 순교가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고 기독교를 입증하는 것임을 더 모른다고 한다. 이에 비하여 옛 순교자들의 신학은 간단명료하다고 한다. 즉 그들은 사람들의 찬양을 받으셔야 할 유일신만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전적으로 그분만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예배는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의 성호를 부르며 또한 모든 축복이 그분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찬양과 감사로 인정하면서, 선한 양심을 따라 살면서 그분의 말씀을 따라 그분을 섬겨야 함을 아는 것임을 인지하며,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과 생명이 없음을 아는 정도였다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를 즐겨 지는 것이 결국 축복받은 일임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특별한 위로가 된다". 그리고 "추방, 모욕, 투옥, 치욕 등도 불행이나, 죽음은 최상의 재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위에 임하면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행복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육당한다면 복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우리 앞에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주께서 크게 가치 있다고 인정하신 일들을 우리는 현세의 일시적인 유혹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칼빈은 순교에는 공포심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공포심을 극복하는 것에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용기가 나타난다고 한다. 칼빈은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베드로에게서 찾고 있는데, 베드로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심 때문에 도망하고 싶었을 터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달아 그 공포심을 극복하고 기꺼이 즐겁게 순교했다는 것이다.
칼빈은 『제1서신』에서 다른 순교자의 모범을 언급하고 있다. 즉 그는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이를 신자의 삶의 모범으로 삼고자 한다.1) 마카베오서에 따르면, 엘르아살과 일곱 아들을 둔 여인2)은 돼지고기 한 조각을 먹기만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나, 차라리 죽임과 고문을 당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돼지 고기를 먹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이 폐지되기를 바랄 뿐 아니라 그분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랐던 악한 독재자 안티오쿠스3)가 모세의 율법을 거부하도록 억압했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복종하면 그들에 의해 율법이 작은 의식에서 짓밟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기들이 하나님과 그의 모든 율법을 저버리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율법에 어긋나는 이 희생제를 관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엘르아살과 오랜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그를 따로 불러, 그에게 율법에 어긋나지 않은 다른 고기를 준비했다가 그것을 가져오도록 권하면서 왕의 명령대로 희생제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 체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위장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신성모독의 휘장을 남기는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한 가장은 우리 시대에 합당치 못하다. 그런 짓을 한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구십이 다된 엘르아살이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을 따랐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 아까워 그런 가장된 행동을 한다면 그들도 나 때문에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될 것이고 이 늙은이에게 치욕과 불명예가 돌아올 것이다. 내가 지금은 인간의 형벌을 피한다 해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자의 손길을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꿋꿋하게 죽음으로 나의 늙음에 합당한 일을 할 것이며,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율법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고상하고 훌륭한 죽음을 택하여 젊은이들에게 좋은 모범을 남기려고 한다.4)
칼빈은 이생의 두려움 때문에 영생의 소망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죽음을 너무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누군가 "죽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고 말하지만, "죽음이란 잠깐의 고통을 통하여 불멸의 영생과 행복한 안식에 들어가는 이동"이기에 우리가 죽는 것은 비참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심지어 그는 자기가 종교적 가장에 대하여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순교자들이 수호하려고 애쓴 것을 다시 언급한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1552년에 칼빈은 그의 반니고데모파 저작인 『네 편의 설교』와 『시편 87편에 대한 주석』에서 신앙고백의 문제를 논의하면서, 전체 논쟁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린다: “교회가 찬란히 번성하던 때의 그 영광은 자주색 옷이나 황금, 보석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피에 기인한 것이다."
칼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의 뜻"이라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순교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칼빈의 순교관은 그 당시 프랑스 개신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들어 프랑스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하였다. 칼빈의 글들을 통하여 영향을 받은 안느 뒤 부르(Anne Du Bourg)는 공개적인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처형당했고, 그 뒤를 이어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 이 순교자들의 행렬은 결국 위그노들이 국가 권력에 더 이상 수동적으로 당하지만 않고 항거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강경림, 『칼빈과 니고데모주의』(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pp. 306-310.
(미주)
1) 칼빈은 마카베오서(Maccabees)를 단지 외경(Apocrypha)으로서만 그 가치를 부여하고 자기 저작에서 활용하고 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제롬이 외경을 별도로 분류시켜 놓았으나 중세의 로마 교회가 외경을 정경과 섞어 놓았으며, 외경도 정경으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See: Inst., 1.vii.1, 2.v.18, 3.v.8, 3.xv.44, 4.ix.14; Bruce M. Metzger and Roland E. Murphy,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with the Apocryphal / Deuterocanonical Books(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Ap.iv.
2) 마카베오 2서 7:1-42; 8:1-17:23.
3) 알렉산더 대제 이후 일어난 셀류시드 왕조 중 13명의 왕의 이름이다. 안티오쿠스(Antiochus) 1세는 이 왕조의 창시자 셀류쿠스(Seleucus) 1세의 아들로서 통치 기간이 주전 292-261년이다. 마카베오 2서 4장부터 안티오쿠스 1세의 등극과 그의 종교정책이 기록되어 있다.
4) 마카베오 2서 6:24-25; 마카베오 3서 6:1-15; 마카베오 4서 1:8; 5:1-7:23; De fugiendis impiorum sacris, in CO, 5.268; Petit traicté, in CO, 6.570.
첫댓글 니고데모에게 신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향하여, 반대파와 박해자를 향하여도 정직하게 신앙고백을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대(對)사회적 신앙고백이 없는 교인은 배교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님의 섭리가 임하면 순교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디.
오늘 글은 칼빈에 대한 2차 자료이며 그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대사회적 신앙고백은 못하고 자기네 모임 안에서만 간증을 나누는 페쇄형 교회나 구원파 스타일 이단들이 무안하겠는데요.
<GODpia 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니고데모
야음을 틈타 예수께 찾아왔던 바리새인이자 산헤드린 공회원. 그는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그분에게 보다 완전한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그분을 찾아왔다(요 3 : 1-2).
처음에는 그가 중생의 필요성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으나(3 : 3-36), 나중에 이해하게 되었으며 결국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7 : 50).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들 앞에서 예수님에 대한 공정한 발언을 함으로써 공회원들과 논쟁을 벌였다(7 : 51).
니고데모는 또한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낼 때 아리마대 요셉을 도와 주었다(19 : 38-42).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반대하는 무리로서의 '유대인'이란 범주에 속하지 않는 중요한 인물이었다(참조. 요 1 : 11 ; 9 : 39-41).
이 설명에는 나름 좋게 묘사가 되어 있네요.
<호크마 주석>, 요한복음
=====3:1
니고데모 - 헬라식 이름의 뜻은 '백성의 정복자'로서, 공관복음서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나 본서에서는 세 번에 걸쳐 나타난다(7:50;19:39).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멸되던 당시 나퀴드몬(Naqidmon)이라고 하는 부유하고 관대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혹시 40년 전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일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기도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Moutefiore, Loewe). 요한이 전해 주는 바에 의하면 니고데모는 (1) 예수의 시체에 바르도록 '몰약과 침향을 섞은 백 근'(19:39) 정도를 선뜻 내놓는 부유한 사람이었다. (2) 엄격한 유대교를 신봉(信奉)하는 종파인 바리새파 사람이었다. 바리새인으로서의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백성되는 자격이 아브라함을 통해 계승되는 자연적, 육적 출생에 있음을 강조한데 반해, 예수는 영적 중생을 강조하셨다. (3)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다. 관원의 뜻은 '아르콘'(' )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을 가리키는데, 산헤드린은 그 당시 유대인의 최고 종교 회의 기관으로 그 구성원의 수는 71인으로 알려졌으며 고위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다른 말로 하면 백성의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편 니고데모가 그러한 사회적 고위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친히 예수를 방문한 사실은, 매사에 편견(偏見)이 없고 사리가 깊었음을 보여준다. (4) 그는 조상들의 율법에 정통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율법 교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율법 학자가 된 사람은 종교법과 의식(儀式)의 문제들에 대해 독자적임 판결을 내릴 수 있었으며(Sanh), 형사 소송 때에는 재판관으로서 참여할 수 있었으며, 민사 소송 때에는 여러 재판관들과 함께 판결을 내리거나 아니면 단독 재판으로서 판결을 내릴 수 있었고 또한 랍비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었다(Jeremias).
@장코뱅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적 출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니고데모가 유대교 바리새인의 한계를 다 벗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에서 니고데모가 예수의 표적들을 통해 예수의 탁월하신 교훈 능력을 인정하였던 것은 중요한 통찰이었다. 그러나 그는 온전히 예수의 교훈보다는 표적 자체에 더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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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요한복음
=====3:2
밤에 예수께 와서 - 니고데모가 굳이 밤에 예수를 방문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1)타인의 이목이 두려워서 (2)분주한 낮시간을 피해 예수와 친밀한 대화를 오래도록 나누기 위해 혹은 (3)밤늦게까지 연구하고 논쟁하였던 당시 랍비들의 관례에 따라서 등 여러 견해가 있으나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이는 니고데모의 신중성을 보여줌과 아울러 예수께서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요한은 19:39에서 다시한번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온 사실을 언급한다. 요한의 사상(思想)에서 '밤'은 악과 거짓과 무지의 실재(reality)로서 상징되고 있다(11:10). 그리고 13:30에서 유다는 '밤'에 예수를 떠남으로써 빛이신 예수에게로 나아온 셈이다(the Anchor Bible).
랍비여 - 니고데모는 안드레와 요한 그리고 나다나엘과
마찬가지로(1:38, 49) 예수를 '랍비'라 부름으로써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서품(敍品)을 받아 율법학자단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 년 동안의 정규적인 연구 과정을 마쳐야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모든 전승 자료와 할라카의 해석 방법을 통달하게 되고, 비로소 종교법과 형법(刑法)의 문제들에 대해 독자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서품을 받은 율법학자가 되려면 40세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와 같이 '랍비'가 되기 위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서품을 받은 율법학자들이 누리는 특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Jeremias). 한편 니고데모가 사용한 이 '랍비'라는 말이 예수에 의해서 부정되거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예수는 이미 그의 제자들이나 일반 대중들로부터 '랍비'라고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니고데모가 예수를 '랍비'라고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니고데모가 예수를 '랍비'라고 부른 것은 유대의 상층 계급에 속한 사람으로는 처음 있었던 일이요 따라서 예수가 이미 그러한 계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추측케 한다.
우리 - 본절에서 말하는 '우리'는 뒤따르고 있는
말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예수가 행한 표적을 보고 믿는 자들 곧 2:23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언급한다고 봄이 무난하다.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 - 니고데모는 이 말을 강조하는 위치에 첨가함으로써, 예수를 선생 이상의 존재 즉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모세, 예레미야, 세례 요한 등과 같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표현은 예수의 산적 본성을 나타내고 있다고까지는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이 예수가 과연 대망의 메시야인가 하는 의문을 담고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니고데모의 방문의 주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니고데모가 예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바로 표적을 통해서이다(2:23). 공관복음서 기자들보다 요한이 즐겨 사용한 이 '표적'이라는 헬라어 '세메이온'(' )은 신적 권위와 위엄의 증거를 보여주는 이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표적은 그것을 목격한 자의 주의(注意)를 그 행위 자체 보다는 그 일을 행하신 이에게로 이끄는 것이 그 특징이다. 표적 자체로서는 참된 구원의 신앙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표적들을 통해 당신의 교훈들을 확증하셨다. 본문에서 니고데모가
예수의 표적들을 통해 예수의 탁월하신 교훈 능력을 인정하였던 것은 중요한 통찰이었다. 그러나 그는 온전히 예수의 교훈보다는 표적 자체에 더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코뱅 니고데모는 타인의 이목이 두려워서 야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아예 안 믿는 것보다는 나은 것인지 모르지만 확실한 믿음과 신앙고백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칼빈이 그런 유형의 신자들을 니고데모'파'라고 명명한 것 같습니다.
@노베 강경림의 아래 글을 참고 바랍니다.
칼빈은 종교적 가장을 일삼는 이들이 "니고데모"가 무지했을 때와 믿지 않을 때 행했던 것을 따르려 한다고 주장한다(강경림, 칼빈과 니고데모주의, 26).
@코람데오 무슨 의도인지 알고 일리도 있습니다.
칼빈이 성경의 교사라면 그가 상정한 그리스도인은, 진보되기 전이나 또는 진보한 후의 니고데모가 아니라... 성령을 받고 중생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순교론은 배교론과 연관되는데, 배교의 가능성은 온전한 중생이 있느냐? 그 중생에 기초하여 성도의 견인을 하느냐? 여부에 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경우 온전한 중생에 대한 성경적 증명이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오히려 성경이 외적으로 명확히 드러내는 논리는 그는 중생을 이해하지 못한 자입니다.
<칼빈주석: 요한복음>
==3:7
... 니고데모는 자기가 중생과 새 생명에 관하여 들은 것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것은 중생의 방식이 자신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3:9
... 니고데모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다 기괴하게 들렸다. ...
==3:10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만한 자를 가르치는데 시간과 수고를 들여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서, 니고데모를 책망하기 시작하신다. ...
@장코뱅 ps) "요7:50.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 “우리” 율법, 즉 기존 유대교의 율법을 원용하여 예수님을 두둔하고자 하였습니다.
<칼빈주석: 요한복음>
== 7:50
복음서 가자는 니고데모를 경건한 가르침을 진지하게 변호하고자 하지는 않지만 진실이 억압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만 중립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 (중략) ... 복음서 기자는 니고데모가 여전히 밤의 어둠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서 애만 태우고 있을 뿐이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를 그런 식으로 소개한 것이었다. ... 오늘날에도 니고데모 같이 행하여, 그러한 가면을 쓰고서 벌 받는 것도 피한 채로 하나님을 우롱하고 속여먹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
"요19: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 빌라도의 승인과 보호를 득하고 유대인들의 공격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 예수님의 육체에 대한 장례에 협조한 것을 베드로 등 제자들과 같은 믿음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장코뱅 이와 대조적인 대표적 사례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부인한 베드로에게는 그 이전에 예수님이 직접 인정하신 진실한 신앙고백이 있었고 교회 수립 후에 양을 칠 목회자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칼빈주석: 요한복음>
== 19:38
... 오늘날 더욱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은, 기만적인 의식(儀式)을 통해서 속으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면서도 겉으로는 니고데모의 모범을 따르는 것처럼 가장하는 악한 무리들이다. 나는 그들이 니고데모와 한 가지는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그것은 그들도 니고데모처럼 있는 힘을 다해서 그리스도를 장사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
@ 2차 자료는 방향이 딱 맞고 1차 자료는 방향이 덜 맞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동일한 주제와 내용에 대해 칼빈이 쓴 1차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경우 1차 자료가 우세한 힘을 갖기 때문입니다 @
니고데모파가 대(對)사회적 신앙고백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특별은총의 수혜를 받고 온전한 신앙에까지 성장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니고데모는 중생에 대해 경험이나 지식이 없던 사람입니다.
"요3:4-5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네, 성경적으로 납득이 가는 좋은 댓글입니다.
니고데모의 영적 무지와 중생의 경험이 없다는 것은 요 3장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전체적으로는 아닙니다. 호크마 주석 등에서도 니고데모를 경건하고 변화된 유대교 고위층으로 보지 3장에 국한해서 보지 않습니다. 칼빈의 요한복음 주석은 그가 조금 성급하게 말한 일부분이고, 같은 주석에서 긍정적으로, 19장의 일로 그가 용기 있게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했다고 표현한 부분도 나옵니다.
강경림에 의하면 칼빈의 책 <변론> 등에서는 니고데모파라는 지칭을 더 적절한 말이 생각날 때까지 임시로 사용한다고 했고, 다음 판에서는 상당히 주저했고, 1549년 라틴어 번역은 제목을 사이비 니고데모파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강경림의 책 42-44쪽을 참고 바랍니다.
@코람데오 저의 위에 댓글에서 이어 씁니다.
@ 2차 자료는 방향이 딱 맞고 1차 자료는 방향이 덜 맞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동일한 주제와 내용에 대해 칼빈이 쓴 1차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경우 1차 자료가 우세한 힘을 갖기 때문입니다 @
강경림에 의하면 칼빈이 ... 했다! 가 바로 2차 자료입니다. 독자들에게 칼빈이 저술해서 널리 읽혀지고 있는, 칼빈에 의하면 칼빈이 ... 했다! 가 1차 자료입니다. 강경림이 읽고 해석한 칼빈의 말은 칼빈의 말이 등장히는 강경림의 글이 되므로 2차 자료로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학위취득 졸업논문 정도로 역할을 하고, <칼빈주석: 요한복음>(1차 자료)은 누구나 읽으며 성경 해석에 도움을 받고 성경에 나온 니고데모에 대하여 이해를 하게 해줍니다.
이 정도로 마치고 싶습니다.
순교 주제는 성도의 가슴을 숙연하게 합니다. 더욱이 칼빈이 언급한 내용이라서 더욱 경청을 합니다.
90이 다 된 엘르아살이 기꺼이 죽음을 택하겠다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네요. "숭고하고 거룩한 율법을 위해서" 라는 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부터 남다르고, 고상한 인격이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진리를 전파하시기 전임에도, 율법 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을 느끼고 알 수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네, 잘 참고하겠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마카베오서 말씀이 인용되었는데요.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계신의 점진성과 발전성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계시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벽돌색 문장 앞에서 결정체를 이룹니다.
점진적 발전이 있기 전의 미숙한 지식을 전혀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특별계시가 완성된 상태에서는 미숙하고 연약한 지식이 유일무이한 진리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교정되고 업그레이드 될 부분이 있습니다.
바리새인 지식조차도 복음을 아는데 일정부분 간접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주님께 비판받은 이유는 유일무이한 진리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교정되고 업그레이드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 상태에서라면 바라세인과 서기관의 지식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본문과 깊이 있는 댓글들을 읽고 제 마음의 양식이 풍성해집니다.
위 글에서 칼빈 주장의 핵심과 그가 바라본 기독교의 이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찬란히 번성하던 때의 그 영광은 자주색 옷이나 황금, 보석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피에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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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니고데모파(派)나, 니고데모의 믿음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자세를 강조한 것입니다.
칼빈의 말은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교자들에 비해 니고데모파와 같은 비겁한 16세기 개신교 신자들을 비교 설명하면서 나온 것임을 감안하십시오.
@코람데오 강경림은 본인의 니고데모파에 정의에 대한 반박을 저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논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그의 책 42-44과 그 전후에 '니고데모주의의 정의'를 쓰며 할애한 것입니다. 서론에 써도 되는 '용어 이해'를 본론의 맨 앞에 배치하여 강세를 두고자 한 것 같습니다.
강경림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해도 그의 연구논문 목적의 타겟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자세로 우상숭배를 물리쳐야 할 것인지'(p.15)입니다. 반우상숭배론을 전개하고 순교자의 자세를 이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장코뱅 두 분 댓글을 읽고 많이 배웁니다.
@에이프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