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의 일상에서 많이 쓰는 그릇이나 쟁반 그리고 상과
선물품에는 흔히 찍히거나 그려진 글자로서
喆 철자로 많이 알았지)
북송시대의 정치가 왕안석(王安石)이 젊은 시절,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외삼촌 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마을의 어느 대갓집 문 앞을 지나가는데, 문루위에 주마등이 걸려 있고,
다음과 같은 시와 함께 그에 어울리는 답시를 짓는 사람을 사위로 맞이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走马灯,灯走马,灯熄马停步
(走馬燈, 燈馬走, 燈熄馬停步)
주마등 등마주 등식마정보
『주마등은 등이 말을 달리게 하더니
등불이 꺼지니 말도 걸음을 멈추네.』
집주인인 마원외(馬員外)는 아들이 없이 재모가 출중한 딸 하나만 있었는데,
학문이 뛰어 난 범상치 않은 신랑을 맞이하려고 이러한 방법을 쓴 것이다.
왕안석은 시를 읽으며 좋은 시구라고 감탄하였다.
집에서 나오던 늙은 집사가 이를 듣고 원외대인께 알리러 갔다
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과거 시험이 급한 왕안석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가버렸다.
왕안석은 시험장으로 가는 도중에 계속하여
그 시에 어울리는 답시를 생각하였으나,
마음에 드는 구절을 떠올리지 못하였다.
과거 시험을 보는 날,
왕안석은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고 답안을 작성하였다.
답지를 완성한 그는 뿌듯해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뜰 앞에 걸린 비호가 그려진 깃발을 보고 문득 좋은 구절이 떠올라
飞虎旗,旗飞虎,旗卷虎藏身
(飛虎旗 旗飛虎 旗捲虎藏身)
비호기 기비호 기권호장신
『비호기는 깃발이 호랑이를 날게 하더니
깃발이 접히니 호랑이도 몸을 숨기네.』
라고 읊었다.
당시 시험관은 송대 대문호였던 구양수(欧阳修)였는데,
왕안석의 총명함을 높이 평가한 구양수는 직접 왕안석의 면접을 보게됩니다
왕안석이 시험을 마치고 다시 외삼촌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마원외의 집 앞을 지났다.
그런데 늙은 집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집으로 들어올 것을 청했다.
왕안석은 자신이 생각했던 답시를 썼고,
마원외는 그의 절묘한 대구(對句)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를 사위로 삼으려 하였다.
왕안석이 외삼촌의 집으로 가서 사정을 말했더니,
외삼촌도 흔쾌히 승낙하였다.
며칠 뒤, 결혼식을 하는데
그가 과거에 합격했으니 황제의 잔치에 참석하라는 통보가 왔다.
그야말로 기쁨에 기쁨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왕안석은 평소에 문자를 연구하여
‘자설(字說)’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특히 둘 이상의 한자를 합하여 뜻을 나타내는 ‘회의자(會意字)’에 정통했다.
그는 이미 ‘쌍’으로 ‘희(喜)’가 ‘문’에 ‘임’한 바에야
어찌 두 ‘희(喜)’ 자를 하나로 아우르지 못하겠는가 하며,
붉은 종이 위에 커다랗게 희(喜)자 두 개를 겹친 ‘쌍희 희(囍)’ 자를 써서 대문 위에 붙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巧 對 聯 成 雙 喜 歌 (교대련성쌍희가)
馬 燈 飛 虎 結 緣 蘿 (마등비호결연라 )
『교묘한 대꾸로 쌍희가를 부르니
주마등과 비호기가 혼인을 맺어 주네.』
이로부터 겹경사가 있는 날에는 ‘쌍희 희(囍)’ 자를 써서
대문 앞에 붙이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두 개의 ‘기쁠 희(喜)’를 나란히 쓴 ‘쌍희 희(囍)’ 자는 주로 혼례에 많이 쓰이는데,
양가 모두에 기쁨이 오고, 결혼과 임신의 기쁨을 잇달아 얻으라는 축원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선물을 할 때에도 좋은 일을 겹으로 얻으라는 의미에서 쌍으로 하는 풍속이 전해진다.
(출처)~몽촌 블로그
双喜临门 쌍희임문ㅡ겹경사가 나다
喜上加喜 희상가희ㅡ경사가 겹치다
●반대말●
祸不单行 화불단행 ㅡ엎친데 덮친다
雪上加霜 설상가상ㅡ설상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