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님이 이사하는 날이다. 오래 묵은 물건들은 웬만하면 버리고 새 아파트에서 단출하게 사시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다. 하지만 이삿짐을 풀어보는 순간, 내가 시집와서 큰집에서 처음 보았던 오래된 그릇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갖가지 크기의 유리컵, 묵은 기름때가 묻어 있는 접시, 변색 된 플라스틱 반찬 용기, 낡은 냄비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큰형님은 널브러진 짐들을 헤치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분명히 챙겨 넣었는데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신가 보다.
낡은 물건들을 챙겨 온 것을 마땅찮게 여기던 참인데 큰형님이 찾는 것은 요강이었다. “아파트에 무슨 요강이 필요하세요. 문 열면 화장실인데.” 큰형님을 이해할 수 없는 터라 셋째 동서와 한참 웃었다. 화장실 출입 때마다 변기 물을 쓰면 수도세가 많이 부가될 것을 염려하신 형님은 하루 동안 요강에다 볼일을 보고는 한꺼번에 물을 내릴 요량이었다. 큰형님이 유별나게 아끼고 절약하는 버릇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알지 못했다. 큰형님은 현대판 자린고비였다.
요강을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 하루는 한 친구 집에 모여 공부도 할 겸 한밤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모인 친구들의 수다는 밤새도록 끝이 없었지만, 밤에 바깥에 나가는 것이 무서워 모두 요강에 볼일을 보았다. 소리마저 각자의 개성만큼 다른 리듬으로 들려 즐겁기만 했다. 문제는 다음날에 일어났다. 친구 아버지가 아침에 귀가한 친구를 밖으로 내쫓았다. 비싼 밥 먹여 놓았더니 남의 집에 오줌을 누어 그 집에 거름을 보태어 주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는 오줌도 농사에 중요한 거름이었다. 검소 검약이 몸에 밴 ‘짠돌이’ 별명이 붙은 친구 아버지는 거름이 되는 오줌 한 줄기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그때는 집집마다 요강이 있었다. 화장실이 먼 곳에 있는 이유가 있었지만, 식구가 많은 경우에는 요강이 두세 개까지 있었다. 집안에 노약자가 있을 때는 요긴한 변기였다. 아마도 최초의 이동식 화장실이지 싶다. 놋쇠 요강이나 사기요강이 대부분인데 우리 집에서는 사기요강을 사용했다. 하얀색 요강에 파란 모란꽃 위로 나비 두 마리가 날고 있다. 쭉 뻗어 날렵한 난 잎도 그려진 예술 작품이다. 그 시절 시집가는 신부가 꼭 챙겨야 하는 중요한 혼수품이기도 했다. 부엌일을 마치면 엄마들은 아침에 씻어놓은 요강을 방으로 들여놓아야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스테인리스 요강은 이삿짐에 섞이지 못하고 베란다 구석진 곳에 숨겨진 듯 놓여 있다. 오랜 세월 아픔을 함께했던 주인의 모습처럼 요강도 본래의 빛을 잃고 회색빛이 되어 있다. 외아들의 짐이 되지 않겠노라는 큰형님의 각오만은 완강하여 서울 아들 집에 한 번 다니러 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한다. 베란다에 자리하고 있는 요강의 모습이 큰형님처럼 외롭고 슬프게 보인다.
술과 농약에 빠져 소흘했던 시아버님 대신 큰아주버님은 일찍부터 맏이로서 책임을 다했다. 소방서 공무원으로 여섯 동생들 교육 뒷바라지까지 하다 보니 아끼고 절약하며 사는 것이 몸에 배인 듯하다. 제삿날 가족들이 큰집에 모일 때면 셋째 아주버님은 투덜대면서 꺼놓은 형광등을 켜고, 보일러 온도를 올리기에 바쁘다. 뒤를 이어 큰아주버님은 바로 스위치를 끄신다. 집안의 제일 큰 어른으로 오로지 본인의 주장만이 옳고 바르다고 여기신다. 누구도 그 앞에서는 입을 다문다. 쥐 잡듯 하셔도 대항 한번 못하시는 큰형님, 저런 분과 어떻게 평생을 살아왔을까 싶다가도 두 분이 마음을 모아 아끼고 절약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때만큼은 완벽한 천생연분이 없다고 여겨진다.
이삿짐을 정리해주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먼지가 묻은 옷을 벗어 세탁기에 돌렸다. 용변 후 변기에 물을 내리려는 순간이다. 큰형님의 절약 생활이 생각난다. ‘물을 아끼면 용왕님이 돌봐주니 수돗물을 아껴라.’는 생전 엄마의 당부도 떠오른다. 우리나라도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다.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나는 지금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물을 펑펑 쓰고 살았다.
칠 남매 중 늦둥이 막내며느리를 귀엽게만 여겨주시던 시부모님보다, 세 분 동서와 세 분의 시숙님이 더 어렵기만 했다. 잘못하면 흉이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집안일이 있으면 입을 다물고 열심히 설거지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형님들 앞에서도 내 주장은 펼 수 있는 간 큰 막내동서가 되었다. 내 귀에 요강을 가져와야 했던 이유를 부끄러운 듯이 귓속말하시던 큰형님, 맏며느리의 힘든 삶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살아야 했던 알뜰함이 옹이처럼 박혀 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약해졌지만, 아직도 아끼고 절약하는 것만은 흔들림 없는 철칙으로 삼고 있다.
여든두 해를 살아온 끝자락의 삶이다. 여유로운 주부와 아름다운 여자로 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억제하고 사셨을까 싶다. 하루에 한 번만 변기 물을 내릴 큰형님이 생각나서 쉽게 물을 내리지 못한다. 한참 변기만 바라보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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