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제석감음 (除夕感吟 / 섣달 그믐날 밤 느낌이 일어)
我 齒 居 然 五 五 春 (아치거연오오춘) 내 나이가 어느 새 오십하고 또 다섯
年 光 欲 挽 奈 無 因 (연광욕만나무인) 세월을 잡으려 해도 어찌할 도리 없네
常 時 惜 日 如 今 日 (상시석일여금일) 평소에 가는 세월 오늘처럼 아꼈다면
未 必 徒 爲 此 樣 人 (미필도위차양인) 분명코 지금의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을
<어 휘>
我 齒 : 나의 나이
居 然 : 벌써, 어느덧, 徒然
五 五 : 55세
無 因 : 의지할만한 것이 없음
徒 爲 : 소용없는 일
<지은 이>
조현명(趙顯命, 1691-1752),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歸鹿) 또는 녹옹(鹿翁)이며, 본관은 풍양에, 시호는
충효(忠孝)이다.
23세에 진사가 되고, 29세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다. 1721년에 연잉군(후일의 영조)이 왕세제로 책봉
되자, 세제보호론을 펼쳐 소론의 핍박으로 곤경에 처해 있던 왕세제(王世弟)를 보호하는 데 힘썼다.
영조 즉위 후에는 용강현령과 교리 등을 역임하고,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종사관으로 종군했으며,
난(亂)이 평정되자 분무공신 3등에 녹훈되어 풍원군에 책봉되었다. 이후에는 전라감사, 공조참판, 어영대장,
부제학, 이조와 병조, 호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1740년에는 우의정, 좌의정 등을 차례로 역임하다가, 1750년에는 영의정에 올라 균역법을 총괄하면서 관련
대책을 보완하기 위해 고심하였다. 아울러 민폐의 근본이 양역에 있다고 하여 군문· 군액의 감축, 양역 재정의
통일, 어염세의 국고 환수, 결포제 실시 등을 그 개선책으로 제시한 경세가(經世家)이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귀록집(歸鹿集)이 있다.
위에 소개한 7언 절구는 시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한 해를 보내면서 느끼는 시인의 감회를 피력하고 있다.
한 해를 보내며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다짐을 시에 담았습니다. 오늘도
세모(歲暮)가 되면 저마다 느끼는 송년의 감회에 좋은 참고가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